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0화(10/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0화
4장. 마넬로프의 대마법사
영지를 떠난 지 정확히 여섯째 되는 날 아침.
서서히 동이 트며 시야가 밝아지는 순간,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위용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볼룸 산맥.”
“도착했군요.”
하루 대다수를 달리는 데 썼다. 말도 지쳤는지 연신 콧김을 내뿜고, 사람들 또한 구부정한 허리를 곧추세우며 작게 탄식을 흘렸다.
‘과연 듣던 대로야.’
볼룸 산맥은 마치 한반도의 백두대간처럼, 지역을 나눠 인간의 영역을 한계 짓는 역할을 한다.
세계관에 따르면 이 뒤에 펼쳐진 북방엔 온갖 몬스터가 득실댄다고 했으니, 일종의 벽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군요. 한나절을 벌었습니다.”
주르륵 흐르는 땀을 닦아 낸 루스가 손을 뻗어 구름 사이에 가려진 한 능선을 가리켰다.
“공자님이 가시고자 하는 마넬로프는 저곳입니다.”
눈에 덮여 얼음송곳과도 같은 자태의 봉우리가 보였다.
웅장한 느낌이다.
좌우로 넓게 벌려져 천혜의 요새 역할을 하는 산맥답게 분위기만큼은 좌중을 압도했다.
그렇게 고봉은 아니다. 강원도에서 느꼈던 태백산맥보다 조금 높은 정도.
게다가 매년 있는 토벌군이 닦아 놓은 루트가 있으니 말로 등반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초봄임에도 날씨가 좋습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바로 올라갈까.”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루스가 내 뒤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자 반쯤 넋이 나간 레오의 얼굴이 들어왔다.
“……일단 좀 쉬어야겠네.”
“공자님은 괜찮으십니까?”
피로가 누적되어 피곤하긴 하다.
하지만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했다.
그간 한나절은 종일 말을 타고, 저녁엔 루스에게 지도를 받아 검을 휘둘렀다.
매번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었던 나날들.
그러나 다음 날 아침만 되면 원기가 가득 충전됐다.
‘한창 운동했을 때도 이 정도 회복력은 아니었는데.’
흡사 스테로이드를 빤 것 같은 기분.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보자면 마나 덕분이 아닌가 싶었다. 마나는 인간에게 초인적인 힘을 주니까 말이다.
실제로 마나 유저 상급의 루스는 여행길 내내 피곤하기보다는 엉덩이가 아파 짜증 내는 얼굴이었다.
마나를 다루지는 못해도 느낄 정도로 감응력이 좋다면, 그 영향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나는 괜찮아. 하지만 레오 때문에라도 하루쯤 휴식해야겠는데.”
“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숨을 할딱이면서 사죄해 오는 레오에게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어차피 말도 쉬어야 해. 당장 올라가는 것보단 여유를 갖고 계획을 점검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루스, 이곳에 머물 곳이 있다고 했었지?”
“예. 그럼 일단 쉘터로 가시겠습니까?”
“토벌군들이 묵는다는 곳?”
“꼭 군대만이 사용하는 곳은 아닙니다. 사냥꾼들이나 레인저들도 종종 머무르는 곳이니.”
“레인저라. 어쩌면 만날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더 좋습니다. 최근 산맥에 대한 정보나 협조를 얻을 수도 있을 테니.”
“레오, 식량은 얼마나 남았지?”
제법 숨을 고른 레오가 손가락을 접어 가며 셈을 했다.
“이틀치 남았습니다.”
“슬슬 조달하긴 해야 하는데…… 루스, 오늘 하루 휴식하는 김에 모두 해치워 버리자.”
“좋은 생각이십니다.”
“쉘터까지 거리는 얼마나 되지?”
“초입의 쉘터는 구보로 반 시간 정도입니다.”
“좋아. 출발하자.”
* * *
산맥 초입엔 너른 분지가 있었고, 그 위에는 허름한 막사가 을씨년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허접해 보이긴 했으나 그래도 나름 구색은 다 갖춰진 쉘터였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인접했고 옆에 딸린 허름한 마구간엔 말을 먹일 건초도 충분했다.
“레오, 말을 데려가 돌봐라. 루스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 와.”
버릇이 되어서일까.
군에서 으레 하던 훈련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지시를 내렸다.
별생각 없이 내 말에 따르던 루스와 레오도 잠시 멈칫거렸다.
그러나 내 지시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귀족에게 딴죽을 걸 것도 아니니 그냥 얼떨떨하게 따른다.
“나는…….”
그동안 불이나 피워 볼까.
성큼성큼 걸어 쉘터의 문을 열었다.
쉘터 내부는 간단했다. 나무로 된 침상 몇 개와 조잡한 굴뚝 아래 벽난로가 보였다.
타다 만 장작의 상태가 아직 괜찮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도 누가 들렀던 것 같았다.
