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12)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13화(213/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13화
52장. 북방
끝이 안 보이는 능선이 펼쳐져 있다. 그 위로는 수백 년간 녹지 않은 만년설이 햇빛을 반사했다.
살면서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은 절경, 그 풍경 위로 그리폰이 비행했다.
그리폰 위에 얹힌 안장 위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나와 일리아, 그리고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물든 레드란.
사색에 질린 레드란은 안장을 마치 자신의 생명줄인 것처럼 강하게 움켜쥐었다. 평소에 보여 주던 그 오만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겁나냐?”
거친 바람을 뚫고 던진 질문에 레드란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시끄럽다.”
“겁나나 보네.”
“…….”
“세상 모든 걸 깔보던 당당한 남자는 어디에 갔을까?”
내가 던진 농에 듣고 있던 일리아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에 얼굴을 붉힌 레드란이 나를 쏘아보았다.
“이렇게 간다는 말은 없지 않았나?”
“아니라는 말도 없었지. 애초에 말로 푸른산맥을 어떻게 넘어? 그래서 물어봤잖아. 멀미 같은 거 안 하냐고.”
“애초에 날아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잖아, 망할 자식아.”
“그럼 이제는 알겠네.”
“……대체 푸른산맥을 왜 넘어가는 거지? 설마 거기 있는 몬스터까지 토벌하려는 거냐?”
“그렇다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나는 분통을 터트리는 레드란의 말에 낄낄 웃음을 흘리며 품을 뒤졌다.
“가야 할 이유가 있으니 가는 거지.”
일전에 케르윈이 알려 준 북방의 지형은 많은 세월이 흘러 변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듯이.
지금도 그렇다. 일리아가 꼼꼼하게 정찰한 지형과 케르윈의 정보는 세세한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었다.
‘케르윈 말만 믿고 가다간 골치 아플 뻔했어.’
속으로 툴툴댄 나는 이윽고 목표로 삼은 지형이 보이자 그리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저기로 내려가자!”
캬아악-!
내 목소리를 들은 그리폰이 거칠게 울부짖으며 활강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사람 말을 알아듣는 똑똑한 녀석이다. 몬스터이기 전에 영물이란 말이 있을 정도니 그렇겠지.
“맙소사.”
급격한 강하에 레드란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반면 일리아와 나는 칼란다트를 탄 경험이 있어 비교적 속도감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리폰이 사뿐하게 지상에 안착하곤 내리기 좋게 자세를 웅크렸다.
지상에 풀쩍 내려앉은 나는 기지개를 켜며 굳은 관절을 풀었다.
“나쁘지 않은 비행이었어.”
캬악-! 캬아악!
만족하는 내게 그리폰이 부리를 들이밀어 왔다. 그에 나는 가방에서 고깃덩이를 꺼내 던져 주었다.
“고생했다. 이만 돌아가 보라고.”
고기를 낚아챈 녀석은 씹지도 않고 꿀떡 삼키더니 이내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일리아가 작게 감탄을 흘렸다.
“사람을 세 명이나 태우고 날았는데도 힘이 넘쳐 보이네요.”
“그러게나 말이야.”
“나중에 창공 기사단이 출병하면 그리폰을 타고 직접 지휘하셔도 되겠습니다.”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저 녀석이 전장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 그렇군요. 히포그리프를 계속 양산하려면 그리폰의 안전이 최우선일 테니.”
“그러니까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시선을 돌렸다. 나와 일리아하고는 달리 몸을 숙여 헛구역질하는 레드란이 보였다.
“일단은 쉴 곳부터 찾아야겠는데.”
“그렇겠네요.”
반쯤 탈진한 레드란에게 다가간 일리아가 부축하려 들자 레드란이 핼쑥한 얼굴로 팔을 쳐 냈다.
“필요 없어.”
삭막한 레드란의 반응이었지만 일리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신경을 거두었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린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북방이라…….
끝없이 넓게 펼쳐진 평원이다. 마치 다른 계절보다 겨울이 훨씬 긴 만주벌판과 같은 느낌이랄까. 냉대 기후 특유의 쌀쌀한 공기가 확연히 느껴졌다.
