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07)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08화(208/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08화
51장. 창공 기사단
케르윈과의 만남을 끝낸 나는 그 즉시 푸른 산맥에 자리한 하늘요새로 향했다.
푸른 산맥은 만물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봄임에도 여전히 춥고 황량했다.
물론 그딴 거야 이젠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내겐 케르윈의 거처에서 챙겨 온 망토가 있었으니.
‘따듯하구만.’
옷깃을 여민 나는 온실 속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아서 그런지 힘도 덜 드는 듯해 단숨에 산맥을 주파했다.
그렇게 해가 뉘엿해질 때쯤, 하늘요새 인근에 도착한 그때였다.
“너한테 붙은 놈들이 여기 전부다! 어서 끌고 가!”
문득 이색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위장복을 걸친 서너 명의 인영들이 십수 마리의 아이스 트롤에게 쫓기고 있었다.
처음엔 위험에 빠진 감시자들인가 싶어 도와주려던 나는 이내 검을 거두었다. 마치 일부러 트롤을 유인하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피어오른 의문에 나는 천천히 그들을 따라가 보았고, 이내 넓은 분지 지형에 널브러진 백여 구에 가까운 트롤과 예티의 사체를 볼 수 있었다.
사체의 상태를 보니 전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흘러나온 피는 겹겹이 쌓인 눈 위로 붉은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고, 그 주위론 굶주림에 찾아온 까마귀가 득실댔다.
그리고 그 시체들 가운데엔 한 인영이 서 있었다.
“다 왔다! 여기서 떨궈 놓고 우린 그대로 빠진다!”
“말려들지 않게 조심해!”
그렇게 감시자들은 끌고 온 트롤을 분지 가운데 서 있는 남자에게 유인한 뒤 신속하게 장소를 빠져나갔다.
그에 졸지에 사냥감을 놓친 트롤들의 분노는 자연스레 홀로 서 있던 인영에게 돌아갔다.
크롸악! 크롹!
괴성을 내지르며 트롤들이 방망이를 높게 쳐들었다. 그대로 팔이 내려지면 홀로 선 남자의 머리통이 박살 날 게 뻔해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가만히 서 있던 인영의 남자가 고개를 들며 다르게 흘러갔다.
그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 타오르다 못해 붉은 기운이 뚝뚝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물론 그 모습은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붉은성에서 루스와 대련을 펼쳤던 붉은기사단이 보여 주었던 힘이다.
‘그런 힘이 지금 여기서 보인다는 건…….’
그의 정체가 곧 레드란임을 뜻했다.
쿠우웅!
내리찍히는 트롤의 방망이를 레드란이 한 손만 들어서 잡아 냈다. 기사라고 해도 허투루 볼 수 없는 게 트롤의 완력임을 생각한다면 실로 엄청난 괴력이었다.
“…….”
이후 레드란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이 불을 뿜었다. 거리가 있어 그 짧은 사이 몇 번이나 휘둘러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트롤은 재생조차 불가능하게 수십 토막으로 조각나 흩뿌려졌다는 것뿐.
쿠웍! 쿠어어웍!
기세 좋게 달려들던 트롤들은 어느새 앞다투며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런 놈들의 뒤를 레드란이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휘유…….”
“볼 때마다 적응 안 된다니까.”
“대체 저 괴물 같은 힘은 뭘까?”
“난들 아냐. 마나를 이상하게 다루면 저런가 보지 뭐.”
트롤들을 유인했던 감시자들이 그런 레드란을 보며 감탄을 흘려 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봐.”
“어, 어어! 누구냐!”
누구긴, 니들 대장이지.
“이곳은 외부인이 올 수 없는 곳인데?”
“잠깐, 어디서 본 듯한 얼굴…… 서, 설마 성주님입니까?”
나를 알아본 한 감시자의 말에 나머지 인원들의 얼굴이 놀람에 물들기 시작했다.
“지, 진짜 성주님이시다!”
