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scammer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6
76화. 그것도 오만일 수 있지
엘더 프로스가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오, 불사조.”
“그러게나 말이야, 삐약. 너 근데 디게 오래 살아있다? 삐약.”
“허허허. 이제 곧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라오.”
“천방지축 날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삐약.”
피코의 말에, 엘더 프로스는 웃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거, 듣는 귀도 많은데 그쯤 하시오.”
“여전히 남의 눈치는 많이 살피네. 삐약.”
“허허. 그게 쉽게 바뀌지는 않더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되어서도 아직 나를 기억할 줄은 몰랐소이다.”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기억하지, 삐약. 죽었다가 부활해도 생은 이어지는 거니까. 그게 아니면 불사조가 아니지. 삐약.”
그리고 피코는 한 마디를 더 보태었다.
“불멸의 저주 같은 거다. 좋을 거 하나 없어. 삐약.”
씁쓸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그, 삐약은 안 할 수 없소?”
그래.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저런 얼굴로 삐약, 삐약 거리니.
영 집중이 되질 않았다.
피코는 날개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어렵다, 삐약. 그건 그렇고. 용케 엘더까지 되었네? 삐약.”
“되고 싶다고 된 건 아니오. 그냥 제일 늦게 죽어서 된 것뿐이지.”
“이제는 제법 말도 잘하네, 삐약.”
“그러엄. 간 세월이 얼만데. 허허허.”
“내 눈에는 아직 애송이다, 삐약.”
“후후……이 나이에, 그런 눈으로 날 봐주는 이가 있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구려.”
왠지 나도 모르게, 그 얼굴에서 어렸을 적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간 듯 보였다.
“애송이 프로스. 그 뱀파이어 로드 놈들은 진짜 위험한 놈이다. 내가 보기에도 정신이 나갔어. 필멸조까지 죽이려 했거든, 삐약.”
“필멸조를 말이오?”
“그래, 삐약. 게다가 고대 거신족의 자손인 모르자돈의 괴수까지 손을 잡았고, 삐약.”
“……거신족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차근차근 읊어주는 피코.
그런데……
‘거신족 이야기 나올 때, 피난처에서 자고 있었으면서……’
마치 자기가 들은 양 이야기를 하는 피코였다.
나중에 전해 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뭐, 어쨌든 덕분에 프로스에게는 말빨이 잘 먹히고 있는 것 같으니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충 듣고 넘길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구려.”
그는 나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 * *
“드레트노어라……과거 그런 이름의 로드가 있었다는 기억은 있군.”
대체 얼마나 오래 산 거야?
그간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을 하자, 엘더 프로스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바로 저것이었다.
그는 금방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소이다.”
“문제?”
“우리가 처음 오르헬이라는 이름을 듣고, 그대의 청을 거절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오. 오르헬의 봉인구, 오르헬의 혈사검은, 지금 우리의 손에 없소.”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오르헬의 봉인구가 없다니?
오히려 해리슨 백작이 가져온 정보이기에 틀릴 리 없다고 생각했건만……
약간 당황할 뻔한 그때.
프로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중요한 물건을 도시 내부에 두지는 않았소. 도시에는 조금 떨어진 숲에 깊이 묻어두었소이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한 생명체가 자리를 잡았소. 사람의 머리를 한 사자, 만티코어가 말이오.”
“만티……코어?”
이건 좀 빡센 몬스터이기는 했다.
다른 게임에서는 잘 안 보이는 몬스터이지만.
신화에도 등장하는 만티코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식탐이 강한 마수 중 하나로 표현이 되었었다.
물론 그 명성 그대로 파오갓에서도 나타나 있었고.
늙은 노인의 머리에, 귀에 닿을 정도로 쭈욱 찢어진 입.
그 입안에는 소름 돋을 정도로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들어맞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한 줄도 아니고 자그마치 세 줄이나 늘어서 있었다.
몸통은 사자에, 꼬리는 전갈.
‘발톱 공격은 깡 데미지가 미쳤고, 꼬리는 독 데미지가 있었지.’
그 와중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더럽게 골치 아픈 몬스터라 할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라 한 번만 만나서 다행이지. 몇 번 마주쳤으면 게임 접는 유저 여럿 있었을 정도인데……’
당장 설정만 보더라도.
단신으로 무장한 군대와 전투에서 한 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고 갑옷째 씹어먹었다는 내용이 당당히 적혀 있었다.
만티코어 정도라면 이해가 갔다.
왜 프로스와 그의 부관이 대번에 거절부터 하고 나섰는지 말이다.
“우리는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했소. 놈이 오르헬의 혈사검을 지킨다면……그 누가 그걸 가져갈 수 있겠느냐는 심정으로 말이오.”
하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싶었다.
만티코어쯤 되는 괴수를 때려잡으려면, 플레이어도 중반부는 넘겨야 했다.
놈은 공략만으로는 되는 수준의 괴물이 아니었으니까.
기본적인 스펙이 무조건 필요한 상대였다.
“물론 종종 피 맛을 보려고, 우리 도시도 습격을 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은 별거 아닌듯하지만, 프로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모르긴 몰라도, 만티코어로 인한 피해가 적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 주인이 해결해 줄 거다! 삐약!”
음?
상의도 없이 급발진하는 피코였다.
그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피코에게 쏠렸다.
“우리 주인, 엄청 세거든! 삐약. 내가 살아가면서 본 인간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삐약!”
……너 손가락 없잖아.
라고 말한 뻔 한 건 일단 한 번 참았다.
한편, 피코의 말을 들은 프로스는 나를 돌아다 보았다.
