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6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61화(161/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61화
“궁내부장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말씀 주셨으면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요.”
내 극진한 태도에 눈만 끔뻑거리던 루스와 리하스는 궁내부장이란 말을 듣곤 부동자세를 취했다.
“마중은 무슨. 늙은이 취급하지 말게.”
코트 안에 감춰져 있던 이르페 후작의 몸은 여전히 탄탄했다.
전투와는 거리가 먼 문관임에도 저런 근육질이라니. 초로기에 접어드는 나이임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대단한 양반이다.
“여기 앉으면 되는 건가?”
“3층으로 가시죠. 조용한 서재가 있습니다.”
“조용하다니 마음에 드는군.”
후작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포도주를 챙기곤 걸음을 옮겼다.
“새 걸로 가져오겠습니다.”
“됐네. 이거면 충분해. 테일러 경!”
소탈하게 웃은 후작이 테일러라는 수행기사에게 손짓했다.
“자네는 여기 있게.”
“후작님.”
“괜찮으니 있으래도. 그래, 저 친구들이랑 체스나 한판 두고 있으면 되겠군.”
그렇게 수행기사까지 물린 후작은 나와 함께 3층으로 올라섰다.
이후 서재로 들어선 후작은 창문을 통해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을 보곤 탄식을 흘렸다.
“돌아갈 길이 걱정되는군.”
혀를 끌끌 찬 후작이 자리에 앉음을 확인한 나는 챙겨 온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곤 맞은편에 앉았다.
쪼르르…….
이후 잔을 든 후작이 내가 따라 주는 포도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작년 개국기념일이었나? 딱 1년 만이군.”
“벌써 그렇게 됐군요.”
“사람도 무심하지. 일거리를 받았으면 꼬박꼬박 중간보고를 해야 할 거 아닌가? 그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 이거 참 실망스럽네.”
후작이 농담을 섞어 툴툴댔다.
그나저나 일거리라……. 작년에 있었던 바슈른 공녀 암살미수 건의 범인을 찾아내라 했던 걸 말하는 거겠지.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 조사했는데 신통치 않아서.”
“말로는 누구나 최선을 다하지. 내가 원하는 건 실적이야.”
“아직은 확실한 증거 없이 심증뿐입니다.”
“밤은 길다네. 마침 즐길 포도주도 있고.”
나는 잔을 들어 포도주를 음미하는 후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더는 미룰 수 없겠군요.”
“이제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건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간 얻은 정보에 따르면 암살을 주도했던 놈들의 근거지가 남부 군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부 군도?”
“예.”
“로드키우스의 영역이군?”
나는 로드키우스가 원흉이냐는 함축된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키우스가 개입된 것만큼은 사실인 듯합니다.”
내 대답에 잔을 내려놓은 후작이 이를 드러냈다.
“로드키우스 이 썩어빠진 하이에나 같은 놈들. 내 분명 그럴 줄 알았네.”
“아직 증거는 없습니다만.”
“무슨 상관인가? 우리 유능한 수사관님께서 곧 찾아낼 텐데.”
“그래도 아직 분노를 드러낼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닌 것 같다는 말은?”
“로드키우스가 개입된 건 맞지만, 그들이 원흉의 전부라기엔 아직 석연치 않은 점이 많습니다.”
“석연치 않다? 로드키우스 말고 다른 가문도 연루됐다는 건가?”
“아니요. 귀족은 아닐 겁니다. 설명하기 어렵군요. 일단은 정체불명의 단체라고 해 두죠.”
“귀족가는 아닌 정체불명의 단체? 그러면 일개 평민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건가? 그리고 그들은 왕실기사단에도 몇 없는 최상급 엑스퍼트를 보유했고? 참으로 대단하군.”
후작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아마 내가 하는 말을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거겠지.
“예.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내 단언에 무심하던 후작의 태도가 바뀌었다.
“근거는?”
“이번에 바슈른의 영지전을 중재하던 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영지전에서?”
“예. 성 내부를 진압하던 와중, 저를 암살하기 위해 나타난 세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언홀리 나이트라고 소개했고, 이 모든 일에 연루되어 있음을 시인했지요.”
“언홀리 나이트? 부정한 기사라……. 이름 짓는 꼬락서니 하곤. 그래서 그들이 기사인 건 확실한가?”
“예. 마나를 다루었습니다. 직접 검을 맞대 봤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사로잡았나?”
