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4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46화(46/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46화
* * *
왜 바랑카가 굳이 기사의 홀로 가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광휘의 홀은 좀이 쑤시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예복을 차려입은 수많은 귀족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원하는 바는 모두 같을 것이다.
인맥을 쌓기 위한 몸부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은근 보는 재미가 있다. 지체 높은 귀족 하나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 마치 고래와 빨판상어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연회장에 모인 귀족들 대부분은 아직 영향력이 적은 군소 귀족이거나, 높아 봐야 플레타처럼 이제 막 후계자로 인정받은 이들이었다.
진정한 주인공들은 늦게 모습을 드러내겠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귀족도 있을뿐더러, 도착했다고 해도 여독을 핑계로 참석을 미루고 있을 테니까.
일종의 배려다.
곧 들러리로 전락할 이들에게 나름의 시간을 내주는.
진정한 연회는 토너먼트의 개막전과 동시에 그날 밤부터 시작된다.
고로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묵직한 거물이 아닌, 잔챙이에 가깝다는 뜻.
‘뭐, 그런 잔챙이들 속에서도 난 혼자지만.’
열심히 친목을 쌓는 이들과 달리, 나는 혼자 테이블 하나를 독차지해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마치 외톨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확실히 이곳엔 나와 아는 얼굴이 없다. 그나마 안면 있는 사람이라곤 플레타 하나 정도.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복작이는 곳을 찾으면 되었으니까.
“휘유.”
그녀를 찾은 나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은빛 드레스와 흰여우 털을 목에 감싼 플레타는 주인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주위에 몰린 십수 명의 귀족이 그 증거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유력한 공작가의 후계자니까.
나와 온도 차가 나는 게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닌, 매년 참석했던 데인이 이곳에 자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
데인도 플레타처럼 수많은 빨판상어를 거느렸을 거다. 엄연히 유력한 후계자 후보이니까.
반면 나는?
칼날 부족의 토벌? 이들에겐 그저 산골에 박힌 오크일 뿐이다. 북부인을 제외하면 관심조차 없겠지.
습격으로부터 플레타를 구출?
아직 진상이 제대로 퍼지지 않았으니 모두 긴가민가하게 생각할 거다. 믿어 봤자 플레타가 알아서 헤쳐 나왔다고 여기겠지.
결론은 단지 백작가의 삼공자라는 타이틀만으론 아무런 힘도, 영향도 없다는 뜻이다.
그저 데인이 모종의 일로 참석하지 못해 대신 나왔겠거니, 생각할 테고.
‘그냥 나도 기사의 홀로 갈까.’
차라리 여기서 빠져나가 루스와 술이나 마실까 고민하던 찰나.
군중 속에서 지루한 눈빛이던 플레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윽고 그녀가 손짓하자 주변에 몰려 있던 귀족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렇게 생긴 길로 플레타가 걸음을 옮겼다.
이후 그녀가 찾은 곳은 내가 자리한 테이블이었다.
“고독함을 즐기는 성격이었습니까?”
놀리려고 온 건가?
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어깨를 으쓱인 나는 와인 잔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왜 왔어?”
“제가 못 올 데라도 왔습니까?”
“친구들이 싫어할 텐데.”
졸지에 플레타라는 중심을 잃어버린 이들을 가리키자 그녀가 쯧, 혀를 찼다.
“누가 누구의 친구라는 겁니까?”
“그럼 나는 네 친구인가?”
“질문의 저의를 모르겠군요.”
“부끄러워하긴.”
“……시끄럽습니다.”
“뭐, 이왕 왔으니 술이나 한잔할래?”
플레타가 내 말을 듣곤 맞은편에 사뿐히 걸터앉아 잔을 잡았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냥 다른 곳으로 향할 줄 알았는데.
티잉!
이내 서로 가볍게 잔을 부딪치곤 와인을 홀짝였다.
왠지 모를 우스움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구도가 참 이상한데.”
“이상하다뇨.”
“파혼한 두 남녀가 다시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다니. 가십거리로 딱 좋겠어.”