좀 더 살펴보니 벽난로 옆으로 한 무더기 부싯깃과 부싯돌이 눈에 들어왔다.
‘맨날 라이터만 쓰다가 이게 뭐람.’
쓴웃음을 지으며 덜렁거리는 창문을 열어 환기한 뒤, 부싯깃과 돌을 이용해 불을 붙였다.
치익-
몇 번의 반복 끝에 불이 붙었다.
쌀쌀한 쉘터 안에 훈훈한 공기가 돌기 시작했다. 간만에 노숙이 아닌, 집다운 곳에서 하룻밤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공자님.”
문이 열리고 레오가 들어왔다.
손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추운 날 말에게 먹일 물을 나른 탓인 듯했다.
“이리 와. 손 좀 녹여라.”
“제, 제가 어떻게…….”
“아, 새끼 진짜.”
눈썹을 찌푸리자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쪼르르 달려온 레오가 옆에 앉아 손을 불가에 댔다.
“말들은 어때?”
“군마로 길러진 탓인지 아주 멀쩡합니다.”
“편자는.”
“영지에서 출발하기 전에 새로 갈았으니 당분간 걱정 없습니다.”
“좋아. 돌아갈 때도 타야 하니 관리 잘해야 한다. 믿고 맡겨도 되겠지?”
“그럼요. 제게 재주가 있다면 그것뿐인데요.”
“장하다.”
내 칭찬에 몸을 배배 꼬며 어색해하는 레오.
그 모습이 마치 막내 이등병을 보는 듯해 적잖이 귀엽다.
“그나저나 몸도 녹일 겸 차를 좀 끓일까요?”
“좋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를 끓이려는 레오를 뒤에 두고 쉘터 바깥으로 나왔다.
“공기 한번 맑네.”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했음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나날이 떠올랐다.
반면 이곳은 환경오염이라곤 일절 없는 세계.
폐부 깊숙이 청량함을 만끽하던 나는 문득 멀리 무언가를 끌고 오는 루스를 발견했다.
“뭐야?”
멧돼지인가?
아니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족히 성인 몸뚱이만 한 멧돼지를 끌고 온 루스가 가볍게 마당에 던져 놓았다.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괴력이다.
“이건 뭐야? 사냥해 온 거야?”
“예. 이왕 쉬는 김에 든든하게 차려 먹고 남는 것은 훈연하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이야.”
우물 옆으로 멧돼지를 끌고 간 루스가 단검을 꺼내 능숙하게 해체하기 시작했다.
“도와줄까?”
“괜찮습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기술이 대단한데.”
루스가 멧돼지를 거꾸로 매단 채 목을 따 피를 빼고 곧장 가죽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도축에 대해 아는 지식은 없다. 그렇지만 저렇게 칼만 댄다고 쑥쑥 잘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태생이 태생인지라…….”
루스가 말끝을 흐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시대를 막론하고 가축을 잡는 일은 천하게 여겨졌다. 이 세계에서도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기술은 아니겠지.
물론 나는 상관없다. 내가 조선시대 사람도 아니고, 백정이라고 꺼림칙할 이유는 없지.
“루스, 좀 알려 주면서 해 봐.”
“예?”
“나도 써먹을 데가 있을지 모르잖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루스가 나와 멧돼지를 번갈아 바라본다.
“공자님이 하실 일이 결코 아닙니다만.”
“그럼 뭐 난 혼자 남으면 굶어 죽어야 하나?”
“혹시라도 백작님이 알게 된다면 제 목이 성치 않을 겁니다.”
“모르게 하면 되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실 분입니다.”
“칭찬이냐?”
이제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루스가 손질법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식은 언제나 재밌다.
특히 머리 아픈 학술적 이론이 아니라면 더더욱. 사냥하고 제 손으로 직접 손질해 요리하는 건 모든 아웃도어 마니아들의 로망이니까.
루스 또한 막상 내가 열의를 보이자 내심 신이 난 듯, 묻지도 않은 노하우를 풀어냈다.
“생각 외로 힘든데.”
“이것도 간소화한 겁니다. 부위별로 해체하자면 끝도 없죠.”
“됐어. 내다 팔 것도 아니고.”
씩 웃은 루스가 불을 피워 먹기 좋게 자른 고기를 훈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밖으로 나온 레오까지 거들자 일은 금방 끝나 갔다.
그렇게 지글지글 익어 가는 고기 앞에 우두커니 앉아 군침을 흘리는 세 남자.
조금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루스를 바라보았다.
“루스.”
“예, 공자님.”
“몇 가지 좀 묻자.”
“어떤 것이든 아는 한도 내에서 답하겠습니다.”
성실한 녀석.
“기사단 내 분위기는 지금 어떻지?”
“기사단의 분위기라면…….”
“파벌을 묻는 거야.”
루스가 고기를 굽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기사단 전원과 군소 귀족들은 백작님에게 충성합니다. 하지만 공자님은 그들 제각기에 대한 사정을 물으시는 거지요?”
