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4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49화(14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49화
* * *
거대한 수목이 빼곡해 하늘조차 가려진 대수림.
그곳에선 한창 사냥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냥의 대상은 엘프들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각기 크고 작은 상처를 지닌 엘프들은 무언가로부터 맹렬한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
“놈이다!”
“피해!”
그리고 그 추격자는 한 검은 그림자였다.
쓸데없는 동작은 없다. 간결한 공격이 뿜어지면 곧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꿰뚫렸다.
그렇게 허무하리만큼 엘프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 가던 그때였다.
콰아앙!
별안간 먼 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전장과는 거리가 먼 후방에서 난 굉음에 혹 지원군인가 싶었던 엘프들은 곧 절망에 빠졌다.
“맙소사! 로르다인이다!”
“로, 로르다인?”
굉음의 주인공은 백발을 휘날리는 한 엘프였다.
그리고 그 엘프를 로르다인이라 부른 이들은 모두 한뜻으로 직감했다.
곧 죽음이 들이닥친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로르다인은 엘프가 지닌 가장 날카로운 무기지만, 동시에 피아를 가리지 않는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투입되었다는 것.
그건 곧 전장의 모든 이를 희생시키겠다는 상부의 결정을 뜻했다.
“빌어먹을.”
한 엘프가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상상하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곧 엘프의 얼굴엔 비뚤어진 희열이 깃들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건 곧 자신을 뒤쫓던 추격자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보자.”
고개 돌린 엘프가 멀리 동료를 사냥하는 검은 그림자에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곤 곧장 검을 들어 자신의 심장을 찔러 자결했다.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장에서 로르다인과 마주친 이상 살아갈 수 없음은 불변의 진리였고, 이내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기 시작했다.
그 아이러니한 광경에 검은 그림자가 잠시 행동을 멈추곤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르다인은 묵묵히 시야에 들어온 모든 엘프를 하나하나 죽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흐르자 결국 전장에 남은 것은 로르다인과 검은 그림자, 단둘뿐이었다.
“…….”
후드득!
마지막 생존자까지 모두 죽인 로르다인이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그리곤 검은 그림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냐?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르다인도 딱히 대답을 바라진 않았는지 묵묵히 양손을 들어 싸울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먼저 움직인 것은 검은 그림자였다.
빠르게 달려든 검은 그림자로부터 날카로운 공격이 뿜어졌다. 목표는 심장이었고, 지금까지의 행보처럼 깔끔히 꿰뚫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로르다인은 살짝 몸만 비틀어 간단히 피해 냈다. 그리곤 상대를 향해 짧게 주먹을 끊어 쳤다.
쿵!
묵직한 주먹이 그림자에 꽂혔다.
“크억……!”
처음으로 검은 그림자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그림자가 허공에서 몸을 돌려 안전하게 착지했다.
그렇게 다시 자세를 잡은 그림자의 모습은 전과 달랐다.
지금껏 몸을 가려 주던 검은 기운이 옅어져 있었고, 그렇게 드러난 모습은 검은 갈기를 지닌 거대한 늑대인간이었다.
그 모습을 본 로르다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드루이드인 줄은 알았다만, 너는 처음 보는 녀석이군.”
그 말을 들은 검은 늑대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대꾸했다.
“네가 바로 로르다인인가?”
중후한 목소리가 적막함을 깼다.
그 목소리에 로르다인이 심드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를 아나?”
“꽤 유명한 이름이니까.”
“그런가? 이거 의외인걸.”
“아내를 지키지 못해 미쳐 버렸다지.”
이어진 검은 늑대의 말에 로르다인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발이라면 아주 훌륭했다.”
“그런가?”
“그래. 덕분에 화가 아주 많이 났거든.”
로르다인의 흐트러진 긴 백발이 마나를 머금곤 휘날리기 시작했다.
스르릉!
뒤이어 멈춰 선 자세 그대로 로르다인이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지금껏 모든 것을 주먹 하나로 해결해 오던 로르다인이 무기를 집자, 검은 늑대 또한 짐짓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르다인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름이 뭐냐?”
“하슈나르.”
“좋아, 하슈나르. 유언 정도는 들어 주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도 있나?”
“곧 네 아내와 만나게 해 주마.”
“그거야 바라 마지않던 일이다만, 가능하겠나?”
로르다인의 물음에 어느새 검은 기운을 다시 피워 낸 하슈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어디 해 봐.”
