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45)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45화(45/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45화
* * *
밤새 한스 로드곤의 사가(Saga)를 직접 겪으며 그의 모든 감각과 노하우를 익힌 다음 날.
이른 아침에야 나는 내성으로 향했다.
린다이어 백작가의 권세를 증명이라도 하듯, 내성에 배정된 별채는 거대한 저택이었다.
이후 저택에 들어서자 앞뜰에 조그맣게 마련된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루스가 보였다.
“공자님! 어딜 갔다가 이제 오시는 겁니까?”
누가 연습 벌레 아니랄까 봐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는 루스였다.
“그냥. 밤새 수도를 구경하다 보니.”
“어떻습니까?”
“좋더라고. 술이나 요리 전부 맛있고.”
“나중에 저도 한번 데려가셔야죠.”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그에 루스가 웃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자세를 취했다.
“오랜만이군요. 그간 수련을 소홀히 하시진 않으셨겠죠?”
“긴장하는 게 좋을걸.”
이제는 루스도 목검을 들지 않는다.
느꼈겠지. 이제는 내 실력도 무시 못 할 수준이라는 걸.
카강!
이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검이 섞였다.
그대로 한 차례 공방을 끝마친 뒤, 뒤로 물러선 루스가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저 없는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왜?”
“실력이 더 떨어지셨군요.”
뭐라고?
당연히 칭찬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자세히 보니 루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다. 그제야 농담임을 알아채 나 또한 웃어 주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어?”
“들어오시지요.”
카앙!
다시 검무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유유자적했던 루스도 점점 내가 본 실력을 내자 입술을 깨문 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높아 보였던 루스인데.’
검술은 일종의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다.
같은 검술을 배워도 종국에는 사용자에 맞게 변형되어 성질이 달라진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록 겉핥기긴 하나, 이미 베인 린다이어를 통해 가문 검술의 오의(奧義)를 맛본 상태다.
게다가 현 바람기사단의 검술 또한 익혔다. 일견 보기엔 같은 원류이지만 다른 두 검술을 모두 익히며 장단점을 분석했다는 뜻이다.
그것뿐일까.
이미 지구에서 유구한 역사를 따라 내려온 무술인 검도의 기본기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 몸뚱이.
마스터인 린다이어 백작의 재능을 물려받다 못해 앞질러 나간 혈통까지 갖고 있다.
단순 몸뚱이의 재능만 놓고 봐도 대륙에서 손꼽힌다는 뜻이다.
확신이 들었다.
단순 검술만 놓고 보면 이미 나는 루스와 비슷함을 넘어서서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걸.
“흐읍!”
루스가 내 맹공을 버티다 못해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물론 나는 그를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낮게 파고들어 검을 올려쳤다.
그에 루스가 반격하려 검을 내지르려던 찰나, 순간 몸을 비튼 내가 옆차기를 뻗었다.
스슷!
부츠가 루스 턱 앞에서 멈춰 섰다.
기가 막힌 거리 조절이었다. 그에 잠시 몸이 굳었던 루스가 결국 헛웃음을 흘렸다.
“대련인데 발차기라뇨.”
“지고 나서 그러면 보기 흉하다, 루스.”
“……인정합니다.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습니까?”
두 손을 올려 보인 루스가 패배를 인정했다.
그에 발을 내린 나는 검을 갈무리했다.
“내가 그간 놀기만 한 줄 아냐?”
루스와의 마지막 대련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한두 달.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력을 지닌 나였다. 내게 있어 한 달은 남들의 반년과 비슷할 것이다.
“무서운 성장이군요. 이전에도 공자님에게 몇 번 지긴 했었지만, 오늘같이 뭘 해 보지도 못한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너도 놀지 말고 수련하란 말이야.”
“이거, 남들이 들으면 정말 제가 노는 줄 알겠습니다.”
루스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던 순간이었다.
짝짝짝!
멀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랑카 경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와 루스의 대련을 모두 지켜본 듯했다.
“일찍이 파혼이 결정된 이후 검을 수련하신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오셨습니까.”
“훌륭하십니다. 나중에 저와도 한번 대련해 보시겠습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군요.”
바랑카가 씩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웬만한 성인 머리통만 한 바랑카의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맞다, 이 양반 투 핸디드 소드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괴물이었지.
흘긋 보니 루스가 바랑카의 시선 밖에서 혀를 내두른다.
수련 중독인 루스마저도 저럴 정도면 바랑카의 대련 방식이 어떨진 겪지 않아도 예상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공자님.”
“예.”
