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34)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35화(235/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35화
양조장에 딸린 뒷마당.
달빛이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은 플레타였다. 늦은 시간 소란으로 이목을 끌 순 없기에 사일러스 마법을 펼쳤다.
“이제 이곳에서 나는 소리는 외부로 퍼지지 않을 거예요.”
플레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테일러가 앞으로 나섰다. 활동성을 위해 상반신만 겨우 가린 거무튀튀한 흉갑이 돋보였다.
반면 그와 마주한 로르다인은 평범한 셔츠 차림으로 흘러내린 백발을 천천히 묶기 시작했다.
피터는 술잔을 들고 멀찍이 앉아 구경했으며, 플레타는 내 옆에 다가와 팔짱을 낀 채 관망했다.
제스칼은…… 자신만만한 테일러와 달리 로르다인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건가?
뭐, 그거야 곧 알겠지.
스르릉-
테일러의 장검이 소름 돋는 소리를 내며 뽑혔다.
반면 로르다인은 손아귀에 쥔 단검을 연신 팽그르르 돌릴 뿐이었다.
일견 그 방만한 모습에도 테일러는 그저 천천히 심호흡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훌륭한 기사였다. 싸움을 목전에 두고 어느새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아마 좀 전의 분노는 그레이엄이라는 왕실기사단의 정신적 지주를 건드린 탓이었겠지.
“흡!”
대련은 신호랄 것도 없이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짧게 호흡한 테일러가 땅을 박차 로르다인을 향해 쇄도했다.
츠아앗!
테일러의 장검을 타고 피어오른 푸른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마나의 발현이었다.
당연히 그에 맞서려면 같은 기운이 있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 자연스레 로르다인의 단검에서도 마나가…… 뿜어졌다?
그래. 피어오른 게 아니라 뿜어졌다.
원체 작은 탓에 오히려 단검은 푸른 기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것은 그저 푸른 불길로 만들어진 기다란 검이었다.
저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광선검? 그래. 갈래갈래 불길을 내뿜는 광선검처럼 생겼다.
“……!”
그를 본 테일러의 눈이 크게 뜨였다.
비효율의 극치다. 저런 형태로 오러를 발현하는 것도 힘들지만,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유지하는 건 더 큰 문제다.
아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마나가 고갈되겠지. 하지만 로르다인은 여유만만한 얼굴로 테일러를 맞이했다.
쾅! 쾅! 쾅!
세 번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힘과 힘이 충돌하며 찢겨나간 푸른빛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잠시 시야를 어지럽히던 것들이 걷힌 뒤, 둘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끝났네.”
옆에서 내 말을 들은 플레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났다고요?”
“둘의 검을 봐. 한쪽은 검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만.”
내 말을 들은 플레타의 시선이 빠르게 둘로 향했다.
“검을 보라는 게 무슨…… 아아.”
뒤늦게 플레타가 탄성을 내질렀다.
이유는 명확했다. 테일러의 검엔 조금 전 충돌로 찢겨나간 오러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면 로르다인의 단검은? 좀 전과 같다. 아니, 애초부터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스아아아아!
처음엔 장검 정도의 크기였던 로르다인의 오러가 이젠 투 핸디드 소드만큼 솟아올랐다.
괴물이다. 마나터널이 있는 나조차도 저렇게 마나를 낭비했다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지금의 로르다인은 마치 포효하는 듯했다. 자신이 가진 그릇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처럼.
동시에 얼핏 곁눈으로 제스칼이 천천히 고개 젓는 게 보였다.
“이번엔 내가 가지.”
로르다인이 경고를 내뱉었다.
뒤이어 땅을 박찬 로르다인이 마나로 이루어진 검을 휘둘렀다.
테일러의 딱딱해진 표정이 심정을 대변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왼발을 뒤로 내디디며 맞받아칠 준비를 마쳤다.
툭!
그러나 예상과 달리 충돌음은 돌멩이가 떨어진 것처럼 작디작았다.
“…….”
로르다인의 이글거리는 대검은 그저 테일러의 검에 살짝 얹힌 상태였다.
그를 코앞에 놓고 대치한 테일러의 눈이 커졌다.
치익!
그의 뺨을 타고 흐른 땀이 열기에 익어 증발했다.
그렇게 힘을 빼 살짝 부딪치기만 한 로르다인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뒤이어 뿜어내던 힘을 회수하자 푸른 불길은 천천히 사라졌고, 이내 작은 단검만이 남았다.
핑그르르-!
로르다인은 능숙하게 단검을 돌리며 제스칼을 바라봤다.
“다음.”
로르다인이 테일러와의 대련이 끝났음을 암시했다.
