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53)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54화(254/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54화
후작의 말을 듣곤 순간 멍해졌던 내 정신을 우렁찬 고함이 일깨웠다.
“국왕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벨린테스 국왕이 나타나자 궁정악사들이 장엄한 연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문 양옆에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하늘로 순백색 꽃잎을 흩뿌렸다.
그 화려한 등장에 춤을 추던 여인들은 양손으로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몸을 숙였고, 남자들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와 일행도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차렸다. 나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보이지 않게 이를 드러냈다.
로드키우스 후작이? 캐피탈에?
역시 보통이 아닌 인간이다. 지금의 캐피탈은 그에게 있어 범의 아가리와 같을진대 말이지.
입맛이 써 오는 게 느껴졌다.
입장한 국왕 벨린테스는 황금빛 예복을 걸친 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뒤에는 왕실근위기사단장 마스터 그레이엄 백작이 뒤따르고 있었다.
벨린테스는 그 나이대에 걸맞게 조금은 어수룩하고 순진한 표정이었다. 물론 당연히 저건 연기겠지만.
“모두 일어나시오. 오늘 나의 연회에 참석해 주어서 고맙소. 마음껏 즐겨 주길 바라오.”
말을 마친 벨린테스가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았고, 그레이엄은 그런 국왕 옆에 단단히 시립하고 섰다.
다시 무도회에 걸맞은 음악으로 바뀌었다. 잠시 멈췄던 연회가 계속되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후작에게 작게 속삭였다.
“로드키우스 후작이 입궁한다고요?”
“물론 명분은 있네. 캐피탈에서 열리는 연회엔 모든 귀족에게 열려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으레 하는 절차였네. 그걸 응해서 이곳까지 찾아올 줄은 나도 몰랐군.”
“음, 아마 저를 만나러 온 것이겠죠.”
“그렇지 않겠나? 자네가 왕실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건 지나가는 동네 꼬마도 알 텐데.”
“거참 고마운 유명세로군요.”
후작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할린 후작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떠보는 건가? 하여간 그냥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알 수 없지요. 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로드키우스 후작도 상식 밖의 일은 하지 못할 겁니다. 제아무리 자식을 볼모로 잡힌 자라도 말이죠. 하지만 좋지 않군요.”
“좋지 않다?”
“그건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니까요. 이곳은 캐피탈입니다.”
“오호, 자세히 설명해 주겠나?”
알면서 묻기는, 이 너구리 같은 양반.
“로드키우스는 강력한 귀족입니다. 그가 가진 남부의 장원만 해도 엄청나지요. 만약 그가 독립한다면 거느린 가신들만으로도 단숨에 작은 왕국을 세울 수 있을 정도니까. 그런 대귀족을 유력자들이 모인 캐피탈에서 함부로 핍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죠.”
할린 후작이 내 잔에 와인을 채워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여 잠깐 한 모금.
“게다가 로드키우스 후작은 반왕당파 세력의 실질적 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를 따르지 않는 귀족들에게도 그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지나친 왕권의 개입은 성향을 막론하고 모든 귀족에게 경계 대상이니까요. 국왕을 대신 견제해 주는 고마운 방패인 셈이죠. 그리고 그건 설령 폐하께 충성을 다하는 왕당파라고 해도 속내는 별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그래서?”
“그에게 아무리 많은 혐의가 있다고 한들, 공식적인 발표가 없다면 여전히 왕국의 공신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로드키우스 후작은 이곳에서 우리에게 잡혀선 안 됩니다. 그가 쓰러질 곳은 남부여야만 하죠.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것들의 연장선이고.”
내 답변에 할린 후작이 빙긋 웃으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잠시 계획을 실행하는 건 보류하죠. 일단 지켜봅시다. 그다음에 결정하죠. 다만 준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도록.”
“말만 하게. 언제든 가능하니.”
“이곳에서도요?”
“이곳에도 수사관은 있네.”
거참 무섭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연회장을 쭉 훑었다. 비밀수사관이 변복하고 이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뒤통수가 시큰한걸.
