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22)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23화(123/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23화
오늘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대련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어차피 나를 감시하는 것 외엔 할 것도 없었기에 하킨스를 필두로 한 세 기사는 열과 성의를 다해 나와 검을 나누었다.
평소에는 나를 미친놈 보듯 하던 하킨스도 대련을 할 때는 진중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미친놈에게 대련을 지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리니 복잡한 머릿속이 제법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던 그때였다.
“카인 남작님.”
간이 병영으로 찾아온 경비병 하나가 나를 찾았다.
“무슨 일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린다이어 백작가에서 보낸 건가?
하지만 이미 백작에게 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못을 박아 놓은 상태다.
그렇다고 백작이 당사자가 싫다는데 억지로 설레발을 칠 인물은 아니고.
아, 그럼 그 녀석이 온 건가?
생각보다 빠르게 왔다는 생각을 하며 경비병 뒤편을 바라봤다.
“오. 루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루스였다.
이번에 남부에서 제대로 고생을 했는지 피부가 완전한 구릿빛으로 변해 있었는데, 이곳 날씨와는 퍽 동떨어진 모습이 미묘했다.
“여어.”
손을 들어 인사하자 루스가 표정을 팍 구겼다.
“여어는 무슨 얼어 죽을 여어입니까?”
뒤이어 루스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자리 좀 비워 주시겠습니까? 삼공자님과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길게 비울 수는 없소.”
“잠깐이면 됩니다.”
그 모습에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알겠다는 얼굴의 하킨스가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이게 얼마만이지?”
“거의 석 달쯤 되어 가죠. 그보다 공자님, 지금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시는 겁니까?”
“나 이제 공자 아닌데. 작위 받았거든.”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왜 이렇게 잔뜩 뿔이 났을까.”
“지금 화가 안 나게 생겼습니까? 자초지종을 듣고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고요.”
“멀쩡한 피가 왜 거꾸로 솟아?”
“모시는 분이 자기 목숨을 갖고 도박을 하는데 그럼 멀쩡하겠습니까?”
“도박 아닌데.”
“도박이 아니라뇨?”
“승률이 백 프로면 도박이라고 할 수 없지. 사기도박이라면 모를까.”
“백 프로요?”
뭐라 화내려던 루스가 잠시 멈칫거렸다.
“일단은 화 좀 가라앉히라고.”
“후우.”
잠시 고개 숙여 심호흡한 루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기한은 얼마나 남은 겁니까.”
“처음 약조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니까…… 한 달쯤 남았겠네.”
“그게 공자님의 수명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연하지. 적금 들어 놓은 거 아까워서라도 죽을 생각은 없어.”
“……적금? 그게 뭡니까?”
“있어. 그런 게.”
군인이 돈 쓸 곳이 어디 있나 싶어 다달이 봉급 대부분을 부어 놨던 적금이 떠올랐다.
그걸 생각하면 억울해서라도 죽을 수 없지.
“어쨌거나 오랜만이다, 루스. 한잔해야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자 루스가 답답하단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맞잡았다.
“누가 말리겠습니까, 진짜.”
* * *
이후 루스와 함께 숙소로 향한 나는 아껴 두었던 브랜디를 개봉했다.
벌건 대낮부터 무슨 술이냐는 루스였으나 막상 질 좋은 브랜디의 향을 맡으니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남부는 좀 어땠어.”
“별거 없었습니다. 날씨가 정말 좋다는 것 빼고는.”
“남부는 미녀들로 유명하잖아? 뭐 재밌는 일 없었냐?”
“미녀는 무슨, 군도를 돌아다니느라 고생만 죽어라 했는데요.”
“그래? 그래서 알아보라고 한 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임을 느꼈는지 루스가 주섬주섬 품속에서 메모해 놓은 종이를 꺼냈다.
“일단 남부 도시들을 오가며 정보를 모아 보긴 했습니다만, 말씀하신 불온한 움직임은 딱히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다는 아닐 테고.”
“예. 그래서 신분을 위장해 용병으로 활동했죠. 아시다시피 남부 군도는 해적들의 온상이지 않습니까.”
