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59)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60화(160/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60화
43장. 늙은 너구리와 젊은 구렁이
“기사님들, 캐피탈입니다!”
앞서 말을 몰던 마부의 쾌활한 외침에 모두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그렇게 산등성이 위에서 바라본 미들랜드 최고의 대도시는 여전히 웅장한 모습이었다.
높게 솟은 첨탑이 만들어 낸 스카이라인과 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성곽.
지구에 콘스탄티노플이 있다면, 미들랜드엔 캐피탈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오, 캐피탈!”
“다시 봐도 아름답군요.”
루스와 일리아는 이미 캐피탈에 한 번 방문했던 이력이 있었기에 작은 감탄만 흘렸다.
“……저게 캐피탈?”
반면 셀라의 반응은 특별했다. 평생을 동부 구석에서만 보낸 탓일까,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그 모습에 마차 지붕에 앉아 있던 리하스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
“저는 하도 봐서 좀 지겹네요.”
“예? 리하스는 캐피탈에 많이 다녀 봤나요?”
그간 교육을 떠맡은 탓에 제법 친해졌는지 셀라가 리하스에게 허물없이 물었다.
“으음, 제가 말 안 했었나요? 캐피탈 태생이라고.”
“와, 캐피탈에서 나고 자란 거예요?”
“그럼요. 어때요? 근본이 충만하다 못해 흘러넘치죠?”
리하스의 자랑에 루스가 창밖으로 몸을 뻗어 딱딱한 건빵을 던졌다.
“지랄하네!”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닌…… 앗, 아파요. 아픕니다!”
그 방정맞은 모습에 마부석에 앉아 있던 내가 검집으로 마차를 툭툭 쳤다.
“시끄럽고, 리하스는 캐피탈에 들어가자마자 한 달간 통째로 빌릴 여관부터 알아봐.”
“개국기념일까지 머무르실 건가요?”
“그래야지.”
“그렇다면 린다이어와 좋은 관계인 귀족에게 의탁해도 되지 않을까요?”
“돈도 많은데 뭐하러 군식구로 눈치를 봐?”
“으음, 그럴 거면 그냥 저희 집으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뭐? 네 집으로?”
“예. 캐피탈 외곽이긴 하지만 그래도 친인척과 같이 살았던 집이라 꽤 큽니다. 방도 아주 많고요.”
“그럼 지금은?”
“모두 분가해서 지금은 제 가족만 살고 있지요.”
“외곽이라……. 그러면 좀 조용한가?”
“그럼요. 한산합니다. 마당도 널찍하고요.”
“그래?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죠. 제 가족들도 공자님이 오시면 아주 좋아할 겁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리하스의 아버지는 캐피탈의 사무관이라고 했나? 그리고 어린 여동생이 둘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머물 만한 여관은 죄다 중심가에 있어 시끄럽기 짝이 없으니. 아무래도 외곽이면 느긋하게 있을 수 있겠지.
“그럼 한 달만 신세 지자고.”
“알겠습니다!”
내 허락에 기분이 좋아진 리하스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굳이 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성문을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직 개국기념일까진 시간도 남은 데다가 리하스의 신분 정도면 하이패스나 다름없으니 그렇겠지.
이후 리하스의 안내를 받아 캐피탈의 외곽으로 향한 지 얼마나 됐을까.
멀찍이 아담하지만 고풍스러운 3층짜리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냐?”
“예!”
“멋진 저택이네.”
“그렇죠?”
“주변도 고즈넉하고 조용한 게 아주 맘에 든다. 네 말을 듣길 잘했어.”
“감사합니다!”
“감사는 네가 받아야지.”
외곽이라 땅이 널찍해서 그런가, 저택 주변으로 정원이 자리한 게 꼭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개 평민이 누릴 만한 호사는 아니었다. 아마 리하스의 아버지가 캐피탈의 사무관이었기에 가능했겠지. 일종의 부르주아라고나 할까.
땡땡땡-!
마차에서 폴짝 내려선 리하스가 정원 바깥쪽 문에 달린 종을 울렸다.
그러자 잠시 후, 저택의 문이 열리며 중년의 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긴 머리칼을 기품 있게 모아 다잡은 그녀는 천천히 정원을 가로질러 다가오기 시작했다.
