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51)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52화(152/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52화
* * *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칼란다트의 통나무집이었다. 잠시 현실감이 없어 손을 들어 올리자 손에 쥔 단검이 보였다.
“…….”
검날의 색이 바뀌어 있었다. 처음 칼란다트에게 받았을 때만 해도 거무튀튀했었는데, 지금은 검붉은 빛을 띠고 있다.
‘성공했구나.’
들어 올렸던 손을 다시 침대 위에 털썩 내려놨다. 그리곤 눈을 감고 하슈나르와의 싸움을 복기했다.
아직도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했다.
적당한 운과 적절한 임기응변이 빛을 발했다. 똑같이 해 보라고 해도 못 할 수준이니 실로 요행이라 할 수도 있겠지.
덜컥-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바깥문이 열리며 칼란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이밍도 좋지.’
들어온 칼란다트는 홀가분한 내 얼굴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내 평소와 다른 내 분위기에 점점 눈이 크게 뜨였다.
“서, 설마 성공한 거야?”
“그래.”
“어, 어떻게?”
어떻게라니. 그 과정을 어떻게 일일이 입으로 설명해?
“네 말대로 베었을 뿐이야.”
“베, 베었다고?”
“그래, 단검으로.”
“……미, 믿을 수 없어.”
네가 안 믿으면 뭐 어쩔 건데? 단검에 저렇게 증거가 남아 있구만.
다가온 칼란다트가 조심스럽게 단검을 잡았다. 그리곤 날을 어루만지더니 이내 작게 탄식을 흘렸다.
“지, 진짜네.”
“그럼 가짜겠냐?”
“소, 솔직히 안 믿겨서.”
“우리 사이에 딱히 신뢰랄 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날 너무 바보 취급하는 거 아니야?”
“그, 그건 아니야.”
“됐다, 인마. 그보다 일리아는?”
“도, 도시에 잘 내려 줬어.”
으음, 거대한 까마귀 등에 타서 하늘을 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샘솟은 궁금증을 잠시 뒤로한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좋아. 이제 한번 말해 보시지. 노동의 대가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으응…….”
뭐야 저 미적지근한 반응은.
머리를 긁적이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라헨나의 이야기 때문에 저러는 거야?
“약속은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 그게 아니라…… 좀 거, 걱정되는 게 있어서.”
“걱정? 무슨 뜻이야?”
“이, 일단 나는 무, 문장을 줄 수가 없어.”
“…….”
그 개고생을 했는데 문장을 줄 수 없다고? 오냐, 지금 네가 죽고 싶어서 발악하는구나.
두 눈 가득 짜증을 담아 노려보자 칼란다트가 두 손을 내저었다.
“자, 잠깐, 안 준다는 게 아니야. 나, 나는 못 준다고.”
“그러니까 뭐.”
“주, 주인을 불러야지.”
“주인을 부른다고?”
문장의 주인이라면 한 명밖에 없잖아?
“설마 하슈나르를?”
“으응.”
“어떻게?”
“내, 내 몸에.”
네 몸에 불러낸다고? 빙의 같은 건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사령술사였지. 온종일 어벙한 모습만 보이니 까먹고 있었다.
근데 잠깐, 하슈나르를 이곳에 불러낸다는 건…….
“네가 말한 그 걱정이라는 게?”
“마, 맞아. 혹시라도 네가 하슈나르와 워, 원만하지 않을까 봐.”
“…….”
“호, 혹시라도 싸울 생각은 마. 다치는 건 내 몸이란 말이야…….”
싸운다고? 지금 내 몸 상태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오히려 내가 두들겨 맞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젠장, 물건 작다고 놀린 게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마주쳐야 한다니.
“꼭 불러야 하냐?”
“피, 필요한 절차니까.”
“처음에는 그냥 베기만 하라고 했잖아?”
“그, 그땐 통과할 줄 몰랐지…….”
“지금 장난하냐?”
“너, 너무 걱정하진 마. 설마 주, 죽이기야 하겠어.”
그걸 위로라고 하냐? 기껏 시험에 합격했더니 ‘서프라이즈! 깜짝 면접이 남았습니다!’라는 거랑 뭐가 달라? 게다가 그 면접관은 나한테 칼빵을 맞은 사람이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흘리고 있던 찰나, 어느새 칼란다트가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아, 아무튼 힘내. 으, 응원할게.”
“너 이 새끼…….”
지금 할 말 없으니까 도망가려는 거지?
아니, 그거야 어쨌든 이건 너무 빠르잖아? 생각할 시간 정돈 달라고!
하지만 말리기엔 이미 늦은 듯했다.
어느새 피어오른 검은 기운이 칼란다트의 몸을 한바탕 휘감았고, 다시 등장한 녀석의 모습은…….
‘좆됐네.’
