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2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29화(22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29화
내가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레드란이 마나가 들어찬 고함을 전장에 내질렀다.
“전원 후퇴!”
이후 사전에 훈련한 대로 레드란과 다크엘프들이 먼저 성을 향해 물러나기 시작했다.
반면 나와 수인족은 시간을 벌기 위해 조금 더 몬스터를 상대했다.
이후 다크엘프들이 성까지 안전하게 물러났음을 확인한 나는 수인족들에게 후퇴 신호를 보내곤 몸을 돌렸다.
쉬이이익-!
그렇게 후퇴하는 나와 수인족 머리 위로 무수한 화살들이 스쳐 지나갔다. 성으로 물러나 자리를 잡은 다크엘프들의 엄호 사격이었다.
“카인!”
이후 성을 향해 내달리는 내 옆으로 거대한 늑대가 붙어 왔다. 쿤이었다.
그를 확인한 나는 땅을 박차 쿤의 갈기를 붙잡고 위에 올라탔다.
두두두두!
말이 아닌 늑대를 타는 기분은 농담으로라도 유쾌하지 않았다. 위아래로 거칠게 부딪치는 턱과 덜컥거리는 관절이 느껴졌다.
나는 입안 가득 들어차는 먼지를 뱉어 낸 뒤 쿤에게 물었다.
“네 일족은 좀 어때?”
“여럿이 죽었다. 다친 이들도 많다. 솔직히 이대로 더 전투를 벌이는 건 무리인 것 같군.”
덤덤히 말해 온 쿤이었지만 그 속에는 비통함이 깃들어 있었다.
“미안하게 됐어.”
“천만에. 우리는 빚을 갚았을 뿐이다.”
드르르륵…….
성으로 후퇴하는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성문이 열렸다. 겨우 말 두어 마리만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공간이었다.
수인족 모두가 내부로 들어서자 성문이 닫혔다. 성안에 잔류했던 인원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그러곤 포션으로 다친 이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일리아는?”
내 물음에 수인족을 치료하던 한 다크엘프가 한쪽을 가리켰다.
“계속 패닉을 일으켜서 진정 효과가 있는 약초로 일단 재워 놓았습니다.”
그곳엔 정신을 잃은 채 곱게 누워 있는 일리아가 보였다.
그를 확인한 나는 곧장 걸음을 옮겨 내성의 홀로 향했다.
홀 중앙에는 처음 그대로 아휀이 꽂혀 있었고, 그 주위론 계속해서 마나가 방출되고 있었다.
빠르게 아휀에게 다가간 나는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어으으…… 으응? 왔어? 벌써 끝난 거야?]“아니. 끝나긴커녕 전멸 위기다.”
[전멸? 어째서?]“드레이크가 나타났다. 수면기라더니 잘난 케르윈의 힘을 느끼고 찾아온 모양이야.”
[드레이크가? 맙소사!]“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으니까 빠르게 묻자. 강화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쯤?]빌어먹을, 아직도 한 시간이나?
예상보다 빠르게 강화가 빠르게 끝났기를 바랐는데 말이지. 헛된 바람이었나.
결국 잠시 미뤄 뒀던 선택의 순간이 다시 찾아왔다.
지켜야 하는가, 도망쳐야 하는가.
지킨다면?
어떻게든 버텨 결계를 강화한다고 쳐 보자. 그 이후엔? 몬스터야 다 죽인다고 쳐도 드레이크는?
만약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
몬스터가 전부 없어지고 나면 드레이크는 거리낄 것 없이 전면에 나서겠지.
그렇다면 거듭된 전투로 만신창이인 우리가 드레이크와 싸워 이길 수 있나?
일말의 가능성이야 있다. 일리아와 레드란, 그리고 수인족과 다크엘프의 목숨을 모조리 바쳐 틈을 만들어 낸다면.
그렇다면 내가 치명상을 먹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아주 희박한 확률로 드래곤 슬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되면 그건 이겨도 이긴 게 아닐 테고.
그렇다면 아까 생각했던 대로 도망쳐야 하나? 도망치지 않고, 피해도 줄이면서 임무를 완수할 방법은 없나?
“두 마리 토끼라…… 어렵구만.”
[무슨 말이야?]“하나만 묻자. 지금 공간이동 마법진은 준비가 어떻지?”
[준비는 끝났어. 언제든 가동할 수 있지. 하지만…….]“하지만?”
[그걸 가동하려면 내가 결계 강화를 끝내야 하는데?]“그거야 알고 있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결계 강화는 계속한다.”