“남의 시선을 신경 쓰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고래를 잃어버린 빨판상어들이 이곳을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나를 향한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솔직히, 그래도 내 가문이 가문이니만큼 어느 정도 사람들이 다가올 줄 알았는데.”
“저들도 바보는 아닙니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내 형님이 있으니까.”
이곳에 모인 대다수는 아마 유력한 후계 후보인 데인과 친분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내게 접근한다?
모두가 두루두루 친해져서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누군가와는 거리를 두어 야 하는 법이니.
웃긴 일이다. 유치하고.
하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현대 시대에도 엄연히 라인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삼공자.”
“응?”
“개막전에 참가해 호그르데 남작과 마상창 시합을 벌인다고 들었습니다만.”
“벌써 소문이 그렇게?”
“파다합니다. 공공연하게 벌어진 일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왠지 주변의 쑥덕거림이 모두 나를 향한 것같이 느껴졌다.
“호그르데 남작의 마상창 기술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급 실력입니다.”
“그렇겠지. 우승자라니까.”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인 겁니까?”
“왜 무모하다고 생각하는데?”
“몰라서 묻습니까? 호그르데 남작은 데인 린다이어 첫째 공자와 오랜 시간 연을 쌓은 사이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당신을 실각시키기 위한 함정이라 생각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제안을 넙죽 받아들이더군요.”
그래?
그건 몰랐네. 근데 그러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뜻하지 않게 데인의 영향력을 지워 낼 기회이니.
근데 호그르데 남작이 데인과 친분이 두터웠다면 바랑카는 왜 그걸 미리 일러 주지 않았을까.
중립을 지킨 건가? 괜히 데인과 나 사이에 끼게 되면 곤란해서?
뭐 어찌 됐건.
“넙죽 받아먹은 건 나뿐만이 아닐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있어, 그런 게. 어쨌든 잘됐네.”
“잘됐다는 게 무슨…….”
“이기면 얻는 이득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니까.”
“하.”
어이가 없다는 듯, 플레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호그르데 남작은 작년도 우승자입니다.”
“내가 작년에 참가했다면 내가 우승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쉬워 보이십니까? 호그르데 남작은 비록 마나에 대한 재능은 모자라도, 마창술만큼은 최고라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한스 로드곤보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마창술의 대가 아닙니까. 비교가 안 되지요.”
“호그르데 남작이 그보다 약하다는 거지? 그러면 됐지 뭐.”
“대체 무슨 자신감입니까?”
“대체 왜 내 실력이 높을 거라곤 생각 못 하는 거야?”
“말장난하자고 온 게 아닙니다.”
“나도 너랑 말장난할 생각은 없어.”
“걱정돼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네가 왜 날 걱정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
내 말에 입술을 꾹 깨문 플레타가 날 빤히 바라보던 그때였다.
“이야, 당신이 그 호그르데 남작과 맞붙는다는 삼공자?”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곁에 다가왔다.
마치 감긴 듯한 눈에 항상 말려 있는 입꼬리가 능글맞은 남자였다.
기억에 있는 얼굴은 아니다. 나이가 젊은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외모가 변하기 마련이니, 아무래도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붉디붉은 제복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가 보였다.
붉은 사자였다.
“바사라크 남작가의 적통이자 젊은 계승자인 붉은 사자, 레드란 바사라크.”
양손을 벌린 남자가 과장되게 말하며 테이블 옆에 앉았다.
“이 몸의 이름이시다.”
자신을 존칭하는 웃긴 말투에 플레타가 눈썹을 찌푸렸다.
“무례하군요.”
“알아.”
“안다고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을 높여 주십시오.”
“싫다. 무뢰한이면 무뢰한답게 굴어야 하는 법이니. 억울하면 공녀 당신도 말을 놓든가.”
능글스러운 대답에 플레타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붉은 남작, 레드란 바사라크.
소설을 관통하는 여러 군웅 중 한 명이자 선과 악으로 기준을 나누면 악에 가까운 인물.
