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27)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28화(228/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28화
“일리아!”
내 부름에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일리아가 뒤로 물러나 내 옆에 섰다.
“카인 님.”
“보여?”
“예. 확실히 보입니다.”
일리아가 지금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이 꿈이나 환상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해 주었다. 그에 나는 이를 악문 채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용이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채 이곳으로 날아오는 거체가 드넓은 하늘을 장악하고 있었다.
“드래곤…… 인가요?”
긴장에 무의식적으로 떨리는 손을 일리아가 감추며 물어 왔다.
“아니, 드래곤은 아니야.”
“그렇다면…….”
“드레이크겠지. 빌어먹을, 쿤의 말로는 수면기인 것 같다고 했는데.”
드레이크(Drake).
드레이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설정을 지녔는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드래곤이라는 완벽한 존재와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대척점에 있는 불완전함의 산물, 그런 성질을 갖고 있기에 때로는 드래곤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
궁극의 존재로서 지성과 고고함까지 갖추는 드래곤과 달리 만물을 오직 증오와 흉포로만 대하는 사상 최악의 몬스터.
“어떻게 하죠?”
일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물론 나라고 뚜렷한 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입술만 잘근잘근 씹던 나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계 강화가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지?”
내 물음에 일리아가 빠르게 해가 움직인 정도를 파악했다.
“앞으로 대략 한두 시간 정도입니다.”
“많이도 남았네. 제기랄.”
물론 드레이크의 존재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최근에 수면기에서 깨어났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모든 동물이 그렇듯, 으레 몸부터 추스르는 게 인지상정이니 싸움과는 거리를 둘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 예상은 지금 완전히 틀려먹었지만.
혀를 찬 나는 아직 고공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드레이크를 가리켰다.
“아직 놈의 목표가 뭔지는 확실하지 않으니 내버려두자고. 일단은 눈앞에 있는 몬스터부터 빠르게 처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더는 지지부진할 이유가 없다.
빠르게 힘을 끌어낸 나는 드레이크의 등장에 덩달아 기세가 오른 몬스터들을 향해 쇄도하려던 그때였다.
「캬아아이아!」
드레이크가 뿜어낸 포효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뛰쳐나가려던 몸이 누가 붙잡기라도 한 듯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접착제로 발이 달라붙은 것 같다.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한껏 두근댔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비가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피어인 건가?
고개를 돌리자 구부정한 자세에 동공이 풀려 버린 일리아가 보였다. 아무래도 상황이 나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듯했다.
“빌어먹을.”
뭘 겪어 봤어야 견디는 방법도 알지.
나지막이 욕을 뱉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몸의 통제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비 오듯 흐르던 땀이 멈췄다. 뒤이어 미칠 듯이 뛰던 심장도 안정을 찾았다.
그다음은 몸이었다. 발가락이 까딱이는 걸 시작으로 서서히 통제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나는 곧장 일리아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어깨를 잡아당기자 일리아가 무기력하게 쓰러져 내 품에 안겼다.
세상에, 완전히 정신을 잃었잖아?
물론 화신을 연거푸 불러낸 상태긴 하지만 일리아가 가진 마검은 생명력을 갈취해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아마 체력적으로 부담이 오는 상태는 아닐 텐데.
아, 정신력을 많이 소모한 상황에서 피어를 직격으로 겪어 그런 건가.
내 경우엔 라헨나의 도움으로 내면의 각성을 이뤄 냈으니 충격이 덜했던 거겠지.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은데.’
딜레마에 빠졌다.
일리아가 깨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화신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 자칫하면 같이 휘말릴 수 있으니까.
반면 드레이크의 포효를 들은 몬스터들은 오히려 기세가 등등해져 빠르게 달려오는 중이었다.
싸우자니 일리아가 위험하고, 성으로 도망가자니 성이 위험하다.
그렇다고 성의 지원을 바라긴 힘들겠지. 그곳에 있는 이들도 드레이크의 피어에 영향을 받았을 거다.
‘일단은 일리아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버텨 보자.’
그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지. 그냥 성까지 물러나 아휀을 회수한 뒤 몸을 피할 수밖에.
그렇게 되면 결계의 강화는 실패다. 더불어 내가 북방에 나타났단 것을 알아챈 교단 놈들이 어떤 함정을 파 놓을지 모르니 다시 찾아오는 것도 힘들겠지.
입맛이 써 오기 시작했다.
