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9)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9화(1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9화
베인 린다이어가 된 나는 검으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분노가 몸을 잠식했다.
내 것이 아닌 감정이었다. 분명 베인 린다이어가 느낀 것이리라. 그러나 그의 경험을 공유하는 지금은 곧 나의 감정이기도 했다.
빠득!
한시라도 빨리 베어 내고 피를 봐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검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좋소. 한번 뚫어 봅시다.”
쉬어 버린 중후한 목소리가 내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악다문 입술에서 아릿함이 느껴졌다.
“기사단은 이곳에 집결하라!”
내 부름에 한창 뒤엉켜 싸우던 기사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당연했지만 그들 또한 군마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마법사, 마법사는 없는가!”
이어진 내 고함에 땀에 절고 피곤한 얼굴의 중년인이 블링크로 점멸해 내 곁에 섰다.
“내가 돕겠소.”
“바슈른 공, 무사하셨소?”
“……딱히 멀쩡하진 않지만 아직은 살아 있구려.”
바슈른이라 불리는 걸 보니 바슈른 공작가의 시조가 틀림없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 사이 모여든 기사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린다이어 경! 지시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야가 휙휙 돌아가며 전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돌파와 엄호. 간단한 목표요. 두 개 조로 나누겠소. 한 조는 엄호하고, 나머지는 단숨에 뚫고 나가 대공을 보좌하겠소. 제프! 게릴! 하인드! 비슈라르! 내 뒤로 붙어라. 너희는 나와 함께 돌파를 맡는다.”
익숙한 전설 속 영웅들의 이름이 들려왔다.
딱히 더 설명이 없었음에도 모두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쐐기꼴 진형 선두에 내가 섰고, 그 뒤를 영웅들이 이었다.
“바슈른, 시작을 여시오.”
내 말에 은빛 머리칼을 쓸어 올린 바슈른이 두 손을 모았다.
사아아아…….
주변에 뒤엉켜 싸우던 병졸과 몬스터의 이목이 쏠릴 만큼 강렬한 마나 폭풍이 일었다.
뒤이어 허공에 나타난 것은 집채만 한 수십 개의 화염구였다.
“이게 다 뭐요?”
“파이어 볼이오.”
“저것들이?”
“그렇소. 단지 좀 더 크고 좀 더 많을 뿐.”
씨익 웃은 바슈른이 손을 내저었다.
이윽고 화염구로 만들어진 융단폭격이 시작되었다.
쾅! 콰앙! 쿠르릉!
땅이 파이고 뒤틀리며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적의 시야를 차단하는 것까지 생각한 바슈른의 기재였다.
“바슈른, 당신도 따라오시오.”
“당신들을 따라잡으라고? 허 참.”
“출발!”
거창한 돌격 명령은 없었다.
이미 함께 거쳐 온 전장만 수십이다.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했다.
스스스…….
힘을 주자, 아랫배에 자리 잡은 마나하트에서 이글거리는 기운이 용틀임 쳤고.
우웅! 우우웅!
이내 뿜어진 타오를 듯한 오러가 검을 감싸며 괴성을 내질렀다.
타앗!
발돋움할 때마다 땅이 멀어졌다가 도로 가까워졌다. 몇 번의 도약만으로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주파했다.
키에에엑! 카아악!
물밀듯이 밀려온 첫 번째 파도는 오크와 트롤 무리였다.
“제프! 맡아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튀어 나간 짧은 머리 사내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 길을 텄다.
그러고는 생겨난 길을 따라, 제프를 제한 나머지가 치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채 백 미터도 가지 못하고 성찬 콧김을 불어 내는 미노타우로스 무리가 막아섰다.
“게릴!”
약속이라도 한 듯, 후미에 있던 덩치 큰 기사가 튀어 나갔고.
“하인드! 비슈라르!”
와이번과 오우거를 맞닥뜨렸을 땐 남은 두 기사를 마저 보냈다.
그렇게 되자 나와 단둘만 남게 된 바슈른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소? 이것 참 오붓하기 짝이 없군.”
“거의 다 왔소. 갑시다.”
“우리 둘이서 해야 할 게 뭔지 궁금하오만.”
“내가 길을 트고 당신을 엄호할 것이오. 그사이 당신은 대공이 마음 놓고 마룡과 싸울 수 있도록 도우시오.”
