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27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277화(277/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277화
‘목숨을 바칠 수 있겠느냐?’
케르윈의 질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리낄 것도 없다. 어차피 이곳에서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었다.
네비로스를 쓰러트리는 게 최종 목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줄곧 대륙 이곳저곳을 질주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네비로스로부터 나온 셈이었다.
‘기꺼이.’
나는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확답을 들은 케르윈은 말을 이었다.
‘북방에서의 전투, 기억하고 있겠지.’
‘예. 드레이크와 몬스터를 상대로 했던 전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때의 상황을 재현해 주겠다.’
‘……예? 어떻게요?’
내 물음에 케르윈은 미소 지었다.
‘나의 마나하트를 통해서.’
마나하트.
마법사에겐 목숨보다 소중한 것. 대마법사가 수백 년을 살아오며 넓혀 온 그릇의 크기는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거기에 담긴 마나의 순도와 양은 또 어떠할까.
마법사의 삶과 영혼의 집합체. 그러한 것을 거리낌 없이 바치겠다는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 마나는 자칫하면 네비로스에게 힘이 되어 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너는 아휀을 통해 내 힘을 받거라.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목숨을 바쳐 네비로스를 쓰러트리거라.’
* * *
싸우던 모든 이들이 행동을 멈추었다. 그 포악한 몬스터들조차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만큼 케르윈이 뿜어낸 빛은 강렬했다.
두 개의 태양이 뜬듯했다.
눈을 태워 버릴 듯한 그 빛은 이내 하나로 갈무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순백의 줄기로 변한 빛은 한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땅에 박아 넣었던 아휀으로.
“간교한 마법사!”
지금껏 고고하게 관망하던 네비로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껏 쭉 평온했던 그의 표정이 무너지는 걸 보는 건 꽤 속이 시원한 기분이다.
“저 검을 부숴라.”
뒤이은 네비로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멈칫했던 몬스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백여 명의 언홀리나이트가 제각기 붉은 기운을 흘려 대며 힘을 개방했다. 더해서 네비로스 또한 검은 불길에 휩싸인 채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또한 네비로스의 의지를 읽은 드레이크가 대가리를 치켜세웠다. 날개는 잃었지만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선 다리는 그대로였다. 붉은색의 용이 포효를 내지르며 접근해 왔다.
“일리아! 레드란! 나를 도와라! 길레인 단장님! 언홀리나이트를 막아야 합니다!”
루스의 고함과 함께 길레인 에스테반이 검을 치켜세웠다.
“기사단! 언홀리나이트를 상대하라!”
소속을 가릴 것 없이 참전한 모든 기사들이 길레인의 지시에 따라 모여들었다.
일리아와 루스도 화신을 불러냈다. 더는 감출 것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으니까.
그들의 검이 언홀리나이트를 가로막았다. 치열한 공방이 시작됐다.
일순간 기사들이 빠지자 자유로워진 몬스터들이 앞다투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이런!”
루스의 당혹한 외침에 로르다인이 두 팔을 땅에 가져다 댔다. 로르다인의 두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더불어 짚은 두 팔이 경련을 일으켰다. 막대한 힘을 쏟아붓는 모습이다.
그러한 노력 때문일까. 삽시간에 땅이 뒤틀리고 파이더니 이내 열댓 마리의 거인이 만들어졌다. 우뚝 선 십수 미터의 대지정령들은 그 단단한 거체로 몬스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가라!”
글로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앞선 전투로 꽤 수가 줄었지만 이끌고 온 나무정령이 가세했다. 그리고 그 거인들 틈으로 수인족과 두 엘프 종족이 빈틈을 메웠다.
“칼란다트!”
라헨나의 외침이 있었다. 그러자 땅에 손을 짚은 칼란다트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사령술로 드루이드 전사의 영혼에 빙의된 칼란다트는 흉악한 병기가 되어 몬스터를 분쇄해 나갔다.
