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7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70화(70/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70화
22장. 로르다인
다음 날 아침.
움직이기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어젯밤 아휀이 해 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귀검사 아슬라히나. 냉혈의 기사라고도 불리는 아슬라히나는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대륙 최고의 여기사라 확신한다. 그녀를 적대하는 자들은 귀신에게 당한 것처럼 영혼이 조각난 채 죽어 갈 뿐이다. 그런 훌륭한 전사이자 케르윈의 수행 기사였던 아슬라히나는, 대제가 북부로 출정 나간 틈을 타 배후를 습격한 이종족을 막아서다 자신의 소명을 다한 뒤 끝내 명을 달리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죽어서까지도 이종족을 감시하겠다는 말이었지.’
귀검사(鬼劍士) 아슬라히나.
자신의 수행 기사이자 절친했던 친구를 잃은 케르윈은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참으로 애틋한 이야기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 기사와 그런 기사를 기리는 군주.
그래. 단지 그렇게 끝날 하나의 옛이야기였을 뿐이다. 하지만 아휀의 말에 상황은 달라졌다.
‘아슬라히나의 무덤이 대수림에 있다고?’
아슬라히나를 위해 케르윈이 대륙 어딘가에 그녀만을 위한 무덤을 지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소재는 소설에서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었는데, 아휀의 말에서 뜻하지 않게 힌트를 얻으니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깼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는 루스와 일리아가 보였다.
“길 안내를 맡아 줄 엘프는?”
“이 시간쯤에 온다 했습니다만…….”
잠시 말을 흐렸던 루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양반은 못 되는군요. 저기 오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창문 밖으로 예의 순찰대 복장을 한 두 엘프가 보였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두 엘프의 이목구비가 보였다. 미랑과 카나. 구면이었다.
그새 치료를 했는지 둘의 상처는 다 나은 듯했다. 그렇게 당당히 걸어오는 미랑과 달리 카나는 썩 불안한 걸음걸이였다.
이유야 분명하다. 우리 뒤통수를 후려쳤던 전과가 있으니 그렇겠지.
“다시 만나게 됐군요.”
간단한 노크 후 안으로 들어선 미랑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이전의 적대적인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어찌 됐건 글로리안이 직접 우리를 손님으로 받아들였으니 두 엘프도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겠지.
“너희가 우리를 안내해 주는 건가?”
“그렇게 됐습니다.”
“둘의 면면을 보니 징계성인 것 같기도 한데.”
“인간의 길잡이를 하고자 하는 엘프는 아마 없을 테니까 말이죠.”
하긴. 인간에게 오크와 고블린의 앞잡이가 되라는 것과 비슷한 개념일 테니.
“반면 너희 둘은 이미 전과도 있으니?”
미랑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로서도 달갑지는 않은데. 또 언제 뒤통수를 칠 줄 알고?”
내 말에 미랑 뒤에 엉거주춤 서 있던 카나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래도 일단 장로님께서 손님으로 대하라고 말씀하신 만큼, 전과 같은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근데 왜 두 명이나?”
“한 명이 잘 때 다른 하나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딴짓이라도 할까 봐?”
“감시라기보단 항시 조언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겁니다.”
“하여간 말은.”
쯧, 가볍게 혀를 찬 뒤 검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로르다인을 찾으려면 어디부터 뒤져야 할까?”
“그거야 그쪽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저는 안내만 맡았을 뿐이니.”
“그래도 너희는 그 뭐냐, 수목들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며?”
“그렇긴 합니다.”
“그럼 일단 한 바퀴 쭉 돌아보자고. 그러다 보면 흔적을 찾을 수 있겠지.”
“대수림은 매우 넓습니다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일단 그 전에.”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미랑 뒤에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카나를 바라봤다.
“야.”
“네? 아, 아니, 뭐, 뭡니까?”
누가 봐도 지나치게 긴장한 듯, 카나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출발하기에 앞서 우리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않냐?”
