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33)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34화(134/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34화
“무역선?”
기대감으로 차올랐던 레드란의 얼굴은 배를 빌리러 왔다는 내 말에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그래.”
“뜬금없이 배는 갑자기 왜? 린다이어 가문이 이젠 바다까지 손을 대려는 건가?”
“그럴 리가.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부탁이다.”
“개인적인 부탁이라니, 설마 장사라도 하려는 건 아닐 테고.”
“맞아.”
“뭐?”
“뭘 좀 파려는데 배가 필요해서 온 거 맞다고.”
“정말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라고?”
거듭 확인하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자 레드란이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온다기에 그 이유가 뭘까 혼자 수도 없이 고민했어. 하지만 장사라니? 예상한 답이 아닌데.”
“그럼 무슨 원대한 이유라도 있을 줄 알았냐?”
“당연하지. 난 네가 같이 손을 잡고 대륙을 먹어 치우자고 할 줄 알았다고.”
“…….”
네가 무슨 제갈공명이냐? 대륙을 먹자고 이런 촌구석까지 찾아가게?
반면 레드란은 전혀 농담이 아니었는지 김이 샌 얼굴로 돌을 걷어찼다.
“젠장, 괜히 마음만 들떴네.”
“실망했으면 미안하고.”
“그보다 배를 구하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뭐, 그 이유까지 숨길 필요는 없겠지. 만약 배를 빌리게 된다면 내막이야 당연히 레드란도 알게 될 테니.
“다른 놈들은 너무 비싸게 불러서.”
“비싸게 부른다고?”
“그래.”
“그게 지금 무슨 생뚱맞은…….”
표정을 구긴 채 뭐라 말하려던 레드란은 순간 무언가 생각난 듯 말끝을 흐렸다.
“설마 너…….”
“설마 뭐.”
“네가 파려는 게 소금은 아니겠지?”
“맞아. 소금.”
“맙소사. 그럼 블루윈드 상회가?”
레드란도 알고 있는 건가?
하긴 바사라크 영지나 블루윈드 상회나 같은 동부이니 모르는 게 이상하겠지.
“내 상회다.”
“블루윈드 상회가 네 상회라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언제 김이 샜냐는 듯 레드란의 얼굴이 금방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그렇지. 너 정도 되는 남자가 시시껄렁한 일로 이곳까지 오진 않았겠지. 이거 놀라 자빠지겠군. 블루윈드 상회가 카인 린다이어의 것이라니?”
대체 레드란은 나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심히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딱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놀랄 일이지! 동부가 그 이야기로 얼마나 시끄러운데! 대체 그런 선구안을 지닌 투자자가 누군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어떻게 안 놀랄 수가 있겠어?”
“…….”
“그렇다면 이해가 가지. 대업을 위해서라면 군자금은 필수이니. 이거, 네 계획도 몰라보고 내가 괜한 오해를 했군. 미안하다.”
레드란이 떠올린 대업이 뭔지는 딱히 묻지 않았다. 어차피 야망이니 뭐니 듣기만 해도 오글거릴 내용일 테니까.
“미안할 것까진 없고.”
“좋아. 그런 연유라면야 얼마든지 배를 내어 주지.”
“그래? 그럼 기한과 대금에 대해 이야기를…….”
“아니.”
비용을 이야기하려는 내 말을 레드란이 자르고 들어왔다.
“돈은 필요 없어.”
“뭐라고?”
“필요 없다고. 배를 내어 줄 테니 네가 필요한 만큼 마음껏 사용해.”
레드란이 쿨하게 대답했다. 마치 학창 시절 옆자리 짝꿍에게 지우개를 빌려주듯 망설임이 없었다.
그 모습에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어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상식적인 선에서 비용을 지불하겠어.”
“아니. 돈은 됐으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부탁?”
“그래.”
무슨 부탁?
이상한 말을 꺼낼까 싶어 내가 표정을 굳히자 레드란이 손을 내저었다.
“뭘 상상하는진 모르겠지만 이상한 부탁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차라리 그냥 돈을 받지?”
“친구랑은 돈거래 하는 거 아니라고 배웠다.”
“누가 너랑 친구라는 거냐?”
“너무 매몰찬 거 아니야? 이거 좀 슬퍼지려고 하는데.”
