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32)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32화(32/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32화
12장. 일리아 프로스트
백작과의 대화를 마친 나는 곧장 기사단으로 향했다.
“공자님, 여긴 어쩐 일로?”
“종자가 필요해서 왔습니다.”
“종자라 하심은?”
“영주님의 인가를 받아 왔습니다.”
곧장 길레인과 대면한 나는 백작의 인장이 찍힌 종이를 내밀었고, 그에 길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캐피탈까지 공작가 호송단에 합류해서 가시는 거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공작령까지 보조를 맡을 종자를 찾으시는 거겠죠? 혹 따로 찾는 수련 기사가 있으십니까?”
길레인의 물음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루스 말고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가락만 빨며 아무나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조건 몇 가지는 걸어야겠지.’
무력이야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어차피 강력한 기사들이야 공작가 사절단에 차고 넘칠 테니까.
그렇다면 실력보단 예절에 능통한 종자가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 대신 자질구레한 업무도 처리하려면 어느 정도 수완은 있어야 할 테니까.
“교육을 잘 받은 수련 기사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캐피탈로 향하니까 말이죠.”
“예.”
“알겠습니다.”
“또, 귀족가의 자제를 추천하시려면 몇몇 가문은 제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굳이 데인과 세인의 영향력 아래 있는 귀족가와 엮일 필요는 없으니.
다행히 내 생각을 짐작했는지, 길레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적절한 수련생을 차출해 내일 출발할 시각에 맞춰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 굳이 이곳에 불러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
“해당 수련생의 명부를 주신다면 제가 직접 보고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말씀입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길레인이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딱히 길레인을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니다. 모름지기 사람 쓰는 일은 남에게 함부로 맡겨선 안 되는 법이니까.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장님 말고 달리 제게 누가 있겠습니까? 단지 짧지 않은 시간 동행할 사람이니 직접 보고 뽑고 싶은 마음이라…….”
“아닙니다. 오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을.”
비로소 내 뜻을 이해한 길레인이 빙긋 웃으며 시원시원하게 펜을 움직여 작성한 명부를 내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공자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언제나 그렇듯, 기사단은 린다이어의 것입니다.”
* * *
한기도 잠재울 만큼 열기로 가득 찬 기사단 병영.
그 한구석에 마련된 연무장에 수련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마주한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나같이 죄다…….’
충분히 교육받은 사람을 원한다고 해서일까, 후보들은 모두 귀족 자제들이었다.
물론 단순 귀족이라고 해서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 대신 온갖 자질구레한 업무를 맡으려면 어느 정도 억척스러움이 있어야 할 텐데, 죄다 귀족이라 그런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느낌이었다.
‘거참.’
아주 칼같이 다려진 수련 기사 정복들.
‘나 새파란 병아리요.’ 하고 자랑하는 모습들에 한숨이 나온다.
소대장 시절 신병을 받는 듯한 익숙한 기분에 씁쓸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공작가의 사절과 합류해 캐피탈까지 향하는 여정간 종자가 필요하다.”
“…….”
“임무는 간단하다. 먹는 것, 입는 것, 싸는 것, 전부 내가 알아서 한다. 그걸 도와 달라고 찾아온 게 아니야. 너희가 맡아야 할 일은 단순히 여정간 생길 자질구레한 소일거리뿐. 종자라고 하기도 뭣하니 그냥 수행원이라고 생각해라.”
내 이야기를 들은 수련 기사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럴 만하다.
모두 한창 피 끓을 나이다. 그런 판에 기사단 병영에 갇혀 하루가 멀게 수련에만 매진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나.
목적지도 캐피탈이다. 게다가 몸이 힘든 종자 업무도 시키지 않는다고 하니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까.
멋들어진 수도를 기사단 정복을 차려입고 활보하는 건 수련 기사라면 응당 가질 로망이다. 눈이 뒤집히고도 남겠지.
“캐피탈? 제가 자원하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성심성의껏 모실 자신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캐피탈이란 소리에 대부분의 수련 기사가 흥분으로 물든 채 손을 번쩍 들었다.
됐다. 어차피 고만고만한 놈들의 자기소개를 들을 시간은 없다.
대충 아무나 고르려고 손을 들던 찰나였다.
‘뭐야?’
모두가 손을 번쩍 들고 의욕을 보이던 와중, 눈길을 끄는 수련생이 있었다.
자기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구석에 묵묵히 서 있는 한 수련 기사.
‘여자?’
간신히 어깨에 닿는 단발이긴 했지만 분명 여자였다.
성별이 여자라서 신기한 게 아니다.
남녀 상관없이 기사는 누구나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귀족가의 여식이 무인의 길을 걷는 건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찌 됐건 귀족가의 영애는 정략결혼을 위한 아주 중요한 재원이니까.
어지간한 재능이 아니고서야 보통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수련 기사로 있다는 건…….’
길레인이 작성해 준 명부를 흘긋 훑어보았다. 그러곤 주르륵 읽어 나가자 끄트머리에 찾던 신상명세가 있었다.
[일리아 프로스트]‘21세. 평민. 고아 출신. 입단한 시기는 2년 전. 기사단장 길레인 에스테반의 추천으로 입단했음.’
귀족가의 자제가 아니었다.
특이한 이력이었다. 분명 잘 교육받은 수련생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평민이라니. 그것도 고아 출신.
이치에 맞지 않았다. 잘못 추천해 준 건가 싶었으나 길레인이 직접 입단까지 시켰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흥미가 생기는데.’
만약 길레인의 실수가 아니라면?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어떤 점이 길레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흥미가 동했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보기엔 보는 눈이 많고, 무턱대고 데려가자니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었다,
마땅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
명부를 접어 품속에 집어넣은 뒤, 팔짱을 끼며 수련 기사들을 바라봤다.
