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8화(18/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8화
6장. 과거의 기억, 과거의 힘
따듯한 햇살이 비치는 푹신한 이불 속에서 잠이 깨는 기분이란.
한 달간의 여정은 참 길었다.
그간 여정이 노숙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더더욱.
“기침하셨습니까, 공자님.”
이제는 시녀가 떠다 주는 물잔도 거부감 없이 받아 들 정도로 익숙해졌다.
“외출 준비를 해 줘.”
“알겠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신지?”
“다른 건 필요 없고, 레오는 좀 어때?”
그간 고초를 당한 탓에 레오의 몸은 많이 상해 있었다. 당연하지만 내 적극적인 의사로 전속 의원이 붙어 치료 중이다.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좋아.”
빈 물잔을 건네준 내가 일어나자 메이드들이 옷을 입혀 주기 시작했다.
평소 일러둔 효과가 있었을까, 호사스러운 것이 아닌 평소 입고 다녔던 검소한 옷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정복을 가져와.”
정오에 잡힌 백작과의 약속 때문에 불편해도 일단 정복을 차려입어야 했다.
“예?”
“정복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귀족의 말을 되묻는 건 중대한 실책이다.
어린 메이드가 고개를 조아리며 벌벌 떠는 모습에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괜찮으니까 가져와. 참. 내가 알아보라고 했던 건?”
“……아! 마법상점에 주문하셨던 것 말씀입니까?”
오늘을 대비해서 한 달 전, 볼룸 산맥으로 떠나기 전에 미리 주문해 놓은 게 있었다.
“응.”
“확인했습니다. 며칠 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몇 주면 된다고 하더니만 며칠 전에 도착했다고? 자칫하면 타이밍이 늦을 뻔했잖아.
“마차도 하나 대기시켜 놔. 정오가 되기 전에 잠시 그곳에 들러야 하니.”
비밀 서재에 가기 전에 미리 준비할 게 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방에서 나가는 메이드를 뒤로한 나는 곧장 창문으로 다가갔다.
“날씨 좋네.”
오늘따라 햇살이 참 따듯한 게,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 *
정오를 채 몇 분 남기지 않은 시각.
백작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성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첨탑이었다.
경비병 몇 명과 총집사를 따라나선 나는 그 첨탑을 향하는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확실히 불편하긴 하지만.’
실크로 짜인 긴 코트에 금빛 자수로 문양을 냈다. 등에는 가문의 문장인 잿빛 매가 박혀 있었는데, 확실히 위압감이 서려 있는 정복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집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보다 더 맵시가 사는 것 같습니다, 공자님.”
“그래?”
“혹 최근에 수련이나 운동을 하셨습니까?”
“응?”
“한 달 전보다 근육이 더 붙으셨군요.”
“그런가? 그냥 한 달 동안 돌아다니다 보니.”
“그렇습니까?”
이 노인네 은근 예리하다.
“준비되셨으면 들어갈까요?”
“그러지.”
집사가 먼저 문을 노크했다.
“영주님, 삼공자가 왔습니다.”
“들어오라.”
백작의 명이 떨어지자 집사와 경비병이 조용히 물러나 문 옆에 시립했다.
나 혼자 들어가라는 뜻이겠지.
큼큼, 헛기침하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왔느냐.”
안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백작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백작 또한 평소 입고 있던 약식 갑옷이 아닌, 정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예.”
“그 가방은 무엇이냐?”
백작이 내가 들고 온 작은 가방을 보며 물어 왔다.
“도시락입니다.”
“도시락?”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데, 배고프다고 나올 순 없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군.”
희미하게 웃은 백작이 몸을 돌렸다.
“따라오너라.”
그렇게 문을 하나 지나 첨탑 정상으로 향하는 나선계단으로 올랐다.
한참을 말없이 오르던 와중에 백작이 말을 걸어왔다.
“그곳은 우리 가문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들어 알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그곳에 갔을 때가 떠오르는구나.”
“…….”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그것을 이어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책임을 요구하는지 피부로 느꼈었지.”
“그렇습니까.”
“너 또한 느낄 수 있을 게다.”
이윽고 두 개의 첨탑 상층부 사이로 연결된 거대한 회랑이 하나 나타났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거대한 문 하나를 통과해야 했는데, 이상하게 문에는 손잡이가 보이지 않았다.
의문은 금방 풀렸다. 앞서 나간 백작이 문 앞에 자리한 수정구에 손을 대었다.
쿠르릉…….
그러자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거라.”
나 혼자?
“내가 없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어쨌든 내일 이 시각에 다시 오겠다.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겠다만, 성과가 있길 바란다.”
