How to live as a scammer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인생 최고의 걸작
모덴 자작의 시신은, 곧 발견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장의 직위는 롬하디 남작에게 인수인계 되었다.
물론 시청 자체가 엉망이 되어 당장 그곳에서 업무를 시작하진 못했지만.
임시 청사에서 업무를 진행하며 도시를 정상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인 롬하디 남작이었다.
나야 뭐, 이제 롬하디 남작이 알아서 할 테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내가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게 중요할 뿐이었지.
먼저 가장 중요한 내 편.
디아즈를 치료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최상의 컨디션까지 끌어올리려면, 한 달 정도는 쉬어야 한다더군.”
“아닙니다. 이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고집 피우지 않았으면 하는데.”
“……예.”
조금 단호하게 딱 말을 하니, 더 이상은 토를 달지 않는 디아즈였다.
차라리 악마와 싸웠다면 이리 부상은 없었을 텐데, 상대가 인간이다 보니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쉬고 있어라. 나는 일을 좀 처리하고 올 테니.”
“알겠습니다.”
그다음으로 해결한 것은, 역시 불사조의 꽃이었다.
롬하디 남작이 즉위하니 억류되어 있던 소소한 약초상의 삼 형제들 중 두 명도 풀려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다시 소소한 약초상을 방문하였다.
덕분에 삼 형제의 감격적인 상봉을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형님들!”
두 형들의 등장에 페르난데스가 벌떡 일어났다.
“막내야!”
“가게는 잘 지키고 있었지?”
“하하! 말해 뭐해! 딱 봐도 멀쩡하잖수!”
첫째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야, 이 녀석아! 여기 보수해두라고 말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대로야?”
“형님 거 오자마자 잔소리요?”
“잔소리를 안 하게 좀 해주면 안되냐?”
“난 뭐 놀았나? 나도 혼자 가게 지키느라 얼마나 바빴는 줄 아쇼?”
“아니 근데 이놈이, 따박따박 말대꾸야?”
“나는 뭐 할 말 없어서 입 다물고 있나!”
감격은 금방 사라졌다.
이게 찐형제인 모양이었다.
둘째가 그 둘 사이에 서서 겨우겨우 말리기 시작했다.
“아니. 손님 있는데 그만들 싸우고. 형님! 형님도 은인께 보답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 그랬지.”
“자, 막내도 그만해. 가서 보수할 망치하고 못 챙겨오거라.”
“알겠수, 둘째 형님……”
페르난데스가 사라지고.
이제야 두 형제가 나를 돌아보았다.
* * *
“크흠. 험한 꼴 보였소. 송구하오.”
“아니.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우리가 하는 일이 이리 약초나 캐러 다니는 것이오.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가져가시오. 얼마든지 내어 드리리다.”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거저 가져가는 건 어렵겠어. 돈은 지불하겠다.”
“엥?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
“물건들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는 못하겠군.”
“하! 하하하! 이거, 이거. 약초 보는 눈이 있는 성기사 나리셨구만!”
두 형제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내가 이리 말한 것은 그저 그들의 기분을 살려주려 한 것이 아니었다.
‘히든 퀘스트 조건을 날려 먹을 수야 없지.’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합당한 물건에 합당한 대가를 치른다. 당연한 일이지.”
“하하하하! 썩 마음에 드오. 그럼 어디 한 번 골라보시오!”
그다음부터는 폭풍 쇼핑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덤터기 쓰기.
근데 이거……호감도가 꽤 올라간 터라 쉽지는 않아 보였다.
‘전략적으로 덤터기를 써야겠군……!’
나는 나름 머리를 굴려, 고단수로 사기당하기를 시도하였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건 어려웠지만, 그 방법은 심플했다.
‘파는 놈도 가격을 헷갈릴 정도로 비싸고 싼 걸 번갈아 고른다!’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놈들끼리.
이건 비싼 거, 이건 싼 거, 이건 싼 거, 또 이번엔 비싼 거.
