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84)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85화(185/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85화
술과 음식을 탐하는 소리로 여관 식당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자리한 테이블엔 싸늘한 기류만이 맴돌았다.
“공자님, 정말 진심이신 겁니까?”
“그럼, 내가 이 상황에 농담 따 먹기나 할까 봐?”
“…….”
내 강한 의지를 느꼈는지 루스도 더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에 잠자코 있던 일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용병 모집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조건이 꽤 까다로워야 할 텐데요.”
“아니, 용병은 따로 모집하지 않는다.”
“……저랑 공자님 단둘이서 활동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르페 후작이 사람을 보내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용병입니까? 하지만 저희가 선별하지 않은 인원은 자칫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괜찮아. 그들은 보통 칼잡이들이 아닐 테니까.”
“보통이 아니라고 하심은.”
“일리아 아직 너는 모르겠지만 왕실이 가진 카드엔 근위기사단만 있는 게 아니다.”
내 말에 듣고 있던 루스가 눈매를 좁혔다.
“설마 이르페 후작이 수사관을 파견해 주기로 한 겁니까?”
“그래.”
왕실 직속 비밀 수사관.
이르페 후작이 물밑에서 광활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실근위기사단이 양지에서 힘을 발휘하는 왕가의 검이라면, 수사관들은 왕가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음지에서 활약한다.
그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약조한 이르페 후작의 말을 떠올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번 첫 번째 계획은 전적으로 나와 일리아가 도맡아 해결할 거다.”
“…….”
내 말에 루스가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선 나를 따르고 싶지만, 본인이 가진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이기에 망설이는 거겠지.
“루스, 네가 맡아 줄 일은 따로 있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아, 그렇습니까?”
“곧 셀라가 이 지역 근방에 당도할 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 프로젝트엔 셀라가 가장 중요한 존재야. 그러니까 네가 그녀를 항시 옆에서 호위하고 지켜야 해.”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편히 놀고만 있으라는 건 아니다. 나와 일리아가 동남부에 내려가 있는 동안, 너는 셀라와 접선한 뒤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하겠습니다.”
“좋아.”
루스의 대답에 나는 가방에 챙겨 놓았던 종이 뭉치를 꺼내 내밀었다. 처음 셀라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고민하고 보완과 수정을 거듭한 계획이었다.
“전부 숙지해. 다음엔 태워 버리고.”
종이 뭉치의 두께를 본 루스가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걸 전부요?”
“그래, 전부. 못하겠어?”
“아닙니다. 해야죠. 잠을 줄여서라도 달달 외우겠습니다.”
“외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야.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적혀 있으니 실수 없이 진행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게 유출되면 우린 모두 끝장이란 걸 명심해. 그러니 목숨보다 소중히 관리하라고.”
“예.”
내 말에 루스가 종이 뭉치를 누가 볼세라 조심스럽게 챙겼다.
툭!
뒤이어 나는 금화가 가득 담긴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필요한 자금은 이걸로 충당해. 부족하면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으니 제스에게 요청하고.”
“예.”
“이제 나는 트롯 남작을 만나 근황과 계획을 설명한 뒤 일리아와 함께 동남부로 내려갈 거다.”
“트롯 남작에겐 정보를 얼마나 공개하실 생각입니까?”
“적당히 선을 그어야지. 어차피 트롯 남작은 내가 린다이어라는 보험을 제시해 줬으니 크게 개의치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탁!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음을 느낀 나는 맥주잔을 들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다시 볼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
“예. 공자님도요. 일리아, 공자님을 잘 보필해야 한다.”
“제 목숨을 걸고 잘 모시겠습니다.”
작년 바슈른 영지전 이후부터 함께했던 루스와 다시 떨어지게 되는 건가.
문득 마음이 심란해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루스와 잔을 부딪쳤다.
* * *
이후 루스와 헤어진 나는 트롯 남작의 영주성으로 향했다.
여전히 전투적인 외견의 성으로 들어서자 나를 맞이해 준 건 반가운 얼굴이었다.
탈로간이라고 했던가? 덥수룩한 수염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남작님. 아, 이젠 백작님이라고 불러 드려야겠군요.”