“아쉽게도.”
“죽였단 말이군. 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네. 기사들이 뭐하러 그런 괴상망측한 조직을 만들어 활동한다는 건가?”
“거짓이 아닙니다. 함께 있던 제 기사도 확인한 사실이니.”
“함께 있던 기사라면…….”
“지금쯤 아래층에서 체스를 두고 있겠지요.”
“맹세할 수 있나?”
“못 할 거였으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크흠.”
가볍게 헛기침한 후작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정리해 보지. 왕국의 분열을 일으키려는 언홀리 나이트란 놈들이 있고, 그들은 로드키우스와 이해관계가 맞아 협력 중이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대충은요.”
“그리고 그 언홀리 나이트의 소재는 남부 군도이고?”
“추측이긴 합니다만.”
“…….”
내 대답에 후작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심정이 복잡한 탓이겠지.
그렇게 줄곧 생각에 잠겨 있던 후작이 이내 작게 탄식을 흘렸다.
“빌어먹을 상황이군.”
“무슨 말씀이신지?”
내 질문에 후작이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무슨 말이냐고? 지금 나를 시험해 보는 건가?”
“……무례했다면 사죄드립니다.”
“됐네. 파트너가 제정신이 박혔는지 확인해 보는 걸 뭐라 할 순 없지.”
고개를 끄덕인 후작이 재차 말을 이었다.
“저번 영지전에서 언홀리 나이트라는 놈들을 만났다고 했지. 그리고 그들을 베어 죽였고. 그렇다면 그쪽에서도 슬슬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않았겠나?”
“맞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뒤쫓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는 건 심각한 문제일세. 위협을 느낀 쥐새끼는 굴에 숨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원래라면 증거를 확보하는 대로 왕실기사단을 동원해 조용히 처리하려 했건만, 이젠 그것도 물 건너갔군.”
후작의 말이 맞았다.
만약 암암리에 증거를 찾아낼 수만 있었다면, 왕실기사단을 동원해 불시에 들이닥쳐 로드키우스 후작을 체포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이었겠지.
하지만 그건 후작의 말마따나 이젠 물 건너간 방법이다. 로드키우스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는 안전한 장소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할 테니까.
“로드키우스를 잡아 죽일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쉽게 됐어.”
후작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로드키우스는 일단 내버려두고 언홀리 나이트라는 놈들을 쫓아 봐야겠군. 만약 놈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새로운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것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으음,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예.”
“왜지?”
“남부 군도는 로드키우스의 영역이니까요.”
“뻔한 질문에 뻔한 답이었군.”
간단한 문제였다.
놈들을 잡으려면 남부 군도로 가야 한다.
하지만 남부 군도는 로드키우스의 영역이다. 과연 그들이 제집을 함부로 들쑤시도록 내버려둘까?
하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그렇다면 그냥 정공법으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정공법이라면?”
“굳이 물밑에서 잡아 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증거를 찾아내는 대로 로드키우스 후작을 왕명으로 소환하시죠.”
“자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만.”
내 당당한 대답에 후작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왕명으로 소환하라? 그렇게 되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묻는 건가?”
“어떻게 흘러갈지 한번 생각해 볼까요?”
“그게 생각까지 해 볼 문제인가? 답이야 뻔하지 않나?”
“하나하나 짚어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말을 마친 나는 품속에서 작게 접힌 지도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그리곤 깃털펜을 뽑아 먼저 로드키우스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으로 꽉 찬 남부를 가리켰다.
“먼저, 왕실이 소환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로드키우스가 잠자코 출두할 리는 없을 겁니다. 아마 즉시 군을 일으키며 항명에 나서겠죠. 대외 명분은 왕실이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귀족을 탄압한다, 정도가 될까요.”
깃털펜을 뽑아 로드키우스의 영역 위에 ‘반란’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군을 일으키게 되면 왕실로선 둘 중 하나입니다. 소환을 무르거나, 아니면 왕명에 불응한 대가로 처벌하거나.”
“…….”
“하지만 한낱 귀족의 반발에 왕명을 무른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아마 후자를 택해야겠지요. 그렇게 되면 내전이 일어나는 셈인데, 안타깝게도 왕실에겐 로드키우스를 진압할 힘이 없으니 지원을 요청하게 될 겁니다.”
“자네 지금 왕실을 비꼬려고 시작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후작의 꾸짖음에도 나는 대꾸 없이 깃털펜으로 서부의 바슈른, 북부의 린다이어를 점찍었다.