수백 년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기엔 생각보다 평범했다. 내가 상상했던 북방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그런 지옥도였는데 말이지.
“백작님, 멀리 숲이 보입니다.”
그때 일리아가 멀찍이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멀리 침엽수로 이루어진 거대한 수림이 보였다.
“숲이 꽤 큰데.”
“대수림만큼은 아니겠지만 만만치 않게 크군요.”
숲은 케르윈이 준 지도에 표시된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영역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이겠지.
수목 끝자락에는 녹지 않은 눈들이 하얀 스카이라인을 그려 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 그대로 간다. 저 숲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목표 지점까지 루트를 개척하자고.”
“주변에 야생마라도 있다면 좋겠는데요.”
“동감이다. 말이 없으니 이리저리 움직이는 데 제약이 너무 많아.”
어떻게든 말을 데리고 오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나?
아니, 다시 생각해 봐도 그건 무리다. 말을 끌고 그 험준한 푸른산맥을 넘는 건 자살행위지.
어찌어찌 산맥을 빙 둘러 말을 끌고 온다 쳐도, 거기에 드는 시간과 품을 따져 보면 결과적으론 더 손해다.
“어쨌든 가 보자고.”
“예.”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북방이다.
그런 위험한 곳에서 하릴없이 서 있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다. 그것을 알기에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멀리 보이는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숲에 도착한 직후 일리아는 주변 정찰에 나섰고, 나와 레드란은 편히 쉴 수 있는 야영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건 대체 뭐야?”
나무를 모아 모닥불을 만들던 레드란은 아공간이 걸린 가방을 보곤 입을 벌렸다.
“마법의 주머니라고 할까.”
작은 손가방에서 쑥쑥 튀어나오는 캠핑 물품을 보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웃기지도 않지. 이렇게 편리한 물건이 있었다니.
“마법이 걸린 가방인가?”
“보면 알잖아.”
“어떻게 왕실에도 있을까 말까 한 그런 보물을 가진 거지?”
“훔쳐 온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레드란과 합심해 제법 안락해 보이는 야영지를 만들자 일리아가 토끼 몇 마리를 손에 쥐고 나타났다.
토끼를 건네받은 나는 능숙하게 손질하며 일리아에게 물었다.
“주변은 어때?”
“조용합니다. 별다른 위험 요소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원래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소식이다.
하지만 여기는 왕국이 아닌 북방이다. 그래서 더 의아함이 느껴졌다.
“위험한 게 없다라……. 나쁜 소식은 아니지만 조금 꺼림칙한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와 일리아의 대화에 모닥불을 피우던 레드란이 눈을 찌푸렸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몬스터가 없으면 좋은 거 아닌가?”
“우리가 있는 곳을 생각해 봐라.”
레드란은 내 말에 잠시 잊었던 현실 감각을 되찾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긴 북방이었지.”
“사시사철 몬스터가 들끓는 지옥. 수많은 탐험가가 북방으로 향했지만 돌아온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지.”
내 말을 들은 레드란이 눈가를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너, 설마 유적지 따위나 찾으러 여기에 온 건 아니겠지? 지금 가지고 있는 그런 가방을 얻으려고?”
“트레저 헌터엔 흥미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어.”
“그렇다면 북방엔 대체 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해야 할 일이라니.”
거듭 물어 오는 레드란의 말에 나는 손질을 마친 토끼고기를 나뭇가지에 꿰기 시작했다.
“있다 보면 알게 될 거다. 지금 말해 줘 봤자 믿을 리도 없고.”
“…….”
어물쩍 넘기는 내 말에 수상한 눈빛을 띤 레드란이었으나 더는 물어 오지 않았다.
“뭐, 일단은 따르도록 하지. 지금 와서 혼자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좋은 자세야.”
그렇게 노릇하게 익어 가는 토끼고기를 둔 나는 생각에 잠겨 북방에 온 목표를 다시 상기했다.
결계의 강화.
케르윈은 종족전쟁 이후 북방의 몬스터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대한 결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결계는 공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범인이야 뻔했다. 네비로스 교단이겠지.
