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8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89화(18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89화
군마의 말발굽이 땅을 박차는 소리로 평원이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소란 가운데 선두에서 내달리던 나는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하나둘셋…… 진짜 서른쯤 되네.’
수사관의 보고대로 서른 개가량의 검은 점이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넓게 퍼져 우리를 뒤쫓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점 가운데, 펄럭이는 깃발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먼 거리라 뚜렷하게 보이진 않았으나 그 깃발이 붉은색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레드란.’
붉은 기사단의 총원이 몇이더라?
대외적으로 알려진 숫자만 따져 보자면 대략 스물 안팎일 것이다.
하지만 레드란이 비밀리에 양성한 진짜 붉은 기사가 몇이나 더 있을지는 몰랐다.
‘어쩌면 그놈들만 데려왔을 수도 있고.’
잘 훈련된 기사는 훌륭한 전투원이자, 동시에 뛰어난 지휘관이다.
하지만 레드란이 버서커 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여 새롭게 양성한 기사들은 전투원으로선 쓸 만할지 몰라도, 지휘관으로는 알맞지 않은 존재들이다. 자고로 지휘 능력이란 건 속성으로 길러 낼 만한 영역이 아니니까.
‘게다가 현재 레드란의 군대는 트롯 남작령을 포위한 탓에 전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있고.’
전선이 길수록 병력은 분할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뉜 군대를 통제하려면 많은 지휘관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옛날부터 바사라크 가문이 보유했던 기사단은 현재 트롯 남작령을 포위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는 게 타당하겠지.
그렇다면 결론은 나왔다.
현재 우리를 뒤쫓는 저놈들은 레드란이 길러 낸 새로운 기사들, 즉 버서커들로만 이루어졌다는 것.
“공자님! 전방에 적입니다!”
일리아의 외침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봤다.
사전에 계획된 작전이었는지, 전방에 소규모로 조를 이룬 병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각기 기병을 상대하는 데 효과적인 미늘창을 쥔 그들은 우릴 향해 스피어월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돌파합니까?”
“그럴 리가!”
벨로므의 물음에 경쾌하게 답한 나는 고삐를 이끌어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다시 트롯 남작의 영주성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으나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계속 시도하는 모습은 보여야겠지.’
이후로도 틈만 나면 다시 방향을 틀어 영주성으로 향했고, 그럴 때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레드란의 군대가 저지선을 형성했다.
마치 토끼몰이를 당하는 모습으로 얼마나 내달렸을까.
“더는 지체할 수 없을 듯합니다.”
벨로므가 정신없이 내달리는 와중에도 나직이 조언을 건네왔다.
그의 말이 맞았다. 슬슬 포위망이 좁혀 오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방향을 틀었다간 삽시간에 둘러싸일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저곳으로 향합니까?”
“그래. 산으로 간다.”
어느새 멀게만 느껴졌던 최종 목표인 악령산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산 근방에는 설마 이곳으로 도망가겠냐는 레드란의 생각을 대변하듯, 군대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전원 입산한다!”
본래 산을 지키고 있던 트롯 남작의 경비병들은 철수한 지 오래였다.
지키는 자 하나 없는 목책을 지난 우리는 그대로 비탈길을 타고 산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후로 얼마나 더 내달렸을까. 더는 바깥에선 볼 수 없는 지형에 다다르자,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곤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곧장 따라붙을까요?”
“아니. 사방으로 퍼져서 뒤쫓던 형국이었으니 레드란이 생각이 있다면 한번 재정비를 하겠지.”
레드란에게도 지금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군요.”
“너무 긴장을 풀진 마.”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낮고 무거운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저건 무슨 신호일까요.”
“뭐겠어? 우리가 산을 넘기 전에 포위하라는 신호겠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손을 들어 벨로므를 불렀다.
“레드란은 기회가 왔을 때 몰아칠 녀석이지. 아마 오늘내일 중으로 산에 쳐들어올 거다.”
“이제 저희는 어떤 임무를 맡으면 되겠습니까?”
벨로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턴 우리로도 충분해. 그간 너희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필요하시다면 일을 더 도와 드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만 받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아마 레드란은 곧장 이 산을 빈틈없이 둘러쌀 거다. 더 늦기 전에 너는 분견대를 이끌고 탈출하도록 해.”
