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5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59화(15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59화
* * *
잘 닦인 도로와 중간중간 즐비한 경유지 덕분에 캐피탈로 향하는 여정은 쾌적했다.
그러나 달콤함에 빠져 늘어지게 여행하던 것도 오늘은 그른 듯했다.
“공자님, 오늘 여기서 야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른 분지를 가리킨 루스가 허락을 구해 왔다.
“그래? 다음 마을까지 간 다음 쉬는 건?”
“마부의 말로는 다음 마을까진 거리가 꽤 있답니다. 거기까지 가려면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는데, 그러면 리듬이 깨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 허락이 떨어지자 루스와 일리아, 그리고 리하스가 능숙하게 야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를 쭉 지켜보던 나는 간만의 야영인데 문득 바비큐라도 할까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 나를 본 셀라가 은근히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어디 가세요?”
“사냥하러 갑니다.”
냉랭한 내 대답에 그녀가 눈을 얇게 떴다. 둔치가 아니고서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내 태도를 느꼈겠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대처였다. 그녀는 앞으로 왕실의 꼭두각시로 살아갈 운명이었으니까.
그런 판국에 쓸데없이 정을 붙여 봐야 괜히 죄책감만 늘리는 꼴이 될 뿐이다.
하지만 그런 차가운 태도에도 그녀는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아마 린다이어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겠지.
“같이 가면 안 되나요? 여기 있어 봤자 나한텐 아무것도 안 시키는데.”
“그러시던가.”
간편한 복장에 검과 활을 챙겨 나서자, 그런 내 뒤를 셀라가 쫄래쫄래 뒤따랐다.
이후 숲속으로 들어서서 사냥감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을까.
내 뒤를 묵묵히 뒤따르던 셀라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괜히 몸을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예? 아,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보시죠.”
“음, 제가 룽센의 후손이라고 하셨죠?”
“아직도 못 믿는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굳이 나를 속이려고 캐피탈까지 데려갈 이유는 없으니깐. 그냥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을 뿐이에요.”
“어떤?”
“저는 어떻게 찾아내신 거죠?”
“…….”
곧이곧대로 진실을 알려 줄 순 없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룽센의 혈육이 신분을 위장한 채 라일리 가문으로 보내졌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찾아 헤맸죠.”
“하지만 라일리 가문의 생존자는 적지 않은데요. 어떻게 그중에 저인 걸 알았죠?”
“그중에서 유별나게 붉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은 당신뿐이었으니까.”
붉은 머리란 말에 셀라가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플로레스 가문의 특징인 건가요?”
“아마도.”
“……하긴, 친지 중에 저만 너무 유달리 붉어 이상하긴 했어요.”
그렇게 다시 대화가 끊겼다.
이후 나는 계속해서 흔적을 찾았고, 셀라는 그런 내 뒤를 묵묵히 쫓았다.
그러다 결국 인내심이 다한 건지 그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만약 플로레스 가문이 다시 재건된다면 제가 가주가 되는 거겠죠?”
“유일한 적통이 당신이니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뭔가 체계적인 교육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마 적절한 조언자가 곁에 붙을 테니까.”
“그 조언자가 진심으로 저를 위할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 제 착각은 아니겠죠.”
“글쎄요.”
“……맞다는 뜻이죠? 그건 좀 달갑지 않은데요.”
“아무래도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걷던 걸음을 멈춘 나는 몸을 돌려 그녀와 마주 섰다.
“이건 단순한 거래입니다. 달리 특별한 사명이나 정의감으로 플로레스 가문을 재건하려는 게 아니란 뜻이죠.”
“거래라고요?”
“왕실은 당신의 식솔을 책임짐과 동시에 복수를 돕고, 당신은 그런 왕실에게 플로레스의 혈통을 제공하는 것. 단지 그뿐입니다. 당신의 능력이 입증되고 말고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내 딱딱한 말에 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알고 수락한 거예요. 저도 어린애는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 힘도 없는 꼭두각시는…….”
“미리 말했지 않습니까. 평생을 왕실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라고. 알고 동의한 거 아닙니까?”
“왕실을 배반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실이 이리저리 휘두르는 대로 끌려다니고 싶진 않아요. 내 식솔을 책임진다는 것도 달리 말하면 날 휘두르기 위한 볼모로 잡겠다는 뜻 아닌가요?”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재건될 플로레스 가문은 그 모든 것이 왕실과 내 힘으로 이루어진 것일 테니까.
자신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자의를 가질 수 있을까. 그건 욕심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 잘못 찾았습니다.”
“잘못 찾았다고요?”
“예. 제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군요.”
“거짓말을 하고 계시네요.”
으응? 거짓말인 걸 어떻게 알았지?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괜히 나서서 왕실과 알력을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긁어 부스럼일 뿐이다.
“설령 거짓말이라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냉랭한 대답에도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말했잖아요.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고. 당신에게 떼쓸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끝났군요. 내가 해 줄 건 없고, 당신은 떼를 쓰지 않을 테니.”
“물고기를 대신 잡아 달라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잡는 법 정도는 알려 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낚싯대도 없는 사람이 물고기를 어떻게 잡습니까?”