* * *
엘븐 포레스트를 나선 이후 여정은 간단했다. 정처 없이 걷다 한 시간쯤 지나면 미랑이 숲의 기억을 읽는다. 물론 지금까지는 전부 허탕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나절을 별다른 수확 없이 보냈고, 울창한 대수림의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야영 준비를 마친 뒤, 나는 카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뭐 해?”
“……예?”
“뭐 하냐고. 식사 준비 안 하고.”
무어라 말하려던 카나가 이내 입을 꾹 다물곤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나무 열매라도 모아 올 심산인 듯했다.
“역시 사람은 죄짓고 살지 말아야 하는 법이죠.”
일전에 저지른 배신의 대가로 이번 여정 내내 수발을 도맡게 된 카나의 모습에 루스가 낄낄댔다.
“웃지 말고 검토 좀 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숙영지에 앉은 루스가 지도를 꺼내 지금까지 지나쳐 온 길을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를 꼬박 뒤졌는데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군요.”
“이대로라면 시간을 꽤 잡아먹겠는데.”
“예. 한 달도 모자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 발견된다는 가정이지만.”
“느긋하게 하자고.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닐 테니.”
“하지만 그 가출했다던 엘프 장로도 계속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겠네.”
단순히 찾는다는 것에 집중해서 그런가, 로르다인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으응?”
“지나오면서 기억을 남겼습니다. 혹여라도 로르다인께서 확인한다면 엘븐 포레스트로 돌아오실 겁니다.”
“괴짜라면서? 그냥 무시할 수도 있겠지.”
“언행을 조심하시죠.”
“괴짜를 괴짜라고 부르는 게 왜?”
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미랑이 검집 위에 손을 얹었다.
“당신이 당신의 왕을 위하듯, 우리도 로르다인의 이름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니 마땅한 예의를 갖추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너희가 인간의 왕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도 아니잖아?”
“……한번 해 보겠다는 겁니까?”
“저번에도 졌으면서 무슨.”
“드루이드만 아니었다면 지지 않았을 겁니다.”
“아, 그럼 지금은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당연한 소리를.”
“재밌겠네. 루스!”
내 부름에 앉은 자세로 턱을 괸 채 구경하던 루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예.”
“쟤가 너를 핫바지로 보는데?”
“원래 패배자들이 다 그런 법이죠. 패배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요인으로 돌려 버리는 것.”
루스의 비웃음에 미랑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패배자라니!”
“그럼, 아닌가?”
“입조심하십시오!”
“조심하게 해 보든가.”
불꽃 튀는 신경전에 소리 나게 손뼉을 쳐 잠시 분위기를 환기했다.
“좋아. 그렇게 억울하면 대련을 한번 해 보든가.”
“대련?”
“왜, 그때는 드루이드 때문에 졌다며?”
“좋습니다.”
스릉!
유려한 곡선을 띤 검이 미랑의 손에 의해 뽑혔다.
그에 화답하듯, 루스 또한 직선으로 뻗은 롱 소드를 뽑아 내세웠다.
“엘프의 검술과 인간의 검술. 흥미진진한데.”
“내가 이긴다면 방금 했던 경솔한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론 예를 갖추겠다 약속하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반대로 우리가 이기면?”
“지지 않을 테니 굳이 논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자신감 하나는 보기 좋네. 좋아. 만약 네가 진다면 몇 가지 묻는 것에 거짓 없이 답변해 주는 건 어때? 물론 법규에 어긋나는 건 묻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질 일이 없을 테니.”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그렇게 미랑과 루스가 대치하게 됐다.
흥미롭다. 루스는 마나를 다루고 미랑은 정령을 다룬다. 같은 검을 다루지만 그 세부적인 성향은 다르니 전개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시작은 미랑이 먼저였다.
미랑이 루스의 주변을 돌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가벼웠다. 가볍다 못해 번쩍인다. 못해도 마나를 활용하는 기사 수준이다.
‘루스는?’
