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1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17화(217/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17화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은 다크엘프들도 내심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다만 적극적으로 잡아내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향후 더 큰 보복으로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고.
그런 판국에 외부인인 나와 일행을 끌어들인 블래우의 행동은 수많은 불안감을 만들어 냈다.
“그들과 싸운다고? 어떻게?”
“그냥 지금처럼 살아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괜히 심기를 거슬러서 큰일이 나는 게 아닐지…….”
아무리 오랫동안 그들에게 굴복해 왔다고 한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관적인 반응이었다.
그에 의문이 생긴 나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블래우와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이곳에 찾아오는 놈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지?”
“대여섯 정도입니다.”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순찰대원들 중엔 마나를 다루는 이들이 꽤 있던데, 싸워 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
내 물음에 블래우가 자신의 옷깃을 슬쩍 열어 보였다.
매끄러운 피부 위로 돋은 쇄골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 가슴팍 중앙에 그려진 검붉은 오망성이 보였다.
“저를 포함한 모든 일족에겐 이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무슨 용도인지는 대강 알 것 같긴 해.”
“예. 저희는 그들이 대동한 마법사의 말 한마디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력해집니다. 그렇기에 지금껏 항거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죠.”
불길함을 넘어 징그럽게 보이는 그 낙인을 보며 나는 아휀에게 물었다.
‘저거 뭔지 알겠냐?’
[내가 아는 보통의 마법은 아니야. 아마 특수한 오브젝트를 매개로 봉인을 건 것 같은데…….]‘특정한 오브젝트라면, 마석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 느껴지는 기운이 그것과 많이 닮아 있으니까. 으아아!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네.]‘네가 풀 수는 없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마법을 파훼하는 건 내 능력 밖이야. 우리 엄마라면 몰라도.]어쨌든 저것도 마석을 이용했다는 건가? 지랄, 무슨 만능의 돌도 아니고 갖다 붙이면 다인 줄 아나.
혀를 찬 나는 순찰대원을 전력에서 제외한 채 생각해 봤다.
‘레드란과 일리아라…….’
둘 다 자기 몫은 충분히 해낼 기사다. 게다가 이곳에서라면 나 또한 눈치 보지 않고 힘을 쓸 수 있고.
잠시 생각을 멈춘 나는 블래우를 바라봤다.
“그들의 실력은?”
“게일의 실력보다 몇 수는 앞선 이들입니다. 게다가…… 무엇인지 모를 해괴한 방법을 사용하면 본 실력에 두 세 배는 더 강해졌습니다. 우리로선 낙인이 없더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요.”
해괴한 방법이라……. 과거 바슈른 영지전에서 마주했던 두 언홀리 나이트가 쓴 기술인가. 그거라면 뭐 비슷한 게 우리 쪽에도 있지.
흘긋 고개를 돌려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레드란을 바라보자 녀석이 뭘 보냐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뭐 어쨌든.”
레드란에게서 시선을 거둔 나는 블래우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싸움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대신 다른 거나 좀 도와 달라고.”
“다른 것이라면…….”
블래우의 답에 나는 품속에 넣어 두었던 북방의 지도를 꺼냈다.
“여기에서의 일 말고도 내가 할 일이 좀 많아서 말이야.”
말을 마친 나는 블래우에게 케르윈이 표시해 준 지역을 가리켰다.
“여기에 뭐가 있는지 혹시 알고 있나?”
내 물음에 블래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잊힌 성은 왜…….”
“잊힌 성?”
“예. 지금의 저희야 숲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선조들은 더 나은 환경의 터전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탐사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얼핏 듣기론 지금 가리키신 곳에 고성이 하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를 일이라 선조들은 잊힌 성이라 불렀고요.”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를 고성이라…….
이보다 더 조건이 잘 맞을 수가 있을까?
아니, 근데 케르윈 그 양반은 고성이 있단 말은 안 했잖아? 아, 말할 필요가 없나? 어차피 그곳에 가면 떡하니 보일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아마 내가 찾는 곳일 것 같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정보는?”
“말했다시피 제 세대에 이르러선 숲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기에 딱히 정보라고 할 건…….”
내 물음에 블래우가 고개를 저었다.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알맹이가 없단 사실에 내가 혀를 차던 그때였다.
“하지만 그 근방에 대해 자세히 알 만한 이들이라면 있습니다.”
