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3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38화(38/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38화
14장. 습격
포트리스를 떠나 다시 수도까지의 여정을 순조롭게 이어 가던 나날.
쿠르릉!
거센 비와 천둥이 치는 밤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변덕스러운 날씨에 행렬은 이동을 멈추고 간이 숙영지를 차려 제각기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제법 잘하십니다.”
“이거, 만만하게 봤다간…….”
늦은 밤, 나는 제법 친해진 기사들과 포커를 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귀한 신분이라 경계했던 그들도 내가 먼저 돈을 걸고 나서자 조금씩 흥이 오르더니, 이내 웃음이 함께하는 자리가 되었다.
기사 몇몇이 술을 가져오려 했으나 그것만큼은 단호히 금지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술은 안전한 도시가 아닌 이상 엄금이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가는 그때였다.
“호위 대장님.”
그날 당직을 맡은 기사가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에 모두가 카드를 내려놓고 시선이 집중되었다.
“무슨 일이야?”
“교대가 이루어졌어야 할 병사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탁!
기사들이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제각기 테이블에 던져 놓았다. 나 또한 검을 챙겨 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일리아!”
내 부름을 들은 일리아가 흉갑을 가져와 내게 입혀 주기 시작했다.
“리베른 경은?”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무장을 마친 뒤 망토를 걸치고 후드를 올려 막사 밖으로 나섰다.
투두둑!
거친 빗방울이 온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밤이 늦은 데다 비까지 내려 시계가 어두웠다.
그래, 만약 불온한 마음을 먹은 무리가 있다면 그들에겐 최적의 타이밍이다.
“리베른 경!”
숙면을 취하다 급히 나왔는지 빗물을 모아 몇 차례 세수하는 리세스가 보였다.
“공자님.”
“들으셨습니까.”
“교대해야 할 경계병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어디 부근입니까?”
“이곳에서 십 분 정도 거리에 있는 능선입니다.”
머릿속에 새겨 놓았던 근처 지형이 떠올랐다.
“교대 경계병은 언제 출발했습니까?”
내 말에 곁에 있던 한 선임 병사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약 삼십 분 전에…….”
“왕복 이십 분이라 치면 시간이 십 분이나 비지 않나.”
“비가 많이 내려 조금 늦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멍청한! 당장 병사 둘에게 척후 임무를 맡겨 보내십시오.”
골든 타임이나 다름없는 십 분을 그냥 날려 버렸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분노를 터트렸다.
그에 잠자코 있던 리세스도 상황의 심각함을 알아챘는지,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사단은 집결하라!”
황급히 무구를 착용한 기사들이 속속들이 모이는 것을 확인한 리세스가 나를 보았다.
“습격일까요?”
여전히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은 거센 빗방울 소리뿐이었다. 습격일까 고민해 보았다. 정말 비가 내려 단순 교대가 늦어지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영 예감이 좋지 않다.
리세스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현 호위 대장은 나였기에 내 판단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내가 판단하자 리세스가 입술을 깨물며 황급히 지시를 내렸다.
휘하 병력에게 전투준비 명령을 내린 리세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단순 산적 패거리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산적이라면 병사들 가슴팍에 박힌 문장만 봐도 줄행랑쳤겠지요.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대충 짐작되지 않습니까.”
이미 대강 답은 나와 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리세스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무엄한 자식들인지.”
분노하는 리세스와 달리 나는 전력을 객관적으로 떠올려 보았다.
소드 엑스퍼트인 리세스.
이하 마나 유저 중상급의 기사 아홉.
그리고 보병 서른에 4클래스 마법사.
플레타가 생각나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어느새 로브를 입고 후드까지 눌러쓴 플레타가 밖으로 나와 서 있었다.
“리베른 경, 사람들을 추슬러 가볍게 짐만 챙기라고 하십시오. 자칫하면 이곳을 벗어나야 할지도 모르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플레타.”
내 작은 부름에 플레타가 다가왔다.
그녀 또한 마법사다. 단순 일대일에서는 기사에게 밀리지만, 다대다 전투에서만큼은 마법사만 한 인재가 없다.
“마나는?”
“충분합니다.”
“싸울 수 있겠지?”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누구일 것 같아?”
이제는 반말이 완전히 입에 붙어 버렸지만 플레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태도였다. 나를 인정했다는 증거겠지.
“로드키우스 가문에 붙기로 한 쥐새끼들밖에 더 있겠습니까.”
“누구누구?”
“트릴 남작, 이커스 남작, 레이크 자작.”
“휘하 전력은?”
“병졸을 뺀다면 다 합쳐 봐야 이곳에 있는 위즈덤 나이트와 비등할 겁니다.”
“자세한데?”
