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6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67화(267/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67화
바슈른 공작은 한창 쳐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가장 높은 첨탑에 지휘소를 마련한 상태였다.
그 지휘소를 지키고 서 있던 기사는 하킨스였는데, 나를 보곤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 참모장! 몸은 좀 괜찮으시오?”
“사령관님은 안에 계십니까?”
“안에 계시오.”
“전황은 어떻습니까?”
“공세는 훌륭하게 격퇴되었소. 아마 몇 시간 뒤에 다시 들이닥칠 모양인데, 로드키우스 후작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모양이더군.”
하킨스의 시선을 따라 성벽 너머로 고개를 돌리자 끔찍한 광경의 전장이 보였다.
정말 셀 수조차 없는 시신들이 무참하게 널려 있다. 그 중간중간엔 중상을 입어 고통에 신음 흘리는 부상자들이 적게 잡아도 수백은 되어 보였다.
“부상자도 수습하지 않고 있소.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무리 그래도 부상자를 수습하는 것까지 공격하진 않는데 말이오.”
혀를 차는 하킨스에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장 첨탑 내부로 몸을 들였다. 몇 개의 문을 더 지나자 꽤 피곤한 모습의 바슈른 공작이 보였다.
특이한 것은 플레타 바슈른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루스의 말에 따르면 미리 전서를 보내 합류하겠다고 했으니,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 후방 보급대와 함께 도착한 듯했다.
그녀는 나를 보곤 아는 체를 하려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말을 아꼈다.
“일어난 건가?”
반면 바슈른 공작은 나를 보지도 않고 물어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앞으로 다가섰다.
“예.”
“몸은 좀 괜찮나? 이야기는 들었네. 마스터급 기사가 나타났었다고? 로르다인과 자네가 훌륭히 격퇴했으니 그 논공은 잊지 않겠네. 그보다 지금 상황이…….”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바슈른 공작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줄곧 책상에 고정되어 있던 바슈른 공작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이후 나와 눈을 마주친 그가 미간을 좁혔다.
“심각해 보이는 얼굴이군.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이 전쟁은 로드키우스가 의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잠시 말을 멈췄던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허탈하게 말했다.
“우린 한 방 먹었습니다, 사령관님.”
그래.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어째서냐고? 놈들이 지금껏 마석을 이용해서 생명력을 착취해 오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로 인해 그 모든 계획은 들통났고, 남부 군도에 세우려던 플랜트 계획은 어그러졌다. 그런 판국에 미루어진 계획을 앞당기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래. 로드키우스 후작의 의중을 이제야 알아챈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애초에 이 전쟁은 이렇게 접근해서는 안 되었다.
“……이봐,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바슈른 공작은 내 머리가 혹 다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전조는 있었습니다. 놈들이 마석을 만들어 낸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잠깐.”
기밀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를 내가 꺼내자 바슈른 공작은 놀란 얼굴로 나와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 참모들에게 손짓했다.
“잠시 나가들 있게. 플레타, 너는 여기 남아 있거라.”
그렇게 지휘소에 셋만 남자 바슈른 공작이 눈을 찌푸렸다.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겠네. 어쨌든 마석이라고 했나? 그 끔찍한 물건이라면 당연히 잘 알고 있네. 자네가 직접 조사해서 내게 보고했던 것 아닌가?”
“그리고 끔찍한 마석의 힘을 담는 방법도 알고 계십니까?”
“나도 마법사네. 당연히 알고 있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걸 지금…… 아니, 알았네.”
내 표정이 진지하다는 걸 느꼈는지 바슈른 공작 또한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말을 시작했다.
“정령의 대가인 엘프 종족, 놈들의 경우엔 다크엘프를 이용했지. 그들을 겁박해 어둠의 정령을 봉인한 정령석을 만들어 냈네. 그리고 흑마법을 이용해 인간을 희생시켜 삿된 기운을 주입하여 마석이라는 끔찍한 물건을 만들어 냈고.”