“알 만한 이들?”
“그 고성이 있는 영역엔 수인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라면 그곳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겠죠.”
수인족이라면 짐승과 사람을 섞어 놓은 듯한 뭐 그런 놈들인가? 진짜 별의별 이종족이 다 있단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과연 순순하게 협조해 줄까?”
“제가 전서를 한 장 써 드리겠습니다.”
“네가?”
“과거 수인족은 저희 선조들에게 큰 빚을 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 부탁이 더해진다면 그들도 부정적이진 않을 겁니다.”
흐음, 또 한바탕 드잡이질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렇게 일이 풀린다면 다행이지.
“물론 그걸 써 드리려면 우선…….”
블래우의 조심스러운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들부터 구해 달라 이건가? 그거야 걱정하지 말라고.”
* * *
그날 밤.
일리아와 레드란을 따로 불러낸 나는 고요한 숲속에서 입을 열었다.
“죽이는 건 쉬워.”
“……쉽다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내 말을 들은 레드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 그대로다. 상대가 몇이건 죽이는 건 쉬워. 그냥 전력을 다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 반대로 살리는 건 어렵지. 더군다나 상대의 실력이 그리 낮지 않다면 더더욱.”
“…….”
“하지만 나는 그들을 살려 둬야 한다. 이유야 당연히 생포해야 얻을 게 많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도 바보가 아니니 그냥 당해 주진 않을 거야.”
과거 바슈른 영지전에서 만났던 언홀리 나이트들은 죽고 나자 시체가 불에 타 사라졌다.
그것을 생각해 본다면, 놈들은 적에게 정보를 내주지 않도록 언제든 스스로 목숨을 끊을 방도가 있을지도 몰랐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는데.”
내 말을 들은 레드란이 손을 들었다.
“뭐지?”
“그냥 전부 깔끔히 죽여 버리면 될 일이지 뭐하러 생포하겠다는 거야? 본거지라도 알아내서 말끔하게 소탕하려고? 뭐하러? 원하는 것만 얻어 내면 저 다크엘프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않나?”
왜 굳이 어렵게 가냐는 레드란의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포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
“그래.”
“그놈들이 어제 내가 말했던 놈들이니까.”
“어제?”
레드란의 표정이 괴이하게 변했다.
아마 어젯밤, 숲속에서 잠복하고 있을 때 내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겠지.
“그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교단이니 뭐니 하는 그 이야기?”
“어. 그거 맞아.”
또 그 소리냐는 듯 레드란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지금 그딴 헛소리나 들으려고 이 북방까지 따라온 줄 아는 거냐?”
“헛소린지 아닌지는 듣고 나서 판단해.”
“돌아 버리겠군.”
한숨을 푹 내쉰 레드란이 나무 그루터기에 털썩 앉았다.
“말해 보든가. 또 무슨 정신병 걸린 소리를 할지 기대되는걸.”
“닥쳐라, 레드란.”
정신병자라는 말에 일리아가 으르렁거리며 레드란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레드란은 지지 않고 시선을 받아 냈다.
“너, 지금 저 소리를 믿고 따르는 거냐?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악당들이 음지에서 음모를 꾸민다는?”
“네가 뭘 알아?”
“뭘 아냐고? 알 리가 없지. 애초에 정신병자나 지껄일 망상이니까.”
스르렁!
기어코 일리아가 검을 뽑았다.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검이 레드란을 향해 쏘아졌다.
레드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빠르게 뽑힌 두 검이 밤하늘 아래 부딪쳤다.
카강!
순간 불꽃이 튀며 레드란과 일리아의 사이를 수놓았다.
“닥치라고 했다.”
“이런, 망상증이 옮아 버린 거냐?”
이죽거리는 레드란의 말에 일리아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입조심해. 그때처럼 또 봐주진 않을 거니까.”
일리아가 일전에 붉은성 앞에서 벌인 결투를 상기하자 레드란 또한 이를 드러냈다.
“그냥 그때 죽이지 그랬나? 아, 이런 개소리나 듣게 하려고 살려 둔 거였나?”
“경고는 끝났어.”
분노는 사라지고 일리아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동시에 그녀의 검에 마나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레드란도 마찬가지였다.
선을 넘는 둘의 모습에 결국 나 또한 검을 뽑았다.
카가각!