“…….”
내 말에 벨로므가 성큼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백작님의 일을 도울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나 또한 너희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훗날 다시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동료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
여전히 무미건조한 얼굴의 벨로므였으나 맞잡은 손에서 그의 감정이 전해져 왔다.
동료라……. 그래, 지휘 고하를 떠나 벨로므와 나는 같은 수사관의 직책을 맡고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게 악수를 마친 벨로므는 팔을 들어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임무 종료다.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 본영으로 귀환한다.”
그렇게 수사관들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홀연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이내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일리아를 불렀다.
“일리아.”
“예, 공자님.”
“처음에도 말했듯, 이 모든 일에는 네가 주역이다.”
“그건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앞으로 정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주인공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하지. 전면에 나서서 적의 기사단을 격퇴해라.”
전면에 홀로 나서서 레드란의 기사단을 상대해라.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명령이었지만 그를 들은 일리아는 한 점 의심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달리 걱정할 건 없을 거야. 무대는 이미 완성되어 있으니까. 네가 알아야 할 건 이젠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뿐이다.”
이젠 참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들은 일리아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써도 되는 겁니까?”
“그래. 써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칠 무렵이었다. 어느새 우리 주위로 내려앉은 무수한 까마귀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까악-! 까아악!
“까마귀 무리군요.”
일리아의 말에 나 또한 까마귀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까마귀들이군.”
* * *
붉은 흉갑과 붉은 헬름.
더불어 허리에 찬 장검과 길게 늘어진 검은 망토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붉은 기사단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보통의 것과는 다른 검은 흉갑을 걸친 레드란이 검지를 들어 턱을 긁었다.
“이 산으로 도망친 게 정말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영주님.”
앞서 그들의 행방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병사의 말에 레드란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알 수 없단 말이지.’
처음 프로스트 용병단이 이 산으로 도망갔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레드란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치에 맞지 않았으니까.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 트롯 남작의 영주성으로 도망가는 게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일리아 프로스트라고 했나?’
카인 린다이어의 수행 기사.
별다른 작위도, 명성도 없는 기사였다.
하지만 카인은 그 기사를 마치 가장 가까운 수족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지금, 그 기사는 갑자기 용병단을 결성하더니 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금껏 후방에서 계속 자신을 괴롭혀 왔다.
마치 굳은살에 가시가 박혀 거슬리는 것처럼.
‘아니지. 이젠 가시라고 할 수도 없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만, 지금껏 몇 달간 수십, 수백 번의 피해를 받다 보니 이제는 스트레스를 넘어 분노를 끌어내고 있었다.
‘한데, 그동안은 신출귀몰하게 잘 도망다니다가 갑자기 왜 이 산으로?’
정말 생각하는 게 딱 용병 수준이라 그런 선택을 내린 건가?
그러나 레드란은 고개를 내저었다.
카인이란 인간은 그런 멍청한 사람을 단지 용모가 빼어나고 검을 좀 잘 다룬다고 해서 곁에 둘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니만큼 그 기사가 산으로 도망갔다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았다.
그렇다면 그 꿍꿍이는 무엇일까.
레드란은 어렵지 않게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나와 기사단이 이곳에 몰렸다는 걸 노린 역습인가?’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어림없는 수작이다. 이미 트롯 남작령은 자신의 손에 완벽히 포위되어 있었으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즉시 봉화를 피워 올릴 터. 그렇게 된다면 군대는 미리 수립해 두었던 전술대로 움직여 줄 것이다.
기존의 붉은 기사들을 지휘관으로 충분히 배치해 놨으니 자신이 없어도 그 정도 대처는 가능했다.
‘아니면 누가 구출이라도 하러 올 때까지 버틴다는 건가?’
차라리 이 가설이 그나마 현실적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산에 고립된 저들을 누가 구하러 오냐는 것인데…….
“만약 온다면 그 친구밖에 없겠지.”
카인 린다이어.
그를 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레드란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설령 그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프로스트 용병단의 배후엔 카인 린다이어가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레드란이 그렇게 확신한 데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열쇠는 블루윈드 상회였다.
블루윈드 상회는 카인 린다이어의 것이었고, 그 상회는 마치 전쟁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현재 군수업으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군수업은 전쟁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 낼 것이다.
