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63)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63화(63/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63화
* * *
이후 출발하기 전까지 나를 포함한 일행은 바슈르노의 한 여관에서 머물기로 했다.
대수림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 휴식이었기에 모두가 각자 자유롭게 보냈다.
루스는 바슈르노에 실력 좋은 대장장이를 찾아갔다. 일리아는 마나라는 달콤함에 빠져 지금도 여관 뒤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라헨나와 함께 도시를 거닐었다.
“혼자 가도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불안해서 영 혼자 보낼 수가 있어야죠.”
“누굴 천방지축 어린아이로 아는 것이냐.”
“저는 바슈르노의 시민을 걱정한 것입니다만.”
“네 혀는 어째 항상 독이 묻어 있구나.”
“꿀이 발린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구나. 감언이설보단 독설이 낫지.”
“그건 그렇고, 이번 여정에 일행이 한 명 늘었습니다.”
“내가 유념해야 하는 거라도 있느냐?”
“일단은 말이죠.”
“평범한 자는 아니란 뜻이구나.”
“바슈른 공작가의 장녀입니다.”
“…….”
라헨나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 인간에게 내 능력을 숨기라는 건 아닐 테고.”
“내보여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함구하기로 확실히 약조를 받았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구나.”
“아무래도 질긴 인연이니 말입니다.”
종족전쟁이 끝난 이후 대수림은 바슈른 공작가의 통제 아래 놓였다.
당연히 한때 서로의 목숨을 앗았던 만큼 이종족을 향한 공작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그들을 통제하게 되었으니 소요의 사태가 일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 그때마다 피해자는 항상 이종족이었다. 엄연히 인간은 전쟁에서 승리한 패권자였으니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라헨나가 입맛이 쓴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오래전 역사 속으로 잊힌 일이다. 지금 시대의 인간에게 그 잘못을 따져 물을 순 없는 노릇이지.”
“옳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바슈른이란 이름에 서린 업보는 분명 어떻게든 되돌아오게 될 거다.”
“마땅히 알아서 감내하겠죠. 그들이 뿌린 씨이니.”
내 대답에 라헨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너는 좀 이상하구나.”
“제 생김새 정도면 인간 축에선 미남인데요.”
“이목구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뭐, 농담입니다. 그래서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항상 어떤 일이건 한 발자국 물러나 중립으로 있는 게, 꼭 자기가 이방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니 말이다.”
뜨끔하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열어 보지 않아도 속이 시커멓다는 건 알겠구나.”
이후 라헨나가 향한 곳은 서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녀가 손으로 책을 가리키면 나는 그것을 빼내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쌓이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가방이 무거워졌다.
“책방이라도 차리시려는 겁니까?”
“여정은 무료하니까.”
이미 마차에 쌓인 그녀의 책만 해도 한 무더기다.
“이야기나 해 보거라.”
“예?”
“정말 내가 걱정되어 따라온 건 아닐 테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아니더냐.”
역시 살아온 연륜은 무시 못 하는 걸까.
흘긋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서점 주인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그 외엔 나와 그녀뿐이었다.
“주술 있지 않습니까.”
“그래.”
“뭐, 그걸 제게 알려 달라는 건 말도 안 되겠고.”
“당연한 걸 묻는구나.”
“그럼 시술 같은 건 안 하십니까?”
“시술?”
책을 들춰 보던 라헨나가 손을 멈췄다.
그러곤 고개 돌려 또렷이 날 쳐다봤다.
“무슨 뜻이지?”
“솔직히 말씀드리죠. 문장을 받고 싶습니다만.”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구나.”
얇게 뜨인 그녀의 눈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 사실을 어떻게 네가 알고 있지?”
“알고 있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건 케르윈 그분조차도 모르시는 사실이다. 비전의 기술로 드루이드들만이 알고 있는 그것을 네가 어떻게?”
예, 소설에서 봤습니다만.
“그냥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네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겠다.”
“두 가지 선택권이라면?”
“그 사실을 네게 말한 자의 이름을 내게 말해라.”
“말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너는 살고 그자는 죽을 거다.”
