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75)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76화(276/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76화
65장. 결전
‘단 한 번의 기회다.’
케르윈의 말이었다.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은 분명했다. 완벽한 전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네비로스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어렵게 얻어 낸 기회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테니.
그렇기에 네비로스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더불어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은 철저하게 급조된 계획처럼 보여야 했다. 일말의 의심조차 지워 버려야 했으니까.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고 했던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계획적으로 나타난 일행들의 대응에 네비로스는 마침내 언홀리나이트라는 가장 중요한 패를 꺼내 들었다.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케르윈!”
내 찢어지는 부름에 반응한 것은 하늘이었다. 투명 마법을 통해 날아들었던 케르윈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로브를 걸치고 은발을 휘날리는 그녀는 자기 옷처럼 순백의 털을 지닌 유령마 위에서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앞으로 나아가는 그리폰 앞으로 반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캬아아악!
동시에 그리폰이 흉포한 울음을 터트리며 드레이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한창 환영을 공격하던 드레이크는 뒤늦게 그리폰의 접근을 알아채곤 아가리를 벌렸다. 뒤이어 이글거리는 화염이 일더니, 이내 쏘아진 브레스가 정면으로 닥쳐왔다.
“많은 거 안 바란다! 딱 한 번만 피해라!”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는지 털을 곤두세우며 울부짖는 그리폰에게 강한 의지를 전했다. 동시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아휀을 두 손으로 단단히 휘어잡은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드레이크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오랜만이지, 이 자식아?”
케르윈이 펼쳐 낸 방어막이 브레스를 아주 잠시나마 막아 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브레스를 피한 그리폰이 다시 하강하며 드레이크의 옆을 스쳤다.
동시에 내가 휘두른 검이 놈의 날개를 너덜너덜하게 잘라 냈다. 봇물 터지듯 뿜어진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고, 드레이크는 울부짖으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위에 타고 있던 네비로스는 미동도 없이 케르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케르윈.”
네비로스의 부름. 거리가 있다 보니 근처에 있던 나밖에 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지만 용케 케르윈은 알아듣곤 대답했다.
“네비로스.”
“지금껏 그 알량한 목숨이 아까워 숨어 있었지. 그런데 왜 지금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
“네 말마따나 알량한 목숨이지만 약속했으니까.”
네비로스의 질문에 케르윈은 웃음으로 답했다. 모든 근심과 고뇌를 벗어던진 아름다운 웃음이다.
“그이가 만든 왕국을 지켜 내 주겠단 약속, 그 약속을 마침내 마무리 지을 순간이니까.”
말을 마친 케르윈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네비로스는 끝까지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드레이크와 함께 천천히 추락했다.
‘시작됐다.’
케르윈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장 그리폰의 기수를 몰아 추락하는 드레이크를 뒤쫓았다.
멀리 와이번에 올라탄 언홀리 나이트들이 매섭게 추격해 왔다. 하지만 창공기사단이 목숨을 바쳐 가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치열한 공중전이 펼쳐졌다.
“공자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까마귀에 올라탄 루스가 보였다. 루스와 함께 까마귀에 타고 있던 로르다인은 드레이크를 가리켰다.
“애송아! 저기 네비로스가 있다!”
“알고 있어요.”
나는 흘긋 땅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바라봤다. 거대한 나무정령들이 몬스터 무리 한가운데를 헤집고 있었고, 그 바깥쪽에선 수인족과 더불어 몬스터를 학살하는 한 기사가 보였다.
“저 기사는 누구야?”
“마스터 그레이엄입니다!”
“함께 온 건가? 다행인데.”
뒤이어 고개를 돌려 윈드네스트를 바라봤다. 성을 향한 공격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린다이어 백작은 전투를 돕기 위해 손수 기사단과 병력을 이끌고 성문을 뛰쳐나와 전투에 가세했다.
“어떻게 할 거냐, 애송아!”
로르다인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비로스는 제가 끝장낼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요. 로르다인, 저를 지켜 주시겠습니까?”