‘케르윈,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조금 억울합니다. 저런 괴물이 있을 거라고 누가 어떻게 알았겠냐고?’
씹듯이 케르윈에게 툴툴댄 나는 일리아를 뒤에 둔 채 검을 세웠다.
가장 앞서 달려오던 트롤들이 코앞까지 닥쳐왔다. 천천히 체력을 안배하며 요리할 시간은 없다. 빠르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케르륵!
케렉, 케르르르!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는 세 마리의 트롤을 향해 일섬이 뿜어졌다. 세 줄기의 백색 섬광은 정확히 트롤들의 머리통을 꿰뚫어 뇌를 파괴했다.
그렇게 쓰러진 세 트롤을 서막으로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한 번에 고블린 예닐곱을 베어 넘기고, 그 반동을 이용해 옆에서 튀어나온 코카트리스를 아래에서 위로 동강 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뿜어진 피로 하늘이 붉게 물든다.
또다시 왼쪽의 트롤을 벴다. 그러곤 그대로 발을 뻗어 뒤에서 덮쳐 오는 아울베어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어느새 주위는 몬스터로 가득 찼다.
용광로처럼 달궈진 마나하트가 시종일관 마나를 불태웠으며, 그렇게 타오른 마나는 오러가 되어 몬스터를 베어 냈다.
그리고 텅 비어 버린 마나하트는 이내 마나터널이 흡수한 날것의 기운으로 빈틈없이 채워졌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다시 채워지는 전체적인 양이 조금씩 줄고 있다는 걸.
‘안 돼. 이건 헛수고다.’
한계까지 몰아붙일 수는 없다. 몸을 빼내 아휀을 회수하고, 드레이크를 피해 멀리 달아날 힘은 아껴 둬야 하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내려졌다. 여기서 더 싸우면 안 된다는 것.
임무는 실패했다.
마음을 먹은 즉시 일리아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은 채 포위망을 빠져나가려던 그때였다.
“비켜!”
뒤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들자 신기하게도 내 뒤를 포위하고 있던 몬스터들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다. 제각기 가진 팔다리를 흔들며 날아가다 땅에 고꾸라졌다. 개중 몇몇은 머리로 떨어졌는지 척추가 부러져 그대로 죽었다.
과연 무엇이 날개 없는 몬스터를 날게 했는가.
“수인족들?”
언제 달려왔는지 모를 수인족들이 길을 트기 위해 몬스터를 집어 날려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길로 쿤이 나타났다. 평소와 달리 양손까지 이용해 사족보행으로 맹렬히 달려온 쿤의 등 위론 붉디붉은 존재가 올라서 있었다.
양 눈으론 붉은 기운을 뚝뚝 흘리며 입가로 새하얀 입김을 뿜어내는 저승사자와 같은 모습.
문장의 힘을 끌어낸 레드란이었다.
달려오는 쿤과 레드란 앞으로 오우거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를 본 레드란이 자세를 잡곤 그대로 뛰며 어깨로 들이받았다.
콰드득!
사람 형상의 구멍이 오우거 몸뚱이에 생겨났다. 뒤이어 그곳을 통해 뛰쳐나온 레드란이 한 손으로 검을 붕붕 돌리며 턱짓했다.
“두 번 말해야 해? 비키라고.”
레드란의 말에 나는 군말 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그에 비로소 걸리적거리는 게 사라진 레드란은 그대로 붉은 칼날이 되어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피비빅-!
탄성 있는 경쾌한 소리가 먼 후방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한발 늦게 도착한 다크엘프들이 활을 들어 일제히 사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투두두둑!
쏟아진 화살의 비가 떨어진 몬스터들의 접근을 더디게 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인영들이 삽시간에 전장에 가담했다. 다크엘프 검사들이었다. 그들이 든 무기에선 마나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인영이 내 옆에 착지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름이 게일이었던가. 다크엘프 숲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났던 순찰대 대장이다.
“게일.”
“괜찮습니까?”
“나쁘진 않아. 그보다 성은 어쩌고?”
“레드란이 지원을 결정해 나온 겁니다. 그래도 소수의 병력은 남겨 뒀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보다 어째 너희는 피어에 별 영향이 없어 보이네?”
“수인족들은 아마 드레이크를 겪어 봤으니 익숙한 모양이고, 저희 엘프는 그런 부정한 것에 평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레드란은?”
“거리가 제법 떨어진 탓인지 금방 정신을 차리더군요.”
