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5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56화(56/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56화
* * *
내 방에서 맞는 아침은 상쾌했다.
다사다난했던 캐피탈에서의 일이 꿈만 같이 평화로운 기분.
일어나자마자 능숙하게 시종들이 떠온 물에 세면을 마치고 정복을 차려입었다.
처음에는 거추장스럽고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멀리했었으나, 슬슬 삼공자로서 위엄을 갖춰야 할 시기였다.
이후 아침을 거르곤 그대로 영주성을 빠져나와 성내에 자리한 기사단 지부로 향했다.
“하압!”
“흡! 흐읍!”
아침인데도 분주한 기사단이었다.
운동과 대련을 벌이며 후끈한 분위기 속에서 나를 알아본 기사단원들이 목례를 취해 왔다.
‘기분이 묘한데.’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땐 나를 소 닭 보듯 했던 기사들인데.
그간 이룬 업적을 새삼 떠올린 나는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공자님, 이곳엔 어쩐 일로?”
단원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바랑카 경이 나를 알아보곤 다가왔다.
“일리아를 만나러 왔습니다만.”
“일리아 프로스트는 기사단의 정해진 일과를 수행 중입니다. 어떤 용무로 오셨는지?”
아무리 캐피탈에서 친해졌다고 한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그러한 바랑카의 생각을 읽은 나는 팔짱을 꼈다.
“바슈른 공녀 습격 사건의 목격자로서 사정 청취를 하려 합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병영 무기고를 정리하고 있을 겁니다.”
명분이 생긴 바랑카가 씨익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길로 유유자적하게 걸음을 옮겨 바랑카를 지나가려는 찰나였다.
“공자님.”
“예?”
“저나 공자님이야 일리아의 진면목을 알고 있긴 합니다만, 몇몇 어린 수련 기사들은 머리가 덜 여물어서 말이죠.”
“…….”
“앞으로는 소환장을 보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조언을 드린 겁니다.”
아.
쓸데없는 소문을 만들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는 뜻인가.
내 생각이 짧았다. 그냥 오라 가라 하기 뭐해서 찾아온 건데.
“아닙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예. 그럼 이만.”
몸을 돌린 바랑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입맛을 다시며 계속 걸음을 옮겨 병영 구석에 자리한 기사단 무기고에 도착하자, 안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린 문으로 흘끔 보니 안에서 일리아가 낑낑대며 무기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좀 도와줄까?”
“누구…… 아, 공자님!”
내 얼굴을 알아본 일리아가 자세를 취하며 경례를 올렸다.
“쉬어.”
“예.”
손을 내젓자 편한 자세를 취한 일리아가 구슬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이른 아침인데도 꼬질꼬질한 외견이었다. 아마 이른 새벽에 나와서 온갖 허드렛일을 했던 탓이겠지.
‘뭐 막내니까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어떤 집단에서든 막내 포지션인 이들은 고달프기 마련이었고, 그것은 군대인 기사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같은 막내여도 급이 나뉜다는 것이겠지만.
“바빠 보이는데 좀 도와줄까?”
“아, 아닙니다. 거의 끝나 갑니다. 한데 무슨 일로 이곳에…….”
“기사단 생활은 할 만하나?”
“예. 캐피탈에 다녀온 이후 느낀 게 많아 요즘 하루하루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침인데 식사는 했고?”
“아니요. 아직입니다.”
“이거 안타깝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일단은 내 용무가 먼저니까 있다가 맛있게 먹도록 하고.”
“예? 아, 예.”
“일단 여기에 서명부터.”
품속에서 동그랗게 말린 종이를 꺼내 일리아에게 던져 주었다.
“이게 무슨…….”
“용병 계약서다.”
“예?”
일리아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럴 만하지. 그래도 뭐 어떻게 하나. 지금은 방법이 이것뿐인데.
“합법적으로 너를 빼돌릴 근거가 이젠 없다. 어제 아버지를 찾아가 이것저것 협상을 해 봤는데, 골치가 아파서 말이지.”
“그게 무슨…….”
“기사단을 탈퇴해라, 일리아.”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다음 용병으로 활동해라. 이름이야 네가 알아서 짓고, 내 의뢰를 받도록 해.”
