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49)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49화(49/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49화
* * *
챔피언 슬레이어.
개막전을 승리로 이끈 후 내게 붙여진 이명이다. 물론 그 별명은 곧 잊힐 것이다. 엄연히 내 목표는 토너먼트의 우승이었으니까.
호그르데 남작은 내게 패배한 이후 쓸쓸히 자신의 영지로 되돌아갔다.
옳은 선택이다. 이곳에 남아 봤자 좋은 말은 듣지 못할 테니까.
이후 나는 별채에 틀어박혀 심신을 단련하겠다 공표한 상태였다.
아직도 경기는 많이 남았고, 굳이 지지부진한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한스 로드곤의 마창술을 더 연습하는 게 효율적이니까.
그렇게 며칠 동안 토너먼트 경기를 계속해서 치러 나갔고.
‘호그르데 남작을 쓰러트린 건 요행이 아니었다.’
‘린다이어 삼공자의 마창술은 신의 경지다.’
‘마치 로드곤 경의 재림을 보는 듯하다.’
연전연승을 일구어 냈다.
토너먼트는 격렬한 경기다. 승리한다 해도 크고 작은 부상이 뒤따른다. 그에 이기고도 중도 이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백에 가까운 기사로 시작했던 토너먼트는 어느새 종막, 결승전을 앞에 두게 되었다.
* * *
“공자님!”
“루스.”
별채 연무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던 내게 루스가 찾아왔다.
손에 든 종이 쪼가리를 휘적대며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 꽤 신나 보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워?”
“이거 보셨습니까?”
“뭘 봐?”
“이번 개막전에 걸렸던 내기의 결과입니다!”
그건 좀 흥미가 동하는데.
종이를 건네받은 동시에 루스가 탄성을 내질렀다.
“호그르데 남작에게 걸렸던 금화가 자그마치 삼천 닢입니다! 삼천 닢!”
금화 삼천 닢이라.
캐피탈에 모여든 유수의 귀족들치곤 적은 양이다.
뭐,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명망 높은 귀족들은 위신이 있어 도박에 참여하지 않았을 테니까.
철없는 젊은 귀족들이나 신나게 돈을 걸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분명 삼천 닢도 적은 액수는 아니다.
“그래? 넌 얼마나 벌었는데?”
“오십 닢을 걸었으니 제게 떨어지는 건 한 백오십 닢 정도 되겠지요.”
백오십 닢 가지고 좋아하긴.
거기에 걸린 삼천 닢 대부분이 다 내 거다, 인마.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이 귀밑에 걸렸던 루스가 이내 헛기침을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들떴지요? 공자님은 돈을 거시지 않으셨는데.”
플레타가 건 돈이 내 돈이라는 걸 모르는 루스였다.
“됐어. 네가 돈을 땄다니까 나도 기쁘다. 그래서, 그걸로 뭐 할 건데?”
“뭘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아껴 두었다가 동생들 시집 장가보낼 때 써야죠.”
“극진하네.”
윈드네스트에 두고 온 가족이 떠올랐는지 루스가 뒷목을 긁적였다.
“그건 그렇고. 공자님은 오늘도 연회에 참석 안 하십니까?”
“안 해. 뭐하러.”
“개막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전연승이지 않으셨습니까? 귀족들이 전부 공자님을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기 싫다는 거다.”
“예?”
“주인공은 가장 늦게 나타나는 법이니까.”
결승전이 끝난 이후로도 연회는 계속된다. 그때부터 지독하게 끌려다닐 텐데, 차라리 핑계가 있는 지금 푹 쉬어 둬야지.
“그럼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뭘 하긴? 수련이나 해야지.”
내 말에 루스가 질리지도 않냐는 표정을 했다.
“그래도 가끔은 기분 전환하셔야지요. 저랑 한 약속도 지킬 겸.”
“약속?”
“수도에 오면 같이 한잔하시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루스가 술잔을 꺾는 듯한 시늉을 해 보였다.
“젠장. 내일이 결승전인데 그러기냐?”
“원래 거사를 앞두고 한잔해 줘야 하는 법이지요.”
“그래. 가자, 가.”
내가 혀를 내두르며 한숨을 내쉬자 루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요. 참,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는데, 지금 밖에 손님도 와 계십니다.”
“손님?”
