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3)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3화(23/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3화
* * *
산속의 밤공기는 차가웠다.
검은 망토로 옷을 가린 레인저들이 나를 중심으로 쭉 둘러싸고 있었다.
대련의 심판을 맡은 길레인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반면 루스는 느긋하게 검투를 관람하듯, 한 손에 술잔을 들고 홀짝였다.
“본 대련은 결투가 아니오. 철저하게 실력만을 가르기 위함이니 비겁한 술수와 급소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행위는 금하겠소.”
길레인의 말에 게리드가 나섰다.
“레인저에게 정해진 구역에서 목검으로만 싸우라니, 마법사에게 마나를 쓰지 말라는 것과 다를 게 뭡니까?”
“당신이 제안했던 거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게리드가 뒤로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어진 목검을 붕붕 돌려 보았다.
더없이 익숙한 무게다.
지난 몇 달간 루스와 함께 휘둘러 왔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흘긋 시선을 돌리자 루스가 술잔을 내게 살짝 들어 올려 보였다.
믿고 있다는 뜻이다.
‘기대에 부응해야겠지.’
탁.
어깨에 목검을 걸친 나는 상대로 나온 레인저를 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목검을 몇 번 붕붕 돌려 본 레인저는 고개를 돌려 길레인을 바라보았다.
“팔다리가 부러져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맞습니까?”
“그렇다.”
길레인의 확답에 레인저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들으셨습니까, 공자님?”
“가라, 벤트!”
“이겨 버려!”
“레인저의 힘을 보여 줘라!”
벤트라 불린 레인저가 내게 목검을 겨누자 주위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처음엔 불만스러워하던 게리드도 막상 큰 걱정은 들지 않았는지 픽 웃음을 흘리며 날 흘겨보았다.
그 눈빛에서 가소로움이 전해졌고.
그만큼 나 또한 전의가 불타올랐다.
“시작!”
탓!
시작과 동시에 왼발로 땅을 박차듯 밀었다.
그러자 버티고 서 있던 오른발의 힘이 폭발하며 몸이 튀어 나갔다.
밀어 걷기.
검도는 팔로 하는 것이 아닌, 다리로 하는 것이다. 그 본분에 충실하게 접근하자 순간 상대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이, 이익…….”
목검을 모로 세워 막으려 했으나 자세가 불균형해 제대로 받지 못했고.
우지끈!
내 목검에 두 동강이 났다.
빠악!
그러고도 힘이 남은 목검은 매섭게 파고들어 상대의 어깨를 후려쳤다.
“끄아악!”
확신한다. 쇄골이 부러졌을 거다.
손에 전해진 감각과 땅을 뒹구는 레인저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아아악…….”
순간 벌어진 상황에 환호는 사라졌고, 모두가 눈만 끔뻑였다.
뒤늦게 정신 차린 몇몇 레인저가 땅을 뒹구는 동료를 데리고 빠져나갔다.
“다음.”
낮게 다음 차례를 부른 나는 흘긋 길레인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의 반응은 필요 없다. 지금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한 명, 길레인이었다.
‘보고 잘 기억하라고. 나에 대한 인식이 뒤흔들릴 정도로.’
루스를 제외하고 내 실력을 내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밑천을 지금 다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일종의 맛보기.
길레인이라는 대어를 살살 유도하기 위한 떡밥이다.
“내가 상대하겠다.”
다음에 나온 레인저는 앞서 나온 놈보다 제법 나이가 있어 보였다. 그만큼 실력 또한 원숙하겠지.
“흐아압!”
복수하겠다는 듯, 매섭게 치고 오는 공격이 꽤 날카로웠다. 과연 레인저답게 정형화되지 않은, 실전에 특화된 검격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해.
스슷!
밑바닥부터 굴러 기사가 된 루스보다 영악할까.
“어, 어어…….”
공격을 간단히 비껴 내곤 그대로 꺾어 검을 한 바퀴 돌리자 레인저의 목검이 허공을 날았다.
검을 놓치다니. 차라리 부러진 것만 못하다.
그 사실을 아는 상대도 얼굴을 붉힌 채 뒤로 물러섰다. 무슨 말을 하든 제 얼굴에 침 뱉기가 될 테니까.
“크윽!”
“커억!”
“끄아악!”
이후로 뛰쳐나온 서너 명도 간단히 제압하자 게리드의 표정이 한껏 구겨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줄줄이 대기하고 있던 레인저를 물린 게리드가 뒤를 바라보았다.
“스벤!”
“예.”
“네가 나가라.”
게리드의 말에 멀찍이 서 있던 레인저가 앞으로 나섰다.
망토에 달린 까마귀 문양이 여타 레인저보다 크고 거뭇했다. 아마 간부를 상징하는 것이겠지.
‘잔챙이로는 안 되겠다 이건가.’
알려진 레인저들의 순수 검술 실력은 간부급은 되어야 그나마 최하급 말단 기사에 근접한다는 게 중론이다.
그 말인즉 지금 나온 녀석도 말이 간부지, 실상은 루스 발끝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란 뜻.
뭐, 레인저의 실력이 오직 검술만으로 평가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간부는 간부니까.’