“실력도 있으시고 배너렛이란 작위도 있으신데, 혹시 이번 개국 기념일 토너먼트에 참가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 마침 생각하고 있던 걸 바랑카 경이 먼저 물어 왔다.
그렇다고 여기서 덥석 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제가 참가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합니다. 참가에 의의를 두자면 안 될 것도 없습니다. 앞서 기념일에 참석하셨던 첫째 공자님도 항상 참가하셨으니 말입니다. 랜스 사용법과 노하우야 제가 기꺼이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선만 가벼이 맛보신다면 그리 위험할 것도 없으니.”
바랑카도 내가 그리 두각을 드러내진 못하리라 단정 짓는 모습이었다.
그건 그렇고, 데인 린다이어도 매년 참가했다는 말이 좀 궁금하다.
“제 형님의 성적은 어땠습니까?”
“뭐 항상 본선에는 오르시더군요.”
“바랑카 경도 나가십니까?”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번 호송대에 자진해서 참석한 겁니다. 엄연히 이 토너먼트도 세력 간 기세 싸움이니.”
기세 싸움이라.
그렇긴 하다. 만약 우승하게 된다면 마땅히 소속된 기사단이나 가문의 명성이 높아지겠지.
“우리 가문의 마지막 우승은 언제입니까?”
“이십여 년 전, 백작님이 한창 젊으실 때 몇 번 있었습니다. 이후로는 뭐…….”
“그래도 바랑카 경이 그나마 우리 영지 내에서 최고 실력자니 참석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영주님이 저보다 낫지요. 하지만 대개 명성과 실력이 아주 드높은 분들은 출전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약속입니다. 후배들을 위한 자리인 셈이죠.”
“그렇군요. 바랑카 경은 그간 성적이 어떠셨습니까?”
“매년 결승까지 몇 경기 남긴 상태에서 아쉽게 실패하더군요.”
기사단의 대표로 나서는 바랑카 경도 기껏해야 16강, 혹은 8강 수준이라.
“만약 제가 우승한다면 어떨까요?”
내 말에 의외로 바랑카는 비웃지 않았다. 도리어 그 열정을 높게 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글쎄요. 어떤 포상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백작님이 신발도 신지 않고 마중 나오실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마상창 시합은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가 있으니.”
바랑카의 말에 왠지 모르게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그 무뚝뚝한 양반이 버선발로 마중 나와 기뻐하며 포상을 내린다고?
어차피 참가할 생각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었다.
* * *
그날 늦은 오후.
개국 기념일을 맞아 나와 바랑카는 성대한 연회가 열리는 궁성으로 향했다.
과연 개국 기념일이어서 그럴까, 캐피탈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
아직 날이 그렇게 풀리지 않았음에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나름 술과 음식을 돌리며 기념일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마차가 내성을 지나 궁성에 다다랐다.
그사이 걸릴 것은 없었다.
마주치는 경비병마다 손에 든 헬버드를 앞으로 세우며 예를 표했다. 기껏해야 책임자인 경비대장만이 간략하게 신분을 확인할 뿐이었다.
하긴, 린다이어 가문의 문장이 박힌 마차를 누가 막겠냐마는.
‘연회가 열리는 곳은 크게 두 곳이라고 했지.’
궁성은 그 규모만큼이나 거대한 홀을 여럿 갖고 있었다.
진정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각 가문의 중요 인사들은 웅장함의 극치인 광휘의 홀에서.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호위 기사 겸, 보좌관들은 광휘의 홀보다 규모가 작은 기사의 홀에서.
그렇게 각기 다른 공간에서 연회를 만끽한다. 아마 루스나 일리아도 따로 기사의 홀로 향할 것이고.
물론 바랑카처럼 준남작이라도 작위를 지닌 기사들은 광휘의 홀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랑카는 자신과 맞지 않는 장소라며 나만 배웅해 준 뒤, 기사의 홀로 가겠다고 했다.
“내리시죠.”
이윽고 궁성 앞에 당도하자 바랑카 경이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그에 마차 문을 열고 나서자 거대한 궁성의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입구 앞에, 출입자들을 내려다보며 일절 미동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었다.
“저들이 바로…….”
“예. 수도기사단, 브릴리언스 나이트입니다.”
브릴리언스 나이트.
광휘의 기사라 불리는 그들은 왕가에 소속된 채 캐피탈과 직할령을 수호하는 존재들이다.
황금빛 망토를 걸친 기사라.
확실히, 상대가 그 누구라도 무릎 꿇릴 만한 기세가 엿보였다.
“그렇다면 궁성 안에는 근위기사도 있겠군요.”
“열 명의 수호 기사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당연히 있습니다.”