“용병?”
“예. 용병으로 상선에 소속되어 정보를 모았습니다. 상선은 해안 도시를 많이 들리니 발품을 파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뭐라 확답은 내릴 순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온한 일들이라 해 봐야 해적들인데, 그건 북부의 몬스터처럼 예전부터 당연히 있었던 일이니까요. 다만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긴 했습니다.”
“이상한 점이라고.”
“예.”
“어떤 게 이상하다는 거지?”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더군요.”
“사람들이 없어진다?”
내 물음에 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 그대로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없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필요 이상이라. 단순 실종인가?”
“아뇨. 그 없어지는 과정 자체는 이상할 게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남부는 해적들이 판을 치는 곳이고 따라서 약탈을 당하는 마을도 상당하니까요.”
“그래서.”
“알아보니 해적들의 약탈은 금품을 노린 것도 있지만 주된 목표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람?”
“예. 듣자 하니 해적들이 주로 애용하는 게 갤리선이라 그렇다더군요.”
“갤리선, 그러면 이해가 가지.”
상선의 경우엔 압도적인 비율로 범선이 많이 쓰였다. 적은 인원으로도 많은 양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으니까.
반면 해적들은 노를 저어 동력을 얻는 갤리선을 선호한다.
무풍이나 역풍인 상황에서도 전진할 수 있으며, 인력을 이용하기에 조정도 범선보다 수월한 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백병전을 통한 나포를 목표로 하는 해적으로선 머릿수를 최대한 많이 불려야 하니 여러모로 갤리선이 맞는 선택이겠지.
“듣고 보면 이상할 건 없는데. 해적선의 노잡이야 극악의 환경일 테니 하루가 멀게 죽어 나갈 테고, 그를 충원하려면 어디선가 사람을 계속 구해야겠지.”
“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과정만 보면 이상할 게 없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뭔가 더 있다는 거야?”
“예.”
고개를 끄덕인 루스가 브랜디로 목을 축였다.
“이전에는 그래도 노예로 쓸 만한 장정들만 잡아가던 해적들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깡그리 쓸어 간다고 합니다.”
“깡그리?”
“예. 그래도 그 마을들이 유지는 되어야 훗날에도 다시 약탈할 거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최소한의 마을 구성 인원은 남기는 게 그동안의 해적들이었는데 이상할 따름이죠.”
“하.”
안 좋은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칼날 노래 부족을 토벌하던 때였나.
오크들이 인간을 제물 삼았던 잔혹한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과연 지금 상황이 그때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것일까?
만약 연관이 있다면, 사람들을 잡아다 제물로 바쳐 무언가 꺼림칙한 일을 벌이고 있다면, 그 자세한 내막은 무엇일까.
“그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간다는 해적들의 정보는?”
“그것까진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해적들이 확실한 본체를 두고 활동하는 놈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점조직에 가깝다 보니 알아내기가 힘들더군요. 지나가다 걸린 해적 몇 놈을 잡아다 물어보긴 했습니다만, 걸린 놈마다 우두머리가 다 달랐습니다. 각자 영역을 두고 활동하는 거겠죠.”
“그렇다면 그 우두머리들을 잡아내야 뭔가 나와도 나온다는 뜻이겠네.”
“그렇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저 혼자서 그런 일까지 하기는…….”
“자책하라고 한 말 아니야. 충분히 고생한 거 아니까.”
루스를 위로한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렇다면 현재 남부 제후들의 반응은 어떻지?”
“해적들을 소탕하려는 움직임이야 이전에도 있었습니다만,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는 놈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외에 괴소문이나 수상한 움직임은 모르고?”
“예. 워낙 치안이 안 좋기로 흉흉한 동네다 보니 괴소문이야 많았습니다만…… 특별히 영양가가 있어 보이는 건 없었습니다.”
“해안 도시들은 그렇다고 치고, 군도에는 들어가 봤어?”
