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4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41화(141/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41화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내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일리아였다.
“바사라크가 동부를 집어삼킨다면 달갑지 않은 새로운 강자의 등장이라는 건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걸 무조건 적이라고 단정 짓기엔…….”
그녀의 말에 듣고 있던 리하스가 고개를 저었다.
“바사라크의, 그리고 동부가 걸어온 역사가 있으니 아마 적에 가까울 거예요.”
“걸어온 역사?”
“반역자의 땅이라고 홀대받고 무시받았던 동부입니다. 바사라크 가문도 그 부족한 정통성과 맞물려 많은 모멸을 당했고요. 당장 제 손으로 선대 가주를 암살하고 자리를 꿰찼느니 하는 추문이 당당하게 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은…….”
“힘이 강해진 바사라크는 그 과거를 잊지 않을 거란 겁니다.”
“반역이라도 저지른다는 겁니까?”
“그렇게 과격하게까진 굴지 않더라도 아마 반왕당파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아무리 세를 불린다고 해도 없던 정통성을 끌어올 순 없으니까요. 누구보다 새로운 개혁을 적극적으로 바랄 겁니다.”
“새로운 개혁이라면?”
잠시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본 리하스가 낮게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하면 현 왕실의 몰락이겠죠.”
“그래서 잠재적인 적이라고 한 거군요.”
설명에 납득한 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금세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린다이어 가문이 먼저 손쓰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지.”
내 짧은 답에 리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마 공자님이 조사하신 내용이 아니었다면 린다이어가 움직였을 겁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른 상대의 전력에 낭패를 봤겠지요. 벌집을 쑤신 꼴이랄까요. 똥개도 제집 마당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데 지금 바사라크의 전력이면…….”
“맞아. 지금 린다이어 가문이 몸을 이끌고 손쓰기엔 늦었어. 그렇다고 왕실이 나서서 제지를 건다? 그것도 별 효용이 없겠지. 레드란은 바보가 아니야. 아마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야금야금 동부를 집어삼킬 거다.”
그때 내 말을 듣고 있던 리하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군요. 그렇게 본다면 바사라크의 걸림돌은 린다이어이지 않습니까. 근데 왜 공자님을 영지에 들이고 자유롭게 살펴보도록 내버려둔 걸까요? 그것도 이런 군사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나보고 메신저가 되라는 뜻이겠지.”
“……아, 공자님이 직접 린다이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족쇄로?”
“아무리 거침없는 레드란이라고 해도 린다이어와 척을 지는 건 큰 부담이니까. 아마 불필요한 피를 흘리고 싶진 않았을 거야.”
“그렇군요. 납득이 됩니다.”
“그렇기에.”
쿵!
맥주잔을 강하게 내려놔 분위기를 환기하며 입을 열었다.
“물밑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물밑에서라면.”
“어차피 대놓고 움직이기엔 이미 늦은 감이 있잖아. 그러니 레드란이 열심히 공든 탑을 쌓고 있을 때 몰래 주춧돌 한두 개씩 빼놓자는 말이지.”
“바사라크가 폭주할 때를 대비하자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영주님께 상의한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사공이 많아 봤자 배가 어디로 가겠어? 레드란의 경계를 살 바엔 차라리 홀가분하게 움직이는 게 낫다. 영주님께는 일이 확실해지면 따로 내가 말씀을 드리지.”
“알겠습니다.”
“어쨌든 너랑 한가롭게 창술이나 연마할 시간은 없다는 걸 이제 알겠냐?”
내 지적에 리하스가 멋쩍게 웃었다.
“예, 그렇군요.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리하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트롯 남작부터.”
“트롯 남작이요?”
“그래. 생각해 둔 좋은 계획이 있어. 하지만 그 계획의 성패는 트롯 남작의 반응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까 그를 구워삶는 게 최우선이야.”
“알겠습니다.”
“예.”
리하스와 일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내려놓은 맥주잔을 다시 들었다.
“일단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즐기고, 내일부터 제대로 시작하자고.”