광혈초를 통해 블러디 나이트를 길러 내고, 전쟁을 틈타 순식간의 동부의 패자가 된 인물이다.
물론 지금은 그저 방정맞은 새끼 사자에 가까웠지만.
나는 잽싸게 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혹시라도 표정의 동요를 들킬까 봐.
다행히 내 얼굴을 보지 못한 레드란이 손을 뻗어 포도를 집어먹었다.
“아직 연회 첫날이라 그런가? 쓸 만한 귀족은 하나도 없고 죄다 어수룩한 꼬맹이들뿐이야. 그렇게 생각 안 해?”
“그건 동의합니다만, 모두가 당신을 멀리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봐야 할 텐데요.”
“왜, 우리 아버지를 내가 죽였다는 소문 때문에?”
“글쎄요. 어떨까요?”
플레타의 말에 레드란이 심드렁하게 웃었다.
“소문은 증거가 없기에 소문이야.”
“인정하시는 겁니까?”
“인정하면 뭐가 달라지나?”
“달라지는 건 없지요.”
“그래. 이미 나는 바사라크 가문 그 자체니까.”
“오만하군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은 모두 오만한 일면이 있었지.”
한마디도 지지 않는 모습에 플레타는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 의자에 팔을 걸쳐 놓은 레드란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카윈 린다이어?”
“카인 린다이어.”
“아, 맞아. 카인 린다이어. 그래, 호그르데 남작이랑 개막전을 한다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 레드란이었다.
레드란은 자신을 가리켜 젊은 계승자라고 했다. 실제로 어려 보이기도 했고.
게다가 그리 좋지 못한 구설에 휘말려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가문에 변고가 생겨 생각보다 일찍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은 듯했다.
그렇다 해도 기본적으론 상호 존대가 원칙이다.
그럼에도 반말을 한다면, 나 또한 말을 놓아도 된다는 뜻이겠지. 실제로 공녀에게도 꼬우면 말을 놓으라 했고.
“개막전이라. 그렇게 됐지.”
“젠장, 그렇게 선수를 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남작을 도발하는 건데 말이야.”
소탈하다 못해 가볍게 느껴지는 놈이었다.
하지만 막상 앞에 마주하니 가볍다기보단 가면을 쓰고 있단 느낌이었다. 미래의 그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쉬워하는 걸 보면 당신도 어지간히 자신 있나 보지?”
“당연하지. 호그르데는 작년에 이 몸이 토너먼트에 나서지 않았기에 우승했던 거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내가 개막전에 뽑혔다면 내 앞으로 돈을 걸어서 단단히 한몫 챙기는 거였는데.”
“듣고 있자니 저급하기 짝이 없군요.”
눈살을 찌푸리는 플레타와 달리 나는 약간 흥미가 동했다.
“돈을 걸어?”
“뭐야, 몰랐나? 귀족이라고 도박에 관심 없을 것 같아? 어수룩한 도련님이구만. 주위를 봐.”
레드란이 팔을 벌려 연회장에 모인 수많은 귀족을 가리켰다.
“모르긴 몰라도 죄다 토너먼트를 즐길 생각에 들떠 있을걸. 가벼운 여흥이자 오랜 기념일의 전통이지.”
“전통까지야.”
플레타의 딴죽에 레드란이 픽 웃었다.
“뭐, 가장 많은 판돈이 걸리는 건 뭐니뭐니해도 개막전이다. 보통은 최상의 몸 상태로 호적수끼리 맞붙으니까.”
“도박이라니. 왕실이 주최하는 토너먼트에서 그래도 되는 건가?”
“응? 그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여타 귀족답지 않은 레드란의 말투에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그게 금지한다고 막히겠어? 어차피 음지에서 성행할 걸 알기에 왕실 궁내부에서 직접 주최하는 거다. 베팅액 일정량을 떼다 좋은 곳에 쓰겠다는 명분을 갖고 말이지.”
“상한선은?”
“없어. 어차피 베팅한 액수에 맞게 비율을 나눠 분배하는 방식이니까.”