수직으로 검을 휘둘러 마주한 둘을 떼어 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해.”
내 만류에도 붉은 안광의 레드란과 푸른 기운을 흘려 대는 일리아는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만하라고.”
“…….”
결국 일리아가 먼저 검을 거뒀다. 다만 검집에 검을 꽂은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고개를 내 반대로 돌렸다.
화난 일리아라……. 후환이 두려운데.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레드란을 바라봤다.
“레드란, 너와 내 관계를 의뢰인과 의뢰주로 정립한 건 나였지. 하지만 그래도 선은 지키는 게 좋을걸. 내가 정신병자로 보여? 그렇다면 언제든 떠나도 좋아. 선택은 네가 하는 거니까. 하지만 선택엔 항상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지.”
“…….”
“좀 더 네 처지를 깨닫는 게 어때? 그러면 우리 모두 쾌적한 여정이 될 텐데.”
내가 없다면 그저 전쟁에서 패배한 전범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걸까, 레드란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든 레드란은 한결 침착해진 얼굴로 일리아를 바라봤다.
“내가 선을 넘었군. 미안하다.”
“…….”
일리아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내게 돌렸을 뿐.
사태가 진정됨을 느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너희 둘이 친구가 되란 말은 하지 않아. 하지만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려 들지는 마. 알겠어?”
“알았다.”
“……알겠습니다.”
둘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통정리는 끝났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손가락으로 레드란을 가리켰다.
“다시 시작하지. 놈들을 생포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그걸 설명하려면 일단 레드란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내가 알아야 할 것?”
“네가 가진 힘과 놈들이 가진 힘은 비슷한 면모가 있다는 것.”
레드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가진 힘이라면, 주술을 말하는 거냐?”
“그래. 레드란 너 또한 주술로 새긴 문장을 통해 강력한 힘을 얻었지. 그들도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 두 눈이 붉게 타오르고 인간 같지도 않은 괴력을 내뿜어.”
“나와 같은 힘을 지닌 이들이 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겉모습만 비슷할 뿐이야. 둘 다 겪어 본 내가 느끼기론 두 힘은 사용법부터 본질까지 아예 결이 다르다.”
실상이 그랬다. 둘 다 힘의 근원이 광혈초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완전히 다른 힘이었으니까.
우선 레드란이 가진 힘은 이성을 잃고 광폭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문장이란 비교적 온건한 힘으로 통제하기에 사악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언홀리 나이트들은 다르다.
과거 칼날부족 드로쉬가 그러했듯 주술이 아닌 마석의 힘으로 광혈초의 부작용을 제어해 강력한 힘을 취했으니까.
물론 내용만 보면 그게 뭐 나쁜 일인가 싶겠지만, 그 마석(魔石)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어둠의 정령을 봉인해 놓은 정령석을 만든다. 이후 그 정령석에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흑마법을 통해 삿된 기운을 주입한다.
그렇게 되면 그 정령석은 언제든 마나만 불어넣게 되면 사악한 마기를 뿜어내는 마석이 되고, 그 힘을 이용해 광혈초의 부작용은 제어하고 효능은 끌어올리는 게 놈들의 방식이었다.
“…….”
이러한 설명을 들은 레드란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후 머뭇거리며 입을 연 녀석의 얼굴은 말 그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진짜냐?”
“왜, 또 내가 정신병자 같냐?”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잠시 후, 레드란의 표정은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제물로 사용한다고?”
“그래.”
“혹시 그 네비로스 교단과 언홀리 나이트란 놈들은 인간이 아닌 건가?”
“내가 아는 한 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그런 짓을 저지르냐.
그 간단한 질문에 나는 무어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런 놈들이니까.”
그냥 그런 놈들이다.
그렇게 말하자 레드란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개 같은 놈들이군.”
“그뿐만이 아니야.”
“아니라고?”
“레드란, 네가 가진 힘은 분명 막강해. 하지만 그런 힘을 가지고도 결국 동부 영지전에선 패배했지. 왜 그럴까?”
“나 혼자 강해 봤자 뭔 의미가 있나? 붉은 기사단을 다 잃은 순간 패배는 당연한 거였어.”
“그래. 바로 그것 때문에 마석이 위험한 물건이란 거다.”
“그것 때문이라니 대체 지금 무슨…….”
말을 잇던 레드란이 순간 입을 꾹 닫았다. 그러곤 낮아진 목소리로 재차 이었다.