“어휴, 말도 마십시오. 거기로 들어가겠다는 선장을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빚에 쪼들리는 뱃사람 몇을 구해서 간신히 군도를 조금 돌아보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군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해적들과 연계된 자들이 분명했습니다. 간신히 접촉한 몇몇도 지극히 배타적이었고요.”
이미 군도에 거주하는 이들은 해적들과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건가.
“그걸 제후들이 그냥 두고 본다는 건가?”
“대충 알아보니 적당히 통제 가능한 수준 안에서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라 판단하고 있는 듯합니다.”
“내버려둬?”
“모르죠. 주기적으로 상납이라도 받는지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방법이 딱히 잘못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내버려두는 것.
틀린 말은 아니다.
막대한 자원을 들여 말끔히 소탕한다고 한들, 반드시 무주공산을 노린 새로운 해적 집단이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너무 세력이 커지지 않게 적당히 선을 그어 놓고 통제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비열한 술수긴 하지만, 그렇게 적당히 구슬려 놓으면 다른 가문을 견제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군도의 밀림들은? 조사해 봤어?”
“조금 살펴보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역시 저 혼자선 무리였습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었으니까요. 실제로 딱히 얻은 정보도 없고요.”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있나.”
아직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긴 했으나 어쩔 수 없지. 고작 루스 하나 보내 놓고 모든 걸 다 알아내려는 건 욕심일 테니.
“저는 그냥 해적들이 갑자기 수틀려 닥치는 대로 잡아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아무래도 공자님의 생각은 다르겠죠.”
“그래. 내 생각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에보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행동할 순 없었기에 루스를 보냈고, 그곳에서 과거 칼날 노래 부족이 벌였던 일과 흡사한 징후가 나타났다.
이 정도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해적들과 군도의 거주민을 족치면 뭐가 나와도 나온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나중에 제대로 한 번 더 알아봐야겠군요.”
“그래야겠지. 일단 눈앞에 있는 일부터 해결한 다음에.”
내 말에 루스가 비로소 현 상황을 떠올린 듯,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플레타 공녀님과 일리아가 포로로 사로잡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포로 목록을 받았어. 둘 다 아직까진 무사해.”
“아직이란 말씀은…….”
“앞일이야 모르는 것이니까.”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신 겁니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루스의 물음에 나는 씩 웃어 주었다.
“내가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지.”
“시간이라뇨.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물러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공자님!”
“이제 남작이라니까.”
짜증 섞인 루스의 불안한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다고 해도 아직 이것저것 불안 요소는 많지. 그래서 네가 해 줘야 할 게 있다.”
“제가 해야 할 일이라뇨?”
“이러니저러니 해도 보험 하나 정도는 들어 놔야 하지 않겠어?”
“…….”
보험이라는 말에 루스가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는 한다. 답답하겠지.
하지만 어쩌겠나. 아무리 상대가 루스라지만 내가 소설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 * *
이후로 다시 시간이 흘러 잠시 군영에서 이탈했던 공작이 병력을 이끌고 다시 합류했다.
약속했던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공작도 그걸 인지했는지 며칠 전부터 내 감시를 한층 더 강화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도망가진 않을까 싶어서겠지.
물론 도망갈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미 사건은 시작된 이후였기 때문에.
“카인 남작님. 공작님께서 찾으십니다.”
공작이 나를 찾는다.
다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리고 그 이유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툭.
공작을 만나기 전, 손에 들고 있던 전서를 테이블 위로 던져 놓으며 나는 정복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던져 놓은 전서에 쓰인 글귀는 아주 간단명료했다.
<남부에 강한 지진이 일었습니다.>
미들랜드의 역사는 원래 정해져 있었다. 내가 읽었던 소설의 내용이 바로 그 증거이고.
하지만 나비 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반대편 대륙에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불청객이 이것저것 사건을 일으키다 보면, 분명 그 미래는 크게 뒤틀릴 게 분명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분명 있었다.
<그 지진은 남부 산맥 전역을 한바탕 뒤흔들었고, 그로 인해 무수한 암염 광산이 매몰되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
바로 자연재해였다.
‘레오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문득 블루윈드 상단으로 향했던 레오의 얼굴이 떠올라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