“아니! 별다른 기별도 없이 성주님이 여기엔 어쩐 일로…….”
나를 보곤 당황하는 감시자들의 말에 나는 표정을 찌푸렸다.
“내가 내 집 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가?”
“다, 당연히 아닙니다!”
감시자들이 급히 부동자세를 갖추었고, 그에 나는 턱으로 레드란을 가리켰다.
“지금 저 상황이 뭔지 설명을 좀 듣고 싶은데.”
내 물음에 그중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감시자가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겨울이 지난 봄이지 않습니까. 몬스터들의 활동이 잦아질 시기라 토벌을 나온 참이었습니다.”
“그래. 트롤을 잡는 건 나도 봐서 알아. 근데 저런 방식은 처음 보는데? 저건 레드란이 아닌가?”
“레드란 남작이 맞습니다.”
“근데.”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아 나도 모르게 퉁명스런 말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내가 직접 하늘요새로 유배를 보낸 레드란이라지만, 그렇다고 일개 병사보고 그를 굴려 먹으란 뜻은 아니었으니.
반면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낀 감시자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저, 저희가 강제로 시킨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토벌 방식이 있다고 한사코 거절해도 끝끝내 레드란 남작과 일리아 경이 강력히 어필하셔서 어쩔 수 없이…….”
“우겨 댔다고? 아니, 그보다 레드란은 알겠는데 일리아라니?”
“애초에 이 토벌은 일리아 경이 생각하신 작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리아가 레드란에게 억지로 저런 일을 시켰다는 건가?”
“그게 조금 복잡합니다. 일리아 경께서 먼저 감시자들이 몬스터를 한껏 유인해 오고 한 번에 처리한다는 작전을 입안하셨고, 직접 솔선수범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고 있던 레드란 남작이 갑자기…….”
“따라서 했다?”
“예! 그렇습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레드란이 스스로 자원해서 한 거라고?
흘긋 고개를 돌려 레드란을 바라봤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십수 마리의 트롤을 전부 끝장낸 레드란이 검을 거두곤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나와 눈을 마주쳤고, 그에 레드란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 모습에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하늘요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 *
하늘요새의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딱 하나, 봄이 와서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정도?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곧장 하늘요새의 본성으로 입성한 나는 이후 내 대리직을 맡겨 놓았던 참모인 알폰스 리글을 호출했다.
“아니, 백작님. 오실 거면 기별이라도 먼저 주시고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물을 게 많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는지…….”
“오는 길에 레드란 남작을 봤습니다.”
“레드란 남작을요?”
“예. 꽤 성실히 지내고 있는 것 같던데요.”
내 말을 들은 알폰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마시죠. 안 그래도 그자 때문에 곤란하던 찹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시죠.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내 강한 어투에 알폰스가 짐짓 자세를 바로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동부의 전쟁을 끝마친 내가 윈드네스트로 향했을 때, 레드란과 일리아를 위시한 인원들은 한발 빠르게 하늘요새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후 그들의 적응은 빨랐다고 했다.
기사단원으로 삼기 위해 선별했던 중장기병들은 로벤 원더스의 지휘 아래 빠르게 하늘요새에 녹아들었고, 레드란과 그의 수하 기사도 처음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잠잠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고 알폰스는 말했다.
“정확히는 레드란 남작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굴었기에?”
“일리아 경을 사사건건 쫓아다닌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쫓아다닌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가령 시종일관 대련을 요구하거나 일리아 경이 수련을 어떻게 하는지 보여 달라는 둥 그런 목적이 다분했습니다.”
“그래서 일리아는 어떻게?”
“일리아 경은 단칼에 거절하셨죠. 자신의 업무는 하늘요새를 안정화하는 것이라며.”
일리아라면 당연히 그랬겠지. 하지만 그게 레드란이 지금 저러고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아아, 그런 건가?
“일리아의 업무가 빨리 끝나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뭐 그런 겁니까 지금?”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일리아 경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레드란 남작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들고 있으니.”