“그렇지.”
“파벌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나눈다면 세 개입니다.”
“세 개라면.”
“두 개는 당연하지만 첫째 공자님과 둘째 공자님을 따르는 이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중립이겠지.”
“맞습니다. 딱히 어느 쪽이 영주가 되든 간에 이해득실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람들이죠.”
“얼마 전까지의 너처럼?”
“물론 이제는 아닙니다만.”
쓰게 웃은 루스가 뒷목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세는 첫째 공자님이 월등합니다. 백작가를 추종하는 군소 귀족과의 유대도 튼튼하고, 당장 공자님부터가 마나를 다루는 기사이니 기사들의 신뢰도 두텁습니다.”
데인 린다이어.
설정상 백작가의 장남이며 32세로 나와 열 살 터울의 큰형이다.
“엑스퍼트 초급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불세출의 천재까진 아니어도 전통의 무가인 백작가에 걸맞은 실력이죠.”
“서른둘에 엑스퍼트 초급이? 이십 년 가까이 수련했다는 거잖아.”
“……공자님, 마나라는 게 단순히 수련 기간과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엑스퍼트 초급 정도면 능히 왕실기사단에 뽑힐 만한 수준입니다. 무시할 수는 없죠. 게다가 백작가의 자제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죽자 살자 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대개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단 말이지.
“대외적인 평판은 어때?”
“기사답게 강골의 성향을 지녔습니다. 백작님과 비슷한 성향이지만 정치력은 뒤떨어진다고 평가됩니다.”
“뇌까지 근육이다?”
“…….”
차마 긍정하진 못했으나 루스가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둘째 형은?”
“둘째 세인 린다이어 공자님은 무(武)보다는 문(文)을 중요시합니다. 스물여덟의 나이로 이미 독자적인 상로를 개척함과 동시에, 정치력도 뛰어나 최근 왕실 사교계에서도 뜨거운 화두죠.”
“돈으로 승부한다, 이건가.”
“……간단히 보자면 그렇습니다. 신의보단 현실을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린다이어 가문은 대대로 무가이다 보니 정통성은 떨어지지요.”
“한마디로 뇌에 잉크만 들어찼다는 거네.”
“푸핫!”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루스가 재빨리 입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됐어. 그렇다면 내가 노려야 할 건 중립인가?”
“사실 중립이라곤 해도 자세히 말하면 그저 부표 같은 자들입니다. 제힘으로 뭘 결정할 수 없는, 저처럼 말이지요.”
“거둬도 딱히 힘이 될 인물은 없다, 이건가.”
“굳이 뽑자면 한 분이 계시긴 합니다.”
“누군데?”
“길레인 에스테반. 기사단장님이시죠.”
오호라.
“의왼데.”
“사실 기사단장님만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후계 싸움은 그날로 끝입니다.”
“어째서?”
“단장님은 엑스퍼트 중상급으로 왕국에도 몇 없는 마스터에 근접한 실력입니다. 그런 기사와 반목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영향력이 너무 커서 오히려 중립이 되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단장님 자신도 그것을 알기에 처음부터 중립을 표방하셨죠. 그래서 첫째나 둘째 공자님 모두 암묵적으로 단장님에겐 접근하지 않습니다.”
“잘됐네.”
“예?”
복잡하게 이끌고 갈 것도 없다.
틈새시장이 버젓하게 있는데, 그곳을 후벼 파지 않을 이유는 없지.
“내가 단장을 구워삶으면, 지지부진하게 머리 굴릴 필요 없다는 거 아니야?”
“기사단장님을 노리시는 겁니까?”
“그 사람 하나면 후계 싸움은 끝이라며?”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불가능하다 확언합니다.”
“확언한다고?”
“기사단장님은 타고난 강성입니다. 어쩌면 백작님보다 더할지도 모를 정도로.”
백작보다 더 지독하다라…….
“왕실에서 셋째 왕녀와 온갖 보화, 그리고 영토를 하사하며 끌어들이려 했음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백작님 곁에 남으셨습니다. 그런 분이 자신의 말을 번복한다? 상상할 수 없군요.”
“모르지. 왕녀가 못생겼을 수도.”
루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절세미인이라고들 합니다. 뭐, 단순 외모 때문이 아니라 왕실이라는 배경을 거부했다는 게 더 대단한 것이지만.”
듣고 보니 성격이 어지간히 쇠심줄인 것 같다.
그래도.
“인간인 이상 분명 여지는 있겠지.”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있는데 시도조차 안 해 보긴 좀 그렇잖아.
복잡하게 빙빙 돌아가느니 일단 시도라도 해 보자고.
“다 구워졌다. 먹자.”
“맛있게 드십시오.”
“공자님, 감사히 먹겠습니다.”
일단 뒷일은 뒷일로 미루자.
마나를 다루느니, 후계 싸움이니 하는 것보단 당장 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