고개를 돌려 게리드를 바라보았다.
“게리드 크로우.”
“왜 그러시오, 삼공자.”
“간부가 나섰다는 건, 그 아래 서열은 모조리 내 아래라는 걸 인정하는 셈입니까.”
“물론. 하지만 그것도 스벤을 꺾고 난 다음의 이야기요.”
꽤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한풀 꺾여 있던 주위 레인저들의 기세도 슬금슬금 살아나고 있었다.
그만큼 저자의 실력을 믿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확실하게 격차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스스스…….
스산한 밤바람 가운데 탐색전이 벌어졌다. 중앙을 기점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마주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스벤이라 불린 레인저였다.
과장된 동작으로 목검을 크게 휘둘러 달려드는 것이 둘 중 하나였다.
나를 무시하거나, 다른 속셈이 있거나.
당연하지만 전자는 아니다. 지금까지 당한 애들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후자라는 이야긴데.
‘뭘까.’
크게 베어지는 목검을 주시하며 한편으론 상대의 몸짓을 훑었고.
이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손짓을 발견했다.
‘단검.’
언제 챙겼는지 모를 목단검이다. 그걸 남은 한 손에 꼬나든 상대가 가깝게 파고들었다.
양자택일의 순간이 왔다.
크게 베어지는 검을 피해 뒤로 도망치든가, 아니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근접전을 하든가.
‘근접전이라. 나쁘지 않지.’
내 선택은 후자였다.
어차피 이 대련의 목적은 내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니.
부웅!
나 또한 검에 힘을 싣고 크게 휘둘렀다. 그렇게 검과 검이 부딪치기 전, 나는 손에서 검을 놓아 버렸다.
“이 무슨!”
순간 내 검이 얽혀 옴에 스벤이 미간을 좁혔다.
당장 내가 맨손으로 달려들고 있는 판국이다.
이대로 검을 놓지 않으면 균형을 잃는다는 걸 깨달은 스벤이 결국 똑같이 검을 놓았다.
그렇게 아닌 밤중에 격투가 펼쳐졌다.
탁! 타악! 탁!
경로가 겹치며 서로의 손과 발, 팔꿈치가 부닥쳤다.
상황만 놓고 보면 내가 불리했다. 목단검이라 해도 엄연히 진검이라 치부한 채 벌이는 대련이었으니.
휘리릭!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을 오가던 와중, 스벤이 순간 목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러곤 자세를 낮춰 달려들며 오금을 노려 왔다.
물론 다리가 베일 일은 없다. 그러나 베이는 순간 이 대련은 내 패배가 된다.
‘태클이라.’
팟!
순간 몸을 틀며 피해 내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손을 잡아챘다.
그에 당황한 스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 무슨…….”
왜, 검이 없으면 뭣도 아닌 줄 알았나?
이래 봬도 유도로 단련된 몸이다. 부대끼며 싸우는 거라면 이쪽이 더 환영이지.
탁!
잡아챈 손을 밖으로 주욱 이끌었다.
남은 손은 상대 멱을 잡아 밀고, 상대 품을 파고든 왼발론 사선으로 축을 세웠다.
빗당겨치기.
나머지는 간단하다. 상대방의 힘과 무게가 결론을 내 줄 테니.
“크읏!”
스벤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그대로 땅에 처박히나 싶었는데, 의외로 능숙하게 낙법으로 몸을 굴린 스벤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제대로 얼빠진 얼굴은 방금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요즘 귀공자들은 저런 격투술도 배웁니까?”
당황한 게리드가 물었고.
“……그럴 리가 있겠나.”
길레인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으윽.”
반면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은 스벤이 이내 놓친 목단검을 찾았다.
“이거 찾나?”
툭.
핑그르르…….
발치에 있던 목단검을 발끝으로 차 던져 주었다.
팽이처럼 돌아 제 앞에 떨어진 단검을 본 스벤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이런 개 같은!”
내가 귀족임을 까먹은 건지, 스벤이 걸쭉한 욕을 뱉으며 목단검을 쥐고 달려들었다.
물론 그것을 바라고 던진 격장지계였다.
나름 방심하지 않도록 경계심 가득한 움직임이었지만 상관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기술은 다양하니까.
디딤발을 트고 상체를 낮춘다. 동시에 회전시킨 몸과 이어지는 발을 크게 뒤틀었고.
이내 등 뒤로 솟구친 회축(回蹴)이 작렬했다.
쩌-억!
통렬한 뒤후려차기였다. 가로막던 목단검을 부러트리는 것도 모자라 스벤의 면상을 강타했다.
“크어억…….”
실 끊어진 연처럼 스벤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쿵.
마치 영혼이 뽑혀 나간 것처럼, 기절한 스벤이 땅에 머리를 박은 채 게거품을 물었다.
올바른 자세와 정확한 타이밍.
이것들을 충족한다면 세상 그 어떤 무예보다 파괴적인 게 바로 태권도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몇 주는 꼼짝없이 드러누워 요양해야겠지.
“…….”
“…….”
좌중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반면 가볍게 숨을 고른 나는 고개 돌려 게리드를 바라보았다.