[뭐어? 드레이크와 맞서게? 자신 있어? 그냥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반드시 해야 한다고 조를 땐 언제고?”
[그때는 그랬지만 그래도 상황이 이러니까…….]“갑자기 왜 그렇게 물렁해졌어?”
[이게 걱정을 해 줘도!]작게 웃음을 흘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기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결계를 강화해 봤자 네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나도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어.”
아휀의 경고를 무시한 채 나는 천천히 홀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잠깐의 여유는 끝났다.
어느새 성벽에 달라붙은 몬스터들의 괴성으로 귀가 얼얼했고, 굳게 닫힌 성문은 연신 들썩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성문을 수인족들이 달라붙어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나 성문 군데군데 생긴 균열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레드란은 성벽 위에 블래우와 함께 있었다. 그를 확인한 나는 단숨에 계단을 올라 성벽 위로 향했다.
“레드란.”
“어딜 다녀온 거냐?”
짜증 낼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레드란은 연거푸 말을 이었다.
“성 뒤쪽으로 불편하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쪽에 몰린 몬스터는 아직 많지 않으니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겠지. 게다가 놈들의 주목적은 마나가 뿜어지는 성 내부다. 아마 추격은 거세지 않을 거야.”
빠르게 말을 마친 레드란이 하늘을 가리켰다.
“만약 저 드레이크가 추격해 온다면 병력을 수인족과 다크엘프를 섞어 소대 단위로 흩어질 거다. 흩어진 이후엔 반나절 거리 떨어진 지점에서 재합류할 계획이고. 몬스터들이야 근방에 있는 놈들은 죄다 이곳에 몰렸으니 걱정할 건 없겠지. 편성은 지금 막 끝냈고 재합류 지점도 모두 숙지시켰으니 명령만 내리면 돼.”
급조한 것치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특유의 빈정거림과 염세적인 성격은 차치하고서라도, 레드란의 지휘 능력은 훌륭한 편이었다.
이 정도라면 뒤를 맡겨도 충분하겠지.
“왜 대답이 없어? 계획이 맘에 안 든다는 거냐?”
레드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좋은 계획이야. 그러니 지금 당장 수인족과 다크엘프들을 이끌고 성을 빠져나가.”
“굼뜨게 굴더니 이제야 좀 결정이 빠르군.”
그제야 속 시원하다는 듯 레드란이 쿤과 블래우를 지휘하려던 그때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왕국 동부로 향해라.”
“…….”
내게 등을 보였던 레드란이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곤 천천히 돌아서서 날 쏘아보았다.
“일단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동부건 서부건 상관없다만, 어째 거기에 누가 빠져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남을 거다.”
레드란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지?”
“결계를 강화해야 해.”
“근데 우리는 떠나라고?”
“드레이크와 맞섰다간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잠시 레드란은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겼다기보단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고 보는 게 맞겠지.
몇 번 눈썹을 꿈틀대던 레드란이 검을 들어 전장을 가리켰다.
“아직도 몬스터는 수백 마리가 남았어.”
“알아.”
다음엔 하늘을 가리켰다.
“위에는 저 괴물이 우리가 힘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고.”
“그것도 알고.”
“그런데 우리보고 빠지라고?”
“그래.”
“우린 빠진다고 치면 너는?”
카아아악!
하피 몇 마리가 나와 레드란을 노리고 성벽 위로 쇄도해 왔다. 그에 빠르게 나선 쿤이 대화를 방해하지 말라는 듯 낚아채 으깨 버렸다.
그 모습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하던 일은 매듭지어야지.”
“매듭?”
“결계를 강화하는 것.”
“그건 실패했어.”
“아직 아니야.”
“어떻게든 강화를 한다고 쳐. 다음엔 어쩔 생각이지? 바글바글 몰려든 몬스터야 어떻게든 처리한다 해도, 하늘에서 지켜보는 저놈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야지.”
“사라진다고? 그게 지금 무슨…….”
나는 레드란의 말을 무시한 채 가슴팍에 달려 있던 하늘요새의 성주 인장을 뜯어 던졌다.
엉겁결에 손바닥을 펴 인장을 받아 낸 레드란은 이게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이걸 가지고 떠나. 그리고 산맥을 넘어서 네가 패배했던 악령산으로 향해.”
“악령산?”
“그리고 일리아가 정신 차리면 전해. 내가 칼란다트와 라헨나에게 이종족들의 안위를 부탁한다 했다고.”
“라헨나? 칼란다트? 그들은 또 누구야?”