“네가? 저놈을?”
잠시 의문을 표했던 로르다인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기랄,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알았다! 내가 선두에 서지.”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동시에 옆에 히포그리프를 탄 일리아가 따라붙으며 외쳤다. 일리아의 뒤에는 레드란이 타 있었는데, 그 녀석은 나를 보곤 한껏 으르렁거렸다.
“북방 이후로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이런 상황을 선물하려고 그런 거냐?”
“그래, 이 자식아. 도울 거 아니면 방해나 하지 마.”
“……방해하고 싶어도 내 앞에 탄 여자 때문에 불가능해.”
일리아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레드란을 쏘아보자 녀석은 혀를 차며 끄덕였다.
“어쨌든 돕지.”
“좋아, 가자고!”
호기롭게 외치며 추락하는 드레이크를 뒤쫓자 그런 내 뒤로 일행들이 뒤따랐다.
쿠우웅!
드레이크가 땅에 처박히며 그 아래 있던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그대로 깔려 곤죽이 되었다. 고작 날개만 다친 것이기에 드레이크는 몇 번 용틀임하더니 다시 일어서서 울음을 토해 냈다.
“피어다!”
평원 위에 울려 퍼진 피어에 몬스터들이 즉각 반응을 나타냈다. 싸움을 멈추곤 드레이크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빌어먹을!”
인간은 물론, 몬스터를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는 터라 히포그리프와 와이번 모두가 힘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그때였다.
천천히 걸어 나와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 우뚝 선 네비로스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드레이크는 포효하던 것을 멈추곤 그대로 머리를 조아렸다.
“시끄럽군.”
우뚝 서서 간단히 드레이크를 굴복시킨 네비로스는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카인 아르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말소리는 신기하게 똑똑히 들려왔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그대로 박아 넣는 듯한 이질감이다.
그에 나는 이를 드러내며 웃어 주었다.
“나를 아나?”
“기억에 있다.”
“좋은 기억은 아닐 텐데.”
“그래. 그렇지. 분노가 차오르는군. 불쾌한 감정이야.”
“악마군주도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나?”
“그릇이 제대로 닦여 있지 않으니까. 나는 네비로스. 위대한 지옥의 악마군주이자, 동시에 이 육체의 주인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강림?”
“명석하군.”
“그럼 그대로 다시 지옥으로 꺼지게 해 주지.”
“어떻게?”
네비로스가 의문을 표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들어 케르윈을 바라보았다.
“마법이라도 준비하는 건가?”
다시 고개를 떨군 네비로스는 웃었다. 지독하게 차가운 웃음이다. 그의 웃음에선 심연이 느껴졌다.
“모쪼록 노력해 보도록.”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몰려든 몬스터들이 앞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동시에 창공기사단을 뿌리친 와이번과 언홀리나이트가 네비로스 앞에 착지했다.
‘케르윈은?’
고개를 들자 푸르게 빛나던 케르윈의 몸은 이제 파랗다 못해 새하얗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나와 같은 광경을 본 로르다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기운은…… 저 여자의 정체가 뭐지?”
“케르윈입니다.”
“빌어먹을. 내가 아는 그 마법사 케르윈?”
“예.”
“그렇다면 왜 진즉에 돕지 않고?”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오래전에 이미 끝났어요. 저건 그 의지만이 남아 불사르는 마지막 불꽃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어마어마한 걸 준비한다는 건 알겠군.”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래, 알았다. 널 지켜 주지.”
로르다인이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루스와 일리아, 레드란도 로르다인을 보좌하며 달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했다.
그것을 본 나는 천천히 아휀을 뽑았다. 그러곤 역수로 쥐고 그대로 내 앞의 땅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가드에 박힌 호박색 보석이 빛을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손잡이에 두 손을 포개었다. 마치 기사가 서임을 받는 듯한 자세였다.
준비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남은 모든 건 케르윈과 이곳에 모인 일행들이 결정지을 것이다.