현명한 마법사답게 내 말뜻을 이해한 바슈른이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대공!”
촤악! 촤아악!
한 지역을 장악한 채 황금빛 오러로 몬스터를 학살하던 남자, 벨랑카스가 고개를 돌렸다.
“오, 린다이어 경! 이렇게 반가울 데가?”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어려울 때야말로 웃음이 필요한 법이지.”
“시끄럽습니다.”
“너무하는군.”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벨랑카스가 슬쩍 하늘에 떠 있는 마룡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맡을 수 있겠소?”
나 또한 파도처럼 몰려드는 몬스터를 잠시 둘러보곤 대제에게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십 분.”
“그 이상은 죽었다 깨도 못 버팁니다. 약속 지키십시오.”
“그렇다면 십오 분으로 하지.”
“시끄럽습니다. 바슈른! 대공에게 발을 만들어 드리시오!”
농을 던지는 벨랑카스를 무시한 채 고함치자 바슈른이 한숨을 푹 쉬었다.
“대공, 저 또한 지금 몸 상태론 십 분 이상 유지 못 합니다. 뚝 떨어지기 싫다면 그 안에 끝내십시오.”
“부하라는 것들이 협박이나 하고…….”
사아아아…….
바슈른이 손을 휘젓자 육중한 크기의 팬텀 스티드가 만들어졌다.
“싸움에만 집중하면 되는 건가?”
팬텀 스티드의 조종까지 맡기려는 대제의 말에 바슈른이 이를 갈았다.
“제가 몰면 좀 과격할 텐데 말입니다.”
“나쁘지 않지. 나도 그쪽 취향이오.”
“젠장.”
씹듯이 욕설을 뱉은 바슈른이 벨랑카스가 탄 팬텀 스티드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블랙 드레이크, 몬스터들의 우두머리인 마룡(魔龍)이었다.
“후우.”
이제 남은 임무는 벨랑카스가 마룡을 꺾을 때까지 바슈른을 지키는 것뿐.
고오오…….
정신을 집중해 지금껏 아껴 왔던 마나를 폭발시켰다.
흘러나온 마나가 온몸을 잠식하며 초인적인 힘을 부여했다. 동시에 이글거리며 솟은 오러 블레이드가 푸르게 타올랐다.
쿵! 쿵! 쿵!
땅을 울리며 다가온 거구의 트윈 헤드 오우거가 첫 상대였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마나 탓인지 순간 주위 모든 것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할 수 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나는 자유였다.
곧추세운 검을 유려하게 뻗어 오우거의 미간을 겨누었다.
우웅, 우우웅…….
불타오르는 푸른 오러가 내 심정을 대변했다.
그에 나 또한 내 검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입 밖으로 꺼내 되새겼다.
“내 검은 바람이다.”
콰앙!
순간 발돋움을 해 솟구치자 그 충격에 땅이 뒤틀렸다.
“거목을 눕히는 돌개바람이며.”
콰가가각!
허공에 뜬 채 사선으로 휘두른 검에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뚱이가 반으로 나뉘었다.
“갈대를 눕히는 산들바람이자.”
푸화하악!
뒤이어 몰려든 수십의 트롤이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 갈대처럼 휘날렸고.
“천둥을 이끄는 비바람과 같다.”
콰르르릉!
끝내 뿜어진 오러가 벼락 줄기처럼 나뉘어 반경 수십 미터의 모든 적을 찢어발겨 재로 만들었다.
“나는 바람이다.”
삭풍의 기사로서 수십 년간 쌓아 온 오의(奧意)가 담긴 검무였다.
스으으…….
이후 마나에 의해 흩어진 재가 하늘을 수놓았다. 마치 짙은 화산재가 뿌려진 듯한 광경이었다.
그에 잠깐이나마 평온함이 느껴진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콰우우우!
검은 마룡이 날개가 찢긴 채 추락하고 있었다.
* * *
데엥!
“허어억!”
첨탑 종소리에 회상에서 깬 나는 순간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욱, 우으윽…….”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분명한 온갖 자질구레한 감정은 둘째치고.
“우웨엑…….”
살아 있는 것을 베는 느낌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제기랄.”
