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55)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56화(156/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56화
* * *
안내하는 기사의 뒤를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루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혹 누명이라도 쓴 건 아닌지, 아니면 정말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건지.
‘속 타네.’
그러나 내 걱정과 달리 상황은 기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여긴?”
“남작님의 기사를 수감 중인 곳입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기사가 나를 안내한 곳은 붉은성 내곽 후미진 곳에 자리한 별채였다.
상당히 구석진 곳인 데다가 나가는 통로가 한정돼 고립된 장소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런 별채를 감옥으로 생각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여기라고?”
“그렇습니다.”
“감옥에 수감 중이라며?”
“감옥이란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붉은성에 수감 중이라고 했지.”
딱딱한 기사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보면 귀족가 영애라도 되는 줄 알겠어. 이런 곳에 가둬 놓다니.”
그렇게 별채로 다가가자 입구에서 경비 중인 두 기사가 보였다.
그들은 나와 대동한 기사의 얼굴을 보더니 흔쾌히 문을 열어 주었고, 이후 안으로 들어서니 멀리 문제의 원흉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루스는 뻔뻔하게도 별채 마당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가 차 한숨을 내쉬자 나를 안내했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나누십시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간은?”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습니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홀로 별채 안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정원으로 다가가자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루스가 휘두르던 검을 멈추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밥때인가?”
밥때는 개뿔.
성큼성큼 걸어 다가가자 이내 나를 알아본 루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라, 공자님?”
“밥이 목구멍으로 처넘어가냐?”
“그, 그게 아니라…….”
“따로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내줬더니 쓸데없이 사고를 쳐?”
슬그머니 목검을 내려놓은 루스가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공자님, 이게 다 사정이 있어서…….”
탁!
땅에 떨어진 목검을 발로 튕겨 잡아챈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딱 두 가지만 물어본다.”
“예?”
“네 잘못이냐?”
첫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루스가 이내 옆머리를 긁적였다.
“설명하긴 복잡하지만…… 예, 일단 제 잘못이긴 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잘못이 나를 위한 거였냐?”
“……아닙니다.”
“그럼 더 들을 필요도 없지.”
“예?”
“한 번이다.”
“예? 예예?”
“요령껏 피해 봐. 그러면 안 맞겠지.”
“고, 공자님! 잠시만!”
멍청한 루스. 혹시라도 내가 레드란의 제안을 거절했으면 어쩌려고 이런 사고를 치는 거야?
머리끝까지 짜증이 올랐다. 어떻게든 한 방 날려 줘야 풀릴 것 같아 목검을 붕붕 돌리며 루스에게 다가갔다.
그런 내 확고한 의지를 느꼈는지 루스가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낮추었다.
일단은 피하고 보겠다는 그 의지에 나는 조소를 흘렸다.
“어디 한번 피해 보던가.”
말을 마친 나는 서서히 하슈나르의 문장을 일깨웠다.
* * *
내 호출에 별채로 찾아온 일리아와 리하스는 바닥에 축 늘어진 루스를 보곤 탄식을 흘렸다.
“죽은 겁니까?”
얘가 갑자기 나를 살인자로 만드네.
일리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죽은 것 같습니다만.”
“아니라니까.”
“…….”
불안한 얼굴의 리하스가 걸음을 옮겨 루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뒤통수를 쓱 만져 보더니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슨 혹이 주먹만 하게…….”
“시끄럽고, 저놈 이리 데려다 놔.”
“옙.”
내 지시에 리하스가 루스의 몸을 번쩍 들어다 소파에 눕혀 놓았다.
그 모습에 일리아가 조용히 물어왔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셨습니까?”
“레드란의 말로는.”
“그 대가로 이곳에 수감 중인 거고요?”
“그렇겠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일리아의 물음에 나는 손에 든 종이를 펄럭거렸다.
“직접 읽어 보던가.”
내가 내민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본 일리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로쉰 마을 인근 산적단의 우두머리를 포함한 32명 살해] [로이크 마을 인근 산적단의 우두머리를 포함한 64명 살해] [베크 마을 인근 마적단의 우두머리를 포함한 41명 살해] [크록 섬 인근 해적단의 소굴을 급습, 3척의 해적선 전소, 해적 75명 전원 살해]“……갑자기 웬 피바람입니까?”
“난들 알겠냐.”
불과 두 달 만에 이백이 넘는 목숨을 취한 이유를 내가 어떻게 알아?