반면 루스는 느긋하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미랑이 덮쳐 들어왔고, 루스 또한 번개같이 검을 내질렀다.
카앙!
청명한 금속음이 숲속으로 울려 퍼졌다.
보기 좋게 검을 쳐 낸 루스가 씩 웃었다. 반면 힘에서 밀려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한 미랑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때?”
내 물음에 루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앞으론 일리아를 내보내도 되겠군요.”
“그 정돈가?”
루스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랑이 낮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껏 고요했던 주변에 갑자기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인가.’
눈에 띄게 빨라진 미랑이 속검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여유 있던 루스도 짐짓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이후 펼치진 것은 속도의 향연이었다.
서로의 잔상만이 얽히고설켜 보이는 것은 검이 맞부딪치며 남긴 불똥뿐이었다.
“호각인데.”
“이곳은 대수림이지 않습니까. 평지였다면 마이어 경이 벌써 제압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은근 루스의 편을 들어 주는 일리아의 말에 뒤에서 먹을 것을 한 아름 들고 나타난 카나가 코웃음을 쳤다.
“이미 다른 무기를 쓰지 않고 검만 쓰는 것부터가 봐주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실력이 조악해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니까 안 쓰는 거겠지.”
“지금 엘프의 궁술을 무시하는 거냐?”
“그걸 일일이 물어봐야 아는 건가? 어리석긴.”
일리아의 대꾸에 카나가 이를 악물었다.
“한번 해 보든가.”
“피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서로를 노려보며 이를 갈던 카나와 일리아도 곧장 자리를 옮겨 대련을 시작했다.
삽시간에 숲속에는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저러다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러는 겁니까.”
플레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할 건 없어 보이는데.”
“없다니요.”
“사실 저 넷 모두 대련의 이유 따윈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상관없을걸.”
“상관없다니요? 원해서 한다는 겁니까?”
“그래. 지금의 인간과 엘프는 서로 겪어 보지 못한 다른 문화권이니까. 서로 상대 검술의 원류를 꺾어 자신의 것이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할걸. 전사란 원래 그런 존재니까.”
“이해하기 힘들군요.”
“사실 나도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어.”
신나게 검을 맞부딪치고 있는 엘프와 인간들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마나가 풍부한 대수림에서 새로운 경험은 실력을 비약적으로 향상해 줄 테니까.
“그럼 그동안 나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식사나 준비할까 생각하기도 잠시, 카나가 가져온 먹을거리를 보자 의욕이 팍 식어 버렸다.
‘무슨 죄다 나무 열매만…….’
끌끌 혀를 차며 몸을 돌리자 그런 나를 보고 플레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가는 겁니까?”
“저걸 봐.”
내 시선이 가리킨 나무 열매를 보자 플레타도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이라도 해 와야겠군요.”
“대수림에서 사냥감을 잡으면 그건 불법일까?”
“글쎄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들키지만 않으면 되겠지 뭐.”
“같이 갈까요?”
“아니. 혼자로도 충분해. 정찰을 겸하는 거니 조금 늦을 수도 있고. 그동안 쟤들이나 잘 감시하고 있으라고.”
“제가 무슨 보모입니까?”
“꽤 어울리는데 뭐.”
“…….”
실없는 농담을 끝으로 나는 홀로 숲속 깊숙이 걸음을 옮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괜히 왔던 길 되돌아올 일 없게 주변이라도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고함을 질러도 일행에게 들리지 않을 거리가 되자 가볍게 아휀을 잡았다.
“야.”
[우웅?]“케르윈이 매년 찾았다는 그곳, 어떤 곳인지 자세히 설명해 봐.”
[으음……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엄마가 그곳에선 아주 크고 밝은 달이 보인다 했어.]아주 크고 밝은 달?.
시야가 아주 탁 트인 곳이려나? 산인가? 하지만 대수림에 특별히 솟은 산은 없는 거로 아는데…….
“그게 다냐?”
[그 달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도 했지.]“…….”
달을 품에 안는다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