라헨나 또한 힘을 개방했다. 두 눈 가득 푸른 기운을 뿜어낸 그녀는 양손을 펼쳐 가진 모든 주술을 펼쳐 냈다. 달려들던 몬스터들은 온갖 환각과 악몽에 사로잡혀 움직임을 저지당했다.
“브레스다!”
그때 한 기사의 절망적인 외침이 울려 퍼졌다. 멀리 드레이크가 아가리를 벌리는 게 보였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뻔했다. 바로 내 정면을 향해 벌린 드레이크의 입아귀가 똑똑히 보였으니까.
“영주님! 막아야 합니다!”
루스의 외침에 린다이어 백작이 도약했다. 십수 미터를 뛰어오른 린다이어 백작의 뒤를 따라 그레이엄 또한 도약했다.
두 마스터가 드레이크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아가리에선 점점 화염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플레타.”
나는 조용히 플레타를 불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온몸을 부르르 떨던 플레타는 내 부름을 듣곤 고개를 돌려왔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두 눈 가득 의문을 품으면서도 플레타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아휀으로 흡수되던 백색의 줄기는 내 손으로, 그리고 이내 내 손에서 플레타에게로 이어졌다.
“커억…….”
플레타가 허리를 홱 굽혔다. 그러곤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다시 고개를 든 플레타는 엄청난 양의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 이 힘은?”
“저걸 막아 주겠어?”
“…….”
코피를 닦아 내지도 않은 채 플레타의 두 손이 앞으로 향했다. 뒤이어 새파란 빛무리가 그녀의 손에서 뿜어졌고, 거대한 돔형태의 방어막이 만들어졌다. 그 방어막은 주위 모든 아군을 감쌌다.
플레타는 얼굴 가득 환희를 그려 내며 외쳤다.
“믿을 수 없어요! 이걸 내가 펼쳐 냈다니!”
그녀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브레스가 퍼부어졌다.
강철도 녹여낼 화염의 세례. 입술이 찢어지도록 악다물던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플레타는 악착같이 방어막을 유지해 냈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온몸 구석구석 심각한 내상을 입었는지, 플레타는 브레스가 그치자 힘없이 쓰러져 그대로 혼절했다.
“그레이엄 공!”
“갑시다, 린다이어!”
불길이 만들어 낸 자욱한 연기 속에서 린다이어 백작과 그레이엄이 함께 뛰쳐나갔다. 한계까지 뿜어낸 마나가 그 둘의 잔상을 그림자처럼 그려 냈다.
“멈춰라.”
그때 드레이크에게로 향하던 두 마스터 앞으로 네비로스가 노한 기색을 띠며 막아섰다. 네비로스가 내뻗은 손으로부터 거무스름한 기운이 솟아났다. 그에 린다이어 백작과 그레이엄이 일순간 당황한 그때였다.
“둘 다 비켜!”
로르다인의 고함이었다. 린다이어 백작과 그레이엄은 황급히 양옆으로 벌려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사이로 로르다인이 네비로스를 향해 파고들었다.
네비로스가 손을 내뻗었다. 거무스름한 무형의 기운이 만들어 낸 수 갈래의 채찍이 로르다인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로르다인은 머리 위와 땅, 전방과 좌우, 심지어 뒤를 노리고 파고드는 채찍을 모조리 쳐 내었다. 소름 끼치도록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두 번은 안 당해!”
결국 네비로스의 코앞까지 도달한 로르다인이 속도를 살려 가슴팍을 어깨로 밀쳤다. 충격에 허공에 떠 버린 네비로스를 향해 로르다인의 검이 맹수처럼 들이닥쳤다.
그러나 밀려난 네비로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촉수처럼 뿜어냈던 검은 채찍을 한곳에 모았다.
그것은 곧 거대한 창의 형상을 띠었다. 거대한 흑창을 집어 휘두른 네비로스가 로르다인의 검을 튕겨 냈다.
“드레이크를 해치워라!”
반발에 뒤로 밀려나면서도 로르다인은 강하게 외쳤다. 그레이엄과 린다이어 백작, 두 마스터는 로르다인이 만들어 준 틈을 낭비하지 않았다.