과장되게 우는 시늉을 하는 레드란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부탁이지? 미리 말해 두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면 그냥 돌아가겠어.”
혹여나 정치적인 꿍꿍이라면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곳에서 배를 구할 심산으로 말했다.
하지만 레드란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별거 아니야. 그냥 붉은성에서 천천히 머물다 가라고.”
“머물다 가라고?”
“원래라면 배를 빌리자마자 훌쩍 떠날 거 아니었어?”
전혀 아닌데?
이것저것 너에 대해 알아볼 게 있어서 좀 머물려고 했는데?
물론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떠나려고 하긴 했지.”
“그러지 말고 천천히 푹 쉬다 가라고. 그게 내 조건의 전부다. 그것만 들어주면 배를 내어 주지.”
“쉬다 가라고? 얼마나?”
“석 달 정도?”
“지금 장난하냐?”
“너무 긴가? 알았어. 그럼 한 달?”
“일주일.”
“그건 너무 짧아!”
“보름. 그 이상은 안 돼.”
어차피 식객 노릇을 하려던 차였지만 나는 최대한 봐준다는 식으로 생색을 냈다.
그런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레드란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보름으로 하자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에 내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의구심도 피었다.
레드란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붙잡아 두려는 걸까.
나를 이용해 뭔가를 해 보겠다는 건가?
아니면 그의 말대로 단지 정말 나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요구일까.
그건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되겠지.
어쨌든 조건만 보면 나쁘지 않다. 어차피 적당히 머물려고 하던 찰나에 그 대가로 무역선을 거저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지.
“좋아. 받아들이지.”
고심하는 연기를 하다 끝내 고개를 끄덕이자, 레드란이 씩 웃으며 붉은성을 향해 턱짓했다.
“잘 생각했어. 그럼 이만 가자고. 널 위한 연회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 * *
붉은성에 몸을 들인 나와 루스는 짐을 정리한 뒤 몸을 씻고는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후 찾은 붉은성의 대연회장.
수십의 귀족이 모여 제각기 무리를 짓고 담소를 나누는 연회장에서 나는 거북한 심정으로 루스에게 물었다.
“어때?”
“공자님 생각은요?”
“과한데.”
“저도 동감입니다.”
족히 스무 명은 넉넉히 앉을 법한 테이블에 진수성찬이 한가득 차려져 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손발을 합쳐도 셀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그 음식의 주인은 고작 나와 루스, 그리고 레드란 셋이 전부였다.
게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또 어떻고.
그냥 음식만 차려져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말겠다만, 테이블 앞 연회장에선 반쯤 헐벗은 몰골로 춤을 추는 열댓의 무희까지 있으니 이건 뭐 밥을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원래 귀족들이 다 이런 건지, 아니면 레드란이 별난 건지.’
아마 후자겠지.
흘긋 레드란을 바라보니 그는 차려진 만찬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적포도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 돌려온 레드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안 들다마다.”
“아 그래?”
내 말에 어깨를 으쓱인 레드란이 옆에 시립해 있던 집사를 손으로 까딱여 불렀다.
“다 내보내고 새로 선별해서 다시 데려와.”
그 뜻이 아니잖아?
황급히 손을 내저어 집사를 다시 부른 나는 공연은 필요 없으니 다 데리고 나가라고 말했다.
“왜 내보내?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데.”
“저런 게 재밌냐? 밥상머리에서 뭐 하는 짓이야?”
“그럼 밥 먹으면서 보지 언제 봐?”
“됐으니까 내보내라고.”
“아아, 이런 쪽 취향이 아니라는 거지?”
“뭐 그렇다고 치고 어쨌든.”
“그랬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레드란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연회장 입구 쪽에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여기사가 앞으로 나오더니 서로 검을 뽑고 대치하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으응? 결투 처음 봐?”
“결투하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근데 그걸 왜 지금 하냐고.”
“춤은 싫다며?”
씩 웃으며 레드란이 손짓하자, 이윽고 두 여기사가 서로 진검을 들고 살벌하게 검을 나누기 시작했다.
‘취향 한번 독특하네.’
뭐 이딴 녀석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귀족들이 전부 청렴결백하고 검소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레드란 이 자식은 좀 삐뚤어진 면모가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스트립쇼보단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술잔을 들었다.