“그 마석의 목적과 효용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아실 테고요.”
“광혈초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효능은 끌어올리지. 일전에 자네와 싸웠던 언홀리 나이트들이 그 혜택의 산증인이고. 몬스터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들었네. 오크들의 경우를 직접 봤다고 자네가 증언했지.”
“네. 저는 지금껏 네비로스 교단을 위시한 그들이 마석 제조에 혈안을 기울이는 게 단지 몬스터를 활용하거나 언홀리 나이트의 육성을 위해서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아니요. 그건 단지 부수적인 목표였던 것 같습니다.”
“부수적인 목표?”
“일전에 공작님께서 말씀하셨죠. 지금껏 기나긴 왕국의 역사 중에 미친 흑마법사는 항상 존재해 왔었다고. 그들은 항상 불경한 존재를 소환해서 혼란을 가져오려 하지만, 인간의 육신은 그릇으로 삼기엔 너무 연약하기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그랬지.”
“놈들은 그 그릇을 만들어 가고 있던 겁니다. 몬스터의 강화, 언홀리 나이트의 육성, 그런 것들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릇을 만들어 간다고?”
“그 흑발 사내 말입니다.”
“그가 그릇이라고? 무얼 위한?”
“무얼 위한 것이겠습니까?”
“자네 지금…… 아니, 잠깐만 기다려 보게.”
바슈른 공작이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그는 턱을 매만지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초월적인 존재를 현세에 강림시키기 위해서라면 마땅한 그릇이 필요하지. 그 그릇의 자질에 따라 강림한 화신의 권능 또한 정해지기 마련이고.”
말을 하며 정리해 가는 듯 바슈른 공작의 입은 쉬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네가 염려하는 그것은 인간의 몸으론 결코 담을 수 없는 존재야. 어찌 강림한다고 쳐도, 그 강함은 본래의 그릇이 가진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해.”
“흑발 사내는 인간이 아닙니다.”
“…….”
“애당초 그 자식은 그릇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던 겁니다. 리치처럼 어디엔가 그 원천이 되는 힘을 봉인해 두면 언제까지고 되살아나는 데스나이트로! 그리고 그 힘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껏 만들어지는 마석을 이용해 계속해서 조용히 힘을 키워 왔겠죠. 한데 원래 엑스퍼트 최상급으로 추정되던 놈이, 최근 비약적으로 강해진 채 나타났습니다.”
“최근이라면…….”
나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전쟁을 시작한 이후입니다.”
“…….”
“왕실연합군과 남부군의 현 피해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혹시 아십니까?”
“정확한 수치는 불명확하지만, 양측 합쳐 3만 정도로 보고 있네. 민간인 피해까지 합치면 더욱 늘어날 것이고.”
“며칠간 있었던 공성전도 포함된 수치입니까?”
내 물음에 바슈른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포함하면요?”
“6만은 훌쩍 넘겠지.”
“불과 몇 달 만에 6만입니다. 앞으로 몇 명이 더 죽을지는 알 수도 없고요. 보시다시피 지금도 후작은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을 죽이기 위해 이 성에 닥치고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네는 우리가 한 방 먹었다고 말했던 것인가?”
“처음으로 돌아가 보시죠. 로드키우스 후작이 캐피탈에 나타나 선전포고를 했을 때부터. 그 작자가 그럴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시간이 많을수록 유리한 건 자신인데. 소환에 불응하고 왕실이 죄를 물어 합당한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키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가 국왕 폐하 면전에 대고 캐피탈과 궁성을 오만하게 짓밟고 돌아갔기에 일사천리로 군대를 소집할 수 있었지.”
“더군다나 이곳까지 수월하게 진격한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물론 사령관님의 전략과 전술이 훌륭했다는 건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로드키우스는 의도적으로 계속 전선을 밀리며 회전을 강박적으로 노리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기만을 당했다고까지 말하고 싶진 않네. 하지만 로드키우스의 대응이 미적지근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군.”
