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2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27화(127/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27화
“…….”
어둠 속에 잠긴 병기창 내부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마 급변한 상황에 모두 당황한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루스 옆으로 향한 나는 낮게 귓속말을 건넸다.
“공격해. 방어는 내가 맡는다.”
“예?”
“설명할 시간 없어. 밖에서 새로 등불이라도 구해 오면 그땐 어쩔래?”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데…….”
“어두운 건 상대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우린 눈을 볼 수 있지.”
“…….”
“나를 믿어.”
내 말에 세 남자를 바라본 루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도 세 남자의 붉은 안광은 확실하게 빛나고 있었다.
적의 시선이 보인다는 것은 검사에게 있어 훌륭한 이점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자신을 보지 못하는 상황일 때는 더더욱.
‘다음은 루스가 얼마나 나를 믿느냐의 문제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자신 혼자만 돌진하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하게 들릴까.
하지만 루스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문을 열어라.”
예상대로 사내가 문을 열라고 지시한 순간 루스가 땅을 박찼다. 목표는 문으로 시선을 돌리는 붉은 안광이었다.
스스슷!
루스의 검에 마나가 깃들며 은은한 푸른빛이 머금어졌다. 환한 빛은 아니었지만 이로써 상대도 루스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옵니다!”
“나머지 한 놈은?”
“모르겠습니다.”
마나를 다루면 밤눈이 밝아진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의 영역이다. 빛 한 줌 없는 지하실에서 싸움을 벌일 때는 기사라 한들 일반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를 증명하듯 문으로 향하던 상대는 루스가 아닌 루스의 검을 보고 황급히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이윽고 마나로 불타는 루스의 검을 본 세 남자가 마찬가지로 마나를 끌어내며 검을 들어 올렸다.
“똑같은 조건이다. 우리도 검을 보고 싸운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방법이었으나 그들이 결정적으로 간과한 것은 바로 나의 능력이었다.
이미 암안(暗眼)을 개시한 나는 어두운 내부가 마치 환한 대낮처럼 밝아 보였다.
물론 실제로 밝아진 건 아니다. 오직 나만이 에보니의 힘 덕에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우습네.’
상대의 행동거지가 똑똑히 보였다.
반면 놈들의 시선에서 나는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이다. 그 꼴이 흡사 눈뜬장님을 보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나는 굳이 검에 오러를 입히지 않은 채 느릿하게 루스의 뒤에 섰다.
“다시 가자. 내가 엄호할게.”
내 신호에 루스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상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오러로 이글거리는 루스의 검을 향해 상대가 검을 휘둘러 왔다.
하지만 그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나는 경로를 미리 읽어 내곤 루스에게 속삭였다.
“우측으로.”
내 말을 들은 즉시 루스가 오른편으로 선회했다. 덕분에 두 개의 검은 피해 냈으나 마지막 남은 하나의 검이 루스를 쫓았다.
“막아 줄 테니 역공해.”
내 말을 믿고 루스가 방어를 포기한 채 앞으로 밀고 나섰다. 그와 동시에 내 검이 루스를 노리는 놈에게 향했다.
그렇게 검과 검이 부딪치기 직전, 마나를 끌어내 오러를 입혔다.
그러자 상대의 눈이 순간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아마 내 검이 별안간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졌겠지.
카가각!
내 검이 상대의 검과 얽히며 틈이 생겼고, 그를 노리고 파고든 루스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상대는 황급히 검을 포기한 채 뒤로 가볍게 물러남으로써 공격을 피했다.
그 모습에 나 또한 재빨리 오러를 지워 내며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 버렸다. 그에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노성을 내질렀다.
“이런 미꾸라지 같은 놈!”
굳이 대답하진 않았다. 저것도 다 내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도발일 테니까.
그렇게 가볍게 대장을 무시한 나는 루스에게 속삭였다.
“검을 놓친 놈을 노려. 상황을 만들어 주마.”
“알겠습니다.”
어떻게 돌아가는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인 루스가 우직하게 쇄도했다.
“막아라!”
물론 나는 남은 두 상대의 앞을 막아섰다.
이번엔 검을 맞댈 생각이 없었기에 오러는 입히지 않은 채 검을 내질렀다.
쉬릭!
검이 짤막한 풍압만을 남긴 채 어둠을 틈타 파고들었다.
