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02)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03화(203/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03화
“셀라 플로레스는 앞으로 나와 왕명을 받들라.”
붉은성이 자리한 도시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가 숨을 죽였다.
그들은 광장 위에 마련된 무대 위로 나서는 셀라의 모습을 주시했다.
“제후들을 한뜻으로 모아 왕국의 혼란을 초래했던 레드란 바사라크를 격퇴해 동부의 분열을 잠재우고 안정을 찾아온 셀라 플로레스의 공은 분명히 인정되는바, 나 벨린테스 아란셀은 플로레스가 지난 과오를 씻고 다시 한번 왕가에 충성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신임하여 죄를 사하고…….”
이르페 후작의 쩌렁한 목소리가 광장 위로 울려 퍼졌다.
요지는 간단했다. 바사라크를 격퇴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으니, 왕실에 다시 충성한다는 조건으로 죄를 사해 주겠다는 것. 애초에 약속되었던 것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들에겐 왕실이 크나큰 아량을 베풀었다는 식으로 비추어지겠지.
“……셀라 플로레스를 붉은성의 종주로 인정함과 동시에 플로레스 가문이 과거 지녔던 백작위를 하사하고, 동부 변경백의 직위로 다시 임명함을 선포한다.”
그렇게 대관식은 끝났다. 군중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던 동부가 플로레스의 이름으로 한뜻이 된다면 팍팍한 삶도 조금은 나아질 테니 그렇겠지.
그런 그들의 진정한 충성을 얻어 내는 건 이제 셀라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물론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몰락했던 라일리 가문의 식솔을 다시 불러 모아 힘을 합친다면 명군은 아니더라도 성군은 충분히 가능하겠지.
이후 자리가 마무리되자 이르페 후작은 붉은성으로 들어와 제일 먼저 나를 호출했다.
그에 붉은성 내부 응접실로 향하자 나를 보곤 만면에 미소를 짓는 이르페 후작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카인 백작!”
“안녕하십니까.”
“축하하네. 보기 좋게 일을 성공했구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긴!”
껄껄 웃은 이르페 후작은 나를 앉혀 놓곤 찻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동남부는 대강 정리가 끝났다고 들었네만.”
“예. 트롯 남작을 위시한 제후들이 레드란의 잔당을 모두 처리해 안정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동남부 영주들의 반응은 어떻다던가?”
“레드란에게 빼앗겼던 영지를 그대로 돌려주고 자치권을 인정해 주니 곧장 플로레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더군요.”
“그렇다면 결국 동부의 모든 영주가 플로레스 아래 뭉치게 된 건가?”
“몇몇 영주는 아직 플로레스를 못 미더워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들도 곧 대세를 따르게 되겠죠. 이미 저울은 충분히 기울었습니다.”
“웃기지도 않는군. 수백 년간 골칫덩어리였던 동부가 이렇게 쉽게 정리가 될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린 이르페 후작이 나를 바라봤다.
“이게 다 자네 덕일세. 국왕 폐하께서도 아주 흡족해하고 계시고.”
“다행이군요.”
“하지만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지.”
지금껏 즐거움에 젖어있던 이르페 후작의 눈빛에 특유의 날카로움이 깃들었다.
“플로레스의 수호 가문을 맡겠다고?”
“예, 그렇습니다.”
“말이 수호 가문이지 실상은 플로레스를 비롯한 동부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생각하신 게 맞습니다.”
“그건 애초에 없었던 이야기가 아닌가? 왕실 입장에선 상당히 곤혹스럽네만.”
“향후를 생각해 보면 그게 나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입니다.”
“향후의 일이라…….”
“애초부터 이 계획을 설명하면서 말씀드렸죠. 제 목표는 단순히 레드란을 끌어내리는 게 아닌, 동부를 이용해 남벌에 나서 로드키우스를 잡는 것이라고.”
“그랬지.”
“로드키우스는 제가 싸울 상대이고, 플로레스는 그런 저와 함께 싸울 아군입니다. 그런 아군의 힘을 체계적으로 키우려면 아무래도 제가 깊게 개입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실과 자네의 목표가 같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동부라는 드넓은 세력을 자네에게 맡기고 말고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야.”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냥 저는 손을 떼겠습니다.”
“……떼겠다고?”
내가 이렇게 쉽게 포기할 줄은 몰랐는지, 이르페 후작의 눈썹이 꺾였다.
“예. 손을 뗄 겁니다.”
“자네 지금 협박하는 건가?”
“저는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움직입니다. 바슈른의 영지전을 중재할 때도 그랬고, 캐피탈이 습격당했을 때도, 이번 동부를 통일시킨 것도 그랬습니다.”