야바위를 하듯, 그것들을 막 섞어 구매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두 형제의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어, 음……”
“……하, 하하……”
그리고는 그것을 뒤죽박죽 야바위를 한 다음 계산을 부탁했다.
“그, 그, 보자. 이건……이건 얼마지?”
“아, 형님. 그건 동화 하나요.”
“그리고. 이거는……”
“그건 동화 두 개면 됩니다. 그 옆에 건 동화 다섯……”
나는 눈을 번뜩였다.
‘동화 다섯? 저건 동화 세 개짜리다!’
덤터기를 쓸 절호의 기회!
그것을 놓칠 내가 아니었다.
“여기 동화 여덟.”
얼른 돈을 내자, 둘째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오. 이 마지막 놈은 동화 세 개요. 여기 다시 돌려 드리겠소.”
“아니 되었다.”
낙장불입이다.
어딜 감히 돈을 돌려주려고.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충분히 이 정도 가치는 있는 물건들이었다.”
실제로 이 약초들은 디아즈의 치료에도 잘 쓰일만한 것들이었다.
품질도 이 정도면 상품이고.
굳이 손해라고 하기도 어설플 정도긴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전력을 다해 캐낸 약초들을 인정받은 두 형제는, 매우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이것 참. 이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둘째야. 가서 그거 꺼내와라.”
“예? 형님? 그거,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알겠습니다!”
둘째는 잠시 저 뒤편으로 사라지더니, 손에 무언가 조심스럽게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리곤 그걸 첫째에게 넘겼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그래.”
고운 포대기 안에 쌓여 있는 무언가.
그걸 받아 든 첫째는, 입구를 조금 열어 그 안을 내게 슬쩍 보여주었다.
“이게 뭔 줄 아시오?”
“……”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지경이었으니까.
왜 모르겠나.
저게……
“불사조의 꽃이오.”
움찔.
하마터면 활짝 웃음꽃이 필 뻔했다.
드디어 저 녀석이 내 손에 들어왔다.
* * *
불사조의 꽃은, 진짜 불사조가 만들어 낸 꽃 같은 건 아니었다.
강아지풀이 강아지가 만든 게 아니듯.
단지 꽃잎의 모양과 빛깔이 마치 불사조의 깃털과 비슷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에 불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효과는 얼핏 불사조의 느낌이 들긴 했다.
[손상된 체력을 즉시 전부 회복한다.]간단히 말해 풀피가 된다는 소리였다.
하나 고작 요것뿐이라면, 내가 이렇게 이 꽃에 매달렸겠는가?
그 자리에서 바로 섭취해도 효과는 확실할 테지만……
‘내가 원하는 건 아니지.’
나는 불사조의 꽃이 가진 극한의 효과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엑기스를 쫘악 뽑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것만 성공시킨다면……
‘회복력 자체가 올라간다.’
단순히 당장 풀피가 되는 것과 체력 회복력을 올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리고 굳이 당장 불사조의 꽃을 섭취해야 할 만큼 지금 내 컨디션이 나쁜 것도 아니고.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공정이 필요했다.
일단은 한 달의 시간.
실력 좋은 약초꾼이 정성을 다해 한 달간 온갖 정성을 들여 말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 삼 형제라면 실력이 모자랄 리는 없고.’
애초에 불사조의 꽃을 캘 정도의 인재들인데, 불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잘 말린 불사조의 꽃을 가루로 만들어.
‘연금술사에게 부탁을 좀 해야 하는데……’
이 역시도 생각해 놓은 사람은 있었다.
그러니 이 부분은 일단 넘기고.
내겐 아직 마지막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깡……깡……깡……!
일정하게 들려오는 망치 소리.
현판에는 가룬 대장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만 살짝 지났을 뿐인데도 더운 공기가 나를 화악 덮쳤다.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이 열기가 모여 나의 새로운 검을 만들어 줄 것이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룬의 수제 검을……!’
대장장이 망령 가룬은, 일생일대의 꿈을 이루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망령으로 등장을 했었다.
사실 이건 기억 못 하는 사람들도 많을 내용일 터였다.