“좋아. 일단 일리아를 성으로 대피시키자고.”
내 품속에 안겨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일리아를 말하자 게일이 다크엘프 전사 둘을 빠르게 불렀다.
“성으로 모셔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성으로 옮겨지는 일리아를 확인한 나는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레드란은 어디 있지?”
내 물음에 게일이 손을 들어 전장 한 곳을 가리켰다.
수인족과 다크엘프, 그리고 각양각색의 몬스터가 뒤섞인 혼잡한 전장에서 몬스터를 썰어 대는 레드란을 발견한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레드란!”
내 부름에 마침 아울베어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부숴 버린 레드란이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발견한 레드란은 곧장 미간을 찌푸린 채 턱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건 어쩔 거야?”
간을 보듯 처음엔 드높은 상공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던 드레이크가 어느새 고도를 낮춰 한껏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위압감이 엄청났다.
일단 가장 의심스러운 건 대체 하늘을 어떻게 나는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외견이다.
양옆으로 쭉 뻗은 한 쌍의 날개뼈와 그 위를 망토처럼 덮은 피막, 육중하게 흔들리는 꼬리, 더해서 창대처럼 꼿꼿하게 뻗은 모가지까지. 못해도 5, 60m는 넘어 보이는 거체다.
‘레드 드레이크인가. 가까우니 알겠네.’
붉은빛이 감도는 비늘을 훑으며 올라가자 이내 칼날처럼 날카로운 형태의 머리통이 보였다.
착각일까?
잠시지만 녀석과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하늘에서 오만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며 먹잇감을 탐색하는 듯한 눈빛.
작게 헛웃음을 흘린 나는 레드란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잡는 건 무리겠지?”
“미친 소리 하지 마라. 네가 무슨 대제인 줄 아는 거냐?”
하긴 종족전쟁 당시 북부에서 벌어진 회전에서 마룡, 블랙 드레이크를 쓰러트린 대제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최강의 검사였다.
게다가 그 대제의 휘하엔 훌륭한 기사들과 바슈른이란 강력한 마법사의 지원도 있었고.
지금의 내 상황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긴 하지.
“계획은 실패했어. 이대로 다 죽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성은 포기해라.”
레드란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설령 몬스터까진 어떻게 처치할 수 있다고 해도, 드레이크가 가세하면 상황은 곧바로 역전될 거다.
모든 상황이 성을 포기하는 쪽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일까?
“우리가 도망친다고 해서 저 드레이크가 고이 보내 줄까?”
“난 엘프보단 빨리 달릴 자신이 있다. 뭣하면 늑대 몇 마리를 던져 줘도 되고.”
수틀리면 다크엘프나 수인족을 미끼로 삼겠다는 레드란의 말이었다.
섬뜩한 말이지만 납득하지 못할 건 없다. 그만큼 이 세계의 인간과 이종족 사이엔 감정의 골이 깊으니까.
잠시 대화를 나누던 사이 우리들 앞으로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그에 레드란과 나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대화를 멈추곤 몬스터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다시 여유가 생겨 마주한 레드란의 눈빛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마나라는 힘을 지닌 기사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먹이사슬 정점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기사조차도 저 강대한 생명체 앞에선 호승심보단 두려움이 앞서고 있었다.
솔직히 말할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드레이크가 언제 내 머리 위로 브레스를 쏟아 낼지 미칠 것 같으니까.
“빨리 결정해라. 여기서 더 시간 끌면 난 그냥 혼자 빠져나가겠어.”
재촉해 오는 레드란의 말에 난 그만 웃어 버렸다.
“너, 얼마 전엔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혼자 도망가겠다며?”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근데 왜 왔지?”
내 되물음에 레드란이 눈가를 좁혔다.
“그게 지금 중요하냐?”
“어, 중요한데.”
내 반문에 레드란이 욕이라도 뱉으려는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도로 입을 다문 레드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마석과 네비로스 교단이란 존재가 있다는 걸 이미 알아 버렸단 말이다.”
“그런데.”
“그걸 막아야 할 놈이 진짜 뒤지려고 하는데 지나칠 수가 있겠냐고, 이 빌어먹을 자식아.”
짜증 부리며 말을 마친 레드란은 눈앞에 달려든 오크 머리통을 깨부수며 투덜댔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지랄인지…….”
짜증 난다는 듯 툴툴거리는 레드란의 모습에 나는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성으로 후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