“언젠가 거느려야 할 이들의 정보는 당연히 숙지해야 하는 법입니다.”
세 귀족의 힘을 다 합쳐도 여기 모인 기사들과 비등하다라. 거기에 나도 있고, 플레타라는 고급 인재도 있다.
해 볼 만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애초에 이런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다면, 적의 수준보다 두세 배는 강한 전력을 데려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보험은 있다.
정해진 소설 속 내용대로라면, 플레타는 큰 곤욕을 겪지 않은 상태로 무난히 성장해 훗날 위용을 떨친다.
말인즉, 플레타는 이런 길거리에서 습격을 받아 객사할 운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작정하고 운명을 비틀어 나비효과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엔 말이다.
그렇기에 혈혈단신으로 맡은 호위 임무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은 판국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좀 이상하다.
머리 좀 굴린다는 플레타인데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닌가.
“그렇다면 이상한데. 세 귀족의 전력을 알고 있었는데도 겨우 비등한 전력을 데려온 건가? 그들이 외부에서 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최악의 상황은 고려 안 한 건가.”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근데.”
내 말에 플레타가 살포시 웃었다.
“적을 속이려면 주변 시선부터 속여야 하는 법이니까요.”
“무슨 말이야?”
“주위 병사를 보시죠.”
플레타의 말에 기사를 제외한, 그동안 기수를 들고 군마 없이 두 다리로 행군해 왔던 병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던 창이 없었다.
대신 들려 있는 것은 어디서 챙겼을지 모를 장검이었다.
“설마.”
“예, 저들 또한 기사입니다. 기사단에 입단한 지는 얼마 안 되었으나, 엄연히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들입니다. 아직 대외적으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로만 뽑아 왔죠.”
“몇 명이나?”
“병사들의 반절이 위장 중이던 기사입니다.”
어쩐지 다들 보통의 병사라고 생각하기엔 각이 살아 숨 쉬더라.
“그걸 내게 숨기고 있었다니.”
“딱히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습니다. 맡은 직책이 단순 병졸인 건 사실이었으니.”
화가 난다기보단 과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는 게 상책이니까.
‘전력이 갑자기 팍 뛰었네.’
물론 전부가 다 최상위급의 기사인 건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전쟁 병기인 기사와 일반 병졸을 비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베나, 헬렌.”
뒤이어 플레타의 말에 그녀 뒤를 따라다니던 두 시녀가 붙었다.
그녀들 또한 신분을 속였었는지 로브를 걸치고 손에 완드를 쥔 모습이었다.
마법사라는 뜻이겠지.
삽시간에 전력이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어이가 없어 내가 플레타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정도는 뭐.”
“기가 차는군.”
고개를 내저은 나는 검집에 손을 올린 채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 * *
그렇게 바리케이드 삼은 숙영지 내부에 진용을 갖춘 채 얼마나 흘렀을까.
습격이 시작되었다.
쉬이익-!
시작은 화살 세례였다. 원래 기습을 상정했다면 숙영지 내부의 불빛을 다 없애야 했겠지만, 우리에겐 마법사가 있었다.
“막아 내어라! 실드(Shield)!”
앞으로 나선 두 시녀가 손을 번쩍 든 채 마나를 끌어올렸다.
뒤이어 푸르스름한 반투명의 실드가 돔 형태로 아군을 덮어썼다.
파악! 팍!
십수 개의 화살이 실드를 뚫지 못하고 부러졌다. 동시에 이번엔 플레타가 입을 놀려 캐스팅을 시작했다.
“밝혀라! 라이트(Light)!”
푸르스름한 구체가 하늘 위로 솟아오르더니, 이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마치 조명탄과도 같은 밝기에 순간 눈을 찌푸렸다.
이후 드러난 것은 검은 복장의 무리였다.
숫자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대규모 전투가 아닌 소규모 국지전이다. 쓸데없이 많은 병력보단 정예화된 소수 인력, 기사가 더 효율적이었으니.
스르렁!
사방에서 검을 뽑는 소리가 울려왔다. 뒤이어 그들의 검에 어렴풋이 푸른 기운이 맴도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건 상대측도 마찬가지였다.
“수효는?”
내 물음에 리세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잡병을 제하고 기사만 따져 본다면…… 고작 열댓 명이군요.”
확실히 추정치에 근접한 숫자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기엔 너무 뻔하지 않나?
내 생각과 같았는지 리세스와 플레타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쟤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무력시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나를 끌어올린 채 가만히 서 있는 검은 인영들이었다.
불편한 대치가 그렇게 얼마나 이어졌을까.
“리베른 경.”
“알겠습니다.”
내 말에 리세스가 앞으로 십수 걸음 나섰다.