“…….”
“구구절절하게 이유를 설명하진 않겠어. 그저 나는 네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물론 그걸 고르는 건 네 자유고.”
“…….”
이후 다시 시선을 내려 종이를 쭉 훑어보던 일리아가 작게 입을 열었다.
“이 마지막 글귀는 뭡니까?”
“으응?”
“계약 시 소정의 특전이 있음?”
“아, 그거?”
어리둥절한 일리아를 향해 나는 씩 웃어 주었다.
“장담하지. 네 인생 최고의 기회가 될 거야.”
* * *
며칠 후.
루스의 전갈을 기다리며 개인 연무장에서 한창 땀을 흘리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고 대자로 뻗어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다.
아무리 내가 미래의 정보가 있고 먼치킨스러운 주인공 버프가 있다고 해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인중여포(人中呂布)라고 불렸던 최강의 용장, 여포 봉선도 결국 인재를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다 몰락했다.
몸뚱이는 하나니까.
분신술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쓸모 있는 인재를 끌어모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 봤자 지금 내게는 누가 있을까.
‘루스. 꼴랑 한 명.’
우웅! 우웅! 우웅!
내 생각에 허리춤에 달린 아휀이 진동을 내뿜었다.
“너는 인간이 아니잖아.”
진동을 무시한 채 등받이에 몸을 기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플레타는…… 아직 모르겠다. 확신이 안 서니까. 백작 또한 우군이긴 하지만 내 사람은 아니고. 두 형제야 말할 것도 없지. 레오야 한참 후에나 도움이 될 테고. 길레인과 바랑카도 당장 재원은 아니니.’
새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앞길이 깜깜하다. 위기 한 번을 탈출하면 다른 위기가 나타나는 상황인데 인력이 너무 적다 이 말이지.
‘일리아는.’
일단 대기만성이다.
재능은 출중한 편이다. 일단 검을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마나를 호흡하고 있으니.
충성심?
일단 그 습격 사건에서 나와 생사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산점이다.
‘게다가 일단 때가 묻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고.’
그 어떤 연줄도 없이 홀로 살아온 그녀다. 다른 세력의 끄나풀을 심복으로 삼는 것만큼 치명적인 게 없으니 엄연히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후.”
이리저리 생각하면 뭐 하나.
어차피 본인이 기사단에 계속 남겠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공적인 일이 아니라면 백작도 더는 기사단원을 차출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공자님.”
그때, 연무장 문이 열리며 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누군데.”
“예. 일리아 프로스트입니다.”
올 게 왔구나.
몸을 일으킨 나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일리아는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수련 기사를 상징하는 망토는 없었다.
모험가나 입을 법한 간편한 가죽 갑옷에 후드가 달린 암청색 로브를 걸친 일리아가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왔냐.”
“예.”
“탈퇴는.”
“했습니다.”
“뭐라고 안 하더냐?”
내 물음에 일리아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평민 출신 수련 기사를 붙잡을 리는 없죠.”
“그래?”
“그래도 단장님은 극구 만류하셨습니다.”
“직접 널 데려온 사람이니까.”
“하지만 공자님의 이야기를 드리니 흔쾌히 수락하셨습니다.”
길레인. 이 기특한 아저씨.
“잘됐네.”
빙긋 웃자 일리아 또한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계약서는.”
품속에 둘둘 말려 있던 종이를 꺼낸 일리아가 내게 건네었다.
“잘 받았다.”
“이젠 마스터라고 불러 드려야 합니까?”
“징그럽게 무슨. 그냥 하던 대로 해.”
“예.”
종이를 쫙 훑어 내리다 시선을 사로잡는 게 보였다.
“……프로스트 용병단이라.”
“딱히 할 이름이 없어서. 그냥 성을 따서 넣었습니다.”
“그거야 상관없지. 등록은?”
“일단 용병 길드에 등록은 했습니다.”
“좋아. 실적은 걱정하지 말라고. 의뢰 팍팍 넣어 줄 테니까.”
“듣기만 해도 감사합니다.”