“그 마석이란 것만 있으면 되는 건가?”
“그래.”
“나나 붉은 기사단처럼 문장과 마나, 그리고 검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건가? 그 마석이란 것 하나만 있으면 되는? 어이가 없군.”
“실제로 칼날부족이란 오크들이 마석을 이용해 그 힘을 사용하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몬스터들도?”
레드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마 상상해 본 것이겠지. 압도적으로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몬스터에 맞서 승리해 온 것은 바로 마나라는 힘이 있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마석만 보유할 수 있다면 몬스터들도 그에 못지않은 힘을 가질 수 있다.
하물며 기사는 그 숫자가 아주 극소수인 재원이다. 하지만 몬스터는? 숫자만 따져도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지.
그런 몬스터들이 전부 마석으로 인해 레드란과 비슷한 힘을 얻게 된다면…….
“위험한 물건이군.”
레드란이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소감을 남겼다.
“그래. 위험한 물건이다.”
“그래서 지금 이 북방에 온 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북방에 온 이유는 좀 달라.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내 최종 목표는 마석을 만들어 왕국을 뒤엎으려는 놈들을 추적하는 거다.”
내 말을 들은 레드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붉은성에서 그랬던 거냐?”
“그랬다니?”
“그때 내가 분명 네게 함께 손을 잡아 왕국의 패권을 노리자고 말했었지. 하지만 넌 그딴 건 소꿉장난에 불과하다는 태도로 일관했어. 그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뭐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쓱 흘려넘겼다.
“그런 셈이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일단은 내 최측근들뿐.”
“왜 널리 알리지 않은 거냐?”
“이유야 뻔하잖아. 나는 지금 그들을 쫓고 있으니까. 근데 아직 꼬리도 못 잡은 판국에 그 사실이 왕국 전역에 퍼진다고 생각해 봐.”
“……아마 어떻게든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 방비하겠지.”
“그래. 게다가 왕국 내부엔 그들과 엮인 놈들이 있을 테니 더더욱 득보다 실이 많아. 더군다나 그 소문이 퍼진다면 왕국 전역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거다. 그건 바람직하지 못해.”
내 말을 들은 레드란이 눈가를 좁혔다.
“놈들과 엮인 내통자가 있다는 건, 로드키우스를 말하는 거냐?”
“일단 내 추측에는.”
이제야 사건의 전말을 대부분 알게 된 레드란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그때 로드키우스가 최종 목표라고 말했던 거군?”
“뭐 그렇지.”
이후 레드란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말해 준 사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듯했다. 이후 짧은 시간이 흐르자 레드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완전히 믿겠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진실이야 곧 밝혀지겠지. 곧 이곳에 찾아올 놈들이 네가 말한 그놈들이라 했으니.”
“맥을 잘 짚었어.”
“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놈들과 싸우고 생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군.”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미안하다.”
레드란의 사과에 픽 웃어 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처음에 말했던 것의 연장이다. 죽이는 건 쉽지만 살리는 건 어려워. 게다가 놈들은 아마 우리에게 사로잡히느니 자결을 택할 정도로 지독한 녀석들이고. 대여섯이라 했으니 숫자는 많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만.”
레드란은 바보가 아니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여럿을 노리기보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사로잡자는 말인가?”
“그래.”
말을 마친 나는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캐피탈에서 가져왔던 것을 꺼냈다.
꺼낸 것은 착용자의 마나를 억제하는 아주 값비싼 구속구였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기에 비싼 돈을 주고 항시 갖고 다니던 물건이었다.
이거라면 혹시 모를 마법을 이용한 자결을 막을 수 있겠지.
“내가 한 놈을 골라 구속구를 채운 뒤 너와 일리아에게 보내겠어.”
“우리에게 한 놈을 보내겠다고? 놈들이 장님도 아니고 순순히 사로잡혀 줄 것 같나?”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해 오는 레드란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어이가 없군. 그래서 그렇다고 치면 다음엔?”
“간단해. 너희는 포로를 인도받는 즉시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면 된다.”
“달아나라고?”
“그래. 달아나.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멀리.”
“잠깐, 그렇게 되면 너 혼자 모두를 상대해야 할 텐데 가능하겠어?”
레드란의 말에 나는 지겨움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말했잖아. 죽이는 건 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