누구도 공개적으로 승패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로르다인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고요한 침묵 사이로 플레타의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만약 로르다인이 전력을 다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테일러 경은 한동안 침대 신세였겠지. 내상이 심각했을 거야.”
테일러가 무슨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엄연히 엑스퍼트 중급이다.
엑스퍼트 중급.
어느 가문을 가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어느 기사단을 가도 간부진을 꿰찰 수 있는 인재.
물론 단순히 급을 나누는 것만으로 개인의 실력을 온전히 논할 순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엑스퍼트가 갖는 권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 강자를 로르다인은 너무도 쉽게 꺾었다. 그것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런 괴물이랑 한판 제대로 붙어야 한다고? 미쳐 버리겠네.’
문득 하슈나르가 내게 남긴 숙명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로르다인의 뜻으로 나를 베었듯, 로르다인 또한 내 뜻인 문장으로 베어 다오.”
……될까?
될 리가 있나. 지금 상태론 턱도 없다. 젠장.
그렇게 잡념이 빠져 있던 사이 제스칼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게 보였다.
뒤이어 로르다인에게 다가간 제스칼은 곧장 적의를 드러낼 거란 예상과 달리 로르다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검에 오러를 입히지 않는 대련으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대련.
그것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호 간의 격차가 분명해 제대로 된 대련이 불가능할 때.
즉, 제스칼은 먼저 그것을 요청함으로써 상대의 우위를 인정하고, 나아가 가르침을 요청한 셈이었다.
항복 선언이라기엔 참으로 기품이 넘치고 세련된 방식이다.
“그렇다면야.”
그리고 그 사실은 로르다인도 잘 알고 있을 터. 예상대로 사나운 기운이 제법 옅어진 로르다인이 나를 돌아봤다.
“이봐 애송이!”
“남들 다 듣는데 자꾸 애송이라 하실 겁니까?”
“시끄럽고 쓸 만한 검이나 내놔.”
“아까부터 뭐 맡겨 놨나…….”
나는 아공간 가방을 뒤져 미리 챙겨 놓은 적당한 장검을 하나 꺼냈다.
“그건 뭐냐? 그렇게 작은 가방에서 무슨 검이 튀어나와?”
“몇 년 동안 놀고만 있던 게 아니라서요.”
“재밌는 모험을 했나 본데.”
씩 웃은 로르다인이 건네받은 장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무게를 익혔다. 그러곤 몸을 돌려 제스칼과 마주했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제스칼의 선전 포고에 로르다인이 씩 웃었다.
“오라고.”
* * *
한바탕 시끄러웠던 대련이 끝났다.
분위기도 전환할 겸,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모이라 전한 나는 로르다인을 찾았다.
그새를 못 참고 또 술을 마시는 로르다인을 발견한 나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제스칼 어땠어요?”
“아앙? 너도 봤잖아?”
“보는 거랑 상대하는 건 다르니까요.”
“그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로르다인이 잠시 말을 멈춘 채 턱을 매만졌다.
“뭐랄까, 잘 벼려져 있더군. 재능이 뛰어나.”
“그래요?”
“아마 너를 못 봤다면 꽤 놀랐겠지. 인간의 짧은 수명을 생각하면 더더욱.”
제스칼과 로르다인의 대련은 오러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꽤 싱겁게 끝났다.
제스칼은 고작 이삼십 합만을 겨루곤 별말 없이 물러나 자신의 패배를 선언했다.
아이러니하지. 보통 배움에 열의가 강할수록 끈덕지게 달라붙는 게 맞지 않나.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로르다인이 옅은 웃음을 흘렸다.
“모든 걸 직접 보고 겪어 봐야 깨닫는 건 삼류야. 모름지기 일류는 나무만 보고도 숲을 파악하는 법이지.”
“아무래도 전 삼류인가 보군요.”
“맞아. 그래서 더 이상한 거고. 어떻게 삼류가 그런 괴물 같은 재능을 지녔는지.”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둘 다.”
시답지 않은 농을 주고받던 사이 문이 열리고 제스칼과 테일러가 나타났다. 둘 다 갑옷을 벗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뒤이어 플레타도 나타났다. 물기 젖어 반짝이는 머리칼을 보니 그새 간단히 씻은 모양이다.
“근처에 좋은 여관도 많은데.”
“이야기가 간단히 끝날 것 같진 않아서 말이죠.”
“그렇긴 하지. 테일러 경, 제스칼 경, 두 분도 와서 앉으시죠. 이야기가 길어질 겁니다.”
내 말에 제스칼이 먼저 다가와 테이블을 차지했다. 뒤이어 다가온 테일러는 로르다인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저 정도면 본인 말마따나 이종족인 엘프 상대로 상당히 자존심을 굽힌 거겠지.