“오랜만입니다, 기사 탈로간.”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땐 나를 향한 적의가 가득했었는데, 지금의 탈로간은 존경심이 엿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말 레드란이 본격적으로 야욕을 드러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백작님 말씀대로 사태가 흘러가다니, 놀랍군요.”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그보다 트롯 남작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그렇게 기나긴 성의 복도를 걷기 시작한 나는 탈로간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전황은 어떻습니까?”
“어제 날아온 전서구에 의하면 동남부가 침공당하기 일보 직전이랍니다. 아마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겠죠.”
“대처는 어떻게 하고 있죠?”
“동남부의 모든 영주가 외곽의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급히 휘하 기수들을 소집하며 병력을 무장하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레드란이 일으킨 군대를 본 이상 단순한 문제가 아닌 걸 깨달았을 테니.”
“모두가 그렇게 빠르게 대처하진 못했을 텐데요.”
“일단 바사라크 영지와 인접해 있는 소수 영지는 이미 레드란에게 항복한 것 같습니다. 타 영주들의 지원을 받기도 전에 영지가 불타오를 상황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죠.”
“그 외엔?”
“일단 동북부의 영주들은 트롯 남작님의 주도하에 연합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만…… 아직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탈로간이 말한 문제가 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또한 예상 범주 내의 일이었다.
“그렇군요.”
“어쨌든 레드란이 중부를 차지하는 건 시간문제이니, 앞으로 연합군은 북부군과 남부군으로 나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주님에게 들으시죠.”
그렇게 탈로간의 안내를 받아 향한 곳은 권위적인 영주의 홀이 아닌, 소박한 휴게실이었다.
“카인 백작! 어서 오시오!”
얼굴이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던 트롯 남작은 나를 보자 소파에서 몸을 황급히 일으켰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내긴! 시국이 이러한데 카인 백작이 찾아오지 않아 얼마나 노심초사한 줄 아시오?”
“그래서 이렇게 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다행이오. 탈로간! 밖에 차를 내오라고 말하게.”
그렇게 자리에 앉자 이후 집사로 보이는 인물이 차를 두 잔 놓고 사라졌다.
“진짜 전쟁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소.”
“제가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린다이어가 보호해 준다는 약조를 해 준다기에 손해 볼 것 없으니 받아들인 거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벽을 보수하고 군량을 충분히 비축해 두긴 했지만, 그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
“그것만으로도 잘하신 겁니다.”
“일단 동북부의 모든 영주가 연합하기로 했소만, 아직 몇몇 이들은 차라리 지금이라도 레드란을 종주로 인정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 있소. 레드란이 가진 군대의 규모가 생각 이상임을 알곤 겁을 먹어 버린 거지. 한뜻으로 단단히 결속해도 모자랄 판에 곤란하게 됐소.”
이게 바로 탈로간이 말했던 문제였겠지.
“그렇습니까?”
“말로는 연합하겠다고 해도 이미 뒤로는 레드란과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을지 모르지 않겠소. 솔직히 연합한다고 해도 적을 내부로 들이는 건 아닌가 나 또한 의심되는 판국이니.”
“걱정할 만하군요.”
“위로만 해 주려고 온 건 아니지 않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오?”
“글쎄요. 어디서 동부를 구원해 줄 영웅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영웅? 지금 동부에 도는 그 뜬소문 말이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나를 질책하려던 트롯 남작은 별안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예. 그 설마가 맞습니다.”
“그 소문이 당신이 퍼트린 거란 말이오?”
“일단은 그렇습니다.”
“오오, 그렇다면 대책이 있다는 말이군. 그래서 그 영웅이라는 자는 대체 어떤 누구요?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연합할 군대는 바사라크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란 수준이오. 그를 이끌려면 능력이 상당히 출중해야 할 텐데.”
“아마 군대를 다루기에는 여러모로 지휘 능력이 부족할 겁니다. 아! 그래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재주는 좀 있겠네요.”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요? 군대를 이끌 장군에게 지휘 능력이 없다면 허수아비와 다를 게 뭐요?”