그 모습에 눈썹을 치켜뜬 레드란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건 좀 흥미가 있나 봐?”
“아까보단 낫네. 기사들인가?”
“그럼. 바사라크의 붉은 기사단이지. 어때?”
“어떠냐니.”
“용모를 물어봤을 리는 없잖아? 당연히 실력이지.”
붉은 기사단이라.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명성이 그리 높은 기사단은 아니었다.
물론 훗날 그들이 가질 위명을 생각한다면 마냥 무시할 수도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대충 두 여기사의 검투를 지켜본 결과, 솜씨는 제법 있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특출한 점도 없어 보였다. 저 정도 실력자는 바람기사단 말단에도 쌔고 쌨다.
하지만 그 기사단의 주인이 옆에 있는 마당에 솔직히 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괜찮네.”
“괜찮다고?”
“그래.”
“그럼 한판 어때?”
“한판? 뭔 소리야?”
“대련 한번 어떠냐는 거야.”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대련?”
“뭘 모르는 척 내빼고 그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정말 연회나 즐기려고 온 것 같아?”
“그게 아니면?”
내 물음에 레드란이 테이블 위에 놓인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헤집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적어도 이런 고깃 조각 따위에 관심이 있어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마 모두가 북부 최강의 기사단이라는 바람기사단을 궁금해하고 있을걸.”
무슨 의도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받아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바람기사단은 한낱 여흥을 위해 아무 때나 검을 뽑지 않으니까.
이건 내 신념과 상관없이 바람기사단 자체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니 더더욱 그랬다.
“대련을 원한다면 정식으로 요청해. 절차를 지켜서.”
“절차? 판이 깔렸으면 그냥 하면 되지, 절차 다 지켜 가며 흙먼지 날리는 연무장에서 하는 게 무슨 재미야?”
“기사가 무슨 광대냐?”
“아아, 고지식하기 짝이 없구만.”
쯧쯧 혀를 찬 레드란이 나이프로 고기를 내려찍었다.
“고리타분한 기사들만 모아 놓고 거기서 대련해 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술과 음식, 그리고 지켜보는 청중이 있는 가운데 화려한 검투가 있어야 신화가 나오고 노래가 만들어지지.”
“신화는 무슨. 그냥 네 휘하 귀족들 앞에서 바람기사단을 꺾어 위명을 세우고 싶은 것뿐이잖아?”
“들켰어?”
“내가 바보로 보이냐?”
“그냥 한번 받아 주면 안 되냐? 어차피 천하의 바람기사단이 동부 촌구석 영주의 기사에게 질 일은 없잖아?”
말장난하긴.
나는 와인을 홀짝이곤 쯧쯧 혀를 찼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안 된다니.”
“이겨 봤자 본전이고, 지면 개망신을 당하는 게임에 구태여 참가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아.”
내 말에 레드란이 픽 웃었다.
“그 리스크에 상응하는 뭔가를 내놓아라?”
“게임은 공정해야 하는 법이다.”
“안타깝네. 여기서 배를 걸어 버릴걸.”
“이미 끝난 일을 번복하진 않겠지.”
“당연하지. 약속의 엄중함은 잘 알고 있다고.”
이후 레드란이 찍은 고기를 입에 넣어 우물거리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솔직히 난 뭐가 네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반대로 제안하지. 바람기사단이 대련에서 이긴다면 네가 원하는 걸 하나 들어줄게.”
“원하는 것?”
“그래. 네가 원하는 것. 물론 지극히 상식적인 범주 안이어야겠지. 아! 참고로 보름의 기한을 줄여 달라는 건 안 돼.”
레드란이 웃었다.
그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붉은 기사단에는 루스를 꺾을 실력자가 없다. 단장급도 끽해야 호각을 겨룰 정도.
한데 지금 이 자식은 뭔 자신감일까?
‘무슨 꿍꿍이냐, 레드란.’
거의 신봉하다시피 나를 고평가하는 레드란의 태도.
보름간 붉은성에 머물러 달라는 부탁.
뒤이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안하는 검투.
계속해서 무언가를 어필하려는 듯한 레드란의 행동이었다.
‘어쨌거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이니.’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면 어느 정도 레드란에게 접근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좋아.
그렇다면 어디 한번 어울려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