“뻔하지 않습니까. 그 영악한 로드키우스는 모든 준비가 된 전장만을 골라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싶었던 겁니다.”
목이 마르다. 나는 근처 테이블에 놓인 물병을 가져와 단숨에 들이켰다. 미적지근한 게 짜증이 솟구친다. 얼음이라도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지.
지나가며 보인 플레타의 얼굴은 백지처럼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제기랄, 나도 미치겠다고.
나는 입가를 닦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결국 우린 그 의도에 걸맞게 이곳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드키우스는 마음 놓고 성을 탈환한다는 미명으로 사람 목숨을 안정적으로 갈아 넣을 수 있게 되었고요.”
“하지만 지금껏 자네가 말한 건 전부 추측이 아닌가?”
나는 손을 뻗어 전장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지금 저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을 다른 이유로 설명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로드키우스 후작이 노망이라도 들었다는 것 말고?”
“……없지.”
“결정적으로, 저는 사령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드루이드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드루이드라는 말에 바슈른 공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라헨나라고 했던가? 로르다인과 같은 엘프라고 생각했는데, 드루이드였나 보군. 이젠 놀랍지도 않아. 그래서?”
“라헨나는 얼마 전 그 사령술사의 이야기를 가지고 이곳에 왔습니다. 인과율이 어긋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대륙에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억눌려진 채 남아 있다고.”
“억눌려 있다는 건…….”
“아마 제물로 바쳐진 병사들의 넋이 어디론가 흡수되어 묶여 있다는 뜻이겠지요. 뻔하지 않습니까?”
“말만 들어 보면 정황이 들어맞는군. 하지만 자네 말대로 이 성은 포위되어 있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병력을 이끌고 밖으로 뛰쳐나가 희박한 싸움을 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2군단과 6군단이 이곳으로 오고 있네. 그들과 함께 물리쳐야 하는 것은 바뀌지 않아.”
“아니요!”
나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안 돼. 절대 그래선 안 된다.
바슈른 공작은 내 강성한 태도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차가우리만큼 이성적인 남자였다.
“무슨 이유로 안 된다는 건지 설명해 주겠나?”
“우리 제4군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를 다시 북부로 올려 보내야 합니다.”
“북부로? 그게 당최…….”
“남부는 안 됩니다. 남부에서 사람이 죽게 만들면 절대 안 됩니다! 죽는 족족 그놈들의 힘이 되어 줄 것이니까요! 이 원정은 처음부터 시작되어선 안 되었습니다!”
나는 안다. 흑발 사내, 그 미친놈이 케르윈을 찾아내는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북방을 막아선 결계를 박살 내기 위해서다. 케르윈의 소재를 알아내면 죽여서 박살 내고, 찾지 못한다고 해도 힘으로 박살 낼 생각일 것이다.
못할 것도 없다. 3, 4만 명이 죽어 순식간에 마스터에 올라선 놈이다. 그 곱절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북부라면?”
“몬스터들이 밀려 내려올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이제 더는 로드키우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왕국 전역이 전화로 뒤덮일 겁니다. 이건 추측이 아닙니다. 빠르건 늦건 반드시 찾아올 필연입니다. 우리 병력이 이 남부에서 피를 흘리는 만큼 그 속도는 빨라질 것이고요.”
쏟아 낸 내 말에 놀란 바슈른 공작에게 나는 쐐기를 박았다.
“이미 놈들은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여기 머나먼 남부 한가운데에 묶여 있을 때 북부를 노릴 겁니다. 설령 이대로 우리가 로드키우스를 비롯한 남부를 끝장낸다고 해도, 그건 국지전에서의 승리밖에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전장은 이제 왕국 전역입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보게.”
바슈른 공작의 태도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도 긴장이 차올랐는지 손끝이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나는 혼란에 빠진 공작에게 다시 한번 낮지만 힘주어 말했다.
“원정군의 목표는 지금 이 순간 바뀌었습니다! 공세에서 후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