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3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31화(131/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31화
36장. 블루윈드 상회
<제스 오를리앙입니다. 현재 남부 암염 광산이 대거 매몰된 상황을 들어 알고 계실 겁니다. 그에 따라 향후 일정을 놓고 자세한 계획을 짜고 싶습니다. 내방 부탁드리겠습니다.>
블루윈드 상회의 장이자 소금 매입을 맡겼던 제스 오를리앙의 전서였다.
그걸 본 즉시 나는 프레이 포트로 루트를 잡았다. 원래라면 캐피탈에 먼저 들릴 생각이었으나, 제스 오를리앙이 전서까지 보내며 재촉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한껏 몸이 달아오른 듯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마음 같아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고 싶지만.’
적은 금액이 걸린 문제도 아니니 직접 내가 보고 판단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루스와 함께 서부에서 동부 해안으로 출발한 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나와 루스는 말 위에 올라탄 채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다인가.”
바람 속에 섞인 짠내가 코끝에 맴돌았다.
“예. 대충 위치를 재 보니 곧 동부 해안인 것 같습니다.”
지도를 펼쳐 대충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본 루스가 아무런 감흥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부에서 뒹굴다 왔으니 그럴 만하지.
반면 나는 조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바다를 본 지 너무 오래된 탓인가. 지구에 있을 때야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온갖 미디어 매체에서 바다를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들랜드의 세상에선 바다를 보기 어렵다. 더욱이 춥고 황량한 북부를 근거지로 삼은 상황엔 더더욱.
“해산물이라…….”
“군침이 당기십니까?”
“당연하지. 이런 기회가 아니면 좀처럼 먹을 기회도 없는데.”
이곳에 냉장고가 있냐, 뭐가 있냐.
내륙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매일 활어회를 먹을 수 있는 지구랑은 완전히 다르지.
아오, 생각하니까 더 군침 도네.
“회.”
“예?”
“회가 먹고 싶어.”
단언하는 내 말에 루스가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회요?”
“그래. 갓 잡아 올린 다음 송송 썰어 낸 회.”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는 야만스럽다고 귀족 대부분은 전부 기피하는데 말이죠.”
“기피? 그 맛있는 걸 왜?”
“희한하네요. 태생이 북부 토박이이신 공자님이 회를 즐겨 하실 줄이야.”
회 생각에 기분 좋은 티를 너무 냈나.
괜한 의심을 받을까 싶어 손을 내저었다.
“그냥 책을 읽다 그게 그렇게 별미라는 이야기를 봤을 뿐이야.”
“그렇습니까? 하긴, 저도 먹어 보긴 했는데 그렇게 나쁜 맛은 아니더군요.”
“좋아. 단숨에 주파하자고.”
“허, 오늘따라 힘이 넘치시는데요?”
너도 첨단 문명의 이기를 누리다 이런 곳에 떨어지면 나처럼 될걸?
“시끄럽고 빨리 따라오기나 해.”
“어어, 공자님! 같이 가요!”
픽 웃으며 군마의 배를 걷어차 달려 나가자 루스가 그 뒤를 황급히 뒤따르기 시작했다.
* * *
프레이 포트는 본디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어촌 도시에 불과한 항구였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해 왕국이 사분오열된 뒤에는 대륙 동부 해안 중심에 자리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중계 무역의 허브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그 프레이 포트에선 한 남자의 야망이 태동하게 되는데.
‘악상(惡商) 제스 오를리앙.’
훗날 악마의 무기상을 뜻하는 이명을 얻게 되는 제스 오를리앙은 프레이 포트를 근거지로 전쟁 특수를 노린 군수업을 통해 일약 거상에 오르게 된다.
정세를 읽는 데 천부적인 재능과 파격적인 시도를 아끼지 않는 결단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완하는 장사 수완까지.
한마디로 될 놈이라 이거다.
‘뭐,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고.’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프레이 포트의 모습은 한산하다 못해 황량하게 느껴졌다.
상상했던 건 무역을 위해 바다를 오가는 무수한 범선이 보이는 풍경이었는데, 현실은 고기잡이로 소일거리 하는 작은 어선만 듬성듬성 떠 있어 괜히 김새는 기분이다.