“그렇다는 건?”
“저는 앞으로 로드키우스를 무너트릴 계획을 생각해 낼 겁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성립하려면 제 입맛대로 확실하게 움직여 줄 체스말이 있어야 하지요. 그리고 그 체스말은 지금의 플로레스가 될 것이고요.”
“자네와 함께 싸워 줄 군대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막말로 제가 바슈른 공작이나 린다이어 백작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무언가 일을 진행할 때마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이원화된 명령 체계에 골머리를 썩여야 한다면 저는 그냥 손을 떼겠다는 겁니다. 왕실 입장에서도 제가 영 불안하다면 그냥 다른 지휘관을 알아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이르페 후작이 헛웃음을 흘렸다.
“자네를 계속 쓰고 싶다면 일할 조건은 맞춰 달라 이건가?”
“저는 신이 아닙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순 없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던 후작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국왕 폐하께선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제가 다른 마음을 품진 않을까 싶으신 거겠죠.”
“딱히 부정하진 않겠네. 하지만 자네가 한 가지 약속해 준다면 아마 폐하께서도 얼마든지 흔쾌히 승낙하시겠지.”
“어떤 겁니까?”
이르페 후작이 흘긋 달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근시일 내로 캐피탈로 오게. 자네가 만나 줘야 할 사람이 있으니.”
“제가 만나야 할 사람 말입니까?”
“그렇네.”
“어떤 사람이기에?”
내 물음에 이르페 후작이 픽 웃음을 흘렸다.
“셋째 왕녀님께서 왕국을 뒤흔들고 있는 영웅을 직접 뵙고 그 무훈을 치하하고 싶다 하시더군.”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은데.
* * *
선대 국왕은 네 명의 자식을 남겼고, 그중에서 유일하게 남자인 현 국왕인 벨린테스 아란셀은 넷째이자, 막내로서 유일한 남자였다.
‘셋째 왕녀.’
캐서린 아란셀.
쟁쟁한 유력 가문과 연을 맺은 첫째와 둘째 왕녀를 제외하곤 벨린테스와 함께 유일하게 미혼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가 내가 세운 공을 치하하고 싶으니 캐피탈로 오란다.
멍청이가 아닌 이상 그 말이 뜻하는 바는 확실했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내 목에 정략혼이라는 목줄을 채우고 싶은 거겠지. 그렇게 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왕실의 사람이 되는 걸 테니.
사람을 얻기 위해 사람을 내놓는다라…….
이상할 건 없다. 애초에 바람기사단장이자 엑스퍼트 상급인 길레인 에스테반을 왕실로 끌어들이기 위해 셋째 왕녀를 내세워 혼담을 제의했던 왕실이었으니.
‘일단은 단순히 만나만 보라고 했으니 상황을 지켜보다 적당히 무마하면 되겠지.’
어쨌거나 플로레스를 휘하에 두는 건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르페 후작의 말을 들어 보니 일단 만나만 보라는 거잖아?
적당히 만나 적당히 시간만 죽일 것.
그렇게 대강 결론을 내린 나는 이후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당도한 곳은 병실이었다. 문 앞에 서서 지키고 있던 병사가 날 보더니 부동자세를 취하곤 경례를 해 보였다.
“백작님을 뵙습니다!”
“고생이 많아. 안에 있나?”
“예, 그렇습니다!”
“상태는 좀 어떻지?”
“의식은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서는 일리아가 대기하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고 있던 그녀는 나를 보곤 자세를 잡았다.
“오셨습니까.”
“그래. 별일 없었지?”
“예 그렇습니다.”
일리아가 흘긋 병상 위에 드러누워 있는 인영을 바라봤다.
붉은 머리칼과 힘없이 늘어진 몸. 옆구리에 붕대가 촘촘히 매여진 인영은 바로 레드란이었다.
“나가서 잠시 쉬고 오든 해.”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건 뭐야. 가서 식사라도 하고 와.”
“알겠습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불러 주시길.”
그렇게 일리아가 문을 열고 나서자 병실에는 나와 레드란만 남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에 눈을 감고 있던 레드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무슨 일로 왔지?”
“무슨 일이긴. 궁금해서 와 봤다.”
의자를 끌어와 레드란의 맞은편에 앉은 나는 팔짱을 끼었다.
“요즘은 어때?”
“뭐가?”
“아직도 일리아가 악마라고 생각하나 싶어서.”
“놀리려고 온 거였나?”
“이런, 들켰나.”
