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1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19화(21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19화
그렇게 한바탕 검풍이 지나간 뒤, 나는 천천히 검을 내렸다.
주변 광경은 처참했다. 찢겨 나간 갑옷과 검날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근처 지반은 마치 거대한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모양새였다.
‘시체들은…….’
이제는 시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검은 기사들의 시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바슈른 영지전 때와 같은 광경이었다. 아마 모든 언홀리 나이트에겐 어떤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아마 저 애뮬릿에 그 마법이 걸려 있겠지.’
사체가 불타고 남은 자리엔 어김없이 작은 애뮬릿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마치 군번줄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전부 수거한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다, 힘들어.’
베인 린다이어의 세 번째 오의를 쏟아 낸 탓일까, 나는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짐을 느끼며 천천히 숲으로 향했다.
* * *
사로잡은 마법사를 끌고 돌아온 우리를 본 블래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무래도 마법사를 알아보는 듯한 눈치에 나는 턱짓을 했다.
“아는 얼굴인가?”
“……주기적으로 일족을 차출해 가던 인간입니다.”
“맞게 데려왔다는 소리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불안한 얼굴을 한 블래우에게 손사래를 쳐 주었다.
“걱정할 것 없어. 마나를 쓰지 못하게 구속구를 채워 놨으니까.”
“그렇습니까.”
“아직 다른 이들에겐 알리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 캐낼 건 다 캐낸 다음 자세히 말해 줄 테니.”
“알겠습니다.”
이후 블래우에게 비어 있는 집을 하나 빌린 나는 마법사를 의자에 앉히곤 단단히 묶어 포박했다.
뒤이어 레드란이 마법사의 입을 벌려 안을 샅샅이 조사했다. 혹시라도 독약을 숨겨 놨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과정이 있음에도 마법사는 여전히 기절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일어날 기미가 없군요. 혹시 몸에 큰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확인해 보는 거야 간단하지.”
일리아의 말에 듣고 있던 레드란이 앞으로 나섰다. 이후 레드란은 마법사의 검지를 꽉 부여잡더니 이내 반대로 꺾어 부러트렸다.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마법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곤 이내 손등과 맞닿아 버린 자신의 손가락을 발견하곤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려 댔다.
“읍, 우읍…….”
재갈이 물려 있어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눈만 부릅뜬 그 모습에 레드란이 피식 웃었다.
“아, 부러졌나? 미안하군.”
사과한 레드란이 이내 부러진 마법사의 손가락을 잡아당겨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으우웁! 으읍! 읍!”
“뭐야? 그냥 접힌 대로 두라고?”
레드란이 늘어진 손가락을 다시 위로 접자 마법사의 눈이 튀어나올 듯 뜨였다.
“으으웁…….”
레드란의 눈에는 시종일관 분노가 피어올라 있었다. 내가 말했던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임을 알게 된 결과였다.
“재갈을 풀어 줄 테니 잠자코 있어라.”
말을 마친 레드란이 천천히 재갈을 풀어 주자 마법사가 눈을 부라렸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지금…….”
레드란은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겁박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재갈을 물리곤 마법사의 중지를 움켜쥐었을 뿐.
그러곤 좀 전에 했던 일련의 동작을 반복했다. 섬뜩한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고, 마법사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우으윽…….”
그러곤 천천히 레드란은 다시 재갈을 벗겨 냈다.
“이런 병신 같은 놈들, 너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위에서 알게 되면…….”
간단했다. 레드란은 또다시 재갈을 물리곤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 과정을 몇 번 거치자 마법사의 오른손은 평생 제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그에 레드란이 마법사의 재갈을 풀어 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지금 여기에 병신은 너밖에 없는 것 같은데.”
비웃는 레드란을 노려보던 마법사가 재갈이 풀린 틈을 타 혀를 깨물었다.
하지만 그쯤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마법사의 뺨을 움켜쥐어 강제로 입을 벌린 레드란이 포션을 들이부었다.
서서히 아물어 가는 혀를 확인한 레드란이 비릿하게 웃었다.
“혀를 깨물어?”
레드란의 차가운 가죽장갑이 마법사의 앞니를 틀어잡았다.
“어디 잇몸으로도 깨물 수 있나 볼까?”
“자, 자까하…….”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레드란의 손이 움직였고, 일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의 턱을 타고 흐르는 피가 장갑에 묻자 레드란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더럽게.”
