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25)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26화(126/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26화
35장. 언홀리 나이트
상당히 많은 병력에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루스의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아마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좁은 입구를 버티고 선 지형이 큰 도움이 됐겠지. 게다가 트릴 남작으로선 포로를 살려 둬야 자신의 목숨줄이 되어 줄 테니 쉽사리 강수를 둘 수 없었을 테고.
반면 루스로서는 사정을 둘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아낌없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푸확!
한 병사를 베어 낸 루스는 뿜어진 피를 피하지 않은 채 온몸으로 받아 내며 검을 들었다.
“다음은 누구냐?”
그런 루스의 모습을 병사들이 악귀처럼 바라보며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잘 버티고 있었네.’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한창 검을 휘두르며 전투 중인 하킨스를 찾았다.
“포로가 저기 있습니다. 활로를 뚫어야 합니다.”
“어디에 말입니까?”
“저기요. 저기.”
내가 가리킨 곳을 확인한 하킨스가 대번에 검을 들어 목청을 높였다.
“기사단! 나를 따르라! 포로를 구하러 간다!”
하킨스의 고함에 사방에서 분전 중이던 기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내부 전황은 싱거우리만큼 쉽게 결말이 날 기세였다.
단순 전력만 따져 봐도 트릴 남작의 기사단은 위즈덤 나이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 전력을 내성까지 들였다는 건,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뜻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몇몇 홀로 남아 분전을 벌이는 자를 제외하곤 트릴 남작의 기사단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영주성 내부로 후퇴한 건가.
아마 어느 귀족이 다 그렇듯, 트릴 남작 또한 이런 비상시를 대비해 성 밖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쯤은 만들어 뒀을 거다.
그곳을 이용할 생각이겠지.
물론 그 단순한 사실을 공작이 모를 리는 없다. 아마 이 근방 전역으로 천라지망이 펼쳐지겠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잡히긴 반드시 잡힐 거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하킨스가 뚫어 놓은 활로를 따라 루스에게 향했다.
“삼공자님.”
“이젠 남작이라니까.”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루스가 내민 손을 맞잡은 나는 뒤편에 자리 잡은 두 여자를 흘긋 바라봤다.
“상태는?”
“단순히 기력이 쇠해졌을 뿐입니다.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
“전투는 끝난 겁니까?”
“거의. 아마 공작의 병력이 한창 외성을 정리하고 있을 거다.”
“한숨 돌렸군요. 그건 그렇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으응?”
잠시 주위를 살피던 루스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직 일리아의 검을 못 찾았습니다.”
“뭐? 그것부터 찾아보라고 했잖아.”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해서요.”
“아, 젠장.”
일리아의 검은 아슬라히나가 남긴 마검이다. 그것의 존재가 밝혀지면 곤란한 건 이쪽이란 말이지.
“일리아는 뭐래?”
“워낙 튀는 모습의 검이라 가드 부분과 검집을 평범하게 바꿨다곤 했습니다. 명검처럼 보이진 않을 거라고 하던데요.”
“그나마 다행이네. 그것부터 찾아보자고.”
“지원을 요청할까요?”
서서히 사태를 정리 중인 위즈덤 나이트를 뜻하는 루스의 말에 나는 인상을 구겼다.
“동네방네 자랑할 일 있냐?”
삽시간에 두 여자를 안전하게 호위하곤 추가 포로를 구하기 위해 지하 감옥까지 향하는 위즈덤 나이트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의 사태는 일단락된 것 같았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루스를 바라봤다.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잠입하고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미리 알아봤습니다. 영주성 지하 병기창에 있을 겁니다.”
“위치는?”
“가면서 알아보죠. 물어볼 사람도 많을 텐데.”
패잔병들로 혼란스러운 주변을 가리키는 루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남들이 보기 전에 재빨리 회수해 오자고.”
* * *
영주성 내부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트릴 남작조차 포기한 성이었기에 곧 약탈이 벌어질 것을 아는 하수인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챙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상의 사정이었다.
루스와 함께 지하로 내려서자 위쪽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너……!”
그나마 아직 제대로 상황을 몰라 어물쩍거리던 병사 몇몇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피에 젖은 루스가 마나를 뿜어내며 검을 들자 혼비백산하며 무릎을 꿇었다.
“병기창이 어디냐?”
“저, 저곳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그래? 알았다.”
루스의 기억과 병사들의 증언을 조합해 이리저리 나아가다 보니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들어서게 되었고, 이내 찾던 곳이 눈앞에 드러났다.
서늘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
병기창이었다.