* * *
다음 날.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나와 일행들은 느지막한 시간에 트롯 남작을 만나기 위해 나섰다.
잠시 후, 멀리 트롯 남작의 영주성이 보이기 시작하자 리하스가 간단한 감상을 내렸다.
“고슴도치 같은데요.”
“동감이야.”
공감되는 말이었다.
아무리 목적이 군사적인 용도라지만, 그래도 성이라면 어느 정도 영주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미관을 신경 쓰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눈앞에 드러난 작은 성채는 오로지 전투만을 위한 용도로만 만들어진 모습이다.
성벽에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조차 지우지 않은 모습이니, 침략자의 기를 꺾으려는 생각이었다면 대성공이겠지.
“성을 이렇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동부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뭐 이상할 것도 없지.”
“하긴, 동부는 전쟁, 전쟁, 전쟁…… 싸움밖에 모르는 이들이니까요.”
“괜히 야만의 땅이라고 불리겠어.”
“아이들 싸움에 칼부림이 난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게 실제로 일어나는 동네인 게 웃긴 거고.”
어느 세력 하나가 확실하게 주도하지 못한 탓에 아이들 다툼이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속담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
그게 바로 동부였다.
“멈춰라! 누구냐?”
그 탓인지 영주성을 경비하는 이들조차도 하나같이 기세가 날카로웠다.
험상궂은 얼굴의 경비병이 제지하고 나서자 리하스도 항상 보여 주던 웃음기를 싹 빼곤 진지하게 앞으로 나섰다.
“바람기사단원 리하스 로디다.”
“바람기사단? 북부의 기사가 이곳엔 무슨 일로?”
“공무 중 트롯 남작님을 만나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
리하스가 내민 신분패를 꼼꼼하게 살펴보던 경비병이 뒤에 선 나와 일리아를 흘긋 바라봤다.
“저분들은?”
“린다이어 가문의 적통이신 카인 린다이어 남작님과 그 수행원이다.”
“저분이?”
눈을 얇게 뜬 경비병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기별을 넣을 테니 잠시 기다리시죠.”
몸을 돌린 경비병이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순간 눈 둘 곳이 없어진 리하스가 나를 바라봤다.
“엄격하네요.”
“외지니까.”
“환대를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씁쓸한데요.”
“뭐, 한두 번이야?”
이후 입성하라는 허락이 떨어지고 성안으로 들어선 나는 곧장 성채를 지나 본성 앞까지 향했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기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한 기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리하스와 일리아를 흘긋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영주님의 호위 기사를 맡은 탈로간이오. 알현은 카인 남작에게만 허락되었소. 나머지는 이곳에서 대기하든가 성 밖으로 돌아가시오.”
“…….”
일체 호감 따윈 없다는 듯한 탈로간의 말에 리하스와 일리아가 나를 바라봤고.
“괜찮으니 여관으로 돌아가 있어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굳이? 날도 추운데.”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뭐 죽으러 가냐? 돌아가서 내가 시켰던 일이나 마저 하고 있으라고.”
내 강권에 마지못해 수긍한다는 듯 일리아와 리하스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를 확인한 탈로간이 손짓을 하자 본성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 십수 명의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성안으로 향하던 내게 탈로간이 흘긋 시선을 보내왔다.
“북부, 그것도 린다이어의 사람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온 것이지?”
존대를 생략한 말투였지만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이곳은 그들의 땅이고, 그들에게 있어 나는 어떤 의도를 갖고 온건 지 모를 불청객이었으니.
그래도 대놓고 삐딱하게 보는 놈에게 성의껏 대할 만큼 내가 아량 넓은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아랫것과 나눌 이야기가 아니다.”
순간 십수 명의 기사가 멈칫거리며 내게 시선을 보내오는 게 느껴졌다. 스릴 만점이구만.
“……아랫것?”
“그럼 네가 트롯 남작보다 위인가?”
“지금 나를 모욕하려는 것이오?”
“그렇게 들렸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서 명예 결투라도 신청할 셈인가, 기사 탈로간?”
“…….”
뭘 봐, 이 자식아.