날 찢어 죽일 듯 노려보는 저 흉흉한 눈빛, 그리고 꼿꼿하게 선 저 익숙한 자세.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슈나르의 재등장이었다.
“…….”
“…….”
침대에 주저앉은 나와 하슈나르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색하다. 어색하다 못해 불편해 죽을 것 같다.
금방이라도 녀석이 손을 뻗어 내 목을 비틀진 않을까 불안감이 샘솟았다. 솔직히 지금의 몸 상태면 반항은 꿈도 못 꿀 테니 더더욱.
그렇게 한참을 날 바라보던 칼란다트, 아니 하슈나르가 팔짱을 꼈다.
“날 조롱하던 기세는 어디 가고 죽을상을 짓고 있지?”
낮고 중후하지만 울림 있는 목소리. 그 세계에서 들었던 것과 완전히 똑같다.
게다가 내가 도발했단 사실까지 알고 있으니 이 정도면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그건 본의 아니게…….”
“이름.”
내 말을 하슈나르가 단박에 끊고 나섰다.
“…….”
“네 이름을 물었다.”
저 괴랄한 위압감은 여전하다. 분명 겉껍데기는 칼란다트 그대로인데 말이지.
마치 로르다인과 처음 마주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새끼가 된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떳떳하다. 저런 괴물을 현실에서 마주했는데 그 누가 당당히 뻗댈 수 있겠어?
“카인, 카인 린다이어.”
내 대답에 하슈나르가 눈썹을 꿈틀댔다.
“……요.”
치사한 자식. 지도 반말하면서.
“카인이라.”
내 대답을 들은 하슈나르가 픽 웃더니 휘적휘적 걸어 테이블 옆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다리를 꼬고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 턱을 괴었다. 그에 늘어진 검은 망토가 마치 특유의 그림자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젠장, 모양 빠지게 이게 뭐람.
어쩔 수 없다. 몇 번이나 내 심장을 쥐어뜯던 장본인을 현실로 마주한 상황인데, 멀쩡한 게 이상한 거겠지.
……어쨌든 정신 차리자. 쓸데없는 감정은 버려. 그냥 면접관이라고 생각하자.
“몇 가지 묻겠다.”
하슈나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
“누가 널 보냈지?”
누가 날 보냈냐고?
그거야 라헨나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라헨나가 써 주었던 두루마리를 찾아 건넸다.
받아 든 하슈나르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읽고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헨나라……. 똑똑한 아이지. 그런 아이가 너와 거래하겠다니,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게 있나 보군.”
오오, 일이 술술 풀리려는 징조인가?
“그래서 묻겠다. 내 문장을 왜 원하는 거지?”
……그렇게 될 리가 없지.
그보다 무슨 질문이 저렇게 난해하냐? 진짜 면접이었으면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 이런 셈이잖아.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네. 그거야 다 먹고살려고 그런 거지, 이 자식아.
하지만 세상 모든 취준생이 그렇듯, 나 또한 속으론 끓어도 겉으론 웃었다.
스마일. 스마일.
“세계 평화를 위해섭니다.”
“……세계 평화?”
“예.”
“세계 평화라고?”
“예. 세계 평화.”
몇 번이나 되묻는 거야? 세계 평화, 이보다 심플하고 합리적인 대답이 어디 있다고.
“…….”
“…….”
잠깐, 이 집에 혹시 에어컨이 있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것 같은데?
“나랑 지금 말장난하자는 건가?”
“아닌데요.”
“그렇다면?”
“말 그대로입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고, 그 전쟁을 효과적으로 중재하기 위해선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전쟁? 무슨 전쟁이 일어난다는 거지?”
말해 줘야 하나?
해 주지 뭐. 어차피 죽은 놈이잖아? 소문내 봐야 지옥밖에 더 있겠어?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 북부 버려진 땅에서 몬스터가 밀려 내려오고 왕국 내부로는 분열이 일어나 큰 혼란에 빠질 거라는, 남들이 들으면 소설 쓰지 말라고 욕 처먹을 법한 이야기를 쭉쭉 풀어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야기를 들은 하슈나르의 표정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했고.
“……근거는?”
“케르윈이 해 준 이야깁니다.”
아, 참으로 오랜만에 입 밖으로 꺼내는 이름이다. 드루이드의 은인 케르윈 아휀. 라헨나도 그녀의 이름에 껌뻑 죽었더랬지.
“케르윈? 설마 내가 아는 그 인간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마 맞을 겁니다. 대마법사 케르윈 아휀. 종족전쟁을 불식시킨 영웅이자, 드루이드의 구원자.”
일부러 구원자라는 말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혹시라도 마음이 순둥순둥해질 수도 있으니까. 흠, 이건 너무 얄팍한 생각인가?
“그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인가?”
“그럼요. 멀쩡히 잘 살아 있습니다.”