‘리하스의 곱슬머리가 어디서 왔는지 이제 알겠네.’
누가 봐도 리하스와 똑 닮은 여인은 이내 리하스를 알아보고는 눈이 크게 뜨였다.
“리하스?”
“예, 어머니! 저 리하스예요!”
“아니, 연락도 없이 갑자기 집에는 어쩐 일이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참, 이쪽은 제가 모시는 분과 기사단 선배님들.”
리하스의 말에 그의 어머니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모시는 분이라니?”
자기소개 시간인가?
고개를 끄덕인 나는 후드를 벗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카인 린다이어라고 합니다.”
“어머나!”
화들짝 놀란 리하스의 어머니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린다이어 남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제 불찰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고개 드시죠. 음, 성함이?”
“넓은 아량에 감사드려요. 저는 알리사라고 합니다, 남작님.”
확실히 캐피탈이라 그런가? 귀족이 아님에도 교양이 뚝뚝 묻어난다.
알리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이후 루스를 필두로 나머지가 앞으로 나섰다.
“루스 마이어입니다. 바람기사단에서 리하스와 함께 복무 중이죠.”
“기사님이셨군요. 리하스가 혹시나 폐를 끼치진 않는지 걱정됩니다.”
“별말씀을! 리하스 경은 훌륭한 기사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웃기고 있네. 언제는 개또라이 신참이라며?
“일리아 프로스트입니다. 리하스 경과는 동료입니다.”
“정말 아리따우신 기사님이시네요. 환영해요.”
“과, 과찬이십니다.”
자못 얼굴이 붉어진 일리아의 모습에 나와 루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셀라예요.”
반면 셀라는 작게 이름만 밝히고 끝냈다. 자신이 라일리인지, 플로레스인지 아직 갈피를 못 잡은 탓이겠지.
“환영해요, 셀라. 누추하지만 어서들 들어오세요. 리하스! 뭐 하고 있니? 귀한 분들 모시지 않고.”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알리사가 리하스를 재촉하며 등짝을 후려쳤다.
그렇게 마차에서 황급히 짐을 챙긴 리하스는 마부에게 여비를 챙겨 주곤 돌아와 우리를 안내했다.
“2층에 머무르시면 될 거 같습니다. 방은 많으니 마음에 드시는 대로 고르시고요.”
“3층은?”
“3층이라고 해 봤자 좁아서 서재 빼곤 아무것도 없어요.”
“서재?”
“예. 아버지가 가끔 집에서 업무를 보시거든요. 필요하시면 쓰셔도 상관없을 거예요.”
“놀지 말고 일이나 하라는 거냐?”
“앗, 들켰네요!”
“말을 말자.”
자기 집으로 돌아와 신이 났는지 리하스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렇게 저택으로 들어선 우리는 각자 방을 하나씩 골라잡았다.
호화롭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것도 없는 방이다. 검지를 뻗어 서랍장을 한번 훑어 보았으나 손가락엔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꼼꼼한 여사님이네.’
쓰는 사람이 없음에도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듯했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짐을 푼 나는 셔츠 차림으로 홀가분히 방에서 나섰다.
“시장하시죠? 식사하시겠어요?”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한 알리사의 물음에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탁하겠습니다.”
“부탁이라뇨! 마땅한 일인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차려 드릴게요.”
……화목한 가정이라.
알리사의 따듯한 대접에 문득 지구에 계실 부모님이 떠올라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렇게 오랜만에 따듯한 정이 느껴지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입가심으로 리하스가 가져온 포도주를 루스와 홀짝였다.
‘여유롭구만.’
셀라는 피곤하다고 먼저 자러 들어갔고, 일리아는 리하스의 두 여동생에게 꼼짝없이 붙잡혀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이름이 엠마랑 엘라였던가?
보는 사람이 다 흐뭇한 광경에 옅은 웃음을 흘린 나는 리하스를 불렀다.
“리하스.”
“예.”
“아마 곧 사람이 찾아올 거야.”
“사람이요? 저희 집으로?”
“그래. 늦은 저녁으로 약속을 잡았으니까.”
“아, 혹시 아까 성문에서 제게 맡겼던 게…….”
내가 경비병에게 건네라고 줬던 전서를 떠올린 리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궁성으로 보내는 거였다.”
