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19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199화(19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199화
붉은성 내부 분위기는 스산했다.
예전 이곳에 왔을 때는 그래도 오가는 고용인들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났었는데, 지금은 마치 전염병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적막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예상된다. 아마 레드란이 현재 겪고 있을 심경 변화가 붉은성을 이렇게 만들었겠지.
“…….”
기사 브세크는 나를 안내하면서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에 불편한 기류가 느껴져 나는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기사 브세크.”
“하실 말씀이라도?”
“전쟁은 잘 치르고 있나?”
내 물음에 앞서 걷던 브세크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알면서 묻는 괴악한 취미는 없는데.”
“…….”
능청스러운 내 대답에 브세크가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짤막한 말을 남겼다.
“영주님께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시는 게 신상에 좋으실 겁니다.”
“충고인가?”
“조언입니다.”
“새겨듣지.”
모르긴 몰라도 레드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건 확실했다.
이후로도 한참을 걷자 이내 기억에 남아 있던 방이 나왔다. 일전에 레드란과 무역선을 둔 거래를 마무리했던 방이었다.
“영주님, 브세크입니다.”
방문 앞에 선 브세크가 노크를 했다.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브세크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아무 내색 없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열린 문 내부는 그 흔한 양초 하나 피우지 않았는지 칠흑처럼 어두웠다.
게다가 바깥에 서 있음에도 독한 술 냄새와 메케한 담배 연기가 찐득하게 느껴지는 게, 보지 않아도 내부 상황이 어떤지 예상이 갔다.
“…….”
흘긋 바라본 브세크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이었다는 거겠지.
짧게 혀를 찬 나는 천천히 방 내부로 들어서며 암안(暗眼)을 개안했다.
‘돼지우리구만.’
내부는 예상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었다.
발에 툭툭 채는 술병과 환기는 언제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탁한 공기.
그것들을 느끼며 걸음을 옮기던 나는 이내 기다란 소파와 그 위에 걸터앉아 고개 숙인 한 인영을 찾을 수 있었다.
레드란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잠시나마 측은한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레드란은 오만했을지언정,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었으니까.
“레드란.”
내 부름에 숙여 있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그렇게 마주한 레드란의 얼굴은…….
‘폐인인가.’
먹물로 칠했나 싶을 정도로 짙게 그늘진 눈가와 잔뜩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곡기를 얼마나 끊었는지 앙상하게 파인 뺨이 보였다.
마나를 다루는 기사의 육체는 강인하다.
자질구레한 질병 따위는 애초부터 거부하며 상처도 당장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끝끝내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수준이니.
그러나 그 강철 같던 육체도 결국 정신이 지배하는 법이고, 그 정신이 무너진 인간이 어떤 말로를 겪는지 눈앞에 드러나 있었다.
“카인…….”
쉬다 못해 뚝뚝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가 레드란의 입을 통해 새어 나왔다.
“그래. 나다.”
“나를 죽이러 온 거냐?”
레드란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선 과거의 유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무너진 인간의 탄식과도 같이 느껴질 뿐.
“그럴 리가. 그냥 지나가다 들린 거다.”
“지나가다 들러? 팔자 좋은 핑계군.”
손을 뻗은 레드란이 술병을 집었다. 그리곤 잔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입을 벌려 게걸스럽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당연히 반쯤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레드란은 흘린 술을 닦아 내지도 않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그냥 나를 죽여 주지 그래?”
“그랬다간 밖에 있는 기사가 내 몸에 구멍을 뚫을걸.”
“기사? 밖에? 아, 그 떨거지들?”
내 말에 레드란이 키들거리기 시작했다. 그 웃음 또한 과거와는 달리 공허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에 짧게 혀를 찬 나는 바닥을 뒹굴던 의자를 가져와 레드란과 거리를 두고 앉았다.
“떨거지라니, 수하 기사에게 말이 심하네.”
“떨거지가 아니면 뭐지?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구해 줄 영웅들인가? 대제의 기사들처럼?”
“우선 네가 대제가 아닌데 무슨 소리야?”
“그래. 나는 대제가 아니지. 맞아. 네 말이 맞아.”
키들댄 레드란이 다시 한번 병나발을 불곤 입으로 독한 향을 내뿜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봐, 카인.”
“왜.”
“나는 그래도 우리가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소원한 사이는 아니지.”