그런 내 눈치에 픽 웃은 할린 후작이 덧붙였다.
“로드키우스를 조심히 대하게. 자네 말마따나 자식 잃은 곰이네. 그걸 유념해야 해. 섣불리 적대할 생각은 말게나. 충돌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일세. 어쨌거나 이곳은 왕궁이니까. 엄연히 주인 있는 곳에서 손님끼리 싸운다면 그건 꼴불견이겠지.”
자식 잃은 곰이라……. 로드키우스 가문의 상징은 거대한 그리즐리였지.
나는 작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의 아들, 알리오네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수사관들이 맡고 있네. 정확한 위치는 기밀이고.”
“좋습니다.”
다시 찾아온 적막.
나는 와인을 홀짝이며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많은 귀족이 국왕에게 인사를 올리며 가져온 선물을 내어놓고 있었다. 그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광경도 잠시, 멀리서부터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깐만, 절그럭이라고?
어이가 없음에 고개를 돌리자 할린 후작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나를 따라 일리아와 루스도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우리보다 제스칼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우리와 같은 테이블에 있던 그는 검집에 손을 올린 채 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짧은 사이에 문밖에선 커다란 고성이 들려왔다.
“비켜라.”
“후, 후작님! 이곳엔 근위기사 말고는 무장하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만 들어가지. 빈손이잖은가? 비켜라!”
쿵!
거대한 문이 열리자 그 사이로 검은 망토로 몸을 휘감은 사내가 보였다. 사내에게 밀쳐진 궁내부원은 비틀거리면서도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결국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방해꾼을 물린 사내는 당당하게 연회장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걸음걸음 살짝 드러난 망토 안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흉갑과 건틀릿, 그리고 땅을 울리는 강철 그리브가 보였다.
시선을 올리자 장대한 체구와 그 체구에 걸맞은 강인한 중년의 얼굴이 보였다. 어두운 갈색 머리칼과 아주 짧게 다듬은 수염.
일찍이 들어 알고 있는 외견이었다.
로드키우스 후작.
힐끗 문밖을 바라보자 마찬가지로 로드키우스 후작과 비슷한 복색의 무리가 정연하게 서 있었다. 그의 기사들인 듯했다.
“저게 가능합니까?”
궁성 안까지 귀족의 기사단이 들어올 수 있냐는 함축적인 질문에 할린 후작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들여보내라고 했네. 폐하께서도 용인하셨고. 뭐, 이렇게까지 무례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아.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 악당의 면모를 자처해 주는군.”
“안전의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허어. 이보게, 카인 백작. 왕실근위기사단이 그토록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던가?”
할린 후작의 말대로였다. 어느새 튀어 나간 제스칼을 비롯한 왕실근위기사들이 일정 거리를 두고 후작을 둘러쌌다.
반면 단장인 그레이엄 백작은 그때까지도 변함없이 국왕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강렬한 기세는 여전히 변함없다.
연회장은 삽시간에 얼음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로드키우스 후작을 향했으나, 그는 자신을 둘러싼 근위기사들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무시하며 국왕을 향해 고개 숙였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폐하. 볼일만 보고 곧장 나가겠으니 참아 주십시오.”
무례하다. 무례하다 못해 오만하다.
국왕의 대답조차 듣지 않은 채 고개를 거둔 후작은 곧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어렵지 않게 나를 발견하곤 입가를 비틀었다.
쿵, 쿵, 쿵.
후작의 발걸음이 조용한 연회장을 울렸다. 더불어 근위기사들도 그 걸음에 맞춰 포위를 풀지 않고 움직였다.
이윽고 내 앞에 도착한 후작이 고개를 기울였다. 비릿한 미소였다.
“반갑소, 카인 백작.”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서 그를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로드키우스 후작님.”
그는 내 손에 들린 와인잔을 보곤 미소를 지워 냈다.
“유괴범치곤 꽤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으시군. 담이 크다고 해야 하나.”
그는 목청을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뜻이 확실해지는군.
주변이 쑥덕거림으로 조금 소란해졌다. 그에 나 또한 굳이 조용히 말하지 않았다.