“예. 바사라크 남작님이 오셨더군요.”
레드란이? 왜?
“그 작자는 왜?”
“모르겠습니다. 다만 말하기를, 삼공자님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하던데요.”
“빚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루스와 함께 별채 밖으로 향했다.
밖에는 루스의 말대로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붉은 사자가 그려진 모습이 레드란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챔피언 슬레이어!”
마차 안에서 레드란이 훌쩍 뛰어내리며 나를 불렀다. 붉은 제복과 말린 입꼬리. 여전한 모습이다.
“여긴 무슨 일로?”
“이 몸은 장차 동부를 지배할 몸. 그런 만큼 한번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지.”
뭘 잘못 처먹었나. 갑자기 왜 이래?
그때였다.
“구차하게 없던 일로 하려는 겁니까? 지조라곤 한 줌도 찾아볼 수 없군요.”
멀리 서 있던 마차에서 플레타가 내리며 말을 걸어왔다.
레드란을 향한 비웃음을 한껏 머금은 그녀는 곧장 내게 다가왔다.
“삼공자, 귀족이라면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입니다.”
“무슨 말이야?”
“두 번 다시 헛된 약속을 하지 못하도록 벌거벗고 캐피탈을 돌게 하시죠.”
아. 지금에서야 기억이 났다.
저번에 개막전 승리를 두고 레드란이 했던 말이 있었지.
내가 이긴다면 발가벗고 캐피탈을 한 바퀴 돈다고 했었다. 형님으로 모셔 준다고도 했었고.
“나랑 삼공자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끼어들어?”
“삼공자가 당신 하수인이라도 됩니까? 끼어들고 말고를 당신이 왜 따집니까?”
“뭐? 발가벗고 캐피탈을 돌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쟁이다.”
“우리 가문이 겁낼 것 같습니까?”
“아직 공작가의 주인도 아니잖아? 난 가주고.”
“곧 될 겁니다.”
“영지민들 곡소리 내겠네. 너 같은 여자가 영주가 된다면.”
“시끄럽습니다. 옷이나 벗으시죠.”
휙 고개 돌린 레드란이 날 보며 울상을 지었다.
“진짜 시킬 거냐?”
항상 날카롭던 레드란의 표정이 뭉개진 게 꼴이 퍽 우습다.
“생각해 보고.”
“생각? 그냥 찐하게 술 한잔 사면 됐지 생각할 게 있나?”
레드란 바사라크.
붉은 남작은 먼 미래에 손에 무수히 피를 묻혀 가며 적을 제거하고, 기어이 동부의 패권을 장악한다.
지금의 레드란과는 매치가 안 되는 이미지다. 물론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면.”
“그러면?”
“사소한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술 한잔으로 깨끗이 잊지.”
“사소한 부탁이라.”
감긴 듯하던 레드란의 눈이 기묘하게 뜨였다.
“뭐지?”
“간단해. 나중에 영지 구경이나 시켜 줘.”
“구경?”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레드란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우리 영지가 언제부터 관광지였지?”
“그냥 관광은 아니고.”
“그럼.”
“붉은 성의 옛 업적을 느껴 보고 싶을 뿐이야. 명성이 자자하니까.”
붉은 성(Red Castle).
피의 요새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옛 대륙 전쟁 당시, 벨랑카스 대제에게 반기를 들었던 한 제후의 것이었다.
하지만 대제에게 패한 그는 참수되었고 그의 가문은 산산이 찢겨 멸문했다.
지금에야 바사라크 남작가가 붉은 성을 통치하고 있지만, 당시 처절함이 깃든 기억은 아직도 그 성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붉은 성을?”
“그래. 안 되나?”
레드란이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했다. 그런다고 알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손님으로?”
“그래, 손님으로.”
“그렇다면야, 이 몸으로선 거부할 이유가 없지.”
레드란이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 나 또한 힘 있게 맞잡았다.
“좋아. 거래 성립이다.”
“의외로 소박한 면이 있군, 삼공자. 좋아. 그 대가로 오늘은 내가 거하게 한잔 사지. 근처에 아주 좋은 곳이 있다. 캐피탈의 미녀란 미녀는 전부 모아 놓은 곳인데…….”
플레타의 뜨거운 눈초리를 느낀 레드란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거긴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술이나 한잔하러 가자고.”
