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47)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48화(248/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48화
248. 알리오네 로드키우스(2)
“마석?”
“…….”
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동시에 나는 불현듯 떠올랐던 찝찝함의 실체가 대강 잡히는 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세상 모든 권력을 잡은 철혈의 폭군이라도, 무릇 자기 새끼 앞에서는 상냥한 아비가 되는 법이다.
같은 인간이자 같은 생명인 해적들에겐 거리낌 없이 가슴팍에 오망성이란 주홍글씨를 박아 넣어도 제 자식에게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남의 피는 거리낌 없이 탐해도, 자신의 피를 흘리는 데는 거리낌이 있는 것이다.
로드키우스 후작, 이 개새끼.
동시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놈에게 진실을 알려 주면 어떻게 될까? 왕국을 체스판 삼은 놈들의 계획을 알게 되면 표정이 어떻게 바뀔까? 제 아비의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저열한 쾌감과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동시에 솟구친다.
그에 나는 아공간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그곳에 묵혀 두었던 네비로스 교단의 정보를 꺼냈다.
녀석은 내가 내민 종이를 보곤 눈을 얇게 좁혔다.
“뭐지, 이건?”
“판도라의 상자.”
“그건 무슨 뜻이지?”
“닥치고 읽어 봐.”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알리오네는 내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는지, 꺼림칙한 얼굴로 내가 내민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 알리오네가 끝내 짤막하지만 강렬하게 외쳤다.
“개소리!”
“목소리 낮춰.”
“이딴 허무맹랑한……. 아무리 우리 가문이 왕실에 비협조적이라고 해도 이런 조작된 이야기로 누명을 씌우려 들다니?”
“조작?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황을 봐도?”
만약 그렇다면?
내가 심어 준 씨앗은 알리오네 마음속 깊숙이 자리할 것이다. 아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겠지.
만약 종이에 적힌 것들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과연 정황에 어폐가 있는가?
있을 리가!
예상대로 알리오네는 이를 악문 채 내가 건넨 정보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정착지를 건설하라는 임무를 받고 온 거다. 인간을 갈아 에너지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정착지를 만드는 데 왜 해적들과 함께하지?”
“그들을 교화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교화?”
“오랫동안 남부 군도는 해적들의 온상이었다. 우리 가문은 그 남부 군도를 정리하여 새로운 정착지로 만들어 영지민의 희생을 줄이고, 가문의 영역을 넓히고자 했을 뿐이야. 해군력의 강화를 통해 제해권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로잡은 해적은 앞서 말했던 목적을 위해 교화하던 와중이었다.”
기가 막히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그렇게 믿을 법했다.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왕실도 남부 군도의 정보를 입수했을 때 알리오네의 말처럼 판단하지 않았을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남부 군도 각 섬에 마을들을 만들어 사람들이 거주하도록 했던 건가?”
“그걸 봤나?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그래. 남부 군도를 우리 가문의 영지로 편입시키기 위한 과정이었어. 일단 사람이 살아야 개척을 해도 할 테니까.”
“그 사람들은 어디서 왔지?”
“여러 남부 가문의 영지민 중 희망자를 받았다.”
“네가 봤어?”
“뭐라고?”
“그 희망자들을 네가 직접 봤냐고.”
“…….”
“봤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쓸모를 잃어 구덩이에서 불타 죽은 것도 모를 테고.”
“그건…… 풍토병이 마을을 휩쓸어 사망자를 화장해 처리한 것이다.”
“그것도 네가 봤냐? 실제로 병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봤어? 아니, 책상머리에서 보고만 받았겠지. 자, 그럼 내가 하나 묻자. 그 거창한 남부 군도 식민지 프로젝트에서 네가 직접 지켜보거나 아니면 네 손으로 직접 행한 게 뭐가 있지?”
“난…….”
“넌 그저 가장 안전한 후방에 처박혀 아무것도 모른 채 소꿉놀이만 하고 있던 거야. 근데 궁금하지 않아? 로드키우스 후작이 왜 널 이딴 오지에 개척이란 허울뿐인 일을 맡겨 허수아비로 처박아 둔 건지?”