“그래? 그럼 몇 가지 물어봐도 되나?”
“내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냐고?”
“그런 병신 같은 질문은 할 생각 없다. 애초에 증거도 없는 판국에 네가 인정할 리도 없고.”
“……뭐 그렇다면야.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내 물음에 레드란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조금이지만 옛날의 그 날카로움을 간직한 채 나를 쏘아보았다.
“일리아, 그 여자는 인간이 맞긴 한 거냐?”
“무슨 뜻이야?”
“악마가 아니냐고 묻는 거다.”
“……악마?”
레드란의 손이 미세하지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떨림을 애써 감추려는 듯 레드란이 양손을 깍지끼곤 턱에 기댔다.
“악마지? 그리고 너는 그런 악마와 계약한 거고. 그래, 생각해 보니 이상했어. 네가 무슨 예언자도 아닌데 어떻게 로드키우스의 남부 광산이 무너질 걸 예측했으며, 또 그 짧은 시간에 엑스퍼트라는 경지에 올랐겠어?”
“…….”
“악마와 계약을 하고 힘과 정보를 건네받은 것 아니냐, 카인 린다이어?”
“뭔 헛소리야.”
“그게 아니면 뭔데?”
레드란의 퀭한 두 눈에 미약하지만 푸른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진 모르겠다만, 일리아는 인간이다.”
“시치미 떼는 거냐?”
“원한다면 전쟁이 끝난 뒤에 일리아에게 성수라도 한번 뿌려 보던가.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까.”
“그럼 그날 내가 본 것은 뭐란 말이지?”
“뭘 봤는데?”
내 물음에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걸까, 레드란은 이제 발까지 떨기 시작했다.
“악마, 악마를 봤다. 그게 인간이라고?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소리냐?”
“그 산은 악령산이라고 했지. 네가 헛것을 본 거 아니냐?”
“내가 그런 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를 믿을 것 같아?”
“그런 건 못 믿으면서 일리아가 악마라는 건 쉽게 믿는 거냐.”
몸을 일으키려던 레드란이 내 말에 도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건…….”
그리곤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오니까.”
“나와?”
“눈만 감아도 아른거린다. 밤이 찾아오면 더 심해져. 술에 취해 억지로 잠을 청해도 어느새 꿈속의 나는 그 악령산 한복판에 서 있다. 이게 악마가 저주를 건 게 아니면 뭐지?”
망가진 건가.
파르르 떠는 레드란의 모습에 나는 입맛이 씁쓸해졌다.
솔직히 내 목적은 붉은 기사단을 유인해 패퇴시키는 것, 딱 그것뿐이었다. 기사단을 잃어버린 이상 레드란이 무너지는 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으니.
하지만 예상보다 충격이 너무 컸던 건지, 레드란은 생각보다 심하게 무너져 있었다.
“레드란.”
“왜.”
“이만 전쟁을 끝내라.”
“끝내라고?”
“그래. 이렇게 버텨 봤자 무의미하니까. 어차피 기사단을 잃은 순간 패배는 예정된 일이었어.”
“아니, 전쟁은 멈출 수 없다.”
“대체 계속 싸워 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 물음에 레드란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내 붉은 기사단은 아버지의 피를 대가로 만들어진 놈들이니까.”
아버지의 피를 대가로?
아, 바사라크의 선대 가주를 말하는 건가. 문장을 자기 몸에 실험해 보다가 폭주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자식의 손에 죽임을 당했던.
“그런 놈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아버지가 목숨 바쳐 만들어 낸 놈들을 말이지. 그런 판국에 양손을 들고 순순히 투항이나 하라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네 아버지를 미련하기 짝이 없던 인간이라 매도할 땐 언제고 지금 와서 그 핑계를 대는 거지?”
“그렇다면 내가 죽은 아버지나 그리워하며 질질 짜는 철부지였어야 한다는 거냐? 나는 바사라크를 계승했고, 야만적이라 질시 받는 그 가문을 어떻게든 부흥시킬 책임 또한 이어받았다. 좋든 싫든 그 사람의 유산을 계속 갈고닦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
“공포로 만들어질 권위를 위해 아버지의 죽음을 싸고도는 추문을 묵인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깔아뭉개며 내가 더 낫다고, 내 방법이 옳다고 모두를 세뇌했고. 하지만 나는 결국 의무를 다하지 못했지. 그런 판국에 항복을 해 영지를 고스란히 내주라고? 지금 나더러 지옥에 가서도 고개 들지 말라는 거냐?”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레드란의 고함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생각한 항복과 레드란이 생각한 항복엔 담긴 의미가 달랐으므로.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전쟁이란 건 그런 법이니까.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거머쥐거나.