“여긴가 본데.”
내 말에 루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병기창의 문을 열었다. 곳곳에 공기가 통할 길을 잘 파 둔 덕택일까, 지하임에도 축축하다거나 음습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전투를 대비해 무구를 잔뜩 푼 탓인지 넓은 공간에 비해 든 것이 없어 쾌적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 있습니다.”
구석진 곳에 자물쇠가 채워진 보관함이 있었고, 그 위에는 포로의 것임을 나타내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가간 루스가 간단히 검을 휘둘러 자물쇠를 끊어 버렸다.
이후 덮개를 열자 안으로 플레타의 것으로 보이는 완드와 검 몇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몇 자루의 검을 들춰 보고 나서야 일리아의 검을 찾을 수 있었다. 확실히 겉만 봐서는 마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잘도 꾸며 놨네.”
픽 웃으며 일리아의 검, 사마엘을 집었다. 그 순간 원인 모를 짜릿함이 손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마검은 마검이니까.’
이 검에 의해 죽은 자는 영혼을 갈가리 찢긴 채 봉인된다. 그렇게 봉인된 망령은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쓰일 수가 있다.
위험한 힘을 지닌 검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검을 갈무리하던 순간이었다.
끼이익…… 쿵!
병기창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처음엔 바람에 흔들려 닫혔나 싶었지만 이내 피어오른 의문이 그를 부정했다.
‘통짜 철문이 바람에 흔들려 닫힐 리가 있나.’
스릉!
수상함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루스가 검을 뽑아 들었고, 나 또한 검집에 손을 올린 채 몸을 돌렸다.
“뭐야, 넌?”
문 앞에 선 인영은 병사임을 나타내는 외투를 걸친 사내였다. 혹시나 해 가슴팍을 훑었으나 기사임을 나타내는 표식 따윈 없었다.
그래, 겉모습만 보면 일개 병사에 불과한 남자였다.
하지만 나나 루스는 그가 평범한 병사가 아님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꼿꼿이 선 그의 자세에선 닳고 닳은 기사의 풍모가 흘러나왔다. 딱히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영역이 그려졌다.
거기서 모든 판단이 끝났다.
보통의 병사까지 따져 볼 것도 없다. 기사라고 해도 유저 초중급에 불과하다면 저런 영역을 가질 수 없다.
즉,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자라면 적어도 그 이상의 실력자라는 뜻이겠지.
‘그래도 어렵진 않아 보이는데.’
살면서 가장 큰 영역을 만나 본 건 로르다인이었다. 그의 영역은 감히 내가 침범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드넓었다.
린다이어 백작이야 진정으로 검을 맞대어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수 없고.
어쨌든 그런 로르다인의 영역보다는 보잘것없다는 것에 안도감이 생겼다. 저 정도라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상대였다.
“누구냐고 물었다.”
루스가 검을 겨누자 사내가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던졌다.
그 외투 아래 감쳐져 있던 것은 검은 흉갑이었다. 아무런 문양도 새기지 않고 광택을 죽인 검은 흉갑은 왠지 모르게 불길함을 나타내는 듯했다.
“공녀는 이곳에서 공작의 버림을 받아 죽었어야 해.”
검은 흉갑의 사내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검 위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때처럼 네 녀석이 또 나타나 훼방을 놓는군.”
플레타의 죽음을 입에 담은 그가 뽑은 검 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하지만 나쁘지 않아. 덕분에 최우선 목표가 직접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좋은 기회지. 이럴 땐 닭 대신 꿩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생각하지, 남작 카인 린다이어?”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접근했다. 게다가 저 최우선이라는 말은 이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과 다름없었다.
“아는 놈입니까?”
루스가 물어 왔다.
“저번에 캐피탈로 향하던 나와 플레타를 습격했던 무리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 루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그 엑스퍼트 최상급이라는 놈입니까?”
“아니야. 그놈은 얼굴을 똑똑히 봐 두었으니까. 저놈은 아마 그 똘마니겠지.”
처음엔 이놈들이 왜 갑자기 여기서 나오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상대의 말을 곱씹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플레타가 이곳에서 죽었어야 한다는 것.
이번 영지전 배후에 자신들이 관여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끝내 자신들의 손으로 플레타를 끝장내지 않은 까닭도 간단했다.
플레타의 죽음은 반드시 다른 외부 요인이 아닌, 공작의 결심으로 인한 것이어야 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로드키우스는 저놈들과 긴밀한 협조 관계라고 봐야 하는 건가?
하지만 내 정체를 알아본 알리오네에게선 이렇다 할 반응을 느낄 수 없었다.