“지원자가 너무 많으니 간단한 시험을 보겠다.”
이후 연무장 한편으로 다가가 거치되어 있던 목검을 거머쥐며 입을 열었다.
“긴 여정 동안 잠자코 놀 생각은 없다. 수련하다 남는 시간에 간단히 대련할 실력은 되어야 데려갈 맛이 나지.”
모인 수련 기사들의 얼굴이 잠시 긴장으로 굳었다가, 이내 도로 풀렸다.
내 검술이야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하긴, 칼날 부족을 토벌했다곤 해도 실상을 아는 몇몇 빼고는 대부분 길레인과 레인저들의 공로가 대부분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뒤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었겠지, 싶고 말이야.
“한 명씩 나오도록.”
내 생각이 맞았는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덩치 큰 수련 기사가 목검을 쥐고 나왔다.
“합격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글쎄. 딱히 기준이라고 할 건 없지만, 날 쓰러트린다면 두말할 것도 없지 않겠어?”
“삼공자님의 몸을 제가 어찌…….”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이 대련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
“정말입니까?”
“두 번 말하게 할 셈인가?”
“…….”
착!
가볍게 목례를 취한 수련 기사가 이내 자리를 잡았고.
탓!
덩치에 걸맞게 육중한 스텝을 밟아 파고 들어왔다.
물론 내겐 그저 덩치 큰 멧돼지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으억…….”
가볍게 몸을 비키며 다리를 걸었다.
부웅!
수련 기사의 몸뚱이가 허공에 붕 떴고, 이내 흙바닥으로 거칠게 떨어졌다.
“크어억!”
자신의 체중만큼이나 바닥과 강하게 부딪친 수련 기사가 신음을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내 부름에 호리호리한 게 멀대 같은 수련 기사가 나왔다.
바닥을 뒹군 수련 기사를 향해 비웃음을 흘린 멀대가 목검을 들어 마주 섰다.
“들어와.”
멀대가 제법 거리를 두고 검을 내질러 왔다. 거리를 충분히 두고 탐색전부터 하겠단 뜻이다.
하지만 내겐 시간을 질질 끌 생각이 없었다.
탁! 타악!
한순간 파고들어 멀대의 목검을 가볍게 튕긴 뒤, 그대로 반 바퀴 돌려 날려 버렸다.
“……어?”
허공에서 핑그르르 도는 목검을 멀대가 우두커니 바라봤다.
“다음.”
간단히 축객령을 내린 뒤.
이후엔 태그매치처럼 수련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도전해 왔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연무장 바닥에 부러지거나 금이 간 목검이 한 무더기 쌓일 즈음에야 대부분의 순번이 끝났다.
“…….”
“맙소사.”
그리고 그 결과물.
모두 꿈이라도 꾼 듯한 얼굴들이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수련 기사들이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의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윈드 나이츠(Wind Knights).
그 이름도 찬란한 바람기사단이 어떤 집단인가. 미들랜드에서도 손꼽히는 명가이자 무인 가문인 린다이어의 최정예 아니던가.
그 기사단의 수련 기사로 입단할 수 있다는 건 대륙 어디를 가도 재능을 인정받는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신들이 내게 속수무책으로 깨졌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겠지. 그것도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주색에 굶주린 무능한 삼공자에게 말이다.
“다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로해 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넋이 빠진 이들을 시야에서 지우며 마지막으로 남은 수련 기사를 목검으로 가리켰다.
일리아 프로스트였다.
자신의 동기들이 깨지고 넘어졌음에도 그녀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푹 숙인 그녀가 높낮이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겐 공자님의 종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뭐지? 비꼬는 건가? 아니면 자기 비하?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다른 뜻은 없었다는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캐피탈에서 열리는 개국 기념일 행사는 유수의 명가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공자님의 수행원으로 나섰다가 혹, 제 미천한 신분으로 인해 누를 끼치진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요 녀석 보게.
말만 들어 보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분명하다. 하지만 느낄 수 있다.
‘어차피 데려가지도 않을 거면서 쓸데없이 땀 흘리기 싫다?’
웃음이 나왔다.
누구 마음대로?
“그건 내가 결정해. 나와.”
두 번의 거절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있는지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에 들린 목검이 앞으로 세워졌다. 들어오라는 신호로 고개짓을 해 보이자, 그녀가 앞으로 스텝을 밟았다.
타악!
결과는 싱거웠다. 튕겨 낸 목검이 힘없이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그에 패배를 인정한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곤 뒤로 돌아갔다.
‘이거 웃기는 녀석이네.’
주변 수련 기사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었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저 여자, 일부러 놓친 거다.
보기보다 솜씨가 좋은지 나도 제법 긴가민가했지만 앞선 행동을 미루어 보면 심증은 충분했다.
“하.”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여정을 일부러 가지 않겠다라.
뭘 숨기고 있기라도 한 건가?
지는 척하는 것도 실력이다. 애초에 실력이 없다면 지는 시늉도 못 하고 처참히 깨질 뿐이다.
그걸 생각해 보면 주변에 덜떨어진 수련 기사들보단 실력이 있다는 뜻.
“일리아 프로스트.”
시커먼 속내가 궁금하기도 하고.
실력도 이 수련 기사들 사이에선 가장 나은 것 같고.
그렇다면 안 데려갈 이유가 없지.
“짐을 챙겨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한다. 해가 뜨기 전에 영주성으로 찾아오도록.”
“예?”
“자세한 브리핑은 기사단에 본영에 가서 들어라. 기억해라. 내일 아침 출발이다.”
뜻밖의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에 드디어 변화가 생겼고.
“…….”
“…….”
주변 수련 기사들도 똑같이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