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8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81화(181/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81화
* * *
감았던 눈을 뜨자 다시 보인 것은 음습한 동굴이 아니었다.
군용 위장색으로 덕지덕지 칠해진 두 개의 초소와 그 초소를 잇는 철문, 그리고 그 철문 양옆에 K2 소총을 들고 근무를 서고 있는 초병까지.
내가 근무하던 부대로 통하는 위병소의 익숙한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갑자기 여긴 왜?’
문득 의문이 들었으나 그 의문보다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위병소 앞에 서 있는 한 인영이었다.
그리고 그 인영은 나로선 꿈에서도 잊지 못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였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분명 당신께선 베테랑 샐러리맨으로 항상 정력 넘치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생기를 잃어버린 초로의 노인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왜 저런 모습으로 내가 근무하던 부대에?’
그렇게 피어오른 의문은 머지않아 아버지의 발밑으로 주르륵 놓인 피켓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군 당국은 내 아들의 실종을 은폐, 축소하지 말고 진실을 밝혀내라!] [저는 지상 방송사를 통해 보도된 강원도 양구 21사단 GOP 소초장 월북 사건의 주인공인 소초장의 아버지입니다.] [제 아들은 당시 근무지였던 소초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중 실종되었으나, 군 당국은 건실한 제 아들의 실종에 오로지 월북의 가능성만을 제시하며 제대로 된 진상조차 규명하지 않고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은 오로지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임관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제 아들이 어떤 불미스런 사고를 겪었을지도 모르고, 오로지 월북했다는 답으로만 일관하는 군 당국을 저는 신용할 수가 없습니다.]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못 보던 사이에 십수 년은 늙어버린 듯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도 고통인데, 그 이유가 사라진 나로 인한 것임을 깨닫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어휴, 또 오신 거야?”
마침 근무 교대할 시간이었는지 새로 모습을 드러낸 병사가 근무 중이던 초병에게 물었다.
“예. 지휘통제실에 보고는 넣어 놨으니 따로 조치할 건 없습니다.”
“또 지켜만 보래?”
“정확히는 무시하라고 했지 말입니다.”
“무시는 무슨. 자기들 사정 아니라고 막말하는 거 봐라. 하여간 주적은 따로 있다니깐, 쯧.”
그렇게 근무 인수인계 절차를 밟으며 초병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근데 그 사건 일어날 때 김 병장님은 부대에 계셨다고 들었지 말입니다.”
“2년이 조금 안 됐으니까 내가 한창 신병이었을 때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사라질 수가 있지?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
“그 정돕니까?”
“GOP에 감시카메라가 좀 많냐? 근데 어떻게 그 많은 카메라에 단 하나도 안 걸리고 홀연히 사라졌는지 헌병수사관들도 혀를 내둘렀다더라.”
“월북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로 갔는지 말입니다.”
“난들 아냐. 당최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렇다고 유서를 남긴 것도 아니고, 월북했다면 대남선전에라도 얼굴을 비추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껏 잠잠한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국내를 이 잡듯이 뒤져 봐도 흔적조차 안 나오니 결국 월북으로 가닥을 잡은 거 아니겠냐.”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김 병장은 흘긋 내 아버지를 바라보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힘든 사람은 따로 있는 거지. 난 저분 볼 때마다 우리 아버지 생각나서 마음 아파 죽겠다. 어떻게 2년 가까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위를 할 수가 있지?”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듣자 하니 소초장님 어머니는 쓰러진 지 꽤 됐다더라. 여동생분은 그런 어머니 수발 드느라 직장에서도 잘렸다고 하고. 하여간 멀쩡한 집안 하나 풍비박산 나는 거 순식간이라니까.”
“그건 대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뉴스 좀 봐라, 새꺄. 기자들이 그런 쪽으로 기사 뽑아내는 게 한두 번이냐?”
이어진 그들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심장에 무언가가 쿵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 *
그렇게 나는 마치 유체이탈을 한 영혼처럼, 아버지의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배회의 시간은 지독한 고통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시위는 곧 해가 뜨고 노을이 지며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버지는 말없이 묵묵히 피켓을 든 채 시위를 벌이셨다. 도중에 생수를 몇 번 들이킨 것을 제외하곤 식사조차 거르셨다.
그렇게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서고 나서야 아버지는 비로소 주섬주섬 피켓을 챙겨 돌아가기 시작했다.
‘…….’
그렇게 아버지가 몸을 실은 곳은 당신의 몸만으로도 비좁아 보이는 작디작은 경차였다.
원래라면 중형 세단을 몰고 다녔을 아버지가 어째서 저런 경차를 타고 계실까.
그 답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앞서 들었던 초병들의 대화에 답이 나와 있었다.
2년에 버금가는 시간 동안 빠짐없이 시위를 벌였다면 아마 직장은 오래전에 사직했겠지.
거기다 어머니께선 몸져 누워 병원에 계실 테고, 여동생은 그런 어머니의 간호를 위해 다니던 일까지 관뒀다고 했다.
내 집안 사정은 내가 잘 안다.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뼛속까지 서민 가정인 우리 집안에서 돈 나올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을 터.
고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친 모습으로 가방에서 싸구려 빵을 꺼내 씹으시던 아버지가 별안간 운전석 핸들에 머리를 기대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냐…….”
이후 아버지의 어깨는 서서히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울음.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가슴이 아팠다.
아니, 아프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마치 수백 수천 개의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했으니까.