“유괴? 천만의 말씀. 보호겠지요.”
“무엇으로부터?”
“왕국을 희롱하는 불온한 목적으로부터.”
“말장난하자는 건가?”
“여기가 어느 자리라고 제가 장난을 치겠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후작은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제 그와 내 얼굴 사이는 고작 한 뼘. 후작의 두 눈에서 조용히 불타고 있는 분노가 엿보였다.
“내 아들을 내놔.”
“곧 소환이 있을 겁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협조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소환? 누가 누구를?”
“왕실이 로드키우스 가문을.”
“무슨 권리로.”
“그 신하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내맡긴 권리로.”
내 말에 로드키우스 후작이 낮지만 강한 어조로 속삭여 왔다.
“카인 아르휀. 그 명석한 머리로 고작 한다는 게 왕가의 개노릇인가? 웃길 노릇이군! 빛날 수 있는 야망을 스스로 오물에 처박고 퇴색하는 꼬락서니라니. 통탄을 금치 못하겠어.”
“그렇습니까?”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기에 실수인 법. 늦지 않았다. 내 아들을 내놓아라. 그리고 내 가문이 보내는 초청을 받아들여라.”
“초청은 받아들이죠. 어차피 소환에 응하지 않을 생각이신 것 같으니. 곧 찾아뵙겠습니다.”
“창칼을 들고?”
“빈손으로 가는 건 손님의 예가 아니니까요.”
후작이 으르렁거렸다.
“좋아. 하지만 후회하게 될걸.”
“상대에게 후회를 강요하는 자는 초라해 보이는 법이라고 하던가요.”
“그 독기 어린 혀만큼 어울리는 실력도 갖추었길 바라지.”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만.”
“허락하지.”
“너무 위험한 친구를 사귀셨더군요.”
작지만 확실한 움찔거림.
후작의 눈초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나타났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그 움직임은 사라졌다.
“이젠 내 교우 관계까지 상관할 셈인가?”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기에 실수라고 하셨지요. 그 말, 그대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조악한 반격이군.”
말을 마친 후작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곤 멀리 사태를 조용히 지켜보던 국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만 물러가겠소. 어차피 머지않아 다시 보게 될 것 같으니, 부디 그때까지 몸 성히 건강하길 바라오.”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듣고 있던 제스칼을 비롯한 근위기사들이 얼굴을 굳혔다. 그 모습에 후작은 비웃었다.
“연회에 초청해 놓고 그걸 덫으로 활용할 생각은 아니겠지? 명예를 지키시오. 물론 내 아들을 납치한 시점부터 과연 명예란 게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근위기사들이 그레이엄 백작을 바라봤다. 국왕 옆에 서 있던 그레이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포위망은 천천히 풀렸다.
그에 망토를 한번 펄럭거려 다시 몸을 감싼 로드키우스 후작은 비웃음을 남기며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광경을 지켜본 귀족들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로드키우스와 연이 닿아 있는 귀족들이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였다.
“시작하시죠.”
내 말에 할린 이르페 후작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미 모일 사람들은 전부 모인 뒤였다. 물론 몇몇은 아직 입궁이 늦었지만, 로드키우스 후작의 등장으로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끼이익-!
연회장으로 통하는 문이 굳건히 닫혔다. 어느새 국왕의 모습은 빠져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미리 배치되었던 왕실근위기사들이 문을 지키기 시작했다.
할린 이르페 후작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단상으로 향했다. 그러곤 가볍게 머리를 숙인 그는 이내 좌중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빈 여러분께서는 모두 빠짐없이 이곳에 대기해 주길 바라오.”
잔인한 말이었다. 머리가 명석한 이들은 좀 전의 로드키우스 후작의 등장과 연결해 사태를 파악했으나, 아둔한 몇몇 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곧이어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당연히 로드키우스 후작의 끄나풀이자 반왕당파 세력들이었고.
그런 그들을 보며 할린 후작은 빙긋 웃었다.
“권유가 아니오. 이건 명령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