“지원을 요청할 가문은 왕당파의 대표 세력인 린다이어와 바슈른, 두 가문이겠죠. 이 둘의 힘이라면 능히 로드키우스를 무찌를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린다이어는 북부 산맥을, 바슈른은 대수림을 지켜야 합니다. 게다가 로드키우스가 있는 남부까지의 먼 거리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전력을 보낼 순 없을 겁니다.”
“…….”
지도 가운데에 ‘로드키우스의 근소 열세’라고 적어 넣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껏 중립을 표방하던 제후들, 이들은 누구 편에 붙을까요. 예. 당연히 왕실의 횡포를 가만 볼 수 없다며 로드키우스에 붙을 겁니다. 로드키우스가 무너지는 날엔 왕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텐데, 그걸 반길 귀족이었다면 애초에 중립을 표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근소 열세를 지워 낸 나는 ‘전력 비등’이라고 다시 써넣었다.
“물론 그래도 이 정도면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겐 왕실기사단이라는 잘 벼려진 검이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로드키우스의 영역 위로 언홀리 나이트의 이름을 새로 적어 넣었다.
“마스터에 근접한 최상급 엑스퍼트를 보유한 불온 세력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의 실력자가 있을지도 모르죠. 모든 게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후작의 짧은 반문에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이런 조건으로 시작된 내전은 아마 승자도, 패자도 없을 겁니다. 가세한 모두가 치명상만 입은 채 흐지부지 끝나겠죠.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희생자만 생길 겁니다. 로드키우스를 벌하긴커녕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한 왕국이 무너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
“예. 이렇게 놓고 보니 후작님 말씀대로 로드키우스를 벌하긴 힘들겠군요. 왕실이 가진 힘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니 말이죠.”
내 모든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후작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내가 말한 것들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 그렇겠지.
짧은 정적이 지나자 후작이 포도주로 목을 축인 뒤 덤덤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긁어 대는 것으로 시작했으면 다음엔 합리적인 제안이 나오는 게 맞겠지. 계속해 보게나.”
“해결책이야 이미 나온 것 같군요. 왕실에 힘이 없어서 이렇게 됐으니, 자연히 힘을 기르면 해결될 일입니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으음, 여기까지만 할까? 후작의 눈빛이 너무 무서운걸.
“힘을 기른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게 현실이죠. 직할령은 군을 키우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귀족들은 사사건건 왕실의 사병 육성을 견제하는 판국이니.”
“그런 당연한 소리를 들으려고 계속하라는 게 아니네만.”
“예. 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으로 왕실의 힘을 키우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다시 깃털펜을 잡았다.
그리곤 지금껏 한 번도 건든 적이 없던 곳을 찍었다.
“……동부?”
후작의 황당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가리킨 곳은 동부였다.
이후 동부에서 시작된 화살표가 쭉 이어져 남부로 향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금껏 비등했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짐을 뜻했다.
“간단합니다. 사병을 길러 낼 수 없다면, 애당초 존재하는 이들을 부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용병처럼 말이죠.”
“용병이라?”
“예. 미들랜드에서 가장 야만적이고 흉포한 땅에서 수백 년간 손에 피를 묻혀 온 전사들 말입니다.”
“참고 들어 준 내가 바보였군. 엄연히 뿌리부터 깊게 박힌 알력이 있거늘, 그런 판국에 그들이 과연 왕실의 뜻대로 움직여 줄 것 같은가? 그게 아니면, 설마 그들에게 엎드려 부탁이라도 하라는 건가? 어느 쪽이든 터무니없기 짝이 없는 소리군!”
나는 감정을 드러내며 일갈해 오는 후작의 반응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엎드려 부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나?”
“부탁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건 그저 왕실의 하해와 같은 아량뿐이죠. 아량을 베풀면, 동부는 기꺼이 충실한 사냥개가 되어 로드키우스를 물어뜯을 겁니다.”
“지금 그게 대체 무슨…….”
나로서도 참으로 오래 생각하고 내린 결단이었다.
아무리 2차 종족전쟁에 대비해 전력 소모를 줄여야 한다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결국 로드키우스는 도려내야 할 암 덩어리에 가까웠다.
‘그러니 어차피 맞붙어야 한다면.’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압도적으로 짓눌러 버리는 게 정답이겠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재차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제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후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