“카인 백작!”
뒤이어 추락하는 드레이크를 발견했는지 곧장 이곳까지 달려온 그레이엄이 나를 발견하곤 불렀다.
“마스터 그레이엄.”
“저자가 바로?”
“예. 악마군주 네비로스입니다.”
“간특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저자를 쓰러트리면 되는 건가?”
“저를 지켜 주시기만 해도 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레이엄은 굳은 얼굴로 네비로스를 향해 뛰쳐나가 그 사이를 가로막는 몬스터를 무참히 베어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거대한 흰색 늑대로 변한 라헨나와 그를 뒤따르는 수인족도 마침내 길을 뚫어 내게 당도했다.
순식간에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라헨나가 내 옆에 서서 시선을 들어 케르윈을 바라보았다.
“케르윈인가?”
“그렇습니다.”
“숭고한 여인이구나. 수백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종족전쟁 당시 드루이드를 구해 낸 그녀의 행보를 기억하는 라헨나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케르윈을 기렸다.
그러곤 천천히 담뱃대를 꺼내 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연기를 내뿜음과 동시에 흉포하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이내 자기들끼리 서로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기 시작했다. 환각 주술을 펼쳐 낸 모양이다.
“카인님!”
다크엘프들의 수장 블래우와 수인족의 리더인 쿤도 라헨나의 뒤를 따라 달려왔다. 그들은 혈로를 뚫고 온 것을 증명하듯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북방에서의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군요.”
“와 줘서 고마워.”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굳게 고개를 끄덕이곤 함께 온 엘프들과 수인족을 이끌고 다시 전투에 가세했다.
반면 나무정령과 함께 몬스터를 몰아내고 다가온 글로리안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눈빛이었다.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다크엘프들의 모습을 본 까닭이겠지.
두 일족은 오랜 악연으로 얽혀 있었지만, 글로리안은 현명한 엘프답게 이 상황에서까지 반목하지는 않았다.
“글로리안.”
“반갑군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르다인의 말이 맞았습니다. 이 일은 비단 인간만의 일이 아니에요. 대륙 전체가 위험에 빠졌으니 당연한 참전해야죠.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저를 지켜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글로리안이 땅에 박힌 아휀을 가리켰다.
“저것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예.”
“알겠습니다. 센티널! 하늘을 장악해라!”
글로리안의 외침에 엘프들이 활을 들어 하늘에 떠 있는 와이번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카인!”
이번엔 린다이어 백작과 그 휘하 바람기사단이었다. 간단히 오우거를 토막을 내 버리곤 달려온 린다이어 백작이 나를 보곤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멍청한 녀석! 이런 적진 한가운데에 다짜고짜 파고들면 어쩌자는 것이냐! 위험하게!”
그래도 아들이라는 건가. 화를 내면서도 그 안도감이 서린 눈빛에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바슈른 공녀에게 사정은 들었다. 저자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고?”
“그렇습니다.”
“쓰러트릴 방도도 네가 알고 있다고 들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를 지켜 주시겠습니까?”
“당연히! 목숨을 걸고! 기사단, 카인을 지켜라!”
리하스와 길레인을 비롯한 소수의 바람기사단원은 나를 뒤에 두고 검을 곧추세웠다. 길레인은 나를 보곤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리하스는 빙긋 웃었다.
“바람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
“카인 백작님, 다시 함께 싸우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두 사람의 굳은 결의를 들은 린다이어 백작은 내게 고개를 끄덕여 주곤 곧장 네비로스에게 향하는 그레이엄의 곁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과 함께 팬텀스티드를 타고 날아온 플레타는 내 옆에 착지하곤 급하게 물어 왔다.
“카인 백작, 저 빛나는 여자는 뭔가요?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습니다.”
“플레타.”
“예?”
“기뻐해도 좋아. 넌 위대한 대마법사의 가장 아름다운 최후를 보게 될 거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케르윈을 빛내던 새하얀 빛무리는 이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