왜 그랬을까?
답이야 명쾌하지. 카인이라는 예기치 못한 방해꾼의 등장, 그로 인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톱니바퀴.
애초부터 공동의 목표만 있었을 뿐, 돈독한 동료애 따윈 없는 로드키우스와 네비로스의 연합이다. 흐트러져 가는 진행 상황에 서로의 배신을 방지할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로드키우스가 네비로스 교단으로부터 어떤 안전장치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네비로스 교단이 무얼 받았는지는 확실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으니까.
“넌 네비로스 교단의 인질이었던 거야.”
“헛소리.”
알리오네가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왠지 그 부정에는 숨기지 못한 혼란이 섞여 있었다. 그걸 본인도 느꼈는지 녀석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정황이 들어맞는다고 해서 그게 진실이라는 뜻은 아니지. 우리 가문에 심어 둔 밀정으로 정보를 얻어 악의적으로 끼워 맞춘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묻겠다. 네 이야기의 진위를 판단할 증거는 어디에 있지?”
“증거?”
발악에 가까운 알리오네의 반문에 난 픽 웃음을 흘렸다.
“조금만 기다려. 네가 보기 싫어도 이제 질리도록 보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 진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알리오네 로드키우스는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테고.
* * *
긴 시간 동안 알리오네는 말이 없었다.
아마 여러 고민으로 생각이 깊겠지.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부터가 맹목적인 부정은 아닌 셈이니, 어쩌면 평소에도 상황이 찝찝하다는 걸 내심 느껴 왔는지도 모른다.
내 입장에선 어떨까.
알리오네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정말 이면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연관이 없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 괜찮다. 어차피 포로로 잡은 언홀리 나이트가 있으니까.
알리오네가 그들과 함께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렇다면 로드키우스와 언홀리 나이트가 조직적인 움직임을 함께했다는 증거가 되어 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왕실의 명령뿐이다.
‘부정한 음모의 정황이 보이므로, 로드키우스 가문은 성실히 수사에 협조하고 남부 군도에서 계획했던 모든 일을 상세히 고하라.’
거부한다면 그거야말로 확실한 명분이 되어 준다.
승낙한다면? 보따리 싸서 로드키우스 가문을 들쑤시면 그만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꼬리는 반드시 잡힐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횃불들의 움직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 녀석들도 이대로 수색을 계속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듯싶다.
그렇게 멈춰 선 횃불들은 점점 원형을 그려 갔다. 포위망을 형성하는 건가?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 아마 제스칼과 피터를 잡으러 갔던 병력이 돌아오고 어둠이 걷히면 그때 다시 수색하려는 생각이겠지.
흘긋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먼동에서부터 푸르스름한 기운이 솟기 시작했다.
곧 해가 뜬다. 플레타와 약속했던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내가 해변에 없다면…….’
플레타의 말에 의하면 반지의 탐지 거리는 그리 넓지 않다고 했다. 만약 내가 해변에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
임무의 실패라고 생각하고 그냥 떠날까?
그럴 리는 없다.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다. 일단 동료들은 조심스럽게라도 섬 주변을 둘러볼 테고, 그렇다면 나를 둘러싼 포위망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겠지.
그런 상황이라면 플레타나 피터는 내가 놈들에게서 도주한 상태라는 걸 쉽게 유추해 낼 거다. 뭣하면 아무나 사로잡아 이야기를 캐낼 수도 있을 테고.
어쨌든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행동을 개시할 거다.
쿠궁!
바로 지금처럼.
섬 아주 멀리 해변으로부터 격렬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누가 들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다. 그리고 이런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은 한정적이다.
“무슨 소리…….”
때아닌 굉음에 생각에서 깬 알리오네가 불안한 눈빛을 지었다. 그에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어깨를 짚었다.
“잠깐 실례.”
“끄윽…….”