한참이나 날 노려보던 탈로간은 이내 뭐 씹은 표정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내 위치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결투를 신청했을 거요.”
“그러시겠지.”
“……어쨌든 대우에 기분이 불쾌했다면 사과하겠소. 단지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되었을 뿐이니.”
“세 명도 겁나서 팔다리 다 떼어 놓고선 염려도 많아.”
“그쪽이 지내던 곳과 이곳은 많은 것이 다르오. 그걸 모르고 찾아온 건 아닐 텐데.”
조심, 그리고 또 조심이라는 건가.
확실히 살벌한 동네임을 느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 명예를 걸고, 트롯 남작에게 위해를 끼치러 온 것이 아니다.”
“당신 정도의 사람이라면 명예의 소중함을 알고 있겠지. 알겠소. 더는 목적을 묻지 않지.”
짧은 기세 싸움이 끝나고, 탈로간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영주성의 거대한 홀이었다.
목적지로 했던 곳이었는지 앞서 움직인 탈로간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영주님, 카인 남작입니다.”
“들어오라.”
끼이익-
그렇게 크고 두터운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살벌한 공간이었다.
따스함이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벽과 천장에 장식된 것은 강철과 강철, 그리고 또 강철이었다. 트롯 남작의 성향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잠시 멈춰선 나와 탈로간을 뒤로한 채 십수 명의 기사가 주르륵 들어서더니 홀 양옆에 시립하고 섰다.
뒤이어 탈로간이 내게 따라오라는 턱짓을 하곤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를 따라 완전히 홀 중심부로 나선 나는 한 사내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트롯 남작이라…….’
귀족이라면 무조건 어떻게 입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머리통이 그대로 남은 곰가죽을 두르고 있는 건 너무 매니악하지 않나?
“트롯 남작님을 뵙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팔 받침대에 손을 올려 턱을 괴고 있던 트롯 남작이 고개만 까딱였다.
“내 성에 온 것을 환영하오, 카인 남작.”
“환대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손님 대접 참 뭐 같다는 말을 에둘러 말하자 트롯 남작이 픽 웃음을 흘렸다.
“소문의 삼공자라……. 듣던 대로 당차군.”
“어떤 소문을 들으셨기에.”
“봄날 망아지처럼 온갖 사건을 일으키고 다닌다고 들었소.”
“제대로 들으셨군요.”
“그래서, 내 영지엔 또 무슨 사건을 일으키려고 찾아온 거요?”
“듣는 귀가 너무 많습니다만.”
“내 사람이 듣지 못할 말은 나도 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야.
“바사라크에게 겁을 먹고 땅강아지처럼 굴에 숨어 버린 트롯 가문에게 좋은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놈!”
“무엄하다!”
스르릉!
사방에서 기사들이 검을 뽑아 나를 겨누는 게 느껴졌다.
이 살벌한 느낌, 참 오랜만인데.
“……땅강아지?”
“예. 땅강아지.”
“못하는 말이 없군.”
“그래서 듣는 귀가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트롯 남작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나를 도발해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원래라면 외지인의 이야기는 들어 볼 생각조차 없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은 뭐가 달라졌나?”
“시비를 확실히 가리기 위해서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 보겠죠.”
“…….”
소리 없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트롯 남작이 이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맞는 말이군.”
트롯 남작이 손을 들어 내저었다.
“탈로간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나가라.”
“여, 영주님!”
“무슨 의도로 찾았을지 모릅니다.”
주변 기사들의 반발에 탈로간이 거들었다.
“나가 있어라.”
“그래도…….”
“영주님의 명을 어길 셈이냐?”
“…….”
결국 탈로간의 말에 수긍한 기사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고.
“원하는 대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소.”
트롯 남작이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불렀다.
“그러니 앞서 말했던 언행의 이유를 똑똑히 설명하시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내 가문을 모욕한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오.”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만…… 뭐, 좋습니다.”
느긋하게 홀 가장자리에 놓인 테이블에 앉은 나는 다리를 꼰 채 트롯 남작과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