말을 마친 로르다인이 먼저 움직였다.
콰아아!
마나를 한껏 끌어낸 로르다인이 땅을 박차자 푸른 마나가 꼬리처럼 이어졌다.
하슈나르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검은 기운에 휩싸인 하슈나르의 몸이 번쩍였다.
콰앙!
내려찍은 로르다인의 진각이 애꿎은 땅바닥만을 까부쉈다.
균열을 일으키며 잘게 부서진 돌조각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투두둑-!
그렇게 흩어지는 돌조각 사이로 홀연히 하슈나르가 나타났다.
스악!
이후 스쳐 지나간 발톱이 로르다인의 뺨에 한줄기 선혈을 자아냈다. 조금이라도 피하는 게 늦었다면 목이 잘려 나갈 공격이었다.
‘무슨 능력이지? 마법인가?’
아까와는 달리 갑자기 나타난 하슈나르의 공격에 로르다인이 혀를 차며 뒤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벌린 거리가 무색하듯, 또다시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슈나르가 발톱을 휘둘러왔다.
‘마법은 아닌데……. 설마 내 그림자를 타고 나타나는 건가?’
정답이 아니었다.
로르다인이 자신의 그림자를 의식하기 무섭게 이번엔 전혀 다른 사각에서 하슈나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다시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바닥에 몸을 던져 피한 로르다인이 이를 드러냈다.
“재롱치곤 지나치군.”
“…….”
로르다인의 툴툴거림에 하슈나르는 말없이 발톱을 휘둘러 대답을 대신했다.
그에 또다시 바닥을 굴러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로르다인이 이를 악물었다.
‘우연이 아니다.’
처음엔 자신이 상대를 놓쳤나 싶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으로 확실해졌다. 자신은 늦지 않았다. 컨디션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으며 실수라고 생각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뭘까.
‘드루이드들, 그중에서도 특출한 실력자들은 괴이한 능력을 사용한다곤 하지만…….’
마법도, 정령술도 아닌 특이한 능력.
혹자는 그걸 주술이라고 불렀고, 그 능력은 아직 해박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결국 몸으로 부딪치면서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로르다인이 숨을 골랐다.
‘계속 사각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마법처럼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아. 빌어먹게 골치 아픈 능력이군.’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직접적인 타격 능력은 보통의 드루이드 수준이라는 것.
물론 그 보통의 수준도 웬만한 단검보다 날카롭고 긴 발톱인 게 문제지만.
그래도 일단 정면으로 맞붙기만 한다면 철저히 깨부숴 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저 괴이한 능력부터 어떻게든 해야 했다.
‘흐름이 좋지 않아.’
뒤로도 이어진 몇 번의 격돌 끝에 로르다인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나 소모가 상당했다. 아마 저 능력을 파훼하지 못하면 급격하게 불리해지겠지. 그러면 이후 결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스아악!
또다시 사각에서 나타난 하슈나르의 공격에 로르다인이 땅을 구르면서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 보자. 단순히 그림자를 통해 순간 이동을 하는 능력인가? 만약 그렇다면 답은 쉽다. 그림자만 없애면 되니까.’
하지만 자신의 본능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외쳐 댔다.
그리고 지금껏 숱한 전장을 거쳐 온 자신에게 그 외침은 누구보다 든든한 조언이었다.
‘그게 전부는 아닐 거다. 분명히.’
놈에게선 아주 진한 피 냄새가 풍겼다.
분명 뛰어난 사냥꾼이다. 아마 지금껏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피를 봤겠지.
저런 녀석을 그런 단순한 방법으로 끝장낼 순 없을 거다.
생각해 내자.
저놈을 어떻게 해야 확실히 끝장낼 수 있는지.
‘…….’
이윽고 로르다인이 두 눈을 빛냈다.
그리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화르륵!
이윽고 로르다인의 몸을 타고 피어오른 마나가 불타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얼마나 강렬한지, 주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들이 푸른빛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 의도는 누가 봐도 너무 뻔했기에 하슈나르가 소리 없이 비웃었다.
“많은 이가 착각을 하곤 하지. 내가 그림자를 이용한다고.”
“…….”
검은 기운에 휘감겨 사라진 하슈나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그림자 한 점 없던 로르다인의 등 뒤였다.
“하지만 틀렸다. 나 스스로가 곧 그림자이니.”