막상 혼자 들어가려니까 부담스러운데.
뭐 어쩔 수 있나.
백작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앞으로 나섰다.
끼이익- 쿵!
내가 들어서자 거대한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
역사의 향연이었다.
케르윈의 거처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오크와 고블린, 트롤 같은 몬스터는 기본이고 심지어 머리 둘 달린 오우거, 황소의 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까지.
창공에는 와이번과 그리폰, 히포그리프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으며, 그 가운데엔 날개를 펼친 드레이크가 불을 뿜고 있었다.
‘북부에서 벌어졌던 토벌전쟁.’
인간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향했던 북부.
그 토벌전쟁의 선두엔 벨랑카스 대제가, 그 뒤를 백작 가문의 시조인 베인 린다이어가 따랐을 것이다.
병졸과 기사, 마법사가 한데 뒤엉켜 몬스터와 벌였던 전쟁. 그 장엄한 광경이 눈앞에 스테인드글라스로 펼쳐져 잠시 넋을 잃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리곤 걸음을 옮겼다.
좀 더 나아가자 린다이어 백작가의 역사가 담긴 책장이 늘어서 있었다.
하나하나 다 읽어 보려면 족히 몇 주는 걸릴 방대한 양이다.
물론 다 읽어 볼 생각은 없었다.
연도별로 잘 정리된 표를 따라 가장 오래된 곳으로 향했다.
예상대로다. 그곳엔 시대의 호사가들이 정리해 놓은 무수한 전투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대충 아무거나 하나 집어 꺼내어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입으로 훅 불었다.
[미로른 요새 공방전]기억에 없는 전투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쓸모없진 않다. 이 또한 무수한 피를 흘린 전투일 테니까.
펼쳐 보니 그 공방전에 참여한 귀족들과 기사의 목록이 주르륵 나왔다.
더 넘겨 보니 공방전의 개요가 적혀 있었고 나아가 일자가 진행됨에 따른 목차, 그 아래엔 사용된 전술과 책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말미엔 호사가들이 기록한 당대 업적이 글로 적혀 있었다.
일종의 단편소설이라고 할까.
기록된 영웅들의 무훈이 읽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일으키게 했다.
‘이 정도면 됐다.’
대강 파악을 끝낸 나는 책을 다시 꽂아 넣고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기록을 발견했다.
[팔레모른 평원 대회전]북부의 패권을 두고 벌인 결정적인 전투.
이 승리로 북부는 인간의 것이 되었다.
작가가 굳이 외전까지 따로 내어 묘사했던, 왕국의 영토를 북부까지 넓히게 한 지상 최대의 대회전.
내가 이 서재에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탁!
책을 꺼내어 넓은 홀 가운데에 섰다.
주위를 둘러봐 아무도 없음을 다시 확인한 나는 가져온 가방을 열었다.
그러곤 도시락통을 꺼내어 열었다.
물론 안에 든 것은 음식이 아니라, 이곳에 오기 전 구매했던 마법 물품이었다.
‘몽마의 정기, 최상급 마나석, 최상급 마법 가루, 수면초…….’
사는 데 족히 보석 몇 개는 들인 최고급 재료들이다.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한 뒤, 모든 것을 알맞게 가져왔음을 확인한 나는 낮게 심호흡했다.
‘해 볼까.’
지금 내가 하려는 것.
그것은 역사를 현실로 끌어오는 것이다.
모든 역사를 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웅들의 이야기.
소설 제목인 미들랜드 사가의 사가(Saga), 혹은 무훈록(武勳錄)이라 부르는 것들.
그렇기에 전쟁으로 일구어 낸 린다이어 가문의 비밀 서재로 온 것이다.
그렇게 끌어낸 것들로 해야 하는 것 또한 명확하다.
[언령(言靈)의 실체화.]언령. 언어에 담긴 초자연적인 힘.
이미 언령은 어렴풋이 미들랜드에 자리 잡고 있다. 마법사가 입으로 외는 주문이 그 예다.
‘냉기여, 적을 꿰뚫어라! 아이스 스피어!’
플레타가 아이스 스피어를 사용할 때 외웠던 주문이다.
대마법사라 불릴 만한 실력자라면 저런 주문은 필요 없다.
그저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사용할 뿐.
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마법사들은 언령, 즉 말에 담긴 힘을 통해 더 손쉽게 발현한다.
그래서 그들은 떠올렸다.
[마법으로 언령의 힘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역으로 검술에 접목할 수는 없겠는가.]왕실 근위기사단장과 수석 궁정마법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내놓은 결과는.
[시도해 볼 만하다.]지금으로부터 13년 후의 왕실 근위기사단장인 질레온 하이클란스.