우우웅-
그렇게 흐르는 적막 사이로 소리 없는 흐느낌만 퍼질 무렵, 아버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아버지가 전화를 받자 별안간 휴대폰 스피커로부터 앙칼진 고함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예요? 설마 또 시위한다고 부대에 찾아가신 건 아니겠죠?”
“곧 돌아가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죽은 지 산 지도 모를 그 자식 하나 때문에 왜 우리가 고통받아야 하냐고요! 2년이에요, 2년. 살아 있어도 죽은 놈이나 다름없다고요!”
“그래도 네 오빠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고 뭐라는지 아세요? 집구석에서 간첩을 키웠대요. 나도 알아요. 오빠가 그럴 사람 아니라는 거. 하지만 세상이 전부 그렇다고 말하는데 우리만 아니라고 해 봤자 무슨 소용이냐고요. 그러니까 그만 좀 하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든, 뭘 하든 그 자식 잊고 우리라도 살자고요!”
“…….”
평소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긴 해도 마음속으론 서로를 향한 우애가 깊던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는 듯, 나를 향한 분노 어린 고함만이 휴대폰을 통해 울려 퍼졌다.
이후 말없이 통화를 끊은 아버지의 고개는 다시 핸들에 박혔고, 그 뒷모습을 보는 나 또한 소리 없는 울음을 흘렸다.
그 이후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스위치를 내렸다 올리는 것처럼, 어느 순간 의식이 꺼졌다가도 다시 생기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구천을 떠도는 망령과도 같은 신세로 오랜 시간을 아버지와 함께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또다시 꺼졌던 의식을 되찾은 나는 주변 풍경이 군부대 위병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바뀐 곳은 주황색 불빛으로 형형한 장례식장이었다.
사각형의 빈소 중앙엔 상주 차림의 아버지가 엎드려 울고 있었고, 그 옆으론 무미건조한 얼굴의 여동생이 검은 상복 차림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예상치 못한 그 광경에 나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단 한시도 잊은 적 없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가 영정사진으로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아.
가슴이 찢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 * *
“일어났느냐?”
열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음습하고 칙칙한 동굴 내부였다.
돌아왔구나.
그것을 직감한 나는 고개를 돌리자 피곤한 인상의 라헨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발견한 나는 지체 없이 마나하트를 일깨워 전신으로 마나를 공급했다.
이후 뿜어낸 힘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나는 단숨에 라헨나에게 접근했다.
설마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는지, 라헨나는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내게 멱살을 잡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라헨나의 눈빛이 달라지며 나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지옥을 보여 준 사람이었으니까.
“말해 주시죠.”
“무엇을 말하라는 것이냐.”
“내게 보여 준 게 현실이 아니라고.”
“네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질문부터 답해 주자면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모른다.
그렇다면 그게 정말 사실일 수도 있다는 건가?
순간 절망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손에서 힘이 풀렸고, 그에 라헨나가 인상을 쓰며 내 손을 쳐 냈다.
“무례하긴.”
조였던 목이 불편했는지 라헨나가 목을 매만졌다.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힘을 끌어올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현실일 수도, 아니면 단순히 악몽일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래.”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내 감정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걸까, 라헨나가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이야기해 주었듯 나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을 뿐, 그것을 채우는 건 너의 내면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내면?”
“아마 네가 보고 온 것은 네 녀석이 지금껏 마음속 깊이 감춰 놓았던 내면이 만들어 놓은 세상일 것이다.”
“내면이 만든 세상…….”
“정확히 말하면 지금껏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던, 네 녀석이 말했던 그 분노의 원인이 만들어 낸 형태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현실일 수도, 아니면 불안감이 만들어 낸 억측일 수도 있다. 진실은 실제로 그 상황이 되어 봐야 아는 것이겠지. 아니면 이미 일어났으나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
진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겪은 그 기나긴 시간은 내 깊은 내면 속 불안이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건가.
“말했지 않았느냐? 모든 대가는 네가 치러야 할 것이라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것으로 인해 네 녀석이 한계를 넘을 수 있냐 없냐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지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거리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껏 그러한 사실을 마음 깊숙이 가둬두고 모르는 채 굴었던 것임을.
분노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의 분노는 경험 이전에 라헨나에게 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소설 속 영웅이 되어 모험을 펼친다는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철없던 생각이었나.
게임? 만화? 치킨? 연애? 에어컨?
그따위 유흥을 그리워하며 투정 부렸던 내 모습이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제 그딴 건 다 필요 없어졌어.’
이제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다.
최대한 이 병신 같은 소설을 끝맺고 하루라도 빨리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더는 아무것도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어? 공자님!”
동굴에서 내가 피웠던 소란을 느낀 건지, 입구로 루스와 일리아가 황급히 들어서며 나를 찾았다.
“아니, 대체 얼마 만에 일어나신 겁니까? ……근데 지금 여기 분위기가 왜 이렇죠?”
머쓱한 루스의 말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 만에 일어난 거지?”
“꼬박 한 달만입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물론 라헨나 님이 괜찮다곤 했지만…….”
“한 달?”
하긴, 예전에 대수림에서 빠져나올 당시 라헨나의 도움을 받아 에보니와 만났던 것도 찰나였을 뿐인데 일주일이 지나 있었지.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엔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한 달이란 시간도 납득할 만하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가만히 서 있던 일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데 공자님.”
“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지신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달라졌다고?
뭐 그럴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쓰게 웃었다.
“달라질 수밖에. 나도 이젠 더 이상 장난칠 시간이 없게 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