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44)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45화(145/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45화
어둠이 내린 숲은 고요했다.
밤의 산속이라면 당연히 들려와야 할 풀벌레 소리조차 없다. 마치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듯한 기이함을 일리아도 느꼈는지 나를 바라봤다.
“과연 나타날까요.”
“허락받지 않은 손님이 집안에 들어온 꼴이니까. 아마 직접 나타나겠지.”
“……적대적이겠지요.”
“글쎄. 그건 그 녀석에게 달렸겠지.”
인간이나 몬스터나, 지성을 가진 종족은 전부 제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드루이드도 마찬가지다.
라헨나처럼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하는 성격이 있다면, 아마 그 반대인 성격의 드루이드도 분명 있을 터.
“만약 싸워야 한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 웬만하면 내가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안심시키려는 내 말에도 일리아는 검을 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아마 라헨나의 힘을 가까이서 겪은 경험 때문이겠지.
물론 나도 같은 걱정을 했었다.
이곳에 산다는 드루이드가 만약 라헨나만큼 강하다면, 그리고 우릴 맹목적으로 적대한다면 발생할 위험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위험하지 않다.’였다.
라헨나가 말하길, 대개 드루이드는 인간에게 정체를 들키면 불문곡직 죽이려 든다고 말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별다른 주의 없이 이곳으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그것은 곧 이곳의 드루이드가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물론 내 설레발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드루이드가 적대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속수무책인 건 아니다.
‘이게 있으니까.’
품속에 있는 두루마리를 떠올린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라헨나가 건네준 두루마리에는 그녀의 힘이 미약하게 감돌고 있었다. 아마 이곳의 드루이드도 이 기운을 느낄 순 있겠지.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대화의 시작이다.
뭐, 정 위험하면 그냥 몸을 돌려 일리아를 데리고 빠져나가도 상관없지. 아휀의 도움이 있다면 주술의 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계획을 정리하던 그때였다.
까악- 까악-
조용하던 숲에서 처음으로 나와 일리아의 숨소리 말고 다른 것이 들려왔다.
까마귀였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까마귀 한 마리가 숲 위로 내려앉은 채 울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불과 한 마리에 불과했던 까마귀는 이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불어났고, 종국엔 숲 전체에 검은 구름처럼 몰려 앉아 울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수십 마리를 넘어 수백, 수천 단위로 불어난 까마귀 떼에 일리아가 신음을 흘렸다.
“징그럽게도 많네.”
까악- 까아악-
이제는 어두운 그림자가 숲인지 까마귀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을 수준이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울음소리에 일리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겠지요.”
“그렇겠지.”
내 대답에 일리아가 상반신을 수그렸다.
검을 뽑기 직전의 자세였다. 본능적으로 곧 무언가와 마주할 것이라 느낀 거겠지.
‘어떤 모습일까.’
라헨나는 멋들어진 순백색의 늑대였다.
하지만 모든 드루이드가 같은 형상은 아닐 거다. 그렇기에 이번에 만날 드루이드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던 그때였다.
숲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사방에서 울어 대던 까마귀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부리를 닫았다. 흔들리던 나뭇가지들이 멎었고, 불어오던 바람은 숨을 죽였다.
“무언가가 오는 것 같습니다.”
일리아가 짤막한 경고를 내뱉었다.
물론 나도 느꼈다. 무언가 강력한 기운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숲인가?
아니다. 육감이 숲에서 오는 건 아니라고 외쳐 댔다.
그렇다면 남은 건 땅속 아니면 하늘인데……. 두더지로 변신한 게 아니고서야 하늘밖에 없겠지.
고개를 들자 달조차 구름에 가려 깜깜한 밤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용히 에보니의 힘을 끌어올려 암안(暗眼)을 개안했다. 그러자 마치 구름이 걷히듯 순식간에 시야가 회복되었고, 이내 내 눈에 또렷이 보인 것은 한 비행체였다.
‘뭐가 저렇게 커?’