아마 상대방으로선 환장할 노릇이겠지. 분명 어디선가 검이 파고들긴 하는데, 그게 단순히 안광을 보고 내지르는 것치곤 지나치게 정교할 테니까.
그래도 기사는 기사라는 건지 소리만을 듣고 내 검을 막으려 들었다.
물론 상대의 시선과 행동거지를 모두 보고 있던 나로서는 진즉에 검을 회수한 뒤였다.
“크읍!”
볼썽사납게 검을 헛손질한 사내가 휘청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가간 나는 가볍게 발을 걷어차 넘어뜨렸다.
“이 무슨……!”
어떻게 이 어둠 속에서 그리 움직일 수 있냐는 의문에 나는 검을 역수로 쥐어 내려찍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대로 어깨를 꿰뚫어 전투 불능으로 만든 뒤 루스를 돕기 위해서.
“크아아아!”
하지만 상대의 대응은 과격했다. 붉은 안광을 빛낸 남자가 괴성을 질러 내며 왼손을 뻗었다.
푸욱!
내 검이 남자의 사슬 장갑을 뚫고 손바닥을 꿰뚫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남자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손아귀를 오므려 검날을 움켜쥐었다.
예상 밖의 괴력이었다. 검을 잡힌 탓에 내가 지근거리에 있음을 확인한 남자가 남은 오른손을 휘둘러왔다.
‘뭔 이런 괴물 같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것에 집중한 탓에 검에 오러를 입히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
하지만 다친 손으로 거머쥔 검이 내 완력을 이기고 미동조차 하지 않으리라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막고, 오러를 일으켜 빼낸다.’
빠르게 판단을 내리곤 남자의 오른손을 막기 위해 자세를 취했다.
쾅!
하지만 내 완벽했던 계획은 남자의 주먹에 한 대 얻어맞은 뒤 와르르 무너졌다. 마치 워 해머에 후려 맞은 듯한 충격에 골이 뒤흔들렸다.
‘와, 씨…….’
이게 인간의 힘이라고?
수 미터를 굴러 나가떨어지며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그나마 오른손에 온 힘을 붓느라 힘이 빠졌던 건지 남자가 검을 놓친 게 다행이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고, 마찬가지로 걸레짝이 된 왼손을 움켜쥔 남자 또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루스는?’
눈앞이 핑핑 도는 듯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돌려 루스를 찾았다.
루스는 미처 내가 막아 내지 못한 대장과 격하게 검을 나누는 중이었다.
서로 어둠 속에서 상대의 검을 보고 휘두르는 탓인지, 유독 검과 검이 부딪치는 횟수가 잦았다.
캉! 카앙!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똥처럼 튄 마나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그 덕에 병기창 내부가 벼락이라도 치는 것처럼 순간 환해졌다가 어두워짐을 반복했다.
‘밀리고 있네.’
아무래도 루스가 밀리는 형국이었다.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는 게, 루스 또한 상대의 괴력을 여실히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곤란한데.’
방금 상황을 겪고 나니 현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러를 끌어내서 싸우자니 위치가 노출되어 협공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협공을 이겨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지금 저들의 완력은 인간을 초월한 상태니까.
그렇다고 오러 없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자니 방금처럼 육탄전으로 순간 밀고 들어오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서서히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에 적응한 상대편이 유리해질 게 뻔했다.
‘놈들은…….’
어느새 검을 놓쳤던 녀석이 제 검을 다시 찾아 재정비를 마쳤다. 왼손을 다친 녀석도 대충 피를 닦아 내고는 오른손으로 검을 굳게 거머쥐었다.
선택을 내릴 시간이 다가왔다.
“루스! 물러나!”
내 말에 순간 강하게 검을 휘둘러 상대를 몰아낸 루스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뒤로 물러난 대장 또한 부하 옆에 서서 숨을 고르며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린다이어는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볼 수 있는 듯합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마법 아티팩트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하지만 계속해서 오러를 쓰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대놓고 들으라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저들이 말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뻔하다.
루스야 대장이 일대일로 맡으면 될 일이고, 나머지 둘이서 나를 상대하면 잡을 수 있다는 거겠지.
오러를 사용하면 같이 오러로.
반면 어둠 속에 숨으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육탄전으로.
그렇게 대놓고 작전을 짜는 상대의 모습에 루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살만은 해.”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 보죠. 공작의 병력이 올 수도 있습니다.”