“이번 개막전은 얼마나 걸렸지?”
“걸리다니? 농담하는 건가? 아무도 안 걸지. 당신 쪽에 걸리는 돈이 없는데 애초에 성립될 리가. 이거 잠깐, 술이 떨어졌군.”
내 쪽에 아무도 돈을 걸지 않으니, 호그르데에게 걸어 봤자 얻는 게 없다 이건가.
그럼 내가 내 앞으로 돈을 걸면?
그걸 노리고 호그르데 쪽에 엄청나게 몰리려나.
이거 재밌겠네.
레드란이 잠시 다른 테이블에 놓인 술을 가지러 간 사이, 허리를 숙여 플레타에게 속삭였다.
“플레타.”
“왜 부릅니까.”
“내게 갚아야 할 돈이 있는 걸로 아는데.”
당장 내 수중 돈의 대부분은 블루윈드 상회로 넘어갔지만, 아직 돈 나올 구석은 남아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습니다만, 그건 멍청한 짓입니다.”
“이길 자신 있다니까. 그리고 그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겠다며? 지금 와서 싫다는 건가?”
흑발 사내의 급습에서 살려 준 대가를 운운하자 플레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서, 지금 나더러 당신 앞으로 돈을 걸라는 겁니까?”
“그래.”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제겐 융통할 자금이 없습니다.”
“어음이라도 하나 쓰든가. 내 이름이야 약발이 안 먹히지만, 넌 먹힐 거 아니야.”
“……그래서 얼마를 걸라는 겁니까?”
“금화 1천 닢. 공작가 영애의 목숨값치곤 아주아주 싼 편이지. 지금 안 받아들이면 다음엔 더 비싸게 부를지도 몰라.”
“…….”
공녀의 신분으로도 보증할 수 있어야 하기에 내건 액수였다.
예상이 맞았을까. 생각보다 저렴하다고 느낀 건지 플레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슨 멍청한 짓인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이죠. 제게는 별 손해 없는 조건이니.”
돈을 걸겠다는 뜻을 확인함과 동시에, 양손에 술병을 든 레드란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둘이서 이야기하고 있어? 소외감 느껴지게.”
여타 귀족과는 확연히 다른 레드란이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그 모습에 나도, 플레타도 헛웃음을 흘렸다.
“먼 미래 북부와 서부, 그리고 동부를 통치할 사람들끼리 술이나 한잔하자고.”
레드란의 말에 플레타가 코웃음을 쳤다.
“서부는 몰라도, 그 외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는 것 같군요.”
“그럼 고매하신 공녀님은 빠지시든가. 우리끼리 한잔할 테니.”
플레타를 무시한 레드란이 날 보며 코를 킁킁댔다.
“카인 린다이어, 당신에겐 냄새가 나. 아주 진한 야망의 냄새가.”
“분명 여기 오기 전에 씻고 나왔는데.”
“적어도 나는 그 데인인가 뭔가 하는 첫째 공자보다 당신이 맘에 들어. 진심으로. 걔는 너무 멍청해. 아부와 충성을 구분할 줄 모르는 녀석이야.”
“…….”
“솔직히 말해. 이번 기념일에 데인 린다이어 대신 당신이 나온 거, 단순 대리 참석은 아니지?”
“아니면?”
“린다이어 백작님의 저울추가 조금 기울었다던가?”
“생각은 자유이니.”
정말 단지 감만을 믿고 저러는 걸까?
의중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안면을 트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확실히 레드란 바사라크는 훗날 큰 골칫덩어리가 될 테니까.
그때를 대비하려면 미리 알고 지내는 게 더 수월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야 하겠지만, 그건 내 하기 나름이니.
“어쨌든, 내일이 개막전인 건 알고 있겠지. 삼공자.”
레드란이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당연히.”
“북부에서 날아온 새끼 매가 반전을 일으키다, 그런 멋진 무훈이 탄생할 수 있을까?”
“놀리는 건가?”