“더 내보낼 사람 있습니까?”
* * *
“고생하셨습니다.”
땀도 식히고 마음도 가라앉힐 겸, 밖에 나와 밤공기를 마시던 내게 루스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루스가 뭔가를 내밀었다. 가죽 주머니였다. 입구에 코를 갖다 대니 달짝지근한 술 냄새가 올라왔다.
“지금 보니 완전히 술꾼이잖아.”
“뭐, 딱히 아니라곤 못 하겠습니다.”
가볍게 한 모금을 들이켜곤 다시 루스에게 건넸다.
“분위기는 어때?”
“초상집입니다.”
“그래? 게리드는?”
“뭐, 제 딴에는 그래도 영주님의 부탁이니만큼 신참 레인저 한둘 정도는 내줄 심산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한데 대부분을 내주게 생겼으니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술을 단지째로 껴안고 마시더군요.”
“그러니 입조심을 했어야지.”
“예, 그건 맞습니다. 게리드가 제 꾀에 넘어갔지요.”
만약 장소가 숲이었다면?
함정과 활, 표창 같은 비대칭 무기가 허용됐다면?
고작 신참 레인저 몇몇을 꺾는 수준에서 그쳤을 거다.
“운이 좋았지.”
“운이라뇨. 엄연히 공자님이 그 상황을 만들어 내신 것 아닙니까? 전 처음에 게리드를 도발하라는 말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연회가 있기 전, 내가 했던 귓속말을 상기한 루스가 킥킥 웃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빙긋 웃은 루스가 별안간 몸을 풀더니 내가 해 보였던 회축을 흉내 냈다.
그 엉성한 꼴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음, 생각보다 어려운데요. 대체 이런 건 언제 배우신 겁니까?”
어디서 배우긴, 태권도장에서 배웠지.
“뭐, 그냥.”
“이것도 설마 검술처럼 본능적으로?”
“그렇다고 치자.”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공치사는 그만두고. 그래서 넘어온 레인저는 몇 명이지?”
내 물음에 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부급 레인저가 넷, 아! 스벤이라고 했던가요? 그 친구는 팔이 부러졌으니 빼고 셋입니다.”
“일반 레인저는?”
“레인저는 오십 정도입니다. 수가 꽤 많군요.”
“전부 스벤보다 서열이 낮나?”
“예.”
다 합쳐서 쉰이 좀 넘는다라.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렇다고 못할 건 아니다. 충분히 해 볼 만했다.
“들어가면 다 모아야겠군.”
“예?”
“하던 연회는 마쳐야지.”
루스가 잠시 미간을 좁히다 뒷목을 긁적였다.
“갑자기 이 분위기에 연회라니,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자의든 타의든 사람을 끌어모았으면 다음은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 법이니까.”
장교 시절, 죽기보다 싫은 작업에 끌려 나온 소대원들은 당근으로 달래야 했다.
그것이 PX든, 외박이든.
그러면 죽기보다 싫던 작업이 곧 포상을 위한 노동이 되고, 바닥을 치던 능률도 솟구친다.
“동기라 하심은?”
“저들은 아직 내가 한낱 놀음으로 몬스터 사냥을 하겠다는 줄 알잖아.”
“칼날 부족장을 잡겠다 공표하시는 겁니까?”
“그래. 놈들도 분명 맺힌 게 없지는 않을 테니.”
10년간 잡지 못한 신출귀몰한 놈이다.
그놈에게 몇의 동료가 죽고, 몇의 인간이 죽었을까. 그것을 되새겨 줘야 한다.
그걸로도 약발이 서지 않는다면.
“그놈 목에 걸린 현상금도 충분한 당근이 될 테고.”
금화 수백 닢이란 당근을 건다.
그렇게 되면 그들로서도 심력을 쏟아야 할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앞서 공자님에게 두들겨 맞아 자존심이 꺾인 레인저인데, 단순히 돈을 건다고 순순히 협조해 올까요?”
바보 루스.
“오히려 그러니까 더 열성으로 참여할걸.”
“예?”
“이번 토벌대의 주축이 레인저가 됐으니까.”
나와 루스, 길레인을 제한 모두가 레인저다.
그 말은 지금껏 유지했던 조언자의 역할이 아닌, 직접 주력 부대로서 참가한다는 뜻이다.
그런 마당에 토벌에 실패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백작 가문의 망나니 삼공자가 아닌, 레인저가 실패했다 생각할 것이다.
자의건 타의건 일단 주력이 되었는데, 과연 레인저들이 순순히 방관할까?
모르긴 몰라도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놈들이니 어떻게든 성공하려 들겠지.
앞서 생각한 당근은 그 의욕을 불태울 기폭제가 될 테고.
내 설명을 들은 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하지만 현상금이 금화 수백 닢인데,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나도 그냥 줄 생각은 없어.”
“예?”
“기브 앤 테이크.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금화 수백 닢이면 레인저들 전원의 장비를 바꿀 거금인데, 나도 호구처럼 그냥 줄 생각은 없다.
“가자, 루스.”
“예.”
땀도 전부 식었겠다.
슬슬 결판을 내러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