“포로를 귀환시키는 게 최우선 명령이었으니 와도 외성을 완벽히 진압한 이후겠지.”
“……그럼 어쩔까요.”
글쎄. 어떻게 할까.
때아닌 작전 타임을 가지며 서로 재정비를 하는 모습이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싸워 보니까 어때?”
“어렵습니다. 마나의 절대량은 밀리지 않습니다만, 완력이 너무 강합니다. 바랑카 부단장님보다 배는 더 센 듯하더군요. 아마 결국엔 스태미나 싸움에서 밀리게 될 것 같습니다.”
“버티는 건?”
“길게는 어렵습니다.”
루스의 검에 서린 오러가 처음보다 눈에 띄게 옅어져 있었다.
“얼마나?”
“길어야 수 분입니다.”
“짧긴 하네.”
하긴, 원래 기사끼리의 싸움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단순히 누구 마나의 절대량이 더 높은가를 겨루는 것이니까. 그래서 모든 기사가 아득바득 경지를 높이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에 반해 검술은 부수적인 옵션일 뿐이다. 물론 그마저도 상대의 몸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선 효율이 떨어질 테고.
‘이렇게까지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아껴 둔 걸 써야 할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루스.”
“예.”
“뒤로 물러나 있어.”
“……예?”
“저 셋은 내가 맡는다. 대신, 그 뒤에 네가 책임지고 안전한 곳까지 나를 데려다줘야 해.”
보지 않아도 루스의 표정이 어떨지 예상이 갔다. 혼자 셋을 맡는다니,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겠지.
하지만 루스는 내가 이런 상황에 농이나 던질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아, 괜찮아. 가능해. 믿으라고.”
검을 들고 일어서자 마찬가지로 상대 또한 이야기를 끝냈는지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힘없이 물었다.
“이름이 뭐냐?”
“갑자기 무슨 통성명이냐?”
“멋진 싸움인데 상대 이름이라도 알고 가자고. 어차피 너희가 이길 건데 이름 정돈 알려 줘도 괜찮잖아?”
“…….”
잠시 고민하던 사내가 이내 입을 열었다.
“비룬이다.”
“소속은?”
“언홀리 나이트.”
나를 뒤쫓던 놈들의 일부 정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언홀리 나이트(Unholy Knight)
부정한 기사.
놈들이 가진 속셈에 걸맞은 이름이었다.
“이름 한번 잘 어울리네. 너희가 하려는 짓이 부정한 건 잘 알고 있나 봐?”
“유언은 끝났나, 카인 린다이어?”
말을 마친 비룬과 두 언홀리 나이트가 앞으로 나서며 검을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숨을 골랐다.
포지션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비룬이란 녀석이 루스를 맡고, 나머지 둘이 나를 상대하려는 듯했다.
‘뭐든지 거저 얻으려고 하다 보면 꼭 이렇다니까.’
쉽게 쉽게 가려고 했던 게 실수였다. 애초에 어떻게든 대충 전부 사로잡아 정보를 얻어 내려고 했던 나 자신이 오만하게 느껴졌다.
‘아니지. 아니야.’
헛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가만 보니 지금 이 순간도 나 자신을 속이려 들고 있었다.
실상은 쉽게 가려 했던 것도, 전부 사로잡아 심문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혹시라도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게 될까 싶어 최대한 변명을 했던 것뿐이지.
‘멍청하긴.’
어차피 앞으로도 진흙탕만 뒹굴 것 같은데, 언제까지 미루기만 할래?
‘이젠 지쳤어. 그냥 죽일래.’
감았던 눈을 떴다.
여전히 오러는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아직도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 검은 바람이자.”
들리지 않게 웅얼거려 왔던 지난날과는 달랐다. 루스를 포함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당당히 읊조렸다.
「내 검은 바람이자」
동시에 베인 린다이어의 화신이 내 영혼에 자리 잡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거목을 눕히는 돌개바람이다.”
동시에 처음으로 두 번째 구절을 읊었다.
첫 구절이 마치 한 줄기 바람이 번쩍이는 듯한 일섬(一閃)이라면.
「거목을 눕히는 돌개바람이다」
두 번째 구절은 그 무수한 일섬이 얽히고 얽혀 폭발하는 돌개바람이었다.
“이 무슨…….”
당황한 비룬의 말을 뒤로한 채 무수한 빛줄기로 변모한 검이 어둠 속에서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