“그럴 리가. 은근히 난 기대하고 있다고.”
“그러면 내게 돈을 걸든가.”
“물론, 기대는 기대로 끝내야 하는 법.”
“겁이 나나?”
“겁? 하! 승산 없는 싸움에 끼지 않는 것뿐.”
“만약 내가 이긴다면?”
“당신이 이긴다면? 뭐, 발가벗고 캐피탈이라도 한 바퀴 돌까? 아니면 형님으로 모셔 줘?”
웃기는 녀석.
레드란이 씩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탁!
잔과 잔을 맞부딪친 뒤, 레드란과 나는 미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잘해 보라고, 삼공자.”
“어련히.”
* * *
다음 날 정오.
내성 한쪽에 마련된 거대한 원형경기장에서, 나는 출전자들이 최종 점검을 하는 대기실에 있었다.
둥…… 둥…….
밖에서 울려 퍼지는 둔중한 북소리가 대기실까지 전해졌다. 그에 내 심장박동도 천천히 그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공자님.”
곁에 다가온 루스의 손에는 건틀릿이나 그리브 같은 파츠가 쥐여 있었다.
마상창 시합을 위한 무구였다.
오늘만큼은 특별히 종자 노릇을 해 주기로 한 루스가 내게 갑옷을 입혀 주기 시작했다.
“원하신다면, 실드 마법이 걸린 아뮬렛을 구하셔도 됩니다만.”
“됐어. 겁쟁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릴 놈들인데.”
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실드 마법이 전개되는 아티팩트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단련된 육체와 기술만으로 겨루는, 그것을 위해 마나까지 금지한 게 바로 개국 기념일의 마상창 시합이다.
그런 판국에 아티팩트를 쓰면 뒤에서 겁쟁이란 소리를 듣겠지.
“참, 공자님 앞으로 바슈른 공녀가 금화 천 닢을 걸었다고 하더군요.”
“그래? 반응은?”
“웬 떡이냐 싶어서 사람들이 죄다 호그르데 남작 쪽에 붙었지요.”
“그것참 잘됐네.”
돈벼락을 맞을 걸 생각하고 있자 루스가 의미심장한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저도 공자님에게 금화 오십 닢을 걸었습니다.”
“그래? 그 누구도 내가 이길 거라 생각 안 하던데.”
“솔직히, 저도 공자님이 왜 호그르데 남작의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만?”
“뭐 지금껏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었습니까.”
씩 웃은 루스가 마지막으로 내 복장을 점검해 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공자님은 항상 이기시고 돌아오셨지요.”
“띄워 주기는.”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저도 적지만 금화를 걸었으니 말이죠.”
“더 걸지 않은 걸 후회할 거야.”
이윽고 시간이 되었는지, 말구종 하나가 군마를 이끌고 내 앞에 다가왔다.
흰색 갈기가 돋보이는 백마였다.
안장과 함께 말에 덮인 천에는 린다이어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말 위에 가뿐히 올라타자, 이내 루스가 마지막으로 잿빛 날개가 그려진 망토를 내 뒤에 둘러 주었다.
“광대가 된 기분인데.”
“광대라니요. 멋지십니다.”
이후 루스가 내민 투구에도 쭉 뻗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다음으로 받은 작은 방패엔 가문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고.
마지막으로 그 끝이 뭉툭한 랜스(Lance)까지 건네받고 나자, 루스가 문 옆에 서 있던 경비병을 바라보았다.
“준비 끝났다.”
드르르륵…….
루스의 말에 이내 경기장으로 향하는 철문이 거칠게 열리기 시작했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말 머리를 돌려 철문으로 향했다.
“공자님.”
루스의 부름에 흘긋 뒤를 돌아보았고.
“맹금은 사냥당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냥할 뿐이지.”
“다녀오십시오.”
“다녀오마, 루스.”
철컥!
안면부를 가리는 덮개를 내렸다.
이후 말 옆구리를 차 천천히 문밖으로 향했다.
둥…… 둥…… 둥…….
와아아아!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함성과 북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