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31)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32화(232/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32화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잔디에 코를 박았다.
향긋한 풀내음이라니, 대체 얼마 만에 맡는 거지?
춥고 황량해 모든 것에 죽음이 드리운 북방에선 느낄 수 없던 것들이다.
“…….”
자, 향수에 젖는 건 여기까지.
눈을 감고 자연을 음미하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내가 눈여겨봐야 할 건 이곳이 사방에 녹음이 우거진 숲이라는 거였다.
여기라면 분명히 다크엘프들이 신호를 남길 수 있었겠지.
시작이 좋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동굴의 위치를 확실히 기억한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사람의 흔적이 보이진 않았다. 으슥한 지역이란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위험해 보이는 곳은 또 아닌 듯했다.
일단 물이 있는 곳으로 가 보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툭툭,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벌레들이 나를 피해 뛰어다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숲이 끝나는 경계선을 지나자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네.”
푸르디푸른 물결이 한껏 밀려와 백사장을 덮쳤다. 뒤이어 새하얀 포말이 수도 없이 피어올랐다.
바다라니. 레드란이 붉은성을 차지하고 있던 당시 봤던 게 마지막이었나?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밀려오는 바닷물을 손으로 매만져 보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인위적인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다.
“확실히 사람 사는 곳은 아닌 것 같지?”
[그러게. 그래서 더 불안한걸.]동의한다.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라 예상했다만, 막상 너무 평온하니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할까.
“일단 해가 지는 방향을 보면 남부인 건 확실해 보이는데.”
[일단 걸어 봐.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그래야겠지.”
고개를 끄덕인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언제든 몸을 숨길 수 있도록 숲을 끼고 천천히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붉게 타오르던 노을이 지고 완연한 어둠이 찾아올 무렵, 멀리 드넓게 펼쳐진 목책이 보였다.
빈틈없이 촘촘하게 세워져 쥐새끼 한 마리 지나가기 힘든 목책이다.
그러나 적을 막는 용도라기엔 빈약하고, 단순히 경계를 긋는 목적이라기엔 필요 이상으로 과하다.
‘무슨 용도일까.’
새롭게 나타난 목책과 거리를 두고 그를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일단 목책이 세워진 목적은 분명했다. 마법진이 숨겨진 동굴과 그 동굴을 품은 숲을 둘러싸는 용도.
더불어 목책이 둘러싼 숲의 생태계는 인위적이었다.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하는 짐승은커녕 들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반면 여우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들은 넘쳐 났다.
그렇다고 목축지는 아니다. 소나 양을 기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렇다면 개인적인 정원? 만약 그렇다면 이곳을 관리하는 이는 대륙 최악의 정원사겠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사냥터.’
대귀족들은 자신의 여흥을 위해, 그리고 장원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권세를 자랑하기 위해 사냥터를 만들곤 한다.
그 사냥터는 자연과 흡사할수록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 또 길러지는 사냥감들의 야생성이 얼마나 살아 있냐도 중요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숲은 사냥터로써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힘을 지닌 귀족의.
[네가 말했던 조건이랑도 잘 맞네?]“위험하지 않을 것, 통제가 가능한 구역일 것, 물자 조달이 원활할 것.”
[응응.]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확실히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만한 장소다.
거리낌 없이 손님들을 초대해 여흥을 제공한다. 그리고 대개 그런 귀족들은 어둡고 축축하며 깊숙한 동굴을 탐사할 만한 호기심을 갖고 있지 않다.
사냥을 마친 손님들은 이 사냥터가 얼마나 훌륭한지 홍보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심은 거두어진다. 누가 이런 사냥터에 불손한 마법진이 있다고 의심하겠나.
‘침입자 또한 없을 테고.’
자살 기도자가 아닌 이상 귀족이 아끼는 사냥터에 들어갈 평민은 없다. 사냥터에 금은보화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트레저 헌터도 없다.
게다가 인위적인 사냥터의 유지는 야생에서 포획해 온 사냥감을 풀어놓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당연히 그를 위해 마차가 수도 없이 들락날락할 것이다. 마차에 다크엘프가 있건, 여우와 사슴이 들어 있건 아무도 의심하지 않겠지.