내 대답에 픽 웃음을 흘린 레드란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녀는 기사였다.”
“그래?”
“그래. 오랜 시간 수련한 기사만이 내보일 수 있는 올곧은 검술이었어. 악마 따위가 감히 흉내 낼 성질이 아니지.”
말을 마친 레드란의 얼굴은 제법 홀가분해 보였다. 억지로 부여잡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리고 잠식했던 악몽마저 떨쳐 낸 덕이겠지.
“그보다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내 처분이 결정 난 것 같은데.”
“그래.”
“나는 죽는 건가?”
“아니.”
내 대답에 레드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죽지 않는다고?”
“그래.”
“네가 막은 거냐?”
내가 막았냐고? 그럴 리가.
애초에 셀라는 레드란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서 오랫동안 모든 걸 잃어버린 채 고통받길 원했지.
뭐, 물론 이르페 후작은 레드란을 처형하고 싶어 했으나 내 계획을 듣곤 두말없이 찬성하기도 했고.
“내가 막았다고 볼 수도 있고.”
“무슨 꿍꿍이야?”
“레드란, 너는 유배를 가게 됐다.”
“……유배?”
“그래, 유배.”
“웃기지도 않는군. 그럴 바엔 차라리 혀를 깨물고 말지.”
“그래? 그럼 그러던가. 다만 혀를 깨물면 브세크라고 했던가? 그 충실한 기사가 너 대신 모두가 보는 앞에 교수대에 매달려야 할 거다.”
“지금 뭐라고 했지?”
레드란의 눈이 사납게 뜨였다.
“죗값을 치러야 할 네가 그렇게 죽어 버린다면 누군가가 대신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아니겠어?”
“이런 비열한 자식.”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참 감회가 새로운데.”
“진짜 원하는 게 대체 뭐지?”
레드란의 물음에 나는 비릿하게 웃어 주었다.
“하늘요새로 가라.”
“하늘요새?
“그곳에서 몬스터와 싸워 북방을 지키면서 왕국 신민들의 안전을 도모해 죗값을 치르라는 거다.”
“……거긴 네가 성주로 있는 곳 아닌가?”
“그래. 그러니까 보내는 거야.”
내 대답에 미간을 좁힌 레드란이 코웃음을 흘렸다.
“네 밑에서 닥치고 몬스터나 때려잡다 보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건가?”
“레드란.”
“왜 부르지?”
“내가 너 하나 잡으려고 이 사단을 벌인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내 목표는 로드키우스와 그를 따르는 세력을 완전히 깨부수는 거다.”
로드키우스라는 말을 듣자 레드란의 표정이 달라졌다.
“로드키우스? 미친 거냐? 미들랜드의 땅덩이를 절반 가까이나 차지한 그들을 이기겠다고?”
“왜, 못 이길 것 같아?”
내 기세에서 자기가 겪었던 말도 안 되는 패배를 느낀 것일까, 비아냥거리던 레드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로드키우스를 정벌하고 나면 아마 무수한 귀족이 죽거나 사라지겠지.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는 공을 세운 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
“하늘요새에서 살아 있어도 죽은 듯 조용히 지내라. 그리고 기회가 오면 그걸 잡아. 선택은 네 몫이다. 평생 지하 감옥에서 썩든가, 아니면 재기를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든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브세크는?”
나는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 주었던 기사를 찾는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자는 죽건 살건 무조건 너만을 따르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함께 죽든가, 아니면 함께 하늘요새로 가든가 둘 중 하나겠지.”
“브세크가 그랬다고?”
“그래. 브세크 외에도 한두 명 정도 더 있긴 하더군.”
레드란의 눈이 흔들렸다.
함께했던 수하 귀족들은 레드란이 버서커를 잃어버리고 망가지자 모두 떠나가거나 투항했다.
그렇게 혼자가 된 레드란의 곁에 남은 건 끝까지 주군과 함께하겠다고 맹세했던 브세크를 비롯한 극소수 기사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면면을 떠올린 걸까, 잠시 눈을 감았던 뜬 레드란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재기할 기회가 온다는 거, 진짜인 거냐?”
“약속하지. 때가 되면 내가 너에게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어.”
“그렇다면 좋아.”
레드란이 주먹을 꽉 쥐었다.
“실패했던 내 의무를 다시 지켜 낼 수만 있다면 까짓거, 얼마든지 버텨 주지.”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전서를 꺼내 내밀었다.
“하늘요새에 가면 로벤 경이라는 기사를 만날 수 있을 거다. 그에게 건네줘. 그러면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테니.”
“재미있는 것?”
“그런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