“프레이 포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행자입니까?”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의 환영에 나는 은화 한 닢을 건넸다.
“추운데 고생이 많습니다.”
“어헛, 뭐 이런 걸 다…….”
자고로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은화 한 닢에 오랜 친구를 본 것처럼 살갑게 변한 경비병에게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블루윈드 상회는 어디 있습니까?”
“블루윈드 상회? 아, 모집 공고를 보고 온 용병이셨습니까?”
으음? 모집 공고?
맥락만 보자면 블루윈드 상회에서 용병을 모집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쉽지만 허탕이십니다.”
“허탕이라뇨?”
“블루윈드 상회가 용병과 뱃사람을 구하기 시작한 지는 꽤 됐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최근 모여든 사람을 다시 돌려보내고 있으니까요.”
용병과 뱃사람을 구하고 있다라.
소금을 팔아야 할 테니 필요 인력을 미리 준비하는 건 알겠는데, 다시 돌려보낸다는 건 무슨 뜻이지?
“그래도 헛걸음한 이들에게 여비 정도는 챙겨 주고 있는 모양이니 들렀다 가시죠. 블루윈드 상회는 중심가에 있으니 찾아가시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경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문을 열어 주었다.
그를 통과한 나와 루스는 잠시 말을 아끼고 있다가 이내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사람을 모집했다가 다시 돌려보낸다라…….”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서에는 딱히 아무 말도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온 전서가 언제입니까?”
“꽤 시간이 지나긴 했지.”
“그렇다면 아무래도 최근에 문제가 생긴 듯하군요.”
“아마 그렇겠지. 빨리 가 보자고.”
대충 상황 파악을 끝낸 나와 루스는 말을 몰아 프레이 포트의 중심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블루윈드 상회는 경비원의 말대로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일련의 사람들이 성난 얼굴로 모여 있었다.
“헛고생만 시켜 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고작 몇 푼 쥐여 주면 다 끝인 줄 아나? 몇 배는 더 내놓으라고!”
행색을 보아하니 용병들인 것 같았다. 경비원에게 들은 이야기와 조합해 보면 그들은 아마 헛걸음한 보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깽판을 부리고 있는 거겠지.
“그 정도도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단기 의뢰 수준은 되는 금액이라고요!”
그리고 그 앞에서 용병들과 마주한 채 선 청년이 있었다.
“저거 레오 아닙니까?”
“맞네. 꽤 달라져서 못 알아볼 뻔했는데.”
루스의 말대로 그 청년은 레오였다.
호리호리한 몸은 그대로였지만 기세가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기억 속의 레오는 신분이 신분인지라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달리 용병과 마주하고도 쉬이 물러나지 않을 정도로 당당해진 모습이었다.
‘잘 지냈나 보네.’
긍정적으로 변화한 모습에 제스에게 딸려 보낸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값은 다른 이들이랑 다르니 곱절은 받아야 한단 말이다!”
“우리 상회로선 최소한의 도리는 다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전부 납득한 판국에 지금 그쪽들만 억지를 부리는 거 아닙니까?”
“이 조막만 한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주먹을 치켜든 용병의 모습에도 레오는 물러나지 않았다.
아마 이대로 저 요구를 다 들어 주면 선례를 남겨 다른 이들도 같은 억지를 부릴 테니 그런 거겠지.
시기적절하게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하며 나는 루스를 불렀다.
“루스.”
“예?”
“출동.”
“제가 무슨 사냥개입니까?”
“사냥개라기보단 포켓몬쯤?”
“포켓몬? 그건 또 뭡니까?”
“그런 게 있다. 어쨌든 빨리 가서 해결해.”
“예 예, 알겠다고요.”
내 재촉에 루스가 ‘포켓몬? 그게 뭐지?’라고 중얼거리며 용병에게 다가갔다.
“넌 뭐야?”
그런 루스의 모습에 용병이 두 눈을 부라렸다.
반면 레오는 후드를 눌러쓴 루스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듯 미간을 좁혔다.
“내가 뭐냐고?”
“그래. 넌 누군데 갑자기 끼어드는 거냐? 너도 같이 처맞고 싶은 거냐?”
“처맞아?”
“미친 새낀가?”
“미쳐?”
