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37)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38화(238/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38화
57장. 남부 군도
좌우로 갈리는 파도와 피어오르는 하얀 포말. 상쾌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말르가 항구에서 범선 한 척이 출항했다.
그리고 그 배에 승선한 나는 항구가 멀어짐을 확인하곤 제일 먼저 선장을 호출했다.
잠시 후 선수루에서 기다리던 내게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다가왔다.
“골든아너호에 승선하신 걸 환영합니다, 상회장님. 선장 잭이라고 합니다.”
선장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유야 뻔하다. 이번 일을 대가로 제시한 보수가 상당했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이 무역선은 엄연히 블루윈드 상회의 소유다. 선장은 그저 고용된 자에 불과하고. 그가 내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잡념을 지워 낸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선장님.”
“아이고!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바다 위에선 그 누구보다 선장이 위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러시다면야…… 그보다 달리하실 말씀이 있어 절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죠. 보안을 위해 출항 전까지 공유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려 주겠습니다.”
“……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던 선장은 이내 내 입에서 나온 새로운 항로를 듣자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아니, 치안이 확보된 연안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외해로 나가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물론 그 방법이라면 해안선을 따르는 것보다 빠르게 동부로 갈 수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남부는 해적들 천지입니다!”
“이해를 제대로 못하셨군요. 애초부터 목적지는 외해였습니다. 정확히는 남부 군도.”
입을 딱 벌린 선장의 눈이 갈 곳을 잃었다.
할 말을 잃은 건가?
“그, 그, 그…….”
“그?”
“그,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목적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자 선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닙니다만.”
농담이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선장의 얼굴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여쭙는 게 실례인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뻔히 사지인 곳에 가는 걸 잠자코 따를 수만은…….”
“계획에 잘 따라 주시기만 한다면 신상엔 별문제 없을 겁니다. 약속하죠.”
내 호언장담에 선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 물론 상회장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걱정된다면 하나 더 말해 주죠. 나를 포함한 저들은 기사입니다.”
내 말을 들은 선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 끝에는 난간에 기대 한가롭게 바다를 구경하는 내 일행들이 있었다.
“저분들이?”
“아, 한 명은 마법사고.”
“마법사!”
화들짝 놀란 선장이 눈을 크게 떴다.
아마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상회장이 기사와 마법사로 이루어진 무력 집단을 이끌고 계획에 따르길 요구한다.
어떤 상상이 이루어지든 그 끝에 내려지는 결론은 같다. 자신이 거부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
내 예상대로 선장은 두려움 섞인 얼굴로 천천히 물어 왔다.
“저와 제 선원들에겐 확실히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요?”
“명예를 걸고.”
기사가 내뱉는 명예란 말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 인간에게 신뢰를 주기엔 충분하겠지.
* * *
드물게 찾아온 여유에 잠시 잠을 청하던 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검을 챙기며 일어나 두터운 망토를 둘렀다. 이후 문을 열자 사뭇 흥분한 듯한 얼굴의 피터가 보였다.
“왔습니다, 백작님.”
왔다.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었음을 뜻하는 말에 나는 선상으로 향하며 물었다.
“숫자는?”
“브리건틴 두 척이랍니다.”
브리건틴. 쾌속 범선. 날렵하고 빠른 특성을 살려 해적들이 주로 이용하는 선박이다.
“그렇단 말이지.”
“아무래도 백작님 예상이 맞은 것 같은데요.”
“선장은 뭐라지?”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하더군요. 이런 야밤에 대놓고 접근하는 해적은 머리털 나고 처음 본다면서.”
“그러겠지.”
덜컥!
피터와의 대화를 마치며 선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눈앞에 탁 트인 밤하늘이 펼쳐졌다. 빛을 없애기 위해 등불조차 꺼 버린 선상 위엔 적막한 긴장만이 감돌고 있었다.
곧장 암안을 피어올린 나는 제일 먼저 선장을 찾았다. 긴장한 얼굴로 선원들을 부리던 선장은 나를 보곤 재빨리 다가왔다.
“사, 상회장님.”
“어딥니까?”
짧게 축약한 질문을 알아들은 선장이 바다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입니다. 지금은 구름이 달빛을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만.”