“어쩐지. 저는 공자님이 저희 집 주소를 왜 물어보시나 했습니다. 아무튼 그러면 궁성에서 사람을 보내는 건가요?”
“그렇겠지.”
나와 리하스의 대화에 듣고 있던 루스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캐피탈인데 함부로 오라 가라 해도 되는 겁니까?”
“그래도 캐피탈이니까. 보는 눈도 많은데 굳이 린다이어의 주요 인물이 궁성에 들락날락하는 걸 보여 줄 필요는 없지. 아마 그쪽에서도 그걸 바랄걸?”
“그렇군요. 그나저나 누가 오는지는 모르십니까?”
“나야 모르지. 그래도 우리가 하려는 일을 생각해 보면 말단이 오진 않을걸.”
“으음, 따로 뭐 준비할 건 없겠죠?”
“싸우자는 것도 아닌데 준비할 게 있나. 그나저나 리하스.”
“예.”
“네 아버지는 언제쯤 돌아오시지? 밤이 늦은 것 같은데.”
“아, 개국기념일로 일이 바빠 당분간 근무지에서 숙식한답니다.”
“괜히 우리 때문은 아니고?”
“공자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계실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궁성에서 사람이 온다면 방해꾼들을 미리 치워야겠네요.”
고개를 끄덕인 리하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곤 일리아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두 여동생에게 다가갔다.
“그만 귀찮게 하고 이만 들어가서 자라. 시간도 늦었는데.”
리하스의 꾸지람에 두 여동생이 벌떡 일어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일리아 언니가 책 읽어 준다고 했단 말이야!”
“맞아! 방해하지 마, 이 바보야!”
“뭐? 바보라고?”
“그래, 바보야!”
으음, 리하스의 가정 내 서열은 마당에 있는 강아지보다 낮은 건가.
그렇게 두 아이와 유치하게 말싸움을 벌이는 리하스를 보다 못한 일리아가 나섰다.
“그만하시죠. 제가 아이들 방에 가서 읽어 주겠습니다.”
“예?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잠도 안 오니까요.”
그렇게 두 아이와 일리아가 사라지자 리하스가 털레털레 테이블로 돌아왔다.
“하도 집을 비워서 그런가, 지지리도 말을 안 듣네요.”
“과연 그것 때문일까?”
“……그럼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글쎄다.”
그렇게 나와 루스가 실실 웃던 그때였다.
쿵쿵쿵-!
누군가가 닫혀 있던 문을 두드렸다.
왕실에서 온 건가? 양반은 못 되네. 말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찾아오는지.
“누구시죠?”
“초대받은 사람이오.”
문으로 다가간 리하스가 묻자 바깥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말한 사람임을 알아챈 리하스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투둑투둑……
어느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는지 열린 문틈 바깥으로 빗방울이 보였다.
“이곳이 리하스 로디의 집이 맞소?”
열린 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는 검은 레인코트를 걸친 건장한 사내였다.
평범한 남자는 아닌 듯했다. 단지 모습을 드러내기만 했을 뿐인데 강렬한 기세가 물씬 풍겨 왔으니까. 거기에 고압적인 말투도 한몫했고.
“그렇습니다만 그쪽은 누구신지.”
“그건 알 것 없소.”
리하스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동시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루스가 느릿하게 검집으로 손을 뻗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자못 험악하게 흘러가던 그때, 건장한 사내의 뒤로 중년인이 불쑥 튀어나왔다.
“테일러 경! 손님이면 손님답게 굴게나! 이거 밤늦게 미안하게 됐소. 그나저나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거 같군. 외곽은 길이 어두워서 말이지.”
사내를 꾸짖은 중년인이 리하스의 어깨를 툭툭 쳐 준 뒤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곤 안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테이블에 앉은 나를 발견하곤 손을 들어 보였다.
“거기 있었군. 그간 잘 지냈나, 삼공자?”
이제는 내 일행 말곤 아무도 부르지 않는 호칭에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지냈습니다. 후작님께선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흰머리가 좀 늘었다는 거 빼곤 별일 없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중년인이 레인코트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가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기름을 발라 넘긴 정갈한 머리칼과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매.
나를 찾아온 사람은 캐피탈의 중추이자 막강한 권력가, 궁내부장 할린 이르페 후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