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76)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76화(76/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76화
비틀거리는 로르다인을 부축해서 재빨리 뒤로 빠졌다.
그사이 거칠게 고개를 털어 내며 정신을 차린 로르다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냐, 저것들은.”
“……글쎄요.”
눈에 푸른 안광을 빛내며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고개를 돌린 기사들이 나와 로르다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살아 있나 싶어 당황스러웠으나 자세히 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
그들은 기사이긴 했으나 기사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잘빠진 무구 세트라고 할까.
그리브, 건틀릿, 풀 플레이트 메일과 헬름, 그리고 롱 소드까지. 하지만 그 무구들 안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신체가 없었다.
스릉!
다섯 갑옷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합이라도 맞춘 건지, 동시에 빼 드는 소리만 들어 보면 한 자루의 검만 뽑힌 듯했다.
“팬텀 나이트인가.”
마법에 걸려 알맹이 없이 무구만 있는 존재를 뜻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환영 인사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저 검을 지키는 파수병인 것 같은데요.”
“파수병?”
“도굴을 염려했을 테니까요. 아마 석관을 건들면 작동하는 것일지도?”
“됐다. 어쨌든 때려 부숴야 하는 놈들이라 이거지?”
로르다인이 손아귀를 쥐었다가 풀며 목 관절을 풀었다.
“싸울 수 있겠습니까?”
“할 만해. 머릿속이 조금 시끄러운 것만 빼면.”
“도와드려요?”
“내가 이런 영혼도 없는 꼭두각시한테 질 성싶으냐? 필요 없어.”
로르다인이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섰고, 그에 화답하듯 다섯 무구 또한 동시에 달려들었다.
번개같이 검을 뽑은 로르다인이 다섯 개의 검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한 번에 쳐 냈다.
카가강!
그 뒤로도 몇 번 검을 나눠 보던 로르다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쳇.”
뭐지?
짧게 혀를 찬 로르다인의 몸 주위로 일순간 마나가 피어올랐다.
뒤이어 뻗어 간 로르다인의 왼손이 가장 앞에 서 있던 무구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콰아앙!
망치로 바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무구가 힘없이 멀리 날아가 돌벽에 틀어박혔다.
그에 로르다인이 오른손으로 검을 붕붕 돌리며 입꼬리를 찢었다.
“다음은 누구냐. 너냐?”
쩌적!
사과를 쥐어짜듯, 손아귀로 헬름을 찌그러트린 로르다인이 검을 뻗어 또 하나의 팬텀 나이트를 횡으로 갈랐다.
“뒤에 한 놈 더…….”
“알고 있어.”
내 경고를 일축한 로르다인이 뒤를 덮쳐 오는 검을 쪼그려 피해 낸 후, 곧장 일어나며 하이킥을 날렸다.
쩌엉!
통렬한 타격음과 함께 헬름이 조각나며 허공에 흩어졌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하나의 기사.
그를 향해 도약한 로르다인이 양손으로 잡은 검을 내리찍어 반으로 갈랐다.
과정은 길었으나 실제론 찰나였다. 마치 순식간에 지나가는 영화의 격투신처럼, 로르다인이 손을 툭툭 터며 마무리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별 시답지 않은 것들이…….”
로르다인이 툴툴대며 검을 갈무리하던 그때였다.
갑옷들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찌그러진 헬름이 판금질을 하듯 다시 펴졌다. 잘린 갑옷은 다시 모여 깔끔하게 붙었고, 부서진 것들은 조각이 모여 완벽하게 복원됐다.
“뭐야?”
그렇게 일어난 무구들이 다시 로르다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로르다인은 여전히 손쉽게 팬텀 나이트를 제압했고 그들은 다시 처참한 몰골이 되어 널브러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곳에 퍼진 마나를 흡수해서 다시 복원되는 게 틀림없었다.
“귀찮게 됐군.”
“예?”
“귀찮게 됐다고 했다.”
로르다인의 말에 좀 전에 검을 맞부딪치곤 눈을 찌푸린 그가 생각났다.
“문제 있습니까?”
“내구성은 약해. 솔직히 힘을 집중하면 부숴 버리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계속 살아난다면 골치 아프지.”
“왜죠?”