선장의 말대로 달빛이 가려져 바다는 어두웠지만 암안은 아무런 무리 없이 어둠을 꿰뚫었다.
그렇게 보인 것은 어둠을 가르고 다가오는 두 척의 배였다. 여타의 것보다 폭이 좁고 날렵하게 생긴 선체는 마치 상어를 연상케 했다.
‘문양은…….’
돛대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이윽고 돛에 그려진 살벌한 문양이 보였다.
그를 확인한 나는 옆에서 뚫어져라 바다를 살피는 피터를 불렀다.
“해골 위에 내려앉은 까마귀.”
“예? 뭐가 보이십니까?”
“그래. 보여. 그러니까 말해.”
“어, 음, 해골 위에 까마귀라…….”
미리 조사해 머릿속에 박아 두었던 기억을 헤집던 피터가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갈까마귀 해적단인 것 같습니다.”
“갈까마귀 해적단? 촌스럽긴. 그래서 어떤 놈들이야?”
“자세히는 모릅니다.”
피터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일견 무책임하게 보이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속뜻을 이해했다.
조사할 필요조차 없는 잔챙이들.
필요한 정보를 모두 모았음을 확인한 나는 다시 선장을 불렀다.
“우리와 거리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습니까?”
내 물음에 선장이 바람을 확인했다.
“이 해역은 바람이 역풍에 가깝습니다.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상황에 당연히 놈들이 저희보다 유리하겠죠. 아마 이삼십 분이면 따라잡힐 겁니다.”
이삼십 분이라…….
여유가 있음을 확인한 나는 피터에게 일행들을 불러 모으라 시켰다.
잠시 후 제스칼과 테일러가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앞에 섰다. 반면 로르다인은 자다 나왔다는 걸 광고라도 하듯 연신 하품을 내뱉기 바빴다.
나머지 한 명은 어디에 있지?
“플레타는?”
“……여기 있습니다.”
내 부름에 플레타가 창백한 안색으로 대답하며 나타났다.
왜 저래? 아, 뱃멀미인가?
“멀미는 마법으로 해결 못하나?”
“바다에서 하루 이틀 보낼 것도 아닌데 매번 마법을 쓸 순 없는 노릇입니다. 적응해야죠.”
“그렇다면야.”
고개를 끄덕인 나는 피터를 바라보았고, 그에 피터가 빙긋 웃으며 팔짱을 꼈다.
“축하할 만한 소식이 있습니다. 해적들이 따라붙었습니다!”
피터의 과장된 말투에 테일러가 표정을 찌푸렸다.
“방해꾼이 따라붙은 게 축하할 만한 일인가?”
“축하할 일이죠. 항로를 제대로 잡았다는 뜻이니까요.”
“제대로 잡아? 그게 무슨 뜻이오?”
테일러의 의문에 피터가 씩 웃었다.
“지금은 밤이니까요.”
그 말을 들은 테일러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반면 플레타는 단박에 이해했다는 듯 작게 읊조렸다.
“선박은 일종의 움직이는 요새.”
플레타의 말에 이어 제스칼도 덧붙였다.
“그렇게 본다면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요. 이렇게 밤에 습격을 오다니.”
제스칼까지 동조하고 나서자 테일러는 로르다인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만 모르는 게 아니길 바라는 눈빛으로.
하지만 로르다인은 꿈 깨라는 듯 테일러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보통 요새를 공격할 땐 밤을 고르지 않지. 어둠은 체계적인 움직임을 방해하니까. 특별한 전략이 있는 게 아니라면 수비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이다.”
“크흐흠…….”
테일러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흘렸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일 겁니다. 핸디캡을 안고서도 이길 계획이 있다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밤에 공격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거나.”
내 말에 제스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해적들에게 마법사가 있겠습니까?”
마법사. 어둠을 밝힐 수 있고 밀집한 적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전략 병기.
그런 존재가 해적단에 있냐는 물음에 듣고 있던 플레타가 코웃음을 쳤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저도 그러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후자겠군요. 하지만 어두운 밤에 급습할 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우리가 축하할 만한 일이다? 뭐가 있겠습니까?”
제스칼의 의문에 플레타가 손을 내저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피터 수사관의 정보에 따르면 최근 소멸한 해적단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영역을 네비로스 교단이 차지했다고 판단했고.”