“기가 차는군요.”
웃긴 놈이다. 설마 아직도 일리아를 악마로 의심하고 있는 건가?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자외선을 잔뜩 쐬어 구릿빛으로 변한 로벤이 얼굴을 붉힌 채 나타났다.
“이게 누군가! 우리 성주님 아니신가!”
“로벤 단장님.”
“오면 온다고 말이라도 하지 않고!”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이시는군요.”
“좋지. 아주 좋고말고. 우리 잘난 성주님 덕에 좋아 죽을 것만 같다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 물음에 로벤이 있는 힘껏 눈썹을 부라렸다.
“이보게, 기사단을 만드는 데 마나도 못 쓰는 이들만 보내 놓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게다가 들어 보니 전부 재능도 모자라 기사가 되지 못한 쭉정이라며?”
“뭐, 그렇죠.”
“지금 자네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이러려고 내게 기사단장을 맡긴 것이었나?”
레드란의 일과 들이닥친 로벤의 질문 공세에 머리가 지끈해지던 찰나, 열린 문으로 이번엔 일리아가 들어왔다.
“공자님!”
“이젠 독립해서 공자 아니다, 일리아.”
“……카인 님!”
호칭 떼고 이름으로 부르는 일리아의 말이 괜히 더 섬뜩한 이유는 뭘까.
“잘 지냈냐?”
“못 지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보기 드물게 표정을 굳힌 일리아가 나를 흘겨보는 모습이 적잖이 마음 한구석이 찔려왔다.
“왜 못 지낸 건지는…… 음, 알 것 같긴 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레드란 때문이겠지. 그렇게 졸지에 한꺼번에 문제가 들이닥친 상황에 나는 손을 들어 보였다.
“한 번에 하나씩.”
내 말에 알폰스와 일리아, 그리고 로벤의 시선이 모였다.
“일단 알폰스 경, 레드란에 관한 문제는 내가 직접 만나 보고 해결하겠습니다. 그보다 레드란과 함께 온 수하 기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브세크 경이라고 했던가요. 일단은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는 맥락으로 성내 경비를 맡기고 있습니다.”
“확실히 통제하에 있습니까?”
“하늘요새로 파견을 나온 기사들은 무수한 실전으로 단련된 바람기사단원입니다. 게다가 일리아 경과 로벤 단장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무리 규모가 작은 하늘요새라지만, 그 안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질은 웬만한 군소 귀족의 힘을 훌쩍 상회한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죠.”
“그럼 이제 어디 한번 말해 보게. 저 쭉정이들을 어디다 쓸 작정인지!”
단단히 심통이 난 로벤의 말에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쭉정이 아닙니다. 나름 수백 명의 후보 중에 간신히 고르고 골라낸 인재들이라고요.”
“인재? 자네 혹시 뭘 잘못 먹었나?”
“잘못 먹은 건 없습니다. 그들이 왜 인재인지는 제가 곧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못한다면 단장직이고 뭐고 없는 줄 알고 있게!”
“아, 예.”
로벤의 엄포를 흘려들은 나는 마지막으로 일리아를 바라봤다.
“일리아, 너에겐 맡길 일이 하나 있다.”
“맡길 일이라 하심은…….”
“푸른 산맥에 일정 구역을 정해 줄 테니 그 근방에 대해 샅샅이 파악하고 숙지해 놔라. 실력 좋은 감시자를 차출해서 데려가도 좋아.”
“……알겠습니다.”
내 뜬금없는 요구에도 일리아는 자세한 내막을 묻지 않고 수락했다.
“그리고 여행 물자를 미리 준비해 놓도록 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 부족함이 있어선 안 될 거야. 아마 중간에 보급할 곳이 없을 수도 있으니.”
“물자는 저와 카인 님 것만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한 명 더 간다. 세 명분으로 준비해.”
“한 명이 더 간다고 하심은……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일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레드란도 함께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