그를 눈치챈 케르윈은 이후 볼룸산맥에 기거하며 스스로 동력원이 되어 마력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당연히 이후 문제는 사라졌다.
케르윈은 강력한 마법사였고, 그녀의 힘을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을 테니.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케르윈의 수명은 다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노린 것인지 결계 또한 알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약해지고 있었고.
거기서 내가 할 일이 정해진 셈이다.
아휀을 데려가 결계를 강화한다. 더불어 가능하다면 결계를 약화시키는 근원까지 제거한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미션이다. 하지만 문제는 북방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거지.
‘조심해야겠지.’
뭐가 있을지 모르는 동네니까.
게다가 결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할 테니 이종족을 만나라는 케르윈의 말도 마음에 걸렸다.
대체 어떻게 만나서 뭘 어떻게 도움을 구하라는 건지.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일리아와 레드란을 돌아보았다.
“어쨌든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계획을 짜 보자고.”
내 말을 들은 일리아가 지도를 꺼내 살폈다.
“말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상당합니다. 몬스터의 위협까지 생각하면 쉬운 여정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탈것이 없으니 골치가 아프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리폰을 이용해 단숨에 주파해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북방엔 비행 몬스터도 득시글하다고 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만에 하나 그리폰이 다치면 곤란해.”
“그렇군요.”
“어쨌든 자세한 건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푹 쉬어 두자고.”
말을 마친 나는 잘 익은 꼬치를 집어 둘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간소한 식사가 마무리되고 불침번 순번을 정한 우리는 각자 잠자리를 꾸렸다.
그때 마지막 순번을 뽑아 기분 좋게 드러눕던 레드란이 지나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잠자리 한번 편안하군. 어릴 때 자주 놀러 다녔던 숲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레드란의 말에 나는 픽 웃음을 흘렸다.
“누가 보면 소풍이라도 나온 줄 알겠어.”
“농담이 아니라고. 이런 숲을 북방이라고 하면 대체 누가 믿겠어?”
툴툴대는 레드란의 말에 불침번을 준비하던 일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란 남작의 말이 맞긴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주변을 정찰했을 때 숲이 기이하리만큼 평온해 보였으니까요.”
“그 정도라고?”
“예. 이 정도 숲은 절대 작은 규모가 아닌데, 그렇다면 응당 몬스터의 배설물이나 흔적이 있어야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이곳이 북방이란 걸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하지요.”
숲이 평온하다라…….
일리아까지 동조하고 나서자 모포 위에 누웠던 나는 뜻 모를 뒤숭숭함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수가 줄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그럴 수도 있긴 합니다만…….”
“아니, 확실히 이상하긴 해. 몬스터가 득시글한 북방인데 이 정도로 조용하다니.”
재차 의심을 표하는 내 말에 일리아가 눈을 좁혔고, 드러누워 있던 레드란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왕국 내륙에도 이 정도 규모의 숲은 있다. 그리고 매년 사람을 들여 몬스터를 토벌하지. 하지만 아무리 토벌해도 기어코 살아남은 몬스터는 있기 마련이었어.”
“…….”
“하물며 왕국 내부의 숲도 그럴진대, 이곳은 북방이지.”
일리아가 사뭇 긴장한 얼굴로 일어나 검집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북방에 몬스터가 많다는 사실이 거짓일 리는 없지 않습니까.”
“둘 중 하나겠지. 이 숲이 북방이 아니든가, 아니면 몬스터의 씨가 말랐든가.”
뒤이어 몸을 일으킨 레드란이 작게 으르렁거렸다.
“후자라면 무엇에 의해?”
일리아의 짧은 질문과 동시에 밤의 숲을 가로질러 스산한 바람이 맴돌았다.
그에 나와 일리아, 그리고 레드란의 시선이 좌우를 둘러싼 숲으로 향했다.
투두둑…… 투둑…….
정신을 집중하니 멀리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신이 들었다. 이 숲에 우리 말고도 누군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경계심을 품었다는 걸 알아챘는지 이내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온다.”
내 짤막한 말을 들은 레드란과 일리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