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13)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14화(114/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14화
시끌벅적한 연회장을 떠나 위층으로 올라온 나는 어둠에 가려진 푸른 산맥이 보이는 테라스에 들어섰다.
그런 내 뒤를 따라온 데인의 양손에는 잔과 포도주가 들려 있었다.
“술에 절어 있지 말라니까.”
“그때와 지금은 마시는 이유가 다르지.”
능청스럽게 넘긴 데인이 잔을 내밀었고, 내가 그 잔을 받아 들자 데인이 포도주를 한가득 따라 주며 물었다.
“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뭐지?”
“이유가 뭐겠어. 복귀 후에 백작님께 보고할 것 때문이지.”
내 대답에 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게 있었지.”
그러곤 자신의 잔에 포도주를 가득 따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보고, 네가 해라.”
“그래도 되겠어?”
“안 될 게 뭐가 있겠나. 누가 봐도 네가 세운 공이 나보다 큰데. 그러니 이번 하늘 요새의 감찰 보고는 네가 직접 아버지께 하는 거로 해라.”
“난 있는 사실 그대로 다 적는 것도 모자라 내게 유리하게 쓸 생각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유리하게 적는 건 조금 달갑지 않다만, 그것도 승자의 권한이나 마찬가지이니.”
“정말 그래도 되겠어?”
거듭 확인하는 날 향해 데인이 픽 웃었다.
“왜? 내가 월권을 부리다 그리폰을 상처 입힌 사실을 은폐해 달라고 부탁할 줄 알았나?”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됐다. 그 정도로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진 않다.”
테라스에 몸을 기댄 데인이 포도주를 크게 들이켜곤 어두운 푸른 산맥을 돌아봤다.
“이번 일로 백작님의 마음이 기울지도 모르는데.”
“그렇겠지. 아마 이번 일로 소영주의 자리를 네가 차지할 수도 있을 거다. 모르고 말하는 게 아니야.”
“가주가 되고 싶어 했던 것 아닌가?”
“당연히. 그게 내가 지금껏 검을 휘둘러 온 목표였으니까.”
“그런데 포기가 생각보다 빠른데.”
“포기?”
픽 웃은 데인이 나를 바라봤다.
“네가 아버지께 나이트 배너렛의 칭호를 하사받았을 때, 기억나나?”
“칼날 노래 부족을 토벌했을 때를 말하는 거야?”
“그래. 그때 내가 앞으로 나서서 따졌었지. 저런 망나니 놈이 그럴 자격이나 있냐고.”
“표정이 아주 살벌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납득할 수 없었으니까.”
쪼르르…….
다시 잔을 채운 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난 너를 인정하지 못했으니 그런 거다. 네가 린다이어 가문을 곤경에 빠트릴 불온한 싹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지금 내가 싹을 잘라 내지 않으면 나중에 아주 큰 일을 저지를 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은?”
“큰일을 저지를 놈이 맞긴 하더군. 내가 생각한 일이 아니어서 문제지만.”
잠시 말을 아꼈던 데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나보고 포기가 생각보다 빠르다고 했지.”
“…….”
“하지만 나는 가주의 자리를 포기한 게 아니다. 단지 네가 가주가 되든, 내가 가주가 되든 린다이어 가문이 쇠약해질 일은 없다고 판단한 거지.”
“그 말은…….”
“네가 가주의 자리를 받아도 난 한 점 불만이 없다는 거다. 너 또한 가문을 부흥시킬 만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으니까.”
적막한 밤하늘 아래 데인의 속내가 낱낱이 밝혀졌다.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 낸 탓일까, 데인의 얼굴이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그건 그렇고.”
“할 말이라도?”
“지금까지 딱딱하게 대하더니 그날 밤부터 갑자기 말은 왜 놓은 거냐?”
“지금 와서 불쾌하다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불쾌? 천만에. 그냥 네가 오줌도 못 가리던 시절이 떠올라서 그런 거지. 아버지께 혼날까 울상 짓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리는군.”
백작이나 데인이나. 하나같이 조금이라도 속내를 나누면 왜 전부 카인의 옛날 모습이 떠오른다고 하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지구에서의 나나 카인이나 또래의 나이기도 했고, 실제로 데인만큼 나이를 먹은 사촌도 있었으니까.