“인사치레는 인제 그만 집어치우고.”
종이를 한구석에 던져놓은 뒤 검을 뽑아 어깨에 걸쳤다.
“검을 뽑아라, 일리아.”
“예?”
“말했잖아. 계약 시 특전이 있다고.”
특전과 대련이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에 나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너무 이른 감도 있고, 주제넘다고도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어찌 됐건.”
나만 강해진다고 해서 만사 오케이는 아니니까 말이지.
“이제 네가 내 첫 번째 제자다.”
항상 고요했던 일리아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 * *
윈드네스트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목조 저택.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의 마당도 있고 구색을 갖춘 집이었다.
일리아를 위해 마련한 곳이었다.
기사단을 탈퇴해 졸지에 거처를 잃어버린 셈이 되었으니까.
“이, 이렇게 넓은 곳을 제게…….”
“너 준다고 안 했다. 명의는 나야.”
“…….”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일리아의 일과는 간단했다.
내가 출근하길 기다렸다가 점심까지 쭉 대련, 이후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저녁까지 다시 또 대련. 그리고 끝.
지난 한 달간의 무미건조한 일과였다.
간단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알맹이는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으윽!”
내 발에 오금을 채여 허공에서 한 바퀴 돈 일리아가 연무장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또 아래가 비었잖아.”
볼썽사납게 흙먼지를 덮어쓴 일리아가 비틀비틀 힘겹게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대, 대체…….”
“으음?”
“대체 어떻게 이리 하루가 다르게 멀어지십니까?”
그녀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허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일전에도 공자님께 지긴 했지만 그리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극복할 만한 차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이제는 엄두도 안 섭니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엄두조차 안 나니까 그냥 포기하겠다고?”
조소를 머금은 내 말에 일리아가 입술을 꾹 깨물며 검을 잡았다.
‘근성은 있네.’
베이스야 말할 것도 없다. 바람기사단의 수련 기사로서 악착같이 버텨 냈다는 것 자체가 기본은 갖춰졌다는 뜻이니까.
거기에 이제 내가 할 것은 그 베이스에 색을 입히는 것.
이후 그녀에게 나는 예전 루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나만의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회의적인 그녀였다.
통상의 검술과는 궤를 달리한, 좋게 말하면 실용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열하다고도 할 수 있는 검술이었으니까.
‘그딴 게 무슨 소용이야.’
이 세계관의 기사들이야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시한다지만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니까.
기사도? 매너? 예절?
생사가 걸린 전투에서 그딴 걸 찾고 자빠졌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나.
차라리 다행이다.
오히려 사상의 자유로움이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 준 셈이 됐으니까.
“간다.”
카아앙!
다시 일어난 일리아는 이번에도 내 공격을 제대로 흘려 내지 못해 검이 들렸고.
빠악!
이후 허점이 드러난 복부에 내 주먹이 꽂혔다.
“커어억…….”
털썩!
무릎을 강하게 땅에 부딪친 일리아의 입에서 위액이 흘러나왔다.
“허억, 허어억…….”
거칠게 몰아쉬는 그녀의 입을 집중해서 가만히 주시했다.
마나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것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담금질이 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마나하트를 개방할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될 것 같았다.
물론 조건이 맞다고 해서 무조건 깨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다그닥- 다그닥-
그렇게 일리아가 몸을 추스르길 기다리고 있던 찰나,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소리로 미루어 보면 이곳으로 향하는 게 분명했다.
“쉬고 있어.”
검을 갈무리한 뒤 일리아를 뒤로한 채 대문으로 나섰다.
예상대로였다.
영지의 경비병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앞에 멈춰서 말에서 내렸다.
“공자님, 전서입니다.”
“수고했다.”
밀랍 봉인을 보니 루스의 것이었다. 누가 뜯어 본 흔적은 없었다.
병사를 보낸 나는 그 자리에서 봉인을 뜯어 속에 담긴 전서를 꺼냈고.
<말씀하신 대롭니다. 이대로 이곳에 대기하며 추가로 정보를 모으고 있겠습니다.>
루스가 보낸 짤막한 문구를 확인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대수림으로 가기 위한 열쇠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