거대한 조류였다.
아니, 거대한 수준이 아니었다. 저 무지막지한 크기는 결코 평범한 모습이 아니었다.
익장만 해도 6, 7미터는 되어 보인다. 저 정도면 사람은 고사하고, 웬만한 곰보다도 큰 덩치다. 부리를 벌리면 어린아이 정돈 쉽게 삼킬 수 있는 수준이니.
이윽고 일리아도 그 거대한 형체를 발견했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저게 그 찾으시는…….”
“아마도.”
“이젠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기사가 최강의 병기라고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지상에서의 싸움에만 해당한다. 인간은 하늘을 날지 못하니까.
그래서 일리아도 답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일단 기다려 보자고.”
마법과 주술은 엄연히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결계를 뚫고 들어온 우리를 막무가내로 공격해 오진 않을 거다. 아마 저놈도 경계심이 바짝 올라 있을 테니까.
이후 상황은 내 예상대로였다.
놈은 곧바로 접근해 오지 않은 채 그저 원을 그리며 선회만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좀 더 녀석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이내 알게 된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까마귀네.”
그리폰이나 와이번처럼 신비한 괴수의 모습일 줄 알았는데, 그 정체는 그저 겁나 큰 까마귀에 불과했다.
그에 김이 새는 기분에 쯧쯧 혀를 차던 그때였다.
“으음?”
한참 동안 원을 그리며 선회하던 까마귀가 이내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활강하기 시작했다.
거구에도 불구하고 아주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비록 까마귀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설 속 신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
쿵!
그렇게 사뿐히 내려앉은 까마귀가 한바탕 날개를 털었다.
“…….”
고요한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까마귀와 마주 선 기분이란.
게다가 지금껏 시끄럽게 울던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부리를 다문 채 나와 일리아를 쏘아보고 있다.
분위기만 따진다면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분위기와 달리 상황은 조금 복잡미묘했다. 멀찍이 내려앉은 녀석은 그저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니.
‘뭐야, 인사라도 해야 하나?’
웃긴 생각이지만 뭐, 못할 것도 없지.
결심한 나는 오른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움찔!
나는 봤다. 분명 똑똑히 봤어.
거대 까마귀는 내가 들어 올린 손을 보곤 몸을 움찔거리며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 희한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저 자식, 설마 지금 놀란 건가?’
웃긴 녀석이네.
슬쩍 오른발을 살짝 내디뎌 보았다.
“…….”
그러자 녀석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다시 왼발을 내딛자 녀석도 물러난다. 내 행동을 따라 하는 모습이 흡사 거울을 보는 듯해 나도 모르게 장난기가 돌았고.
“왁!”
까악-!
상반신을 수그리며 순간 크게 소리치자 녀석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날갯짓을 했다.
확신한다. 저건 깜짝 놀란 거다. 그것도 엄청.
“고, 공자님?”
그런 내 모습에 일리아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왜?”
“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뭐가?”
“그렇게 자극하면…….”
“글쎄. 모르긴 몰라도 저 녀석.”
한바탕 뒤로 뛰어 물러난 놈을 보며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우릴 겁내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일리아가 맥이 풀린다는 표정을 짓던 순간이었다.
까아아악-!
뒤로 물러났던 녀석이 크게 울음을 토했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에 나는 순간 자세를 웅크렸고.
사아아아……
뒤이어 땅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공자님!”
검을 움켜쥔 일리아가 명령만 내리면 당장 튀어 나갈 기세로 나를 찾았다.
“기다려 봐.”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아직 상대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판단은 상황이 확실해진 뒤 내려도 늦지 않겠지.
게다가 저 모습, 꼭 라헨나가 변신할 때와 닮았단 말이지.
그렇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녀석의 몸을 한바탕 휘감은 지 몇 초나 지났을까.
다시 나타난 녀석의 모습은 까마귀가 아닌, 인간의 형상이었다.
“…….”
검은 로브로 몸을 칭칭 휘감은 모습이다.