“말하지 않으면.”
“너는 죽고 그자는 살게 되겠지.”
어떻게 잘 구슬리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운만 띄워 본 건데, 생각보다 그녀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말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왜지?”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거짓말은 아니다. 작가 놈이 이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럼 네 녀석만 죽이면 영원히 묻히겠구나.”
“어어, 그럼 맹약을 어기는 셈이 되는데요.”
“케르윈 님의 소명을 끝낸 다음이야 문제될 게 없겠지.”
남은 수명이 정해지는 순간인가.
생각보다 적대적이다. 이걸 어떻게 누그러트린담.
뒷목을 긁으며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럼 거래를 하죠.”
“거래를 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말입니까?”
“그 어떤 것이어도.”
그래?
“훗날 드루이드들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는 영역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어때. 이제 좀 구미가 당기시나.
과연 라헨나의 적대적인 분위기가 조금은 사그라졌다.
“……영토를 내준다?”
“예. 엘프들이 가진 대수림만큼 넓고 끝장나는 곳으로. 그렇게 되면 드루이드는 더는 그림자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우리 종족은 아주 극소수만 남았다. 영역을 가진다고 한들 지켜 낼 만한 힘이 없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맹약으로 보호 협정을 맺어 드리죠. 드루이드의 적은 곧 인간의 적이 되도록.”
잠시지만 라헨나의 두 눈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어째 이번에는 혀에 꿀이 발려 있구나.”
“허언은 아닙니다.”
“네가 인간들의 왕이라도 되느냐? 어찌 그 약속들을 네 멋대로 하고 말고를 결정하느냐?”
“글쎄요. 이번 전쟁이 끝나면 아마 저는 왕도 갈아 치울 만큼 영향력이 지대해져 있을 테니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오만하구나.”
“왕국을 구할 영웅인데 그 정도도 못 하겠습니까.”
“헛된 망상까지.”
“모르긴 몰라도 전쟁은 일어날 겁니다. 그 틈에 찬탈을 노리는 세력 또한 분명히 나올 거고. 그자들의 목을 치고 나면 남아도는 게 영토일 텐데 안 될 게 뭐 있겠습니까.”
어차피 전쟁만 끝나면 뒷일이야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기필코 현실 세계로 돌아갈 테니까.
“네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그럼 그 보장도 없으면서 제 일은 왜 도우려 하십니까.”
“그분의 의지이니까. 맹약을 맺기도 했고.”
“반대로 생각해서 케르윈이야말로 제 가능성을 보았으니 일을 맡긴 것 아니겠습니까.”
“…….”
“아니면 뭐, 케르윈이 늙어서 노망이 났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웅! 웅! 웅!
진동을 울려 대는 아휀을 무시한 채 라헨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한참 동안 나를 주시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깜빡였다.
“그때 가서 네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기는 건 너희 인간의 주특기 아니더냐.”
“마음만 먹으면 제 모가지쯤은 언제든 비틀 수 있지 않으십니까.”
“지금이야 그렇지.”
훗날에는 다를 수 있다.
나오지 않은 그녀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하긴, 일전에 그녀와 대련을 했을 때 내가 검을 잡은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음을 알자 그녀는 크게 놀라워했었다.
“재능을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은데요?”
“그래서 늦지 않게 지금이라도 혀뿌리를 뽑아 버릴까 고민 중이다.”
탁- 탁- 탁-
잠시 정적이 흘렀고, 라헨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다시 책을 고르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론 온갖 고민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탁-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꺼낸 책들을 훑어보던 그녀가 결국 책을 덮었고.
“어떤 문장을 원하는 거지?”
“들어주시는 겁니까?”
“일단 들어나 보자는 거다.”
드루이드의 주술은 직관적인 마법과 달리, 그 능력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에 걸맞게 마나하트를 개방한 인간은 주술을 다룰 수 없었다. 애초에 서로 메커니즘이 다른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장을 배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을 발하는, 내가 지금 써먹고 있는 화신과 같이 언령에 가까운 능력이니까.
“하슈나르의 문장.”