“열 명의 수호 기사라. 브릴리언스 나이트에서 오직 열 명만을 뽑아 만든 근위 기사들, 맞습니까?”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수백 년 동안 수호 기사의 숫자는 줄지도, 늘지도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캐피탈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이란 말이군요.”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 영주님이나 기사단장님도 그에 전혀 밀리지 않으니 자부심을 느끼셔도 좋습니다.”
열 명의 수호 기사.
국왕의 검이자 방패이며, 그 숫자는 수백 년간 열 명에서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스칼도 있겠네.’
제스칼 하이클란스. 작가 공인 미들랜드 세계관의 최강자임과 동시에 지금껏 내가 써 왔던 화신을 발명한 남자.
물론 그가 최강자가 되는 건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뒤이긴 하다.
그래도 그를 직접 볼 수 있음에 기대가 들었다. 미들랜드 사가에서 거의 주연급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으니까.
“아무리 와 봐도 항상 이곳을 지날 때는 기가 죽더군요.”
바랑카의 말을 들으며 궁성에 들어서자, 이내 고개를 꺾어야만 천장이 보이는 드넓은 회랑이 나타났다.
이후 벨벳으로 만들어진 붉은 카펫을 밟으며 서서히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걸음은 더디기 짝이 없었다.
사방에 깔린 화려한 장식과 예술품이 내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랬던 경험이 있었는지, 바랑카는 말없이 내 속도를 맞춰 주었다.
그렇게 복도를 얼마나 더 걸었을까.
왁자지껄한 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한곳에 몰린 인파가 보였다. 그들은 사람 하나를 두고 둘러싼 형국이었는데, 그 가운데에 선 남자는 복장을 보아 귀족인 듯했다.
“저긴 왜 몰려 있는 겁니까?”
“작년 토너먼트 우승자, 호그르데 남작이군요.”
기억에는 딱히 없는 이름이다.
“어떤 귀족입니까?”
“대륙 중남부에 제법 비옥한 영지를 가진 귀족입니다. 남작치고는 막강한 세를 거느리고 있지요. 허울뿐인 보통의 백작보단 낫다는 평입니다.”
“그런데도 토너먼트 우승자라면, 기사이기도 하다는 뜻입니까?”
“예. 이제 엑스퍼트 초급에 올라선 실력입니다. 뭐, 토너먼트는 마나와 상관이 없으니 말이죠.”
작년 우승자라.
호그르데 남작은 건장한 체구에 시원하게 생긴 미남이었다. 누가 봐도 매력적인 외모다. 실제로 주변에 몰린 인파 중 반 이상은 여자들이었고.
‘좋겠네.’
그렇게 작은 부러움을 안고 곁을 지나가려던 찰나였다.
“어, 이게 누군가. 바랑카 경 아닌가?”
호그르데 남작이 바랑카에게 아는 체 해 왔다.
동시에 주변에 몰린 인파들의 시선이 이곳에 쏠렸다. 간단히 인사하고 지나갈 분위기가 아님에 바랑카가 멈춰 섰다.
반면 나는 그냥 계속 걸음을 옮겼다. 구태여 말을 섞어 봤자 뭐 하겠냐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 와중, 뒤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다.
“일 년만이군요, 남작님.”
“이번에는 린다이어 가문을 대표해 혼자 출전하오? 듣자 하니 첫째 공자는 이번 기념일에 오지 않았다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카인 린다이어 공자님도 이번에 토너먼트에 출전하시기로 하셨으니.”
“음? 셋째 공자는 내가 알기론 기사 작위가 없다고 알고 있소만.”
“이번에 영주님에게 배너렛의 작위를 하사받으셨습니다. 마땅한 자격이 있으시죠.”
“배너렛? 하!”
비웃음의 의도가 명백한 웃음이 들려왔고.
나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뒤이어 몸을 돌렸다.
당황한 바랑카와 한쪽 입꼬리만을 올린 호그르데 남작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바랑카 경. 그대도 알지 않소? 개국 기념일의 토너먼트는 신성한 경기요. 그런데 배너렛이라니…….”
남작의 말에 주변에 몰린 군중이 슬그머니 웃음을 흘린다.
뭐, 이쯤 되면 고의다.
걸어온 길을 지나 바랑카의 곁으로 향했다.
나를 발견한 호그르데가 미소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게 누군가, 린다이어가의 삼공자 아니오?”
지랄. 다 봐 놓고선 오리발은.
“반갑습니다, 호그르데 남작님.”
“바랑카 경에게 삼공자도 이번에 토너먼트에 참가한다고 들었소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기는 경기요. 섣부른 자신감에 후회할 만한 선택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 좋은 경험이 되겠지요.”