손등으로 입가를 닦아 내며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피와 살점으로 목욕했고, 생명을 취했으며, 연인과 동료를 잃었다.
살면서 이런 감정은 겪어 본 적도, 느낄 일도 없었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만큼 충격도 배로 다가왔다.
‘젠장…….’
어찌 됐건 이렇게 주저앉아만 있을 순 없다.
기억이 생생하고 감각이 온전한 지금이 아니면 이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스르렁!
검을 뽑아 홀 중앙에 섰다.
어질어질한 몸을 가누곤 나지막하게 심호흡했다. 그러곤 지그시 눈을 감아 기억과 감각을 되살렸다.
‘베인 린다이어의 화신.’
겪은 업적에서 영웅을 끌어내 화신(化身)으로 삼기 위해선 그 업적을 구체화할 언령(言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언령의 해답은 좀 전에 겪은 과거의 기억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장엄한 노래일 수도 있고, 엄숙한 시일수도 있으며, 고독한 독백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젠 차려진 밥상을 먹기만 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이미 베인 린다이어 스스로가 자아도취에 빠져 스스로 방법을 내보이지 않았던가.
‘해 보자.’
정신을 집중하자 직접 겪은 것처럼 참혹했던 전장이 다시 상상 속에 펼쳐졌고.
“내 검은 바람이다.”
「 내 검은 바람이다. 」
첫 구절을 읊조리자, 어디선가 베인 린다이어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크윽…….”
그저 첫 구절을 암송한 것뿐인데 격렬한 반응이 찾아왔다.
검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졌고.
스스스…….
무언가가 몸속에, 아니, 영혼에 자리 잡는 기분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과거의 기억인 베인 린다이어가 언령에 이끌려 화신(化身) 혹은 아바타(Avatar)라 불리는 존재로 몸에 깃드는 과정이었다.
“끄으으…….”
이후 들이닥친 것은 지독한 고통이었다.
흘깃 바라본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쳤다.
본디 검은 눈동자여야 할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주르륵…….
이목구비를 통해 스멀스멀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원인이야 뻔했다. 아직 내 육체와 실력으론 베인 린다이어의 혼을 감당할 수 없어서겠지.
‘그렇지만.’
한 번만, 딱 한 번만 검을 휘둘러 보자.
손에 힘을 줘 검을 들어 올리자 단단히 마음먹었음에도 지독한 극통에 비명이 새어 나왔다.
“끄아아악!”
쿨럭!
벌린 입으로 순간 붉은 선혈이 울컥 토해졌다.
이러다 검 한 번 휘두르고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자니 지금껏 들인 수고가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고.
‘몰라. 죽든 말든 한 번은 휘두른다!’
턱을 타고 뚝뚝 흐르는 피를 무시한 채 끝끝내 들어 올린 검을 휘둘렀고.
번쩍!
섬광처럼 쏘아진 검격이 베인 린다이어의 그것과 같은 선을 그려 냈다.
세상에 이보다 완벽한 검로가 있을까?
검도에 인생을 바쳐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면 한 번쯤 내질러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루스도, 길레인도, 마스터인 린다이어 백작도 이런 검격은 내 보지 못했겠지.
채앵!
이후 그 한 번의 휘두름을 끝으로 나는 검을 떨어트렸다.
체력도, 정신력도 고갈되어 불러낸 화신이 허무하리만큼 쉽게 사라졌다.
“커어억…….”
화신이고 나발이고,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 질질 기어 가방으로 향했다.
뒤이어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져 포션을 꺼내곤 곧장 입에 들이부었다.
“크아!”
쓰다! 써!
밀려오는 고통과 쓴맛에 얼굴을 구기던 그때.
두근!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움찔거렸다.
묵직하면서도 한바탕 뜨거운 열기와 같은 이 느낌. 분명 조금 전에 과거의 기억에서 느꼈던 적 있다.
‘설마?’
본능적으로 정자세를 취한 뒤 눈을 감았다.
고요한 주변 덕에 쉽게 집중한 나는 머지않아 아랫배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깨운 건가?’
아니, 이 반응이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두근…… 두근…… 두근…….
베인 린다이어로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미약하고 보잘것없긴 하지만.
“마나하트.”
분명했다.
오랜 잠에 빠져 있던 내 마나하트가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