“지금 장난하는 거냐?”
“장난해?”
“이 새끼가…….”
루스가 능글맞은 얼굴로 계속 말꼬리를 잡자 참지 못한 용병이 주먹을 휘둘러 왔다.
그를 본 루스가 씩 웃으며 같이 주먹을 휘둘렀고.
빠각-!
주먹과 주먹이 허공에서 맞부딪치며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으어…….”
형편없이 으스러져 뒤틀린 자신의 주먹을 바라본 용병이 신음을 내며 비틀거렸다.
“이 자식이!”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거냐?”
그 모습에 같은 패거리인 용병들이 동시에 루스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뻗어 왔다.
물론 루스의 정체를 아는 나로선 용병들이 그저 불나방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이후 들려온 소리는 빠악, 뿌드득, 콰직 같은 타격음이었다.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를 실제로 생생히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끄아아악!”
“내 팔, 내 팔!”
“커억…….”
용병들의 팔을 전부 사이좋게 부러트린 루스가 쓰러진 놈들을 발로 툭툭 차며 이를 갈았다.
“동부 촌놈 새끼들이 어딜 감히 북부인을 건드리려 해?”
그렇게 응징을 마친 루스가 손을 탁탁 털며 몸을 돌려 레오를 바라봤다.
“안 그러냐, 레오?”
그제야 루스의 정체를 알아본 레오의 두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루스 님?”
“오, 이제 알아본 거냐? 좀 실망인데.”
“그럼 저분은…….”
이내 고개 돌린 레오가 이쪽을 바라보았고, 나는 슬쩍 손을 올려 보였다.
“오랜만이다, 레오.”
“공자님!”
* * *
이후 레오의 안내를 받아 향한 곳은 프레이 포트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여관이었다.
그래 봤자 평범한 어촌 도시에 불과하니 다른 대도시의 여관보단 급이 떨어지지만, 나나 루스는 그런 걸 따질 사람은 아니니까.
간단히 짐을 풀고 홀로 내려온 나와 루스는 레오와 마주 앉았다.
“음식은?”
“시켰습니다.”
“돈 걱정은 말고 해산물로 가득 채워 놓지.”
“당연히 그랬죠.”
“짜식, 눈치는 좀 있네.”
루스의 칭찬에 레오가 빙긋 웃었다.
그 정겨운 모습에 나 또한 웃으며 레오를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블루윈드 상회는 고용인도 없나? 왜 그런 일에 네가 나서? 때마침 나나 루스가 없었다면 꽤 시달렸을 것 같은데.”
좀 전에 용병들 앞에 나선 행동의 이유를 묻자 레오가 빙긋 웃었다.
“그래서 나선 거예요, 공자님.”
“알면서도 나섰다고?”
“어쨌든 상회와 용병은 공생 관계이니까요. 만약 무력을 이용해 강제로 처리했다면 잘잘못을 떠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용병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겠죠. 어찌 됐건, 이번에 공고를 내걸어 사람을 모았던 건 저희 측이었으니.”
“그래서.”
“그래서 차라리 한두 대 맞아 주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되면 용병들이 먼저 선을 넘게 되는 거니 우리로서도 강경히 대응할 명분이 섰겠죠.”
레오의 설명에 루스가 키득댔다.
“그렇다고 해도 거친 용병들한테 정면으로 맞서다니, 깡다구가 제법 대단한데. 잘했어. 그래야 북부인답지.”
“뭐, 루스님 덕분에 제 계획이 어그러졌지만요.”
“그래서 지금 내 탓이라는 거냐?”
“아니라곤 못하겠네요.”
“이 자식이?”
루스가 손을 뻗어 레오의 뺨을 주욱 잡아당겼다. 간만에 만났음에도 제법 죽이 잘 맞는 둘을 보며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공고까지 내서 사람들을 기껏 모집했으면서 왜 다시 돌려보내고 있는 거지?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물음에 대한 답변은 레오가 아닌,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리죠.”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 돌려 바라본 여관 문에는 한 인영이 서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밤색 머리칼과 유순해 보이는 인상, 분명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제스 오를리앙.”
내 부름에 빙긋 웃음 지은 제스가 정중히 허리를 숙여 내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인 남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