“아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진 거라곤 혈통밖에 없을 테니.”
“혈통?”
“예. 제가 데려올 사람은 과거 동부를 지배했던 군주의 후계자이니까요. 그것만큼은 제가 확실히 보증할 수 있습니다.”
“…….”
당최 그게 무슨 말이냐는 트롯 남작의 반응에 나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설명이 더 필요하겠군요. 자, 묻겠습니다. 지금 레드란이 차지하고 있는 붉은성의 원주인이 본래 누구인지 아십니까?”
“붉은성의 원주인 말이오?”
내 말을 곱씹어 보던 트롯 남작의 얼굴이 서서히 사색에 질리기 시작했다.
“……지금 플로레스 가문을 말하는 거요?”
“바로 맞추셨습니다. 그 플로레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이가 바로 동부의 구원자가 될 겁니다.”
내 확답에 옆에 시립해 있던 탈로간이 몸을 움찔거렸고, 트롯 남작의 얼굴도 푸르게 질려갔다.
“플로레스는 반역을 저지른 대역죄인의 가문이오. 입에 담아서도 안 될 이름이거늘!”
“너무 매도하지 마시죠. 한때 동부 제후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가문 아닙니까?”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소. 한때 우리가 플로레스를 섬겼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지 않소?”
“그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설마 캐피탈에서 플로레스의 후계자를 잡으러 근위기사단이라도 보내겠습니까?”
“…….”
내 말에 손을 입가에 모은 트롯 남작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바보가 아니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지.
그리고 트롯 남작은 바보가 아니었다.
“플로레스 가문의 후계자가 반목하는 대상은 바사라크고, 왕실의 입장에서 바사라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요.”
“그렇습니다.”
“하면 왕실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니 일단은 잠자코 볼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가 미소 지으며 답하자 트롯 남작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플로레스의 이름 아래 집결해 바사라크를 무너뜨린다면?”
“왕실로선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굳이 플로레스를 다시 잡아들여 제2의 레드란, 제3의 레드란이 동부에서 나오길 바랄까요? 아니면 플로레스를 다시 휘하에 거두는 것을 택할까요?”
“휘하에 거둔다는 건…….”
“과거 다하지 못했던 맹세를 다시금 지키라는 명목하에 왕가에 복속을 명하지 않겠습니까? 동부의 안정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전제하에나 가능한 이야기 아니오?”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대외적으론 나서지 않겠지만, 플로레스의 그림자엔 바슈른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제가 있을 겁니다.”
“카인 백작이 그림자로? 그렇다면 왕실이 플로레스를 다시 거둔다는 것도 어느 정도 뒤로 이야기가 되었다는 거요?”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내 이미지는 내가 잘 안다.
지금 왕국 전역에선 나를 가리켜 시대가 낳은 젊은 영웅이라 부르며, 왕실은 내게 작위를 하사해 품에 끌어들이려고 안달이 난 모양새다.
그런 내 말에 트롯 남작이 눈썹을 파르르 떨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에 슬슬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란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잊혔던 플로레스의 등장에 동부는 다시 결속할 것이고 바사라크는 흔들릴 겁니다. 과거의 충성을 떠올린 레드란의 기수들 또한 회의감을 갖게 되겠죠. 자, 그렇다면 앞으로 전쟁의 향방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명분을 챙긴 플로레스와 그 휘하에 모여든 연합군입니까, 아니면 가진 건 창칼뿐인 바사라크겠습니까?”
“하, 하지만 그 창칼이…….”
“한 가지만 약속드리죠. 그 창칼은 제 명예를 걸고 반드시 부러트려 놓을 겁니다.”
“…….”
한때 대역죄인을 섬겨 왔단 이유로 수백 년간 받아 왔던 멸시와 탄압은 동부 모든 제후의 공통적인 주홍글씨였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오명을 씻어 내고 다시금 명예를 찾을 수 있단 생각에 트롯 남작의 얼굴에 환희가 깃들기 시작했다.
“동부의 제후들이 겁을 먹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곧 나타날 구원자와 동행해 새로이 충성을 받아 내십시오. 그렇다면 그들이 선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