데려온 다크엘프를 인계한 언홀리 나이트들도 빠져나가기 수월하다. 바로 옆이 바다니까. 늦은 새벽 한 척의 배가 그들을 태워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모를 거다.
“그러니 알아봐야 할 건 정해진 셈이지.”
[이 사냥터가 누구의 것인지?]“맞아.”
고개를 끄덕인 나는 어둠을 틈타 가볍게 목책을 뛰어넘었다. 그러곤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향해.
* * *
“카인드, 직할령 베이노드 출신. 용병이시라고?”
“예.”
“베이노드라면 중부인데 이 남부엔 무슨 일로?”
“이곳 상선 용병일이 보수가 짭짤하다고 들어서.”
“내륙 출신이면서 지금 배를 타겠다는 거요? 멀미는 어쩌려고?”
“타 보면 알겠죠.”
“골골대면서 위약금이나 물겠지.”
대놓고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린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신분은 확실해 보이니. 다만 감옥을 구경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경거망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알겠습니다.”
“말르가에 오신 걸 환영하오.”
하루에도 수백 번 반복해 이제는 별 감흥도 없다는 듯, 성문 경비병이 무미건조한 환영 인사와 함께 신분패를 돌려줬다.
궁내부장 이르페 후작이 만들어 준 신분패의 효과는 확실했다. 늦은 밤임에도 성문을 무리 없이 통과한 나는 천천히 도시를 거닐었다.
그보다 경비병은 말르가라고 했지.
드디어 내 위치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말르가, 꽤 규모가 있는 이 항구도시는 내가 알기론 아드리안 백작의 영지 안에 있었다.
그리고 아드리안은 로드키우스 후작의 충실한 오른팔로 알려져 있고. 그러니 그 사냥터의 존재 또한 납득이 된다.
어쨌든 첫 번째 단추는 끼웠다.
다음은 좀 더 디테일한 정보를 얻는 것.
하지만 그에 앞서 일단 묵을 곳부터 정하는 게 좋을 듯했다. 결정을 내린 나는 천천히 말르가의 시내를 걸으며 여관을 찾기 시작했다.
“분위기 한번 시끌벅적하네.”
남부 도시의 분위기는 그 따스한 기후를 닮아 정열적인 면모가 있었다.
린다이어 영지가 자리한 북부는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쪽으로 생활한다.
반면 이곳은 다르다. 늦은 밤임에도 만천하에 주취를 뽐내는 술꾼으로 그득그득하다.
좋게 말하면 살기 좋고, 나쁘게 보자면 무질서한 도시.
그나마 조용한 곳을 고르고 골라 찾아낸 여관도 내 기준에선 충분히 시끌벅적했다. 이곳도 이 정도인데 다른 곳은 안 봐도 비디오지.
여관에 들어서기 전 나는 흘긋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이내 수레를 끌며 말똥 냄새를 진득하게 풍기는 소년을 발견했다.
“애야.”
내 부름에 건초가 담긴 수레를 끌고 가던 소년이 나를 돌아보았다.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이다.
“왜요?”
“이 여관에서 일하니?”
“보면 몰라요?”
싹수없는 녀석이로고.
끌끌 혀를 차며 품속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자 녀석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심부름 하나만 해 주면 이걸 줄게.”
내 말을 들은 소년이 수레를 거칠게 내려놓고 손을 비비적대며 다가왔다.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돈이 최고다.
“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요.”
소년의 말을 들은 나는 머리를 굴렸다.
말르가, 말르가, 말르가…….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던 정보를 끄집어낸 나는 뒤이어 소년에게 오늘이 며칠인지를 물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양조장이라고 아니?”
“예? 피터 양조장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년은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알아요. 곧 망해서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 곳 말이죠?”
“……뭐 어쨌든.”
“근데 거긴 왜요? 거기서 만드는 술은 진짜 돈 없는 뱃사람들이나 사 먹어요. 무슨 상한 식초 맛만 난다고 소문이 자자하다고요.”
“그거야 내 입맛이니까 상관하지 말고.”
“으에엑……. 어쨌든 알았어요. 거기 가서 뭘 하면 되는데요?”
“스카치 에일을 발주하고 싶다고 전해.”