“…….”
“그걸 얻고 싶습니다만.”
그 옛날.
대수림에서 벌어졌던 엘프와 드루이드 간의 전쟁에서 홀로 백이 넘는 엘프를 도륙해 낸 드루이드가 있었다.
귀영술사(鬼影術士) 하슈나르.
그의 무위는 일찍이 소설에서도 몇 페이지를 할애해 찬양된 전례가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귀신처럼 나타나는 검은 늑대 하슈나르.
그는 지옥의 사냥개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엘프들에겐 극도의 위험 대상이었다.
“문장의 존재를 아는 것도 모자라서 하슈나르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차는구나.”
“안 됩니까?”
“…….”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놀람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반쯤 체념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단 두고 보겠다.”
“예?”
“너를 돕는 일이야 케르윈 님과의 맹약이니 내 독단으로 활동해도 문제가 없다만, 문장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쉽게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니까.”
“어쨌건 생각은 해 보겠단 말씀이군요.”
“좀 더 시간을 두고 너를 지켜본 뒤, 확신이 서고 나면 다른 드루이드들과 만나 상의를 해 보마.”
“저를 시험하겠다는 말이군요.”
“그래.”
“뭘 중점적으로 보실지 귀띔이라도 해 주시면 안 됩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릴.”
추리고 추린 책을 한 아름 내게 넘긴 라헨나가 주인장에게 값을 치르곤 밖으로 빠져나갔다.
* * *
출정 전날 밤.
통째로 빌린 여관 홀에는 일행을 포함해 플레타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부탁했던 것들입니다.”
차르륵-
플레타가 가져온 작은 가방을 거꾸로 잡아 내용물을 쏟았다.
나온 것들은 장신구였다. 목에 걸 수 있게 된 아뮬렛들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실드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만일에 사태에 대비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효력은 얼마나 됩니까?”
아뮬렛을 만지작거리며 루스가 물었다.
“공성전을 염두에 두고 기사들에게 배급되는 물건입니다. 지속 시간도 여타의 물건보다 길고 위력도 더 낫습니다.”
역시 마법 명가라는 건가. 억 소리 날 만큼 비싼 물건을 스스럼없이 내놓는 모습이 공작가의 위세를 대변했다.
“이 물건이면 한시름 덜겠군요. 게다가 공녀님도 마법사이시니 말이죠.”
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의 아니게 같이하게 된 플레타였지만 엄연히 그녀 또한 4서클의 마법사. 분명 큰 도움이 되는 인재였다.
“그러면 이제 이야기 좀 들어 보죠.”
플레타가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뭘?”
“거기서 뭘 어떻게 할지 계획이 있으실 것 아닙니까.”
“아. 계획?”
뭐 별다른 건 없는데.
“아마 우리를 발견한 엘프 스카우트들이 공격을 해 오겠지. 그럼 그들을 사로잡아 이후 대수림 내부까지 안내받는다.”
“…….”
“간단하지?”
“잡는다고요? 그들을? 대수림에서?”
“그래.”
“어떻게요?”
“잘.”
“…….”
두 번의 침묵.
그 끝에 플레타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들을 사로잡겠다니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왜 말이 안 돼?”
“대수림에서 엘프를 사로잡겠다니. 새를 잡겠다고 하늘을 날겠다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어, 음, 어렵긴 하겠지. 근데 우리는 할 수 있다.”
“어떻게요?”
“엘프만큼 뛰어난 길잡이가 있으니까.”
플레타의 시선이 나부터 시작해서 루스와 일리아를 거쳤다. 그러곤 끝내 라헨나를 향했고.
“저 사람이?”
“그래.”
“…….”
루스와 일리아 또한 긴장하기 시작했다.
“누구시기에?”
“라헨나 그란트리. 엘프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종족인 드루이드시다.”
루스와 일리아는 곧 닥쳐올 일을 예감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고 라헨나는 유유자적하게 찻잔을 기울였다.
쾅!
그리고 예상대로 두 눈 가득, 화를 담은 플레타가 꽉 쥔 손아귀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삼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