그는 불리해져 가는 전쟁을 뒤집기 위해 과거의 힘을 빌려 오고자 했고, 손수 피실험체가 되는 모험까지 강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영웅들의 위업인 사가(Saga)를 이용해 현세에 화신(化身)을 불러낼 수 있게 되었다.
‘준비는 끝났다.’
방법이야 소설을 통해 자세히 설명되었던 만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큰 틀은 간단했다.
무훈록에 실린 업적을 경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몽마(Nightmare)의 힘을 빌린다.
문제는 몽마도 엄연한 악마라는 것.
그런 만큼 그 경험은 필시 악독하고 음울한 악몽일 게 분명했다. 그 주체가 전쟁이니만큼 더더욱.
아마 생명을 베어 넘기고, 피를 뒤집어쓰고, 동료의 바스러짐을 목도하겠지.
PTSD에 걸릴 수도 있다. 나 또한 군인으로서 그 위험을 충분히 교육받았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영웅이라고 모두 해피엔딩인 건 아니니까.
실제 지구에서도 참전 영웅들이 꼭 좋은 말년을 보내는 게 아니라는 건 너무도 자명했다.
데엥!
첨탑에 걸린 종소리가 내 상념을 지워 냈다.
‘고민해서 뭐 어쩔 건데.’
당장 십 년 후에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때까지 평탄하게 수련해서 힘을 거머쥔다?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정치력을 발휘해 온 대륙을 하나로 묶을 능력도 내겐 없다.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들이 내 무엇을 보고 힘을 빌려주겠나.
일단은 본연의 힘을 길러 내는 게 최우선이고 이 방법은 그 지름길이 되어 줄 것이다.
‘해야 한다. 아니, 한다.’
결정과 동시에 실행에 옮겼다.
빠직!
최상급 마나석을 쪼개자 순간 뿜어진 마나가 홀을 메웠다.
뒤이어 몽마의 정기가 섞인 최상급 마법 가루를 뿌리자 신기루처럼 흩어져 책을 뒤덮었다.
끼이이…….
홀을 가득 메운 순도 높은 마나에 몽마의 기운이 순간 한정된 수명을 얻었고.
끼익, 끼아아아…….
이후 본능적으로 무훈록이 아닌, 살아 있는 숙주를 찾으려 몸부림쳤다.
치-익!
그에 나는 늦지 않게 성냥으로 수면초에 불을 붙이곤 코밑에 가져다 대었다.
‘와라.’
약효는 빨랐다.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내 코를 향해 쇄도하는 검은 기운이었다.
* * *
둥! 둥! 둥!
전장의 북소리에 맞춰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날붙이가 맞부딪치며 껄끄러운 소리가 귀에 박혔고, 동시에 비명과 신음, 괴성이 뒤따랐다.
“……리 ……이어 공!”
갈린 아랫배로 흐르는 내장을 어떻게든 쑤셔 넣으려 안간힘을 쓰는 병사.
미노타우로스가 휘두른 그레이트엑스에 말과 함께 반으로 잘려 나가는 기사.
주문을 영창하려다 와이번에게 채여 부리에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마법사.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도였다.
“린다…… 공! ……지금 ……뭘 ……이오!”
오감이 정상으로 완전히 돌아온 뒤 처음 마주한 것은 내 멱살을 잡고 뒤흔드는 사내였다.
“린다이어 경! 정신 차리시오!”
피땀에 절어 붉어진 머리칼의 사내가 내 손에 억지로 검을 쥐여 주었다.
“대공이 저 악독한 마룡을 향해 나아갈 길을 우리가 뚫어야 하오! 그러려면 경이 나서야 하는데 지금 뭘 하는 것이오!”
“…….”
“연인의 죽음을 목도한 당신의 그 심정을 내 어찌 이해하겠소! 하지만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다면 그 죽음마저 헛되이 될 뿐이오!”
방금 와이번에게 채여 죽은 여마법사는 내 연인이었다.
시선을 돌리자 해일 같은 몬스터 무리를 맞아 온몸으로 오러를 뿜어내는 벨랑카스 대제가 보였다.
그리고 그 몬스터의 파도 뒤에.
하늘에서 오만하게 전장을 굽어보는 검은색 드레이크, 마룡(魔龍)이 보였다.
‘아아…….’
두려움, 공포, 절망.
이내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분노가 몸을 잠식했다.
나는 지금 21세기를 사는 지구인도, 내가 빙의한 삼공자 카인 린다이어도 아니었다.
팔레모른 평원 대회전 중심에 선 영웅.
삭풍(朔風)의 기사, 베인 린다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