“직접 상대해 보든가.”
직접? 못 할 것도 없지.
아휀을 뽑으며 앞으로 나서자 팬텀 나이트들이 검을 들어 나를 겨누었다.
그래 봤자 영혼 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쇄도해 오는 팬텀 나이트를 보며 가볍게 막아 낼 요량으로 검을 뻗었다.
그래, 뻗었는데…….
‘뭐야.’
맞부딪쳐 오는 검에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힘을 뺀 거다. 그 탓에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렸고, 조금이지만 자세가 흐트러졌다.
‘허초?’
껍데기뿐인 놈들이 이런 고도의 심리전을 건다고?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나는 신속하게 상반신을 웅크렸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가볍게 퉁겨진 검을 고쳐 잡은 팬텀 나이트가 검을 휘둘러 왔다.
이후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검을 보며 로르다인이 픽 웃었다.
“맞지?”
“이놈들 검술이…….”
“그래. 보통내기는 아니다.”
하얀 이를 드러낸 로르다인이 앞으로 나서서 다섯의 팬텀 나이트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주변의 마나를 흡수한 그들은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죽지 않는 불사의 파수병이라.’
케르윈의 안배에 혀가 내둘러졌다.
영겁의 시간 동안 지켜야 하기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파수병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트랩을 설치하자니 적절한 희생을 감수하면 언젠가는 파훼가 된다.
하지만 팬텀 나이트는? 마나만 공급된다면 수백 년이 지나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게다가 마나만 못 쓴다 뿐이지, 검술도 꽤 훌륭한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몇 번 더 검을 나누고 나자 이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했다.
‘검술이 꽤 훌륭하다는 거, 취소.’
훌륭하다는 말은 오히려 깎아내리는 말이었다. 강했다. 그것도 엄청!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의 실력일까. 대륙에서 검을 맞대 본 사람 중, 마스터인 린다이어 백작을 제외하곤 그 모두를 상회하는 실력인 듯했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녀석들이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놈들이 마나 유저만 되었어도 바닥을 뒹구는 건 나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한정된 체력과 마나를 가진 인간과 달리 이놈들은 체력이라는 게 없기에.
장기전으로 가서 마나가 고갈되면 아마 내 패배는 기정사실이겠지.
순간 놈들의 롱 소드에 내 배가 꿰뚫리는 장면이 상상됐다.
‘이놈들을 제압하려면 저 마검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석관에서 안개처럼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은 여전히 다섯의 팬텀 나이트를 잠식하고 있었다.
저것이 팬텀 나이트를 조종하는 원인일 터. 동시에 계획이 떠올랐다. 마검이 내뿜는 저 기운을 아휀으로 무마시키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치곤 우악스럽게 팬텀 나이트를 깨부수던 로르다인을 불렀다.
“로르다인.”
“으잉?”
“저한테 못 오게 막고 있어 봐요.”
“좋은 생각이라도 있냐?”
“시도해 볼 만한 건 있죠.”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로르다인이 순간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러곤 팬텀 나이트들을 한구석으로 몰기 시작했다. 내게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 틈을 타 재빨리 석관으로 다가갔다.
검은 여전히 살기 어린 기운을 내뿜고 있었으며, 그 검을 다소곳이 거머쥔 아슬라히나는 영원한 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아휀을 불러냈다.
“그때 마석을 게걸스럽게 빨아먹었던 것 기억나냐? 지금도 할 수 있겠어?”
[게걸스럽다니! 숙녀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숙녀고 나발이고 돼, 안 돼?!”
[되…… 겠지?]“부디 그러길 빈다.”
아무래도 이 검에서 나오는 기운이 팬텀 나이트를 조종하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걸 막으려면 예전 산맥에서 마석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해 냈던 아휀의 능력을 다시 이용할 때였다.
어디에 박아 넣어야 할까.
마검의 크로스가드 한가운데 검은 보색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해야 한다면 저곳이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아휀을 높게 치켜든 그때.
“…….”
아슬라히나가 눈을 떴다.
지금껏 잠을 자듯 고요했던 아슬라히나의 눈은 흡사 영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듯 공허했다.
그에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치명적인 실수라는 자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의지가 약해진 내 검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뒤이어 아슬라히나의 하얀 손이 벌컥 솟아올라 내 복부를 강타했다.