‘사촌 형이라.’
가진 건 무력밖에 없는, 그러면서 또 꿈은 원대해서 무식하게 들이받아 실수를 저지르는,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니 데인이 조금은 편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데인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난 그동안 이상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사명감?”
“지금 생각해 보니 검을 휘두르는 게 어느 날부터 나를 위한 게 아닌, 가주의 자리를 위한 것으로 바뀌어 있더군. 원래 나는 멋들어진 갑옷과 번쩍한 검을 찬 기사면 족했거든.”
씩 웃은 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족했는데 왜 갑자기 반드시 가주가 되어야겠단 사명감이 들었던 걸까. 비열한 세인의 성정을 알고 난 뒤부터? 네가 흥청망청 주색을 잡고 망나니처럼 산 뒤부터?”
“…….”
“그게 뭐 어쨌건 무슨 상관이겠냐. 그냥 이제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검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썩 나쁘진 않을 뿐이다.”
“진심이야?”
“지금은. 만약 네가 다시 어긋난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면 그 사명감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지.”
반쯤 농담까지 섞는 홀가분한 데인의 얼굴을 보자 나는 마침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소영주의 자리는 내가 갖겠어.”
“그래, 딱히 네가 하는 것에 불만은 없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께 하늘 요새의 성주 자리를 내어 달라고 할 생각이야.”
“……뭐? 하늘 요새의 성주 자리를?”
내 단언에 데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성주의 자리를 갖게 되면 가주가 될 수 없는 걸 알고 하는 소리냐? 가주는 영주성이 있는 윈드네스트를 지켜야만 한다. 그렇다고 하늘 요새의 성주 직함이 훈장처럼 갖고만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아.”
“그걸 알면서 하늘 요새의 성주가 되겠다고?”
“맞아. 어차피 가주의 자리는 그쪽한테 양보할 생각이니까.”
“대체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뭐라고?”
고개를 내젓던 데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나를 획 돌아봤다.
“양보한다고. 아무래도 린다이어 백작가의 가주는 나보단 그쪽이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그게 지금 무슨…….”
“말을 어렵게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게는 그쪽만큼 사명감이 없다, 그러니 가주의 자리는 그쪽이 해라.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해야 하나?”
데인의 얼굴 가득 황당함이 깃들었다.
뭐, 나도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린다이어 가문을 부흥시키겠다? 천만에. 내게는 그런 사명감이 없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이 얄팍한 소설을 끝맺고 현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지.
그렇게 보면 가주의 자리는 내가 아닌 데인이 오르는 게 맞다.
사실 내가 린다이어 백작가를 거머쥐려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단지 데인이나 세인이 소영주에 필적하는 자리에 올라 나를 방해하진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따져 보면 결국 지금의 나는 가주의 자리에 오를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반쯤 소영주가 확실시된 이상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 이룰 수 있다. 게다가 애초에 가주가 되려면 린다이어 백작이 은퇴하거나 죽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어차피 전쟁은 10년 안에 벌어질 것이고, 대륙의 운명은 그 전쟁에서 결정 날 거다.
그 안에 린다이어 백작이 은퇴하거나 노환으로 병들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된다?
극히 희박한 확률이다.
그렇게 본다면 차기 가주가 데인이 된다고 해서 어차피 내가 손해 볼 건 없다. 그깟 가주 자리, 아무나 하라지 뭐.
대신 그 자리를 포기하게 되면 당장 확실한 소영주의 권한을 순탄히 양보 받을 수 있게 된다. 거래 대상인 데인의 무한한 감사와 신뢰는 덤이고.
‘아무리 대충 저울질을 해 봐도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뻔하지.’
소영주의 이름과 더불어 막강한 잠재력을 지닌 하늘 요새를 좌지우지할 권한, 그리고 반대편엔 언제 가질지도 모를 가주의 자리.
저울이 너무 한쪽으로만 기우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저울을 보지 못하는 데인은 여전히 내 뜻을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몇 번이고 같은 말만 반복하게 하네. 다시 말하자면 나는 가주 자리에 관심이 없어. 소영주의 자리에 목을 맨 이유는 다른 형제가 나를 방해하진 않을까 싶어서였을 뿐이니까.”
“……그럼 지금껏 그렇게 동분서주한 이유가 단지 나나 세인이 너를 핍박할까 봐 그랬다는 거냐?”