“……그래서 여기 앉아 징징거리기나 하면서 전쟁은 계속하겠다? 이미 네 휘하 귀족들은 대부분 패퇴했거나 항복할 조짐을 보이는데도?”
“그렇다 해도 상관없어. 그 빌어먹을 플로레스에게 내어 줄 바엔 차라리 붉은성을 불태우고 말지.”
“붉은성에 조그만 불씨라도 피우기만 해 봐. 내가 널 갈기갈기 찢어 버릴 테니까.”
“그러면 오히려 좋지. 차라리 지금 당장 그렇게 해 주는 게 어때? 플로레스가 아닌 린다이어에게 죽는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지.”
미친놈인가.
양팔을 벌리며 웃는 레드란의 모습에 짜증이 솟구친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만 징징거려라, 레드란. 술을 치우고 검을 들어. 그리고 너를 따르는 이들을 다독여라. 그런 다음 정정당당히 적과 맞서 싸워. 그게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다.”
한바탕 내지른 일갈에도 레드란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음산한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문 채 레드란을 소파 위로 팽개쳤다.
“좋아.”
“…….”
“그 저주를 풀어 주지.”
“뭐?”
레드란의 웃음이 멈췄다.
“귀가 막혀 버린 거냐? 그 저주를 내가 풀어 주겠다고.”
“역시 그년은 악마였고, 넌 악마랑 계약했던 거군?”
“마음대로 생각해.”
“……그래서 저주를 풀어 줄 수 있다는 게 사실이냐?”
“그래.”
“어떻게?”
“방금 말했던 것 같은데. 검을 들어. 그리고 군대를 지휘해서 붉은성을 지켜 내.”
“…….”
이후 몸을 돌린 나는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레드란을 돌아보았다.
“최소한 마지막까진 붉은성의 군주로서, 그리고 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 자식으로서 본분을 다하라는 소리다. 그러면 약속하지. 저주를 풀어 주겠다고.”
말을 마친 나는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섰다.
바깥에는 브세크가 미동도 없는 모습으로 시립해 있었다. 레드란과 나눈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을 거다. 다만 고성이 오갔다는 것쯤은 눈치챘겠지.
“용무는 끝났다. 이만 돌아가야겠어.”
내 말에 브세크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셨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잠시 말끝을 흐렸던 브세크가 재차 말을 이었다.
“영주님께 조금 충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군요.”
“동감이다.”
“안내해 드리죠.”
“아니, 돌아가는 길은 혼자 가겠어. 어차피 길은 아니까.”
“그러시겠습니까.”
딱히 별다른 일은 없었기에 브세크는 흔쾌히 나를 보내 주었고, 그렇게 홀로 적막한 붉은성의 회랑을 걷기 시작한 그때였다.
[어이어이~]“헛소리 들어 줄 기분 아니다.”
[……뭔 말을 못 하게 해! 그냥 궁금한 게 있을 뿐이라고.]“뭔데.”
[레드란 저 녀석,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멸하는 거 아니야? 그게 연합군에게도 훨씬 좋을 텐데 뭐하러 자극을 줘? 진짜로 마음 고쳐먹으면 어쩌려고.]“막말로 레드란이 진짜 붉은성을 불태울 수도 있을뿐더러, 셀라의 입지가 완전해지려면 극적인 승리가 모양새가 더 좋을 테니까. 어차피 이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결정된 상황이니.”
[정말 그 이유 때문이야?]“나중에 레드란을 써먹을 때가 올 수도 있을 텐데 저렇게 망가진 채 내버려두는 건 좀 그렇기도 하고.”
[정말? 저어엉말 그 이유 때문이야?]“…….”
솔직히 말하면 레드란의 방금 그 울부짖는 모습에서 일말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최소한 마음의 짐은 조금 덜어 주고 싶다고 할까. 물론 쓸데없는 값싼 동정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를 그렇게 입에 담는데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겠냐고.”
[으흥, 말로는 피도 눈물도 없을 거라더니,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포근포근하구나?]“시끄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