네비로스의 옆을 지나친 그레이엄의 검이 드레이크의 앞발을 베어 냈다. 뒤이어 파고든 린다이어 백작은 목을 잘라 냈다.
둘의 공격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서 마치 저절로 육신이 분리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이젠 셋이다. 자식아, 어쩔래?”
곧장 몸을 돌린 린다이어 백작과 그레이엄, 그리고 로르다인이 삼각형을 이루어 중앙에 네비로스를 두고 포위했다. 이윽고 대륙에서 가장 강한 세 검사의 협공이 시작됐다.
네비로스는 다시 창을 분리해 십수 가닥의 채찍을 만들어 냈다. 그 채찍들은 공격하기도 하고, 움직임을 제약하기도 했으며, 방어에도 쓰였다.
채찍이 땅에 닿을 때마다 검은 불길이 일어나며 폭발했다. 일어나는 먼지와 부서진 돌조각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세 명의 마스터는 그 채찍을 모두 피해 냈다. 그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번개 같아서 마치 형체 없는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렇게 일순간 공격을 피해 낸 셋은 동시에 반격에 들어섰다.
린다이어 백작의 번쩍이는 쾌검이 움직임을 막는 모든 채찍을 잘라 냈다. 동시에 그레이엄의 세 번의 정교한 검격이 방어에 쓰이는 채찍을 깨부쉈다.
마지막으로 열린 틈으로 땅을 가르듯,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진 로르다인의 검이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피가 솟구쳤다. 네비로스의 가슴팍에 새겨진 상흔에서 뿜어진 피였다. 뒤로 나가떨어진 네비로스가 드레이크의 사체에 파묻혔다.
그렇게 널브러진 자세 그대로 네비로스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끝난 건가?”
뒤로 물러선 린다이어 백작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고, 그레이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로르다인 또한 검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얕았다.”
처박힌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던 네비로스는 천천히 고개만 들어 올렸다. 그러곤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불완전한 그릇이야. 불쾌하군.”
네비로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갈라진 상처에선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완전히 아문 모습에 그레이엄이 침음을 흘렸다.
“아직 힘이 덜 모였건만 어쩔 수 없군.”
네비로스는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뒤이어 그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옷이 찢어졌다. 솟아난 검은 날개와 부풀어 오른 근육 때문이다.
뒤이어 검고 기다린 뿔이 관자놀이 부근에서 돋아났고, 솟아난 손톱은 짐승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
그렇게 완연하게 모습이 바뀐 네비로스의 모습에 지켜보던 모두가 숨을 들이마셨다.
네비로스는 집중된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전장을 휘저어 보았다.
그의 눈에 어느덧 전부 쓰러져 가는 언홀리나이트들이 보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힘도 만만치 않아서 참전했던 아군 기사들의 숫자도 꽤 줄어 있었다.
죽어 쓰러진 몬스터의 사체와 흘러나온 피들로 초원은 이미 붉게 변해 있었다. 전장은 점점 조용해지고 있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멀리서 수인족들에게 마저 사냥당하고 있었다.
그 모두를 아울러 본 네비로스는 손을 들어 올렸다.
“다시 시작하지.”
참으로 끔찍한 한마디였다.
네비로스의 말이 끝나자 쓰러졌던 언홀리나이트들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네비로스가 재차 손을 휘젓자 이번엔 쓰러진 몬스터의 사체들로부터 검은 기운이 샘솟기 시작했다.
사그라진 생명으로부터 힘을 갈취하는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이의 눈가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일어서라, 붉은용이여.”
잘려 나갔던 육신이 스스로 움직여 다시 몸뚱이에 붙는 광경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했다.
그렇게 다시 부정한 생명을 얻어 낸 드레이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살아생전과 달라진 것은 저 생기를 잃어버린 탁한 회색빛 눈동자뿐이다.
몸을 일으킨 드레이크가 네비로스의 옆에서 다시 포효를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