“가능……한 것이오?”
피코 녀석의 급발진 때문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가 해결할 생각이기도 했고.
또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 할 건 없지.”
“……!”
* * *
그래도 만티코어가 상대라면 혈혈단신으로 덤빌 수는 없었다.
놈은 분명 최소 스펙과 더불어 공략이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레이드 뛸 지원군이 필요했었다.
다만 그것도 큰 걱정은 없었다.
가장 큰 아군인 디아즈도 있었고.
그리고 마법깨나 쓸 줄 아는 그렌델도 함께였다.
근접형 전사 둘에 마법사 하나.
꽤 나쁘지 않은 전력이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엘더 엘프인 프로스는 물론이요, 그의 호위 엘프인 퀘더러까지도 함께 나선다고 했으니.
‘패턴만 잘 알려줘 놓으면, 부상자도 없이 끝낼 수 있겠어.’
이들 하나하나가 다 나름의 실력자들이었으니.
디테일한 부분들은 각자 재량껏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수준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엘더 프로스는 나름 지금껏 알아내어 온 만티코어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해주었다.
“만티코어는 사각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녀석이오. 그런데 움직임도 날래며 동시에 강철 같은 가죽으로 몸을 뒤덮고 있소이다.”
우리 앞에는 만티코어가 중심에 딱 그려진, 작전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약돌로 녀석을 사방에서 가두는 모습으로.
“문제는 이 꼬리인데. 이곳에는 독이 있어……”
엘더 프로스가 계속해서 만티코어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았다.
당연하게도 나야 이미 다 아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디아즈나 그렌델 같은 경우에는 전혀 정보가 없으니, 나는 잠자고 함께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일련의 기본적인 브리핑이 끝이 나고.
이제 본격적인 공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꼬리 쪽에서 시선을 끌 수는 없으니, 일단 전면에서부터 차근차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소. 이 앞에 이런 식으로 넓게 배치를 하고……”
이야기를 듣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만티코어를 공략하겠다고?
‘자살 행위랑 다를 게 뭐야……’
나름 이유를 뒤에 붙여가며 설명을 이어가는데.
‘저기서 저러겠다고?’
특히 꼬리 쪽 공략을 완전히 포기하는 패턴들.
그게 내 눈에 가장 거슬렸다.
물론 만티코어의 꼬리가 위험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나 그 리스크를 어느 정도는 안고 들어가 줘야, 오히려 가장 안전한 패턴이 나오는 것이었다.
잘못된 공략을 늘어놓는 엘더 프로스의 말을, 나는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무슨 일이오?”
“이렇게 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 정도 각오도 하지 않았소?”
“필요 없으니까.”
“……?”
나는 작전판의 돌을 전부 치우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였다.
“나는 그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다.”
“본인 역시도……”
“아니. 나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만들지 않을 각오로 여기 있다는 뜻이다.
“……그건 귀하가 만티코어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하는 소리요. 희생자가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누가 싫다 하겠소.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오만일 수도 있음이오.”
그 말에, 나는 엘더 프로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왜, 내가……만티코어를 만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 나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군. 그것도 오만일 수 있지.”
“……!”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보며, 외쳤다.
“앞의 계획은 전부 잊어라. 우리는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전부 살아 돌아온다. 지금부터 그 방법을 일러주겠다.”
* * *
만티코어 공략의 핵심은 역시 꼬리였다.
전면에는 그저 공격을 하는 척.
즉, 어그로만 끌어주는 역할만 하면 될 뿐.
진짜 핵심 공격대는 전부 꼬리 쪽으로 몰리는 게 상식이었다.
‘파오갓 고인물들 사이에서는 말이지.’
다만 내가 생각해도 대체 누가 이런 공략법을 찾아낸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게임이기는 해도 한 타이밍만 빠르거나 늦어도 바로 죽어나가는 공략이었으니 말이다.
‘누가 시도했으니 나온 걸 텐데……어떤 미친놈이 이걸……’
게임이라도 그럴진대.
실제 상황이다?
엘더 프로스가 아니라 그 누구더라도 이런 방법을 고려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나도 적당한 선에서 말을 멈춘 것이고.
근데 또 그거 가지고 뭔가 이상한 오해들이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로한 경께서는 상대 체면까지도 생각해주시는 겁니까? 정말 저로서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그렌델이 그랬다.
그리고 피코 이 녀석도, 꼭 끼어들었고.
“그렇지, 삐약! 우리 주인이 보통 사람인 줄 아느냐? 엣헴! 삐약!”
네가 고른 거 아니잖아……
내가 구해준 거지.
“역시 피코 님. 피코 님이 고르신 주인이라 다르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럼, 그럼! 삐약. 부러우면 너도 부하 2호 할래? 삐약?”
“좋습니다!”
“후하하하! 벌써 부하가 둘이다, 삐약!”
중간중간 몇 번 정도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귀찮아서 대답을 생략한 채 그저 걸었다.
“피코 님! 어차피 불사조이신데, 한 번만 해부 안 되겠습니까?”
“아, 안 된다! 삐약! 도대체 왜 이렇게 나만 보면 해부하자고 그래? 주인, 주인! 좀 말려줘라, 삐약. 전생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 삐약!”
그러는 사이 저 앞 선봉 쪽에서, 수신호가 보였다.
만티코어의 영역에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나는 손가락을 세워, 피코와 그렌델 둘을 조용히 시켰다.
“쉿.”
“알겠습니다.”
“삐, 삐약.”
그리고 선봉대를 시작으로……
우리는 만티코어의 영역 안으로, 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