“커억!”
허파에 힘이 빠짐과 동시에 몸이 중력을 거슬러 붕 떴다.
이후 던져진 야구공처럼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늑골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거칠게 기침을 토해 냈다. 허공에 퍼져 나가는 붉은 선혈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린 덕에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방심의 대가로 늑골 한두어 개면 싸게 치른 거지.
그렇게 홀로 합리화를 하며 간신히 자세를 잡아 무방비하게 추락하는 몸을 지탱했다.
착지하는 자세가 좋지 못해 왼손과 오른 발목에 무리가 갔다. 뻑적지근한 게 즉시 조치하지 않으면 오래갈 듯싶었다.
“이봐. 괜찮냐?”
일격을 당한 내 모습에 로르다인이 물어 왔다.
“아뇨.”
“괜찮다는 뜻이군. 그나저나 갑자기 뭐에 당한 거냐? 트랩이라도 있었던 건가?”
다섯의 팬텀 나이트를 순간 제압해 버린 로르다인이 급하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일어선 나는 턱짓으로 석관을 가리켰다.
“직접 보시죠.”
내 말에 로르다인이 의아하단 얼굴로 석관을 바라봤다.
동시에 지금껏 조용하던 석관 위로 별안간 하얀 손이 치켜세워졌다.
탁!
뒤이어 손이 석관 모서리를 짚었고.
“…….”
이내 핏기라곤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의 아슬라히나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로르다인이 씹듯이 이를 갈았다.
“저 빌어먹을 여자가 되살아났다고?”
반갑기 그지없는 인사를 내뱉으며 로르다인이 손아귀를 주물럭거렸다.
“아마도요. 그건 그렇고 로르다인.”
“왜.”
“지금이라도 제 동료들을 풀어 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네 동료라고 해서 뚜렷한 답이 있진 않을 것 같은데.”
“그 뜻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제 일행을 구속하는 힘조차 아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저 여자 때문이라면 뭐, 되살아났다는 건 조금 의외지만 그래도 내게 한 번 패배했던 여자다.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났다 한들 뭐가 달라졌을까?”
“글쎄요. 제 생각은 조금 다른데.”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침내 석관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킨 아슬라히나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검 끝을 땅에 짚은 채 무릎을 꿇었고,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여전히 공허한 눈빛이었다. 마치 자기의 의지라곤 하나 없이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한 모습이다.
뒤이어 그녀의 검 주위로 검은 기운이 확연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보통의 기운이 아니었다. 파멸이 담긴 죽음의 기운이다.
끼아아악-!
죽은 원혼의 울부짖음이 공동을 가득 채웠다.
그에 나와 로르다인은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뒤늦게 자신이 뒷걸음질 쳤다는 걸 깨달은 로르다인이 표정을 구겼다.
“좋아. 정정하지. 네 말대로 해야겠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곧장 말을 바꾼 로르다인이 멀찍이 선 정령들을 돌려보냈다.
툭! 투둑!
플레타를 위시한 일행들이 정신을 잃은 상태로 바닥에 쓰러졌다.
“옛날에 한 번 이겼다고 자신만만하시더니.”
“비꼬는 거냐?”
“어쨌든, 그래서 지금은 다르다는 겁니까?”
“…….”
내 물음에 잠시 말을 아꼈던 로르다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원래도 이상한 기운을 풍기던 여자긴 했다만, 그때는 그 힘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아니, 활용이라기보단 자제하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마치 고삐가 풀린 괴물 같군. 혹시 저 검이 네가 말한 사념을 잡는다는 검이냐?”
“아마도요.”
“죽었다 살아난 인간과 사악한 마기를 풍기는 검이라.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메우는데.”
“뭔가 떠오르는 게 있습니까?”
“뭐가 떠오르겠어? 죽은 기사가 악한 힘으로 되살아났는데.”
“데스 나이트?”
“그래. 데스 나이트다.”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그렇게 아슬라히나는 죽음의 기사로 우리 앞에 되돌아왔고.
“젠장. 나도 데스 나이트는 전설로만 들어 봤단 말이다.”
당황과 짜증 섞인 로르다인의 한숨이 맥없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