“현상금 사냥이라도 했던 걸까요?”
“뭐가 아쉬워서?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라고 누차 이야기했는데.”
“그렇긴 합니다만.”
뒤늦게 다가와 종이를 살펴본 리하스가 입을 쩍 벌렸다.
“전천후가 따로 없네요. 산적에 마적단에 해적까지…… 대단한데요?”
“한낱 강도 무리 잡은 게 뭐가 대단하다고?”
“대단한 거죠. 목 빼어 놓고 죽이길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요. 뿔뿔이 흩어질 게 뻔한 걸 일일이 잡아 죽였다는 거잖아요?”
으음, 듣고 보니 그렇네.
아마 루스가 마나를 쓰는 걸 확인한 순간 사방으로 흩어져 줄행랑을 쳤겠지. 그걸 고려한다면 확실히 경이로운 소탕 숫자다.
“근데 이게 딱히 루스 경을 잡아 둘 근거가 됩니까? 제가 보기엔 오히려 포상을 내려야 할 공적인 것 같습니다만.”
일리아의 의문에 리하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예요.”
“아니라는 말은?”
“아마 레드란의 논리는 이걸 겁니다. 악인이건 아니건 일단은 자신의 영지민을 외부인이 함부로 죽였다는 것.”
“그런 억지 논리가…….”
“억지긴 하죠. 그래도 이해는 갑니다. 이 기록은 누가 봐도 단순 정당방위가 아니잖아요.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남의 영지에서 함부로 칼부림을 일으키는 건 좋은 모양새가 아닙니다.”
“…….”
“게다가 레드란과 카인 공자님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 더더욱 그렇고요.”
“이해관계…….”
“예. 어쩌면 적이 될지도 모를 사람의 수족을 잡아 둘 꼬투리가 생겼는데 쉽게 놓칠 사람은 없죠.”
리하스의 설명에 일리아가 나를 바라봤다.
“레드란과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계획대로다. 그러니 순순히 이곳에 나를 들여보냈겠지.”
“그렇군요.”
“뭐 어쨌든, 그래서 중요한 건 루스가 왜 이런 행동을 했냐는 건데.”
그때 슬슬 의식이 돌아온 건지 루스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으으음.”
그러다 이내 다시 눈이 스르르 감기곤 머리가 축 늘어졌다.
그 모습에 일리아가 푹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정신 드신 거 다 압니다.”
“…….”
“어서 일어나시죠.”
“……으으음.”
일리아의 재촉 때문인지 마지못해 천천히 눈을 뜬 루스가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아니, 공자님! 일리아! 리하스? 여기엔 다들 어떻게…….”
“지랄하지 마라.”
“넵.”
내 한마디에 빠르게 수긍한 루스가 다소곳하게 소파에 앉아 손을 모았다.
“그래서 뭐냐? 이 내용은?”
종이에 적힌 피 냄새 진득한 전과를 가리키자 루스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보셨습니까?”
“그래, 보셨다.”
“으음, 공자님.”
“왜.”
“잠시 단둘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창피하긴 한가 보지?
쯧 혀를 차며 손짓하자 일리아와 리하스가 별채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털어놔 봐. 왜 이런 해괴망측한 짓을 벌인 거야?”
“일단 공자님, 제가 말씀드렸던 것 있지 않습니까.”
“말했던 거?”
뭘 말했다는 거야?
“……룽센의 후손 말입니다.”
아아, 그랬었지. 룽센의 화신을 얻은 뒤 그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후손을 돕겠다고 했었나?
“그랬었지. 근데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찾긴 찾았습니다.”
“찾았다고?”
“예.”
“거참 대단하네.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일 텐데 그걸 어떻게?”
“별로 어렵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기억을 겪어 알고 있으니까요.”
“그때 얼핏 듣기론 신분을 위장시킨 채 피신시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예. 믿을 만한 사람에게 보내 거두게 했더군요.”
“믿을만한 사람이라, 귀족인가?”
“예. 라일리라는 이름의 가문입니다.”
“라일리? 들어 본 적 없는데.”
“아마 그러실 겁니다. 이제는 멸문해 없는 가문이니.”
“멸문? 설마 뒤늦게 정체가 발각돼 죽은 건가?”
“아닙니다. 완전히 멸문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최근의 일이라고?
점점 점입가경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에 나는 눈매를 좁혔다.