물론 그녀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죽음이 전쟁의 기폭제가 되겠지만.
뭐, 굳이 지금 전부 말해 줄 필요는 없는 이야기다.
“믿기 힘들군.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지만 인간의 몸으로 아직 살아 있다니?”
“여기 이게 증거입니다.”
손을 뻗어 침대맡에 두었던 아휀을 건네자 하슈나르가 받아들었고.
“…….”
이내 표정이 괴악하게 일그러졌다. 아휀이 뭐라고 했을까? 나 대신 욕이나 한 사발 퍼 줬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딱히 욕을 들은 건 아니었는지 조용히 침음을 흘리던 하슈나르가 이내 아휀을 다시 내밀었다.
“맹랑한 숙녀로군.”
수욱녀? 수우우욱녀?
죽은 지 너무 오래돼서 뇌가 망가져 버린 건가? 이 발정 난 망아지 같은 녀석이 무슨 숙녀야?
우웅! 우웅! 우웅!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아휀이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뒤로 홱 던져 버린 나는 다시 하슈나르에게 집중했다.
“아무튼 저는 케르윈의 뜻을 받아 전쟁을 중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를 쓰고 힘을 기르려 하는 거고요.”
“네 입장은 알겠다. 그래서 너를 이곳에 보내 준 대가로 라헨나가 요구한 건 무엇이지?”
“대수림에 필적하는 크기의 영역입니다.”
“영역?”
“예. 물론 그 영역은 오롯이 드루이드만의 것이 될 겁니다. 그 외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도록 만들 생각이고요.”
“거창하군. 네가 인간의 왕이라도 된다는 거냐?”
“……전쟁이 끝나면 그 정도 능력은 있을 겁니다.”
“넘치는 자신감이군.”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 또한 맞는 말이고.”
좋아. 기세를 몰아 한 방에 가자.
심호흡한 나는 하슈나르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여쭙겠습니다. 문장을 제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물음에 하슈나르가 픽 웃었다.
“내 일족을 위해서라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됐다!
어머니! 아들이 기어코 면접에 통과했습니다!
성공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넙죽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할 게 뭐 있나.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으음, 어째 말에 뼈가 있는 듯한 느낌인데.
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하슈나르가 복잡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고맙다니요?”
“저런, 내 문장을 계승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르는 건가?”
“뭐 알아야 할 게 있습니까? 원주인이 그냥 허락하고 넘겨주면 되는 게…….”
“쯧쯧.”
가볍게 혀를 차는 하슈나르의 모습에서 나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문장을 계승한다는 것에 다른 뜻이 있는 겁니까?”
“물론.”
뭘까.
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문장의 계승은 곧 나라는 존재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 따라서 문장을 이어받은 계승자는 곧 없어질 나의 유지를 받들어 이어갈 의무가 있다. 일종의 존중이라 할 수 있지.”
“……소멸이라고요?”
내 물음에 하슈나르가 손가락을 들어 칼란다트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네가 지금 보고 있듯, 나는 죽었으되 죽지 않은 상태지 않나. 그저 넋만 남아 사령술사에게 묶여 있는 신세라 할 수 있지. 아직 문장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승하지 못하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는 겁니까?”
“비슷하다. 그만큼 강력한 힘이니.”
“계승자를 찾지 못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지금은 전쟁의 시기가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 고된 시험과 유지를 받들어 가며 문장을 계승할 이유는 없겠지.”
“…….”
하슈나르의 말은 간단했다.
문장을 아무에게나 쉽게 넘길 수 있었다면 왜 자신의 영혼이 지금껏 사령술사에게 묶여 있었겠냐는 거다.
적당히 시험을 통과한 아무에게나 넘기고 영면을 취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아직까지 문장을 계승받지 않았고, 그 이유는 지금처럼 평화의 시대에 굳이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는 것.
‘그렇다면 그 유지가 대체 무엇이기에?’
유지(遺志).
죽은 사람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종의 한(恨)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
그게 무엇이기에 다른 드루이드들이 꺼리며 계승을 피했을까.
표정으로 드러난 내 의문을 느꼈는지 하슈나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날 벨 수 있었던 건 필시 그 녀석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예?”
“로르다인.”
“…….”
“그 엘프에게 내 능력에 대해 들은 것이지 않나? 그래서 나를 벨 수 있었던 것일 테고. 설마 아니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나를 바보로 아는 게 아니고서야.”
맞긴 하지. 직접 들은 게 아니라 훔쳐봤다고 해야겠지만.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서 말하겠다.”
하슈나르가 비겁한 미소를 띠었다.
“내 문장을 계승하길 원하나? 그렇다면 네가 로르다인의 뜻으로 나를 베었듯, 로르다인 또한 내 뜻인 문장으로 베어 다오. 그게 바로 내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길 유지다.”
내 이럴 것 같더라.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