“설명할 시간 없어. 떠나.”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들은 탓일까, 레드란의 눈이 잠시 흐려졌다.
「캬아아아아!」
그러나 드레이크가 내뿜은 두 번째 피어는 일말의 의구심조차 지워 내 버렸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간신히 피어를 버텨 낸 레드란이 씹듯이 이를 갈았다.
“카인 아르휀! 이젠 진짜 농담이나 할 시간은 없어!”
“나도 알아.”
“너 설마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 주겠다, 뭐 그런 병신 같은 생각으로 영웅 행세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내 대답에 레드란이 내 눈빛을 살폈다. 그러곤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자식.”
레드란에겐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눈빛을 가려낼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그거야 모르겠지만 일단 레드란은 내 말에 수긍한 모습이었다.
“……저 여자가 일어나고 보일 반응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픈데.”
멀리 누워 있는 일리아를 흘긋 바라본 레드란은 이내 내가 건네준 인장을 손에 꽉 쥐곤 몸을 돌렸다.
그러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쿤과 블래우에게 성 뒤편으로 병력을 집결해 후퇴할 것을 일렀다.
잠시 내 눈치를 보던 쿤이 발톱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상황이 이렇게 돼서 미안하군.”
“충분해. 너흰 해 줄 만큼 했어. 일리아가 가는 길에 탈 없게 잘 보살펴 줘.”
내 말에 진중히 고개를 끄덕인 쿤이 곧장 몸을 돌렸다.
“카인 님.”
뒤이어 블래우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아직 모든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먼저 알려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알려 줘? 아, 그거?”
“예.”
일전에 약속했던 차출된 다크엘프들이 남기기로 했다던 신호. 그것을 알려 주겠다며 블래우가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예상과 달리 그 신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의 나열이었다. 그 해괴한 내용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이게 맞는 건가?”
“룬어입니다.”
“뭐, 그렇다면야. 그럼 이만 가 보라고.”
“다시 뵙길 바라겠습니다.”
살포시 고개를 숙인 블래우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을 기다리는 다크엘프에게 향했다.
“전원 후퇴!”
그렇게 레드란의 고함이 울려 퍼지자 성문을 지지하고 있던 수인족과 마지막까지 화살을 쏘던 다크엘프들이 성 뒤편으로 물러났다.
이후 그들은 뒤편에 몰려든 몬스터를 죽여 나가며 활로를 뚫어 탈출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몬스터들은 뒤쫓지 않았다. 그저 엄청난 양의 마나를 방출하는 내성만을 맹목적으로 쫓을 뿐.
드문드문 달려드는 몬스터를 전부 끝장낸 그들은 빠르게 성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고요하네.’
분명 주변은 몬스터의 할딱이는 숨소리와 으르렁거림, 광기 어린 포효로 범벅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다는 감각이 아주 뚜렷하게 느껴졌다.
‘…….’
나는 그 혼자만이 느끼는 고요함 속에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성 지하를 통해 계속해서 유입되는 케르윈의 웅혼한 마나가 한껏 느껴졌다.
이것이 이곳에 남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였다. 이게 없었다면 애초에 포기하고 도망갔지.
마나터널을 통해 케르윈의 마나가 몸속 가득히 채워졌다. 날것이 가진 그 불순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멀리 밖에서 싸울 때는 희석되어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다.
뭐랄까, 패스트푸드만 맛보다가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기분이라고 할까.
고개를 돌려 성 뒤편을 바라봤다. 레드란을 포함한 그들은 서서히 검은 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성문이 무너졌다.
쿠구궁!
무너진 성벽으로 오만 종류의 몬스터가 밀물처럼 쏟아졌다. 그중 선두를 맡은 트롤이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내성을 향해 내달렸다.
그를 본 나는 성벽을 박찼다. 이후 허공을 가르는 한 줄기 유성처럼 쇄도했다.
처음엔 이질감 느껴지던 그 투박한 강철검은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그 익숙함에 속도를 더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내성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던 트롤이 머리부터 고간까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뿜어진 피가 마나에 타들어 붉은 안개를 형성했다. 그 안개 사이에 착지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카아아악!
크우에에엑!
아휀이 꽂힌 내성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 우뚝 섰다. 그런 나를 향해 성문을 비집고 파고든 몬스터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시선을 올렸다. 드레이크는 고도를 유지한 채 선회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지켜보는 관객이 예술혼 따윈 없는 몬스터라는 거겠지.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잠시 늘어뜨렸던 검을 다시 강하게 잡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