“그건 소영주가 된 무수한 이유 중 하나일 뿐이고.”
“그럼 그 다른 이유는 뭐기에?”
이걸 밝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차피 알아야 할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니까.
“내겐 이 대륙을 구해야 할 사명이 있으니까?”
“…….”
나를 바라보는 데인의 얼굴이 점점 기이하게 변해 갔다. 하긴, 나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말을 듣는다면 같은 반응이겠지.
“카인, 너 뭘 잘못 먹은…….”
화르륵!
데인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아마 아휀으로부터 피어오른 황금빛 기운이 내 몸을 감쌌기 때문일 터.
“너, 너, 너 지금…….”
그런 내 모습을 본 데인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달도 모습을 감춘 어두운 밤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내 모습은 꽤 충격적이겠지. 동화 속에서나 보던 대제의 그것과 닮아 있을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더 큰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려면 시간이 부족해. 린다이어 가문을 거머쥐는 데 할애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라고.”
“…….”
“더는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 납득시키고픈 마음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이유도 없으니까. 다만 내가 가주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야.”
말을 마친 뒤 기운을 갈무리하자 황금빛 기운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삽시간에 사그라졌다.
이후 정적이 흘렀다.
당장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데인의 반응은 수십 가지였지만 정작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과연 그랬군.”
“…….”
데인의 눈빛에는 불신이나 의심보다는 그저 무언가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어차 있었다.
“뭔가 있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그게 네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놨다는 것도.”
“믿는 건가?”
“믿을 수밖에 없지. 기연……이라고 해야 하나? 각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동안의 네 변신도 전부 설명되지. 그러니 안 믿을 도리가 있나.”
데인이 조금은 흥분한 기색을 띠었다.
“뭔가 더 큰 목표가 있다. 린다이어 백작가의 가주 자리는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을 만큼. 단지 악착같이 소영주 자리를 노린 것은 나나 세인이 방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내가 했던 말을 되뇌던 데인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믿겠다.”
“그렇게 쉽게?”
“쉽다니, 오히려 그런 대답이었으니까 납득한 거다. 단순히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다, 하는 말로 네 달라진 모습을 설명했다면 도리어 난 널 의심했겠지. 게다가 그런 기운까지 내보였는데 달리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무슨 기운인지는 알고?”
“모를 것 같으냐? 전설 속 대제의 것과 똑 닮은 것을.”
씩 웃은 데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영웅이나 피워 낼 수 있다는 그 기운을 망나니 카인 린다이어가? 이것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후로도 계속 헛웃음을 흘려 내던 데인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런 힘을 얻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고?”
“지금은. 먼 훗날에는 못 말해 줄 것도 없지만.”
“그래, 그렇다면 더 캐묻지 않으마. 차라리 이렇게 되니 낫군. 마음 한구석에 있는 네게 졌다는 패배감도 말끔히 지워 낼 수 있겠어. 알겠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가주 자리를 내게 넘기겠다고? 받아들이지.”
“…….”
“그래서, 그걸 받는 대신 내가 네게 뭘 해 주면 되는 거냐?”
“해 준다니.”
“공짜는 아닐 것 아니냐. 변하고 난 뒤의 네 모습은 지극히 이해타산적이었으니까.”
“수완은 조금 떨어져도 사람 보는 눈은 있나 봐.”
“칭찬이냐? 아니지, 욕이겠지.”
“맞아.”
데인이 픽 웃었고, 그에 나 또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가문을 부흥시키겠다는 그 마음가짐, 그거면 돼. 거기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마. 이제는 압박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 쓸데없이 조급해져서 일을 그르치지도 말고.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괜한 객기를 부리기보단 검을 수련하거나 학문을 쌓아.”
“……그게 전부라고?”
“그게 전부야. 그렇게 노력해서 가문을 부흥시키면 결국 필연적으로 나를 도와주게 되는 꼴이니까.”
나는 몸을 돌려 푸른 산맥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리폰을 타고 날았던 그 기억이 떠올라 푸른 산맥이 생생히 보이는 듯했다.
“그래, 그거면 돼.”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면 가주건 잡병이건 모두 다 같은 입장에서 똑같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테니까.
목구멍까지 치솟았던 말을 나는 애써 잠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