그러곤 재차 다른 이를 잡으려는 모습에 나는 손을 들었다.
“잠깐.”
내 제지에 레드란은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에 고통에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충혈된 마법사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하, 하나만 묻자.”
마법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나, 날 생포한 이유는 정보를 캐내려는 거겠지?”
“당연한 걸 묻고 있네.”
“묻는 걸 전부 답해 준다면 살려 줄 거냐?”
“아니.”
“아니라고?”
“그래. 다 듣고 나면 죽일 거야.”
“그러면서 지금 나보고 협조하라는 거냐?”
마법사의 분노에 나는 엄지를 세워 뒤를 가리켰다.
뒤에는 상자에 수북히 쌓인 포션이 있었다. 북방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아공간 가방에 잔뜩 담아 온 것들이었다.
그를 보고 사색에 질린 마법사에게 나는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었다.
“방금 말했듯, 나는 네가 정보를 내놓든 말든 죽일 생각이야. 그러니 딱히 네가 어떤 선택을 하건 상관없어. 하지만 너한테는 같은 죽음에도 어떤 방식이냐가 굉장히 중요해 보이는데, 아닌가?”
“…….”
포션을 바라본 마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상상해 봤겠지. 아무리 고문을 받아도 상처가 재생되는 자신의 몸을.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내버려두자 틈을 탄 마법사 재빠르게 입을 웅얼거렸다.
그에 레드란이 재갈을 물리려 했으나 나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차피 주문을 외워 봤자 구속구 때문에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네가 드래곤이 아니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걸.”
내 말을 들은 마법사의 눈이 빠르게 아래로 향했다. 이후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구속구를 확인한 마법사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한가?”
내 물음에 절망에 빠진 마법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결국 가망이 없음을 느꼈는지 마법사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협조한다면 깔끔하게 죽여 줄 거냐?”
“약속하지. 아무런 고통도 없을 거다.”
“……좋아.”
깊은 한숨을 내쉰 마법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뭐가 궁금하지?”
“일단 다크엘프들에게 걸린 구속 마법을 푸는 방법부터.”
“그거야 어렵지 않지.”
고개를 끄덕인 마법사가 마법 수식을 읊기 시작하자 일리아가 받아 적기 시작했다.
이후 일리아가 수식이 적힌 종이를 내게 가져왔다. 나는 그것을 아휀에게 들려주었고, 들려온 대답은 간단했다.
[구라 치네!]‘확실해?’
[애초에 구조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엉터리 수식이야.]아휀의 말을 들은 나는 레드란을 바라봤다. 그에 레드란은 마법사에게 다가가며 히죽 웃었다.
“괜찮아. 아직 부러트릴 데는 많으니까.”
* * *
서너 시간에 걸친 신문은 끝났다.
만신창이가 된 마법사를 처리하기 위해 나갔던 레드란이 복귀하자,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얻어 낸 정보를 추려 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확이 그리 많지 않아.”
“아무래도 그리 높은 지위를 가진 놈은 아닌 것 같더군요.”
일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잔챙이라면 잔챙이지. 마법사를 잔챙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만.”
묻고 싶은 건 전부 물었다. 그러나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얻은 건 아니었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나는 천천히 정리한 수확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름은 게르히드. 하는 짓이나 생긴 꼴이나 당연히 악독한 짓을 일삼는 흑마법사고. 네비로스 교단에 충성한 이유는 흑마법 연구를 풍족한 지원 아래 할 수 있기 때문이라더군.”
무미건조하게 이어진 내 말을 들은 레드란이 이를 드러냈다.
“빌어먹게도 시답지 않은 이유군.”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계속해서 녀석이 뱉은 정보를 읽었다.
“어쨌든, 게르히드는 윗선에서 지령이 내려올 때마다 언홀리 나이트들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고 한다. 임무는 차출이 원활하도록 구속 마법을 이용한 엘프들의 통제 및 새로 태어난 다크엘프에게 구속을 거는 것이고.”
“그다음엔?”
“자신의 임무는 다크엘프를 차출하는 것에 그친다고 했어. 그 이후로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른다 했고.”
“지령은 어디서 어떻게 받는 거지?”
“그건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주도적으로 움직인 것은 그 검은 기사들이라 했으니.”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를 잡았어야 했다는 거군.”