‘알리오네도 이 수상한 협조 관계를 모르고 있었다는 거겠지.’
가문의 후계자조차 모르는 관계라면 이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는 소리다.
로드키우스 후작.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 내게 똘마니 소리를 들은 사내가 검을 힘 있게 들었다.
“똘마니라니. 우린 같은 뜻을 위해 움직이는 것뿐, 서로를 섬기지 않는다.”
“대신 모가지 여섯 개 달린 괴물을 섬기겠지.”
네비로스 교단을 상징하는 키메라의 모습을 비꼬자 사내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아는 것도 많군.”
“그래서 먹고 싶은 것도 많아.”
유들유들하게 너스레를 떨며 시간을 끌자 내 의도를 눈치챈 루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싸우게 될 때를 대비해 서로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거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헛수고를 하는군.”
그런 나와 루스의 모습을 보던 사내가 픽 웃었다.
끼익-!
동시에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인영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와 같이 병사로 위장한 복색이었으나, 그 안으로 검은 흉갑이 보였다.
“이제는 어찌할 셈이지?”
숫자가 역전됐다. 루스 또한 거리를 벌리는 것을 멈춘 채 도로 내게 다가왔다. 방어라면 오히려 뭉쳐서 각자 구역을 맡는 게 효율적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뒤늦게 등장한 둘의 기도를 살펴보자, 앞선 사내보다 실력이 훨씬 부족한 듯했다. 이 정도라면 루스도 있으니 할 만하겠지.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쿡쿡 웃음을 흘린 사내가 자신의 양옆으로 선 남자에게 손짓했다.
“목숨만은 붙여 놔야 한다. 말만 할 수 있으면 상관없다.”
“대장께서 독단적인 행동은 금하셨습니다만…….”
“후환을 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냥 두고 볼 셈인가?”
사내의 말에 두 남자가 마지못해 따른다는 듯한 찝찝한 얼굴로 검을 들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이 급습이 미리 짜 두었던 게 아닌, 급조된 계획임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훼방을 놓았다고 했으니 나는 이번 계획에 없었던 인물이었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할 만했다. 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 낸 함정이 아니란 뜻이었으니.
그때였다.
할 만하다는 내 생각을 비웃듯 세 남자의 두 눈이 서서히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붉게 타오른 그들의 안광은 마치 붉은 도깨비불을 보는 듯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그렇게 눈을 불태운 상대가 거친 입김을 토해 내며 마나까지 끌어내기 시작했다.
눈이 붉으니 마나도 붉을까 싶었으나 예상과 달리 보통의 것과 같은 푸른색이었다. 그렇다면 별개의 능력이란 뜻인데.
‘그렇다면 답은 하나겠지. 광혈초.’
광혈초(狂血草)
칼날 노래 오크 부족을 토벌하면서 발견했던 독초가 떠올랐다. 동시에 마석의 힘을 얻은 그로쉬가 휘하 오크에게 광혈초를 이용해 사악한 주술을 걸었던 것도 기억났다.
그때의 오크는 눈을 붉게 빛내며 평소보다 몇 배는 광포하고 강력하게 변모했었지.
애초에 그 오크에게 광혈초와 마석을 건네 모르모트로 삼았던 존재가 바로 저들이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지금 저런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광혈초에 힘을 얻은 오크들은 평소와 달리 두세 배는 너끈히 강해진 모습이었다.
단순히 사람도 그렇다고 쳐 보면 삽시간에 전력의 차이가 뒤바뀌었다는 뜻이 됐다.
“기세가 변했습니다. 쉽지 않겠는데요.”
루스 또한 변모한 그들의 기도를 느낀 것인지 끌끌 혀를 찼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숨을 고르곤 루스를 불렀다.
“루스.”
“예?”
“나를 믿냐?”
웬 엉뚱한 말이냐는 듯, 루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믿습니다만…… 그건 지금 왜?”
“그래. 그거면 됐다.”
말을 마친 나는 병기창 벽에 걸려 있던 단검을 여러 개 집었다.
그러곤 힘 있게 단검을 흩뿌렸다.
목표는 사람이 아닌, 내부를 밝혀 주던 등불이었다.
“막아!”
뒤늦게 내가 하려는 짓을 깨달은 상대가 움직이려 했으나 아쉽게도 내 손길이 더 빨리 등불을 차례차례 부숴 나갔다.
콰직!
결국 마지막 남은 등불마저 빛을 잃었고.
그렇게 병기창 내부는 완전한 어둠에 잠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