“얼마나요?”
“일곱 통. 전부 엑스포트 등급으로.”
“일곱 통이나요? 돈 낭비일걸요?”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니?”
“그건 그렇죠.”
소년은 내가 말해 준 것들을 계속 되뇌곤 기억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이 여관에 계실 거죠?”
“그래.”
“다녀올게요.”
끌고 가던 수레조차 팽개치고 부리나케 달려가는 소년을 본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여관에 들어섰다.
“목욕? 술? 잠? 식사?”
들어서자마자 바빠죽겠다는 얼굴로 물어 온 여급은 내 행색을 쭉 살펴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뭘 고민하세요? 욕실이 제일 급하신 것 같은데?”
북방에서의 전투로 남루해진 옷차림과 돌가루를 발라 푸석한 피부를 본 여급이 열쇠 하나를 골라 던졌다.
“1인실, 3층이에요. 욕실은 지하에 있고. 대금은 선불이에요.”
선불이라는 말에 금화 한 닢을 꺼내 던져 주자 여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서 살 생각이에요?”
“얼마나 나올지 모르니까. 나중에 거슬러 주시죠.”
“그렇다면야. 더 필요한 건 없어요?”
“식사. 메뉴는 아무거나 괜찮고.”
“먼저 씻을 거죠?”
“예.”
“맞춰서 준비해 놓을게요. 못 먹는 거 있어요?”
“없습니다.”
내 말을 들은 여급은 볼일 끝났다는 듯 대답도 없이 몸을 돌렸다. 참 바쁘디 바쁜 여관이다.
입맛을 다신 나는 계단을 올라 배정된 방에 들어섰다.
1인용 침대와 낡았지만 깨끗한 침대보, 더불어 작은 식탁이 보였다. 벽에는 못을 박아 옷을 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구석진 곳에 자리한 여관이지만 구색은 다 갖춘 방이었다.
이후 조용히 짐을 푼 나는 잠시 고민했다.
‘씻어야 하나?’
염색은 했다만, 그래도 깔끔해진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씻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자칫하면 오히려 더 눈길을 끌 수도 있겠지.
고민할 게 뭐 있나? 어차피 곧 해결될 문제인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바지와 셔츠, 그리고 아휀만 챙기고 욕실로 향했다.
얼마만의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는 거지? 하늘요새에서 북방으로 향한 뒤 지금까지 용케 버텼구나.
뜨끈한 물에 몸이 노곤하게 녹는 기분이었다.
좋아, 좋아. 시원하다. 아주 좋다.
혼자 온갖 미사여구를 내뱉으며 즐거운 목욕을 마치곤 홀가분한 기분으로 식당 홀로 향한 그때였다.
내가 심부름을 시켰던 소년이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은화에 대한 열망일까, 쉼 없이 고개를 돌리던 소년은 날 발견하곤 손을 들었다.
“아저씨!”
그러곤 소년은 이쪽으로 오는 대신 몸을 돌렸다. 왜지?
이유는 곧 밝혀졌다. 한 남자가 소년의 손짓을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를 안내해 데려온 소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주문하겠다니 직접 응대하겠다고 따라왔어요. 얼마나 장사가 안 되면 이렇게 발 벗고 찾아올까요? 그렇죠?”
혹시나 남자가 들을까 작게 속삭이는 모습에 난 웃으며 은화를 쥐여 주었다.
“뭐, 잘해 줬다.”
“아저씨, 지금이라도 관두세요. 진짜 저 양조장은 소문이 안 좋다니까요.”
“새겨들을게.”
때아닌 횡재에 기분이 좋아진 소년은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퇴장했다.
반면 내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앞서 소년이 했던 말을 들었는지 툴툴대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라고 좋아서 이 짓을 하는 줄 아나. 썩은 식초라고 욕먹는 건 나도 이제 지긋지긋하단 말입니다.”
“고생이 많군요.”
“알아줘서 고맙습니다. 뭐 어쨌든, 그래서 이 남부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카인 아르휀 백작님?”
마지막엔 내 이름을 정확하게 속삭이는 남자의 말에 난 빙긋 웃었다.
“악취를 따라가다 보니 이곳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