“삼공자의 형제인 데인 린다이어 경은 훌륭한 기사요. 하지만 늘 본선에서 쓴잔을 마셨지. 그만큼 개국 기념일의 토너먼트는 대륙의 강자들이 모이는 대회요. 삼공자의 자신감이야 높이 사지만, 일단 금년도 토너먼트는 포기하고 훗날 당당한 기사가 된 다음 도전하는 게 어떻겠소?”
그래도 데인은 바람기사단이지 않느냐, 배너렛같이 짝퉁 기사가 낄 판이 아니다.
그런 뜻이겠지.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싶었다.
뭐, 그렇다고 아주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아무리 내가 막강한 린다이어 백작가를 등에 업고 있다지만, 엄연히 지금 내 입지는 후계 구도에서 한참 밀려난 삼공자니까.
그러니까 호그르데 남작도 데인을 추켜세우는 식으로 말했겠지. 데인이 훗날 가문을 이을 사람이라 생각해서 말이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자격도 없는데 억지로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네가 뭔 상관이야?
‘기분 더럽네.’
자고로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차별하는 놈에겐 쓴맛을 보여 줘야 하는 법이다.
“사려 깊은 걱정에 감사드립니다만, 제 결정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차피 모두 동등한 조건이지 않습니까.”
일단 떡밥을 던지고.
“분명 마나를 쓰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긴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피땀 흘리며 쌓아 온 경험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오. 갑자기 내켜서 참전할 그런 경기가 아니라는 뜻이지.”
“글쎄요. 마상창 시합이야 영지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습니다. 겉보기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더군요.”
다음엔 미끼를 뿌린다.
반응은 기대할 만했다. 남작의 눈썹이 꺾였으니까.
“어렵지 않다니. 말이 좀 과하오.”
“달리 무시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실제로 제게 있어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졌기에 사실대로 말한 것뿐입니다.”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인다?”
“예. 별로 어렵지 않아 보였습니다.”
“과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자신감이군. 그렇다면 삼공자. 그 자신감을 나도 느끼게 해 줄 수 있으시겠소? 그렇다면 내 직접 개막전의 상대로 지명해 드리지.”
결국, 남작이 미끼에 관심을 보였다.
“개막전이라 하심은? 개국 기념일의 토너먼트는 제가 처음이라.”
알면서도 물어본다. 그래야 남작의 기세가 살아날 테니.
“작년 토너먼트의 우승자가 금년도 참가자 중 하나를 지목해 마상창 시합을 벌이는 것이오.”
보통은 그해 참가자 중 가장 다크호스인 인물을 지목해 흥을 돋우는 게 개막전이다.
남작의 의도가 분명해졌다.
구름처럼 인파가 몰려 지켜보는 토너먼트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게 개막전이고.
거기서 나를 지목하겠다? 이건 대놓고 개망신을 주겠다는 뜻이다. 아니면 어디 한 군데 부러트려 집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것일 수도 있고.
“모두 동등한 조건에 자신도 있다고 하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삼공자?”
흘긋 주위를 돌아보았다.
바랑카는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몰린 인파들은 모두 당연히 내가 포기하리라고 생각하며 비웃는 듯한 모양새였고.
“그러죠. 받아들이겠습니다.”
예상외로 내가 받아들이자 남작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당연히 포기해야 마땅하지 않냐는 얼굴이었다.
동시에 주변 군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럼 이쯤에서 마지막이다.
“만약 제가 진다면 토너먼트를 가벼이 여긴 것을 사죄하는 뜻에서 두 번 다시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대신.”
한결 누그러지려던 남작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대신이라?”
“제가 이긴다면, 제 실력을 확인하지도 않고 속단하여 참가를 물리라 하셨던 방금의 언행을 개막전에 모인 군중 앞에서 사과하십시오.”
“지금 사과라고 했소?”
“예. 자칫하면 제 재능이 피워 보지도 못하고 꺾일 뻔했으니 말이죠.”
“공자님!”
스스슷…….
뒤늦게 바랑카가 나서려던 순간, 마나를 끌어올려 기운을 뿜어낸 남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에 다가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한 바랑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반면 안광을 빛낸 남작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옳은 소리요. 삼공자가 이긴다면 내 눈이 명백하게 틀렸다는 뜻일 테니. 좋소. 그렇게 된다면 내 기꺼이 과오를 인정하지. 하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당분간 침대에 누워서만 지낼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요, 삼공자.”
남작이 미끼를 삼켰다.
그에 나는 희미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