그러니 카인 린다이어는 전쟁이 길어지도록 조작해야 했고, 그 방법으로 용병단으로 후방을 교란하고 플로레스 가문의 적통을 찾아 동북부 연합군의 사기를 끌어 올려 준 게 분명했다.
“노력은 가상해, 카인 린다이어.”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었다.
아마 카인은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군대가 생각보다 강력하고, 동부의 연합군들이 생각보다 허약하다는 사실에.
‘일리아라고 했지. 네 소중한 기사를 사로잡아 주마. 그리곤 불가침을 맺어 놓고 수작질을 벌인 증거를 캐내 그걸 빌미로 가지고 놀아 주지.’
일단은 회유를 생각한 레드란이었다.
하지만 설령 그 여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자신이 지닌 고문 기술자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 어떤 굳건한 자도 그들의 손에 맡겨지면 발가벗겨지듯 모든 진실을 토해 내 왔었다.
“영주님.”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레드란에게 한 참모가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이 근방 지리에 익숙한 거주민에게 저 산에 대한 정보를 얻어 왔습니다.”
“그래? 보고해라.”
“보시다시피 홀로 우뚝 선 모양새라 아래를 둘러싸기만 하면 빠져나올 구석이라곤 없는 산이라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규모는 제법 큽니다만, 군대를 동원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들면 수일 내로 놈들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천천히 포위망을 좁힌다라…….”
참모의 말에 눈썹을 찌푸린 레드란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용병 나부랭이들 잡는데 귀중한 시간과 병사를 낭비할 필요는 없지.”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병력을 충원해 산 아래를 빈틈없이 둘러싼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말이지. 그때까지 기다린 후에 나와 붉은 기사단이 직접 산으로 들어가 놈들을 잡아 올 것이다.”
“영주님이 직접 말입니까?”
“생각 같아선 산에 불을 질러 산 채로 불태워 버리고 싶지만, 사로잡아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굳이 영주님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기사단만을 보내심이…….”
“아무리 용병단이라 해도 그 수장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놈이다. 게다가 지금껏 우릴 조롱하듯 능숙하게 도망쳐 왔지. 만만히 볼 놈은 아니야.”
“그러니 혹시 모를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마나를 다루는 기사만 서른이다. 게다가 붉은 기사단은 단순히 마나의 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지. 그런 우리가 한낱 계집 하나 못 잡을 것 같은가?”
레드란의 말에 참모가 급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레드란의 걱정거리는 다른 데 있었다. 물론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었다.
붉은 기사단, 그러니까 새로 양성해 낸 버서커들에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본 능력을 발휘한다면 더없이 든든한 사냥개가 되지만, 그만큼 드러난 흉포함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
만약 그 악독한 그 암고양이 같은 여자가 술수라도 부려 그들의 본모습을 끌어내기라도 한다면, 아마 수하들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게 분명했다.
물론 귀중한 인질이 되어 줄 그 여자가 시체로 나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이번만큼은 자신이 직접 그들을 통제해야 했다.
“아무튼 내가 직접 지휘하겠으니 그런 줄 알고 있으라.”
레드란의 말에 참모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영주님과 붉은 기사단이 적들을 사로잡아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좋아. 지금 당장 거주민을 시켜 저 산의 지리를 약도로 그려 가져오도록. 아마 놈들은 지쳐 있을 테니 수원 근처에 자리 잡고 있겠지. 그 근방을 집중적으로 훑어봐야겠군.”
그러나 레드란의 명령을 들은 참모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어째서?”
“저 산은 인근 토착민들에게 악령이 들린 산으로 유명해 그 누구도 깊숙이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뭐라고? 악령?”
“예. 그래서 이름도 악령산이라 붙여졌다고 하더군요.”
“악령산이라…….”
레드란은 참모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딴 미신이나 믿으니 평생 천하게 살아가는 것이겠지. 어쩔 수 없군.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직접 샅샅이 훑는 수밖에.”
고개를 끄덕인 레드란이 팔을 들어 붉은 기사단에게 손짓했다.
“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한다. 산을 완전히 포위하는 대로 그 악독한 년을 잡아 올 것이니.”
프로스트 용병단의 악명은 이미 레드란의 군대 내에서도 상당한 수준이었고, 그 탓에 붉은 기사단의 눈 또한 분노로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