“까짓거 맨손으로라도 해 보죠.”
“…….”
계속된 고집에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 저는 당신에겐 홀로 설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해 보지도 않고 그냥 포기하기는 싫어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현재 그녀에게 닥친 일이 일상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모습이다.
아, 아닌가?
문득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내 시선을 눈치챈 탓일까, 그녀가 빠르게 뒷짐을 지며 떨리는 손을 가렸다.
그 모습에서 문득 일생을 정의롭게 살아오신 실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신께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함부로 외면하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지.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인 건가?
‘괜히 떠올렸네.’
어쩔까나.
조언한답시고 헛바람 불어넣었다가 사고를 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사실 따져 보면 엄연히 나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게 된 그녀이니까.
결국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나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힌트를 준 거 같은데요.”
“예? 힌트를 줬다고요?”
“좀 전에 말했지 않습니까. 당신과 왕실이 거래하는 거라고. 설마 살면서 흥정 한번 안 해 본 건 아니겠죠?”
“…….”
“그렇게 보면 내 위치는 그저 당신과 왕실을 잇는 중개상인 셈입니다. 하지만 누가 압니까? 중개상에겐 중개상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될성부른 잎이라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알아듣겠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곧 어두워집니다. 빨리 움직이죠.”
“…….”
그렇게 걸음을 옮기자 그녀는 아무말 없이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 * *
이후 저녁 식사를 마쳤으나 잠에 들기엔 조금 이른 시각.
불똥이 튀는 모닥불 주위로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일리아는 불침번 초번이었기에 일찍 먼저 잠들었다. 리하스는 고용된 마부와 함께 체스를 두고 있었고, 루스는 검을 손질하며 상념에 잠긴 듯했다.
셀라는?
나무 등치에 몸을 기댄 그녀는 무릎을 모은 채 멀거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조언해 준 게 잘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주 부드럽게 흘러가던 바퀴 앞에 돌덩이를 던져 놓은 기분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는 게 맞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손짓을 했다.
“루스.”
내 부름에 루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네 마음의 짐은 어디까지냐?”
“마음의 짐이라뇨?”
“붉은성에서 네 입으로 말했잖아.”
루스는 뒤늦게 붉은성에서 내게 룽센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후손을 돌봐 주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뭐, 일단 라일리 가문을 약탈한 녀석들을 소탕하면서 풀어 주긴 했습니다만…….”
“그거면 끝이야? 만족하는 거냐고.”
내 물음에 루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단순히 뭘 해 주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해 봐.”
“그녀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 상투적이긴 하지만 행복했으면 좋겠다랄까요. 그게 룽센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바람이니까.”
“뭐? 해애앵복? 얼씨구, 네가 무슨 백마 탄 왕자님이냐?”
“그, 그런 거 아니니까 낯간지럽게 그러지 마십쇼.”
“배에서 개새끼니 뭐니 실컷 욕먹어 놓고도 그런 말이 나와?”
“으음, 그거야 제가 강제로 데려온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욕먹을 짓을 하긴 했죠.”
“너 좀 짜증 난다?”
“예?”
너 때문에 왠지 나만 나쁜 놈이 된 것 같잖아?
아무튼 행복하게라…….
수많은 영지민을 위해 제 몸을 불살랐던 룽센이지만, 역으로 그것 때문에 자신의 혈육이 고통을 받았었다.
그게 한으로 남았다는 거겠지.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뭔 놈의 한이 이렇게 많은지.
문득 하슈나르가 내게 남긴 숙제가 떠올라 한숨을 내쉰 나는 자리에 드러누우며 팔베개를 만들었다.
“오늘 내 불침번은 네가 대신 서라.”
“아니, 공자님. 갑자기 불침번은 왜…….”
“앞으로 있을 내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해. 싸게 쳐준 거니까 군말 없이 받아들이라고.”
“예?”
“행복하게라. 좋아, 접수했다.”
“설마 공자님이 도와주시려고요?”
“그래. 그러니까 앞으론 쓸데없는 잡생각은 버리고 내가 맡긴 일에나 집중해.”
“……알고 계셨습니까?”
“저 여자만 보면 시종일관 복잡한 표정을 짓는데 그럼 모르겠냐?”
“으음, 그렇군요.”
“넌 어디 가서 도박 같은 거 하지 마라. 얼굴에 다 드러나니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루스의 모습에 나는 흘긋 셀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아마 나름대로 뭔가를 준비하는 거겠지.
하지만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아닌 말로 치열한 전장이나 다름없는 게 바로 캐피탈의 정치판이니까.
근데 그런 곳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관료 귀족을 상대로 그녀가 바라는 것을 쟁취해 낸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물론 루스의 부채 의식도 해결할 겸 내가 나서서 도와주면 상황은 달라질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숟가락까지 대신 들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단 말이지.
애당초 자질이 없는 인간이라면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게 백만 배는 더 안전하고 행복할 테니까.
즉, 내가 돕는 것은 앞으로 보여 줄 그녀의 행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구원한다고도 했으니.’
가치의 증명은 남이 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보여야 하는 법.
그렇게 본다면 셀라 플로레스.
그녀에겐 과연 구원받을 자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