실드의 범위를 벗어났으나 그의 실력이라면 저격당할 위험은 없으리라.
그렇게 우리와 검은 무리 사이에 자리한 리세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바슈른 공작가의 위즈덤 나이트 소속, 리세스 리베른이다. 너희들은 누구지? 이 밤중에 찾아온 이유와 소속, 그리고 이름을 밝혀라.”
리세스의 고함에 검은 무리 가운데서, 한 인영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검조차 뽑지 않은 상태로 허리춤에 손을 올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이목구비는 후드를 깊게 눌러쓴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 리세스가 이를 악물었다.
“얼굴을 가린 걸 보아하니 부끄러운 줄은 아는가 보군.”
“나 말인가?”
“네놈 말고 더 있느냐. 이 야심한 밤에 병기를 들고 찾아온 것도 모자라 얼굴까지 가리다니. 명예라곤 티끌 한 점 없다는 건 잘 알겠구나.”
“이거 내 명예도 걱정해 주고, 눈물 나게 고마운데?”
과장된 동작으로 느물거린 사내의 몸짓에 리세스가 부르르 떨었다.
“놈! 다시 묻겠다. 소속과 이름을 밝혀라!”
“굳이 밝히자면, 저승사자라고 할까. 소속은 지옥이고 말이지.”
사내의 말에 놈들 무리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에 리세스와 기사들의 얼굴 위로 분노가 새겨졌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기습의 묘미는 상대가 진형을 갖추기 전에 우세한 전황을 누리며 몰아치는 것이다.
저놈들처럼 유유자적하게 자신들의 진형과 전력을 공개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마나를 다루는 기사란 작자들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결국, 둘 중 하나란 소린데.’
아주 미친놈들이거나, 아니면 아주 미치도록 강하거나.
불길한 예감에 주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착!
그러곤 검집에 손을 올렸다.
‘야.’
마음속으로 아휀을 불러내자 검이 미세한 진동을 내며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으응…… 먹을 거야?]‘진동 울리지 말고 조용히 들어라. 장난칠 상황 아니니.’
[응? 싸움이야?]‘그래.’
주변 분위기를 느낀 탓일까, 평소라면 징징댔을 아휀이 입을 꾹 다문 채 내 말을 기다렸다.
‘저놈, 보여?’
[혼자 앞으로 나선 사람?]‘그래. 어떤 녀석인 것 같냐.’
나와 아휀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에도 정체불명의 사내는 여전히 리세스에게 농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재미 다 봤다는 듯, 사내가 검을 뽑기 시작했고.
[도망쳐.]아휀의 말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지금 뭐라고…….’
[죽기 싫으면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농담 아니야.]그 즉시 머리로는 생각하고, 몸은 움직였다.
어디로? 정면은 막혀 있다. 산으로 도망가야 하나? 하지만 조금이라도 막다른 곳이 나온다면 곤욕을 치를 텐데.
하지만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산이 아닌, 평야로 간다면 반드시 죽는다.
“일리아!”
내 부름에 일리아가 재깍 옆으로 붙었고, 나는 낮게 속삭였다.
“예.”
“명령이다. 막사에 가서 지도와 내 배낭을 가져와.”
“그게 무슨…….”
“입 닥치고 당장 가져오라고.”
콰아앙!
입술을 깨문 일리아가 막사로 향함과 동시에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흘긋 돌아보니 정체불명의 사내가 도약해 리세스 앞에 착지한 모습이 보였다.
“저 자식이…….”
“기사님을 지켜라!”
“앞으로!”
그 모습에 검을 뽑아 든 기사들과 플레타가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너, 지금 뭐 하는…….”
몰래 다가간 나는 플레타만 뒤로 잡아당겨 마나를 끌어올린 뒤, 목을 내리쳐 기절시켰다.
“빛이…….”
“빨리 누가 불빛을!”
라이트 마법을 유지하던 플레타가 기절해서일까, 삽시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공자님!”
“따라와.”
그러던 사이 일리아가 온 것을 확인한 나는 플레타를 업은 채 어둠을 틈타 산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게 맞는 선택일까, 잠시 고민이 들어 뒤를 흘긋 바라보았고.
푸화학!
허공에 붕 뜬 리세스의 머리통과 갈가리 찢겨 나가는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
이젠 일말의 고민도 없어졌다.
“고, 공자님…….”
“금방 쫓아올 거다. 어서 뛰어라.”
저놈은 뭘까. 뭔데 뿜어낸 마나가 불빛을 대신할 정도의 괴물이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왜 운명이 뒤틀린 걸까.
내가 아니었다면 플레타는 여기서 무조건 죽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분명 소설 후반부까지 살아 있지 않았나?
‘왜지? 왜 운명이 바뀐 거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