“그렇다면 지금 저들은 네비로스 교단이 차지한 영역에 몰래 들어와 사냥감을 찾고 있다는 겁니까?”
“소규모 해적단이니 더더욱 그렇겠죠. 로드키우스와 네비로스 교단은 협력 관계이지 않습니까.”
“아, 이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축하할 만한 소식이었군요.”
제스칼과 플레타의 대화에 테일러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저 아저씨는 무슨 뇌까지 근육으로 찼나?
불쌍한 테일러도 살려줄 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타의 말대로 로드키우스와 네비로스는 협력 관계입니다. 그리고 규모가 있는 해적단은 공공연하게 귀족들에게 상납금을 바치며 뒷배를 얻죠. 그리고 남부의 귀족들은 대부분 로드키우스의 수족들이고.”
즉, 귀족들은 연을 맺은 해적단에게 네비로스의 영역을 불가침하라는 언질을 줄 수 있다는 게 쟁점이었다.
반면 소규모의 해적단에겐 그런 연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하이에나처럼 네비로스의 영역을 들쑤시고 다닐 수 있겠지.
물론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 일이다. 그러니 최대한 은밀히 밤에 활동하는 건 당연지사.
내 정리를 들은 테일러가 살 것 같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들을 나포해야겠군!”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선장을 호출했다.
내 부름에 잔뜩 겁먹은 듯한 얼굴의 선장이 머뭇머뭇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적재된 보트가 있습니까?”
“항만에 짐을 옮기거나 비상시 탈출용으로 실어 놓긴 합니다만…….”
“두 척만 내려 주시죠. 지금 당장.”
빠르게 말을 마친 나는 곧장 제스칼을 바라봤다.
“제스칼 경, 저와 당신은 내린 보트 두 척에 나눠 타서 대기할 겁니다. 이후 골든아너호를 먼저 보내고 뒤따르는 해적선을 기습해 나포합니다. 각각 한 척씩 맡으면 되겠죠.”
느닷없이 내려진 내 계획에 플레타가 의문을 표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골든아너호에서 대기하다 접근해 오면 처리해도 될 텐데.”
“아니. 괜히 놈들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내빼면 상황이 곤란해져. 차라리 나와 제스칼 경이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나아.”
내 단언에 제스칼이 손을 들었다.
“유의해야 할 점이라도 있습니까?”
“선장은 반드시 사로잡는 방향으로. 그 외 해적은 척살합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시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스칼은 이후 작은 보트를 옮기는 선원들을 도우러 향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로르다인이 나를 보며 툴툴댔다.
“몸도 찌뿌둥한데 내가 가면 안 되냐?”
“안 돼요.”
“왜?”
“힘 조절 안 되잖아요.”
“…….”
할 말 없다는 듯 혀를 찬 로르다인이 몸을 돌렸다.
“그럼 난 잠이나 더 자러 간다.”
“그러세요.”
그렇게 로르다인이 사라지자 테일러가 큼큼 헛기침했다.
“크흠, 굳이 카인 백작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겠소? 내가 대신해도 상관없소만.”
자신에겐 아무런 임무도 없냐는 말투에 잠자코 있던 플레타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테일러 경, 골든아너호는 현재 우리의 기함이나 다름없습니다. 기함을 지켜야 하는 임무는 가장 신뢰 높은 자가 맡는 게 당연한 일이고.”
“아, 그렇소?”
플레타의 말에 테일러의 표정이 풀렸다. 물론 나와 피터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고.
이후 선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아래 두 척의 보트가 바다 위에 띄워졌다.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나는 피터를 불렀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배를 장악하면 신호로 등불을 켜 놓을 테니 다시 돌아오라고.”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그대로 난간을 뛰어넘어 가볍게 보트 위에 착지했다.
확실히 배가 작아지니 출렁거림이 심하다. 이후 몇 번 자세를 고쳐 적응한 나는 멀어져 가는 골든아너호를 확인했다.
뒤이어 옆을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제스칼이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하네.’
원작 소설에선 왕가의 희망이라 불리던 제스칼이다. 그의 일 처리는 과연 어떤 방식일지 내심 기대되었다.
뭐 그거야 곧 알게 되겠지.
다시 고개 돌린 나는 팔짱을 낀 채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해적선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