예상대로 로르다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만 살짝 으쓱이고 말았다.
사람이 모두 모였음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뭐 어쨌든,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은 앞으로 한 팀이 되어 움직일 겁니다.”
내 말에 나를 제외한 다섯 명이 서로의 얼굴을 잠깐씩 바라봤다.
확실히 어마어마한 전력이다.
일단 나를 포함해 엑스퍼트급 기사가 셋이다. 더불어 마스터에 근접한, 혹은 마스터일지도 모를 괴물 엘프도 있고.
그 밖에도 후방을 담당할 5서클 마법사 플레타와 왕실이 길러낸 첩보원 피터까지. 그야말로 소수 정예라는 말이 어울리는 멤버.
나는 좋은 예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저희가 할 일은 공식적으론 인가되지 않은 작전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작전 종료까지, 이곳에 모인 모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동등하게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뭐, 당연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사람은 데려갈 생각도 없고.
“더해서 이번 작전의 지휘는 제가 맡습니다. 현장에서 생기는 변수에는 능동적으로 대처하되, 큰 틀에선 제 지휘를 중요시하는 식으로 갈 겁니다. 반대하시는 분?”
이번에도 반대는 없었다.
“좋습니다. 우선 제스칼 경, 이르페 후작님에게 대충 이번 작전의 개요는 들었습니까?”
내 질문에 제스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 백작님이 직접 입안하신 작전이라면 대충 윤곽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입안한 작전?
아, 벨린테스 국왕과 그 휘하 왕당파 거물들 앞에서 설명했던 걸 말하는 건가.
옆에서 제스칼의 말을 들은 플레타가 그게 무슨 작전이냐는 듯 무서운 눈빛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한번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모르시는 분도 계시니 다시 한번 설명하죠. 작전명 신세계입니다.”
이후 나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신세계 프로젝트.
사면된 플로레스 가문을 통해 동부의 중심인 붉은성을 장악한 바사라크를 축출한다. 이후 복권된 플로레스의 이름 아래 분열됐던 동부를 통일하며, 최종적으로 동부의 힘을 이용해 불온한 계획을 품은 이들을 소탕한다.
“…….”
“…….”
내 설명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 여전히 심드렁하게 술이나 마시는 로르다인은 빼고.
“질문 있습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건 제스칼이었다.
“물으시죠.”
“바사라크의 축출, 동부의 통일은 이미 끝난 것으로 압니다만.”
“그렇죠. 그러니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은 겁니다. 우린 그 마지막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초석을 다져야 하고.”
“마지막 단계라는 건 역시 로드키우스를 처리하는 것입니까?”
“최종적으론 그렇습니다.”
“최종적으론……?”
제스칼의 의문에 나는 손짓을 했고, 그를 본 피터가 한쪽 구석에 세워진 칠판을 옮겨 왔다.
그 앞에 선 나는 분필을 들어 ‘로드키우스’라고 적었다.
“로드키우스는 분명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로드키우스의 처리는 그저 이 모든 계획의 최종 단계일 뿐,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라곤 할 수 없다……? 설마 로드키우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로드키우스 옆에 ‘네비로스 교단’을 적었다.
“이들은 이 모든 일의 원흉입니다.”
“……네비로스 교단?”
“개국기념일 당시 캐피탈에서 일어난 구울 사건은 기억하고 계시겠죠. 참고로 그 사건을 일으킨 배후는 이들입니다. 바슈른 영지전도 마찬가지고.”
뿌득!
가만히 있던 테일러의 이를 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분노는 시종일관 차분하던 플레타도 마찬가지였다.
“그 밖에도 많은 범죄 행각이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죠.”
나는 칠판에 쓰인 로드키우스와 네비로스 교단을 한데 묶었다.
“현재 이 두 집단은 협력 관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다를지언정, 당장 서로에게 이득인 왕국의 분열을 위해 맺어진 불온한 동맹.”
뒤이어 한데 묶인 두 이름 아래 ‘증거’라는 글씨를 크게 써 넣었다.
“저와 여러분의 목표는 바로 이 네비로스 교단을 추적해 실체를 파악하고, 동시에 로드키우스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최종 목표인 로드키우스 정벌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겠죠.”
말을 마친 나는 피터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피터는 한데 정리해 두었던 종이 뭉치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거기에 적힌 내용은 현재까지 제가 파악한 네비로스 교단의 정보입니다. 더불어 교단이 보유한 무력 집단인 언홀리 나이트에 관한 내용도 있으니 모두 숙지한 뒤 파기하시면 됩니다.”
내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 종이를 받아 진지하게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궁금증이 들었다.
저들이 마석과 관련된 추악한 음모를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