턱을 후려쳐 기절시킨 알리오네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러곤 십수 미터 나무 위에서 그대로 도약했다.
높이가 높이라 발목에 시큰함이 느껴졌다. 착지한 자세 그대로 주위를 살폈다.
고요하다. 일단 주위엔 아무도 없는 듯했다.
쿵! 콰앙!
그러는 사이에도 멀리서 반복적으로 굉음이 들려왔다. 아무리 괴팍한 로르다인이라도 전투에 관해선 전문가다.
기습의 묘를 살리려면 굳이 소란스럽게 싸울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건 본인도 가장 잘 알고 있을 테고.
그런데도 저런다는 건 무언가 확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내게 위치를 알려 주려는 것이겠지.
그대로 땅을 박차 내달리기 시작했다. 축 늘어진 알리오네의 팔다리가 연처럼 휘적거린다.
“뭐야?”
“그놈이다!”
소리의 진원지로 향하는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달리는 숲 사이로 나를 보곤 당황한 해적들이 보였다.
위협이나 사로잡는 건 시간 낭비다. 그대로 검을 뽑아 횡으로 그었다.
매끄럽게 휘둘러진 검의 궤적 뒤로 핏물이 솟구쳤다.
그를 뒤로하며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달렸고, 그사이 서넛의 해적을 더 베었다.
그렇게 숲과 해변을 나누는 경계선에 도착함과 동시에 시야가 트였다.
어느덧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태양이 바다를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똑같이 붉은 해변가가 보였다.
다만 해변의 붉음은 태양이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물감은 인간의 피요, 붓은 손에 쥔 장검이었다.
선혈로 붉디붉은 해변 위엔 마치 당대의 거장처럼 로르다인이 우뚝 서 있었다.
콰아앙!
그리고 로르다인은 자신이 그려 낸 그림 위에서, 여덟의 언홀리 나이트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괴물은 괴물이야.’
북방에서 상대했던 조무래기 언홀리 나이트가 아니다.
이전 군도 탐사에서 나와 테일러가 간신히 상대했던, 사실상 상대의 방심이나 아휀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패배했을 실력의 정예들이다. 그런 존재 여덟과 맞선다.
맞선다? 맞선다고 해야 하나? 내가 보기엔 고양이 앞에 선 여덟 마리의 생쥐 느낌인데.
[넷이라고 하지 않았어?]잠시 멈춰 선 내 머릿속으로 아휀의 지적이 들려왔다.
맞다. 이곳 섬에 남은 언홀리 나이트는 넷이었다. 내 시선이 다시 해변으로 옮겨 갔다. 여러 척의 선박이 해안가에 정박해 있었다.
“제스칼과 피터가 있던 섬으로 지원 갔던 놈들이 도망쳐왔나 본데.”
[저 엘프 아저씨를 보고?]“그랬겠지.”
아마 로르다인에게 박살 난 아군을 보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회군했겠지. 그리고 동료들은 그런 그들을 뒤쫓아 부리나케 이 섬에 온 것일 테고.
[다른 친구들은 어디에 있지?]“바다에 있다. 배를 지키려나 본데.”
그리고 로르다인이 저렇게 전력으로 상대를 끝장내지 않고 시간을 끄는 이유도 뻔하다. 만에 하나 내가 포로로 잡혔을 경우를 걱정하는 거겠지. 사로잡아야 협상을 하든, 소재를 파악하든 할 테니.
그렇다면 뭐, 남은 건 쉽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대로 숲을 빠져나와 입을 벌렸다.
“로르다이인!”
쩌렁한 고함이 해변가에 퍼졌다. 검을 휘두르던 로르다인은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돌려 정확히 날 바라봤다.
“갑시다! 마무리하세요!”
이어진 내 말에 로르다인이 씩 웃으며 어깨를 붕붕 돌렸다.
“그 말을 기다렸다고.”
로르다인이 좀 전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뿜어내자 언홀리 나이트들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곤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로르다인에게 뒤를 맡긴 나는 그대로 해변을 지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향해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