이후 눌러쓴 후드 아래로 희미하게 놈의 얼굴이 보였다. 얼핏 보기엔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라헨나의 인간 모습이 그랬듯, 녀석의 용모는 수려하기 짝이 없었다. 조각보다 더 조각 같다고 해야 할까.
세상에 존재하는 잘생김이란 잘생김은 다 모아 놓은 얼굴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 너…….”
“나?”
“너 뭐야?”
갑자기 반말에 통성명이라니.
처음 라헨나와 마주해 나누었던 그 지적인 대화가 그리워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모든 드루이드가 같은 성격이진 않겠지만, 이 정도의 갭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카인.”
“카, 카인?”
“다른 카인도 있나?”
“여, 옆에는?”
“일리아.”
“이, 일리아?”
왜 자꾸 말을 더듬어?
하지만 저 잘생긴 얼굴이 말을 더듬으니 그것 나름대로 백치미와 보호 본능이 느껴지는…….
지금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지?
흘긋 옆을 돌아보니 일리아는 이미 반쯤 긴장을 푼 채 검을 쥔 손의 힘을 풀고 있었다.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만약 지구의 내가 저렇게 어두운 복장을 한 채 말을 더듬거리면 싸이코인가 싶어 경계심이나 사겠지.
팍 피어오른 짜증에 나는 팔짱을 꼈다.
“그러는 넌 누구냐?”
“으, 으응?”
“우리 이름을 말했으니 너도 말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나, 나는…….”
내 재촉에 녀석이 어깨를 움츠렸고, 그 모습에 일리아가 나를 만류했다.
“공자님, 아무래도 놀란 것 같은데 천천히 달래 보시는 게…….”
“……?”
평소에 내가 알던 일리아 맞나?
항상 얼음장 같던 일리아가 표정까지 푼 모습으로 앞으로 나섰다.
“일단 사전에 이야기 없이 이 산에 들어선 점,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일리아 프로스트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가 섬기는 카인 린다이어 님이시고, 저희는 라헨나 그란트리의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라, 라헨나!”
라헨나의 이름을 들은 녀석은 지금껏 소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 채 화색이 돌았다.
“마, 맞아. 그 기운은 라, 라헨나의 것이었어.”
기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녀석이 조심스레 검지를 들고선 내 가슴팍을 가리켰다.
“라, 라헨나의 기운.”
“이거 말인가?”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자 녀석은 마치 고양이가 개박하를 마주한 것처럼, 만면 가득 부끄러워하는 미소를 머금었다.
……일단 그 미소에 일리아의 몸이 움찔거렸다는 건 일단 뒤로 제쳐 두고.
“이게 갖고 싶나?”
내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황급히 끄덕이며 두 다리는 꼭 땅에 붙인 채 상반신만 앞으로 기울였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인진 모르겠지만.’
두루마리를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녀석의 고개가 같이 따라 움직인다. 그 모습에서 나는 녀석과 라헨나의 관계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손에 쥔 두루마리를 살살 흔들었다.
“갖고 싶다면 못 줄 것도 없지.”
“그, 그래?”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대답부터.”
“어, 어떤 거?”
“네 이름.”
“카, 칼란다트.”
“좋아. 칼란다트, 혹시 이명이 있나?”
강력한 힘을 지닌 드루이드는 대개 자신의 특화된 능력에 따라 이명을 갖기 마련이다.
라헨나가 추천한 드루이드라면 당연히 이명 정돈 가지고 있겠지.
물론 어찌 보면 이명을 묻는 것 자체가 민감한 내용일 순 있겠지만, 자신을 칼란다트라고 밝힌 녀석은 내 예상대로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내, 내 이명은 사, 사령술사야.”
말하고도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녀석이었다.
“사령술사?”
“으응.”
“그렇단 말이지.”
사령술사(死霊術士) 칼란다트.
녀석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나는 내 계획의 톱니바퀴가 확실히 맞물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