레드란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레드란, 흑마법사를 죽였을 때 시체가 불타던가?”
“시체? 불에 안 타던데.”
“그렇다면 마법사를 잡는 게 맞았어. 아마 검은 기사들은 모종의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것 같다.”
“아아, 아까 기사들은 전부 시체가 불타 없어졌었지. 누가 악당 아니랄까 봐 웃기는 녀석들이군.”
쯧쯧 혀를 찬 레드란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놈들 하는 짓이 딱 보니 점조직 형태인데 뒤쫓으려면 상당히 골치가 아프겠어.”
레드란의 말대로 놈들은 뒤 구린 일을 벌이는 범죄 단체가 으레 그렇듯, 점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아마 하부의 조직원들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기계처럼 명령을 수행하겠지.
그렇기에 고생해서 꼬리를 잡아 봤자 그 윗선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는 매우 힘들다는 게 결론이었다.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그런 적막을 깨려는 듯 일리아가 입을 열었다.
“흑마법사는 처음에 자신들은 푸른산맥 인근 협곡에 은신처를 만들어 그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죠.”
“그랬지.”
“혹시 모르니 그곳도 조사해 볼 필요는 없겠습니까?”
일리아의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레드란이 웃었다.
“이봐, 그걸 믿는 거냐?”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일리아가 싸늘하게 대답하자 레드란이 콧방귀를 뀌었다.
“뻔하잖아. 우리가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정보니까 흘린 거겠지. 그래서 카인이 그곳이 아니라 버려진 고성 아니냐고 되물었던 거고. 그 녀석 눈동자 흔들리는 걸 못 봤어?”
“…….”
“이거, 아마추어랑 함께 다니려니 골치 아프네.”
레드란의 말대로였다. 교차 검증이 불가능한 신문은 양날의 검이다. 상대방의 거짓 진술을 믿어 버리는 실수가 나올 수도 있기에.
그래도 물어볼 수 있는 건 일단 전부 물어봤다. 조직의 구성과 규모, 목적, 검은 기사들의 신원 등등.
대답은 들었지만 앞서 말했듯 신뢰할 수는 없는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또 다른 녀석을 잡는다면 이걸 토대로 검증해 볼 순 있겠지.
하지만 잊힌 성이 은거지라는 건 확실한 정보다. 그곳은 우리 쪽에서도 위치와 거리를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결론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는 거다.”
내 말을 들은 레드란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쁜 소식부터 듣자고.”
“놈들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잊힌 성을 찾아내고 은거지로 삼았다는 것.”
“단순히 다크엘프나 잡아 가자고 기사 다섯을 운용하는 놈들이지. 그런 놈들의 근거지를 달랑 우리 셋이서? 확실히 나쁜 소식인데.”
불편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은 레드란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좋은 소식은?”
“황량한 북방을 오랫동안 헤맬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현재 결계는 공격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불분명했으며, 많은 경우의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푸른산맥이나 볼룸산맥 어딘 가에서 결계 그 자체를 부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경로를 노려 마나의 유입을 차단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든가.
물론 최종 목표는 결계의 강화다.
하지만 케르윈은 부차적으로 가능하다면 그 원흉을 찾아 제거해 줄 것도 부탁했다. 일종의 서브 퀘스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놈들의 은거지가 밝혀진 이상, 북방을 떠돌며 찾아 헤맬 필요가 없어졌다.
“그것참 좋은 소식이네.”
툴툴대는 레드란의 말을 무시한 일리아가 나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지. 어쨌거나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분명하니까.”
“잊힌 성으로 향해야 하는 거군요.”
“그래. 만반의 준비가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니.”
만약 다크엘프의 통제라는 손쉬운 임무를 마치고 금방 복귀해야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불현듯 한 명이라도 탈출시켜 내 존재를 알리려고 기를 쓰던 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북방에 있다는 걸 놈들이 알게 되면 어떤 수작을 부릴까.
마법을 이용해 지반을 뒤엎어 잊힌 성을 무너뜨린다거나, 아니면 흑발 사내를 비롯한 정예를 호출해 나를 추격한다거나.
분명한 건 어떤 식으로 나오든 간에 이로울 게 없다는 거다. 그러니 놈들이 내 존재를 눈치채기 전에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결론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한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블래우를 만나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