그림자처럼 뒤에서 솟아난 하슈나르의 눈에 로르다인의 등이 보였다. 이대로 손만 뻗으면 곧 펄떡이는 심장이 손에 잡힐 게 분명했다.
푸욱!
그러나 그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 가는 소리가 하슈나르의 귀에 들려왔다.
“…….”
하슈나르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이내 두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은 로르다인의 장검이었다.
“……어, 떻게?”
순간 치솟은 의문에 하슈나르가 고개를 치켜들었고, 이내 감고 있던 두 눈을 천천히 뜨는 로르다인을 발견했다.
“잡았다.”
* * *
짹짹-
참새 소리가 들리는 숲속에서, 나는 두터운 나무 그루터기에 몸을 기댄 카인 린다이어로 다시 눈을 떴다.
느릿하게 팔을 들어 손을 쥐락펴락해 보았다. 아직도 로르다인으로서 하슈나르와 벌였던 싸움이 생생했다.
이후로도 한참 동안 그 싸움을 복기하던 나는 이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로르다인 이 미친 새끼.”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애초부터 어딘가 비뚤어진 엘프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투 중에 눈을 감다니?
그것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눈은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전투에 필요한 정보의 9할 이상은 시각에서 전달받으니 더더욱 그렇다.
장님 사무라이의 일대기라든가, 눈두덩이가 부어 거리감을 잃은 복서의 대역전극이 전부 개소리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눈이 안 보이면 숟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존재니까. 그런 판국에 싸움은 말할 것도 없지.
한데 로르다인은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그것도 의식적으로.
아마 검을 한 번이라도 쥐어 본 이라면 모두가 백이면 백, 전부 미쳤다고 욕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로르다인은 실제로 그렇게 행했고, 그 이유는 아주 심플했다.
‘눈으로 보고 좇으면 늦으니까.’
일견 보기엔 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눈으로 확인하고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본능에 맡기는 게 더 빠른 건 사실이니.
하지만 문제는 대체 그 누가 눈먼 검을 맥없이 맞아 주냐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의 빈틈이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전투에서.
하지만 웃기게도 하슈나르는 그 눈먼 검에 맥없이 당해 버렸고, 그 이유 또한 우습기 짝이 없다.
‘하슈나르 또한 눈이 멀어 있었다.’
마치 넌센스 퀴즈의 허망한 답을 들은 듯한 기분이다.
사실 하슈나르는 그림자를 통해 순간 이동을 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렇게 보임으로써 상대를 현혹했을 뿐.
‘망령화라고 해야 하나.’
잠시 육신을 속했던 차원에서 분리한다.
이후 원하는 위치에서 다시 되돌아온다.
이 간단한 메커니즘이 하슈나르가 가진 능력의 비밀이었다.
육신이 현세와 분리되니 당연히 현세에 속한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테고, 그렇게 다시 나타난 하슈나르는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느껴졌겠지.
뒤늦게 눈으로 뒤쫓아 봤자 이미 선공권은 하슈나르에게 빼앗긴 상황일 테고 말이다.
그렇기에 로르다인은 시각적 정보를 완전히 차단한 채 본능에만 몸을 맡긴 것이다. 육감이란 것은 참으로 오묘해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도 곧장 잡아내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노린 맹점에 하슈나르는 보기 좋게 당했고.’
현세와 분리된 이상 하슈나르 또한 상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주효했다.
아마 돌아왔을 땐 이미 로르다인의 검이 자신을 노리는 상황이었을 터.
확실히 대단한 양반이다.
그 급박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파훼법을 찾아내고, 그 의도를 들키지 않게 마나로 그림자를 지우는 행동으로 방심을 유도하는 것까지.
아마 전투 센스만 따진다면 로르다인이 대륙 최고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괴물은 괴물이라니까.”
느릿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로르다인 덕분에 하슈나르를 꺾을 방도를 찾아냈다. 답안지를 들춰 본 셈인데 정답을 모를 수가 없지.
눈으로 찾지 않는다.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해 한발 빠르게 대처한다.
‘어쨌거나 고맙수다, 로르다인.’
덕분에 하슈나르의 능력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능력은 육체의 망령화.
그리고 그것을 귀영술사라는 하슈나르의 이명과 접목한다면.
‘귀신걸음. 대충 그렇게 부르면 되겠지.’
귀영보(鬼影步).
귀영술사 하슈나르의 능력을 드디어 파악해 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