뒤이어 레드란이 플레타를 바라보았다.
“너도 갈 거냐?”
“삼공자와 긴히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싫다면 그쪽이 빠지시든가요.”
“허, 단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게 궁금해서라도 참석해야겠는데.”
“저속한 인간.”
“칭찬으로 듣지.”
싱긋 웃은 레드란이 마차를 향해 손을 뻗으며 나를 보았다.
“이야기는 가면서 마저 나누지. 내일 결승전 자신 있나?”
“당연한 소리를.”
“바랑카 경이라고 했지? 실력이 대단하던데. 게다가 같은 식구이니 서로 실력은 잘 알 테고. 기대되는걸.”
글쎄. 과연 바랑카가 내 실력을 제대로 파악이나 했을까?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이번 해 우승자가 린다이어 백작가에서 나온다는 거지. 린다이어 백작님께서 많이 좋아하시겠어. 대체 얼마 만에 왕좌를 되찾아가는 거야?”
레드란의 호들갑에 나는 코웃음을 흘렸다.
내게는 한 치 관심조차 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함이었을 뿐이니까.
* * *
둥…… 둥…… 둥……
분위기를 띄우는 북소리와 군중들의 환호가 진동으로 전해졌다.
이제는 조금 지긋지긋해진 경기장이었다. 하지만 마상창 시합도 오늘로 끝이다. 이번이 마지막 경기, 결승전이었으니까.
“삼공자님.”
“그래, 고생했다.”
일리아가 내게 망토를 달아 준 뒤 뒤로 물러섰다.
상대가 바랑카인 만큼, 루스가 이번에는 상대편으로 향하고 내겐 일리아가 붙은 차였다.
긴장은 되지 않았다. 도리어 시간이 흐를수록, 경기를 치를수록 로드곤의 창술은 완숙해졌다.
이제는 화신을 불러내지 않고도 제법 마창술에 자신이 붙을 정도이니.
“승전을 기원하겠습니다.”
“으응? 바랑카 경이 졌으면 좋겠단 이야긴가?”
“아앗,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럼, 내가 졌으면 좋겠나?”
“공자님!”
일리아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뾰로통함이 느껴져 웃은 나는 경비병에게 눈짓했다.
“준비 끝났다.”
내 말에 경비병이 신호를 보내고, 상대측에서도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려 왔다.
드드드…….
이내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에 말 옆구리를 차 문으로 향했다.
와아아아―!
둥! 둥! 둥!
지금껏 느껴 왔던 거지만, 수천의 환호가 내 몸을 휘감는 느낌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챔피언 슬레이어!”
“오늘이야말로 챔피언이 되길!”
“린다이어 백작가에 영광을!”
으레 그렇듯 말을 타고 경기장 가장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처음 개막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앞에 쌓이는 무수한 꽃잎과 선망의 눈초리다.
의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실력으로 이미 증명했으니까. 사람들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건 오직 하나.
선망이었다.
따각 따각…….
이내 경기장 중간 벽을 스쳐 지나가며 바랑카와 시선을 교환했다.
바랑카는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고개 숙이며 오른손을 올려 예를 표했다.
그에 나 또한 화답했고, 군중들은 기사도 정신이 살아 있는 모습에 힘찬 함성을 내질렀다.
“후우.”
이후 나와 바랑카는 멀리 마주 선 채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경기장이 고요해졌다. 하지만 수천 개의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우우웅―!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나와 바랑카가 동시에 말을 출발시켰다.
두두두두…….
승패는 눈 깜빡할 사이에 가려질 것이다. 바랑카도, 나도 헛된 술수는 쓰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승자는 내가 될 것이다.
틀리지 않을 직감이었다. 그건 바랑카도 마찬가지이리라. 지난 내 경기를 봐 왔던 그였으니까.
“흡!”
그렇게 중간 벽의 초입에서 나는 한스 로드곤의 화신을 불러냈고.
사아아아…….
영혼에 자리하는 묵직함을 느끼며 창을 꽉 쥐었다.
‘이것으로 끝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토너먼트는 곧 끝이 나리라.
그렇다면 남은 것은 곧바로 시작되는 국왕과의 대면이다.
그때 요구할 것과 해명은 모두 준비해 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창을 내뻗는 것뿐이다.
벨랑카스 대제의 유산.
그것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