왜냐하면 거의 이스터 에그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몰라도 게임 진행에 저어어언혀 지장이 없는 그런 거.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읽을 수도 없는, 벽에 새겨진 글귀와 아이템을 얻기 직전에 화면 끄트머리에 슬쩍 보이는 반투명 망령. 그게 전부였지.’
가룬은 그 후로 전혀 게임에 등장하지 않았다.
굳이 대장장이 설정까지 일일이 게임에 나올 필요가 없긴 했으니.
설정상 그가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 무기 몇 점이 등장하는 게 다였다.
하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이스터 에그에 관심을 가진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가룬 자체는 필요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가 만든 무기들은 하나같이 에픽급 아이템이었다.
그것도 정작 능력치는 에픽 이상을 달리는 것들이라 엔딩까지 쓰기에도 문제가 없을 지경이었다.
‘몰랐다면 가룬이고 뭐고 그냥 지나쳤겠지?’
그리고.
이것도 몰랐겠지.
나는 품에서 소소한 약초상에서 구해온 약초 하나를 꺼냈다.
‘최상급 아레우니아 풀잎. 이거면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가룬의 무기 제조법에는 특이하게도 아레우니아 풀잎이 핵심이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 내가 들어 온 것을 발견한 가룬은 힐끔 눈길을 주더니 망치질을 이어나갔다.
“잠시 기다리게! 지금 중요한 타이밍이거든!”
“그러지.”
깡……깡……깡……
기다리는 건 나름 나쁘지 않았다.
일정한 그의 망치 소리도 충분히 즐기기 좋은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망치를 두드리던 가룬은.
거의 서너 시간이 지나서야, 매만지던 쇠를 다른 대장장이에게 맡기고 다가왔다.
“그래. 무슨 일인가?”
나는 품에서 아레우니아 풀잎이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져와 봤다.”
“이게……설마. 아레우니아?”
“맞다.”
가룬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반응이 예상과는 조금 다른데.
그냥 좋아할 줄 알았는데, 뭔가 예상치 못한 것을 본 얼굴이었다.
“사실 아레우니아 풀잎을 쓰는 방법을 생각 중이었네. 어쩌면, 이게 진짜 내 작품들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고 구상만 했었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대체 자네, 정체가 뭔가?”
‘음? 구상만 했다고? 이건 또 뭔 소리야.’
설마 원작 속에서 나온 가룬의 아이템들은 이게 안 들어갔던 건가?
가룬은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 이걸 안 해보고 죽었다면, 원귀가 되었을 걸세.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해봐야겠군!”
아하.
이제야 이해가 갔다.
원작에서의 가룬은 아마 이전의 전투에서 죽었을 터였다.
그러니 생각만 해두었던 아레우니아 풀잎을 결국 못 써 봤을 것이고.
그게 원한이 되어 망령이 된 모양이었다.
가룬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솥뚜껑 같은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기대하시게!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주지! 하하하하!”
* * *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그간 디아즈는 몸을 완전히 회복하였고.
불사조의 꽃은 예쁘게 잘 말라서, 고운 가루가 되어 내 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 여기! 받게나!”
가룬은 내게 한 자루의 검을 내밀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걸 받아들었다.
“유용하게 쓰도록 하지.”
“그래! 세상 악마 놈들 전부 다 베어주게! 악마도, 악마 같은 놈들도! 모조리 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가룬의 걸작품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시원한 마찰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검은 빛의 칼날.
매우 신기한 모습이었다.
“아레우니아의 효과인 모양이더라고. 검신이 검게 변했네. 그러나 그 강도만큼은 겪어본 어떤 검보다도 강했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검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이름은?”
“이름은……라스갈론. 고대어로 검은 달이라는 뜻일세.”
“라스갈론이라. 마음에 드는군.”
검을 갈무리한 나는,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는 말에 올라탔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연금술의 나라이자 디아즈의 고국인.
또한, 어쩌면 대침공을 늦출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발트라스 왕국.
그곳으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