“빙빙 둘러 가지 말고 한 번에 설명해. 그래서 그것과 지금 네가 벌인 짓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
내 질문에 루스가 입을 닫곤 생각에 잠겼다. 아마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겠지.
그렇게 고민에 꽤 긴 시간을 할애한 루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라일리 가문은 힘을 잃고 멸문했습니다만, 저는 그 가문의 일원으로 운 좋게 살아남은 룽센의 후손을 찾을 수 있었고, 그녀에게 원하는 것을 묻자 복수라고 답해 제가 도왔습니다.”
“……그건 또 너무 요약했잖아.”
“아앗, 그렇습니까?”
급히 재차 설명하려는 루스에게 나는 입가에 검지를 세워 붙였다.
“내가 질문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 예. 알겠습니다.”
“라일리 가문은 어떤 가문이지?”
“역사는 길지만 그다지 명망은 없는, 아주 작은 규모의 시골 영지를 다스렸던 가문입니다.”
“그 가문이 멸문한 원인은?”
“대외적으로는 산적을 비롯한 약탈꾼들이 횡행해 피폐해진 결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만?”
“그들을 소탕하던 와중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 바사라크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관련이 있다고? 레드란이 사주라도 했다는 건가?”
“추측이긴 합니다만.”
“근거는?”
“없습니다.”
“심증뿐이라는 거야?”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뭐야, 이 당당함은?
내 눈살에 루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꽤 시간이 지난 일인데 지금 와서 증거를 찾는 게 쉬울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그 이상 추적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그녀의 원한을 갚아 주는 것으로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녀라 함은 룽센의 후손이겠지.”
“예.”
“그 여자는 약탈꾼들이 라일리 가문의 원수라고 생각해 네게 부탁한 거고.”
“그렇죠.”
“그 과정에서 너는 뭔가 미심쩍은 것을 느꼈지만 구태여 말해 주진 않았다?”
“예. 그게 그녀에게도, 또 저로서도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녀는 알겠는데, 너는 왜?”
“사사로운 일 때문에 의무를 제쳐 둘 순 없으니까요. 미심쩍은 부분이야 공자님의 뜻이 모두 이뤄진 뒤에 캐 봐도 될 일이고.”
“그래서 레드란에게는.”
“그냥 여행 중에 만난 이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토벌했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래?”
“그랬더니 레드란이 곧 돌아올 공자님에게 처분을 맡기겠다고 여기서 대기하라 하더군요.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깽판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잠자코 기다렸던 겁니다.”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룽센의 후손.
자신의 본래 신분도 모르는 채 라일리라는 가문에 의탁해 살아온 사람.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루스에게 가문의 원한을 갚아 달라 요청했고, 루스는 기꺼이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사건.
하지만 나는 거기서 무언가가 번뜩였고, 이내 새로운 그림을 하나 그려 냈다.
“루스, 그녀가 룽센의 적통인 게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토벌 이후에 곧장 헤어졌으니까요. 듣기로는 이곳 근처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아본다고 했습니다만.”
“일거리라고?”
“예. 라일리 가문이 몰락한 뒤 그녀는 용병이 되어 살아가고 있더군요.”
“용병이라……. 뭐, 그거야 어쨌든 알아서 찾아낸 다음 데려와라.”
“데려오라뇨? 여기로 말씀입니까?”
“아니, 항구로.”
“항구요?”
“그래. 거기서 배를 타고 뜰 거다.”
레드란에게 넘겨받은 무역선단을 블루윈드 상회에 넘겨줘야 하니까 말이지.
그렇게 의자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치는 내 모습에 루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데려오라고 하시면…….”
“하루 준다.”
“…….”
당황한 루스는 이내 내 진지한 얼굴을 보곤 장난이 아님을 느꼈는지, 군말 없이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러 향했다.
그런 루스를 뒤로한 채 별채에서 나서자, 바깥에서 대기하던 리하스와 일리아가 시선을 보내왔다.
“루스 경은 좀 어떻습니까?”
일리아의 물음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별거 없으니 가서 짐들 챙겨. 오늘 내로 붉은성에서 뜬다.”
“루스 경이 억압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니. 레드란은 원하는 걸 모두 얻었으니 간단한 사과로 순순히 끝내 줄 거다.”
이후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획 변경이다.”
“……예?”
“조커가 생겼는데 판돈을 올리지 않을 이유는 없지. 스케일을 키운다.”
말을 마친 나는 의문에 휩싸인 두 명을 뒤로한 채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