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80)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80화(80/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80화
* * *
전투는 끝났다.
지친 로르다인이 옆에 있던 루스의 어깨를 잡아 기댔고, 루스 또한 피하지 않았다.
자신을 납치한 상대지만 지금 잘잘못을 따지기엔 여력이 없겠지. 짧게나마 같은 편에 서서 전투를 치르기도 했고 말이다.
“이제 이놈들은 어떻게 하죠?”
루스가 여전히 무릎 꿇은 채 미동이 없는 팬텀 나이트를 가리켰다.
“글쎄.”
이미 아휀의 황금빛 기운에 잠식당한 팬텀 나이트들이다. 그렇다면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짓하자 팬텀 나이트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고, 이내 절도 있게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언제 움직였냐는 듯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루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들을 이야기가 많을 것 같군요.”
루스의 말에 일리아와 플레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날 보는 셋의 시선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번 일로 확실히 내가 무언가 숨기고 있단 사실을 깨달은 탓이겠지.
그 의문을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한다면 이어져 오던 신뢰가 깨질 것이다.
‘이젠 말할 타이밍이라는 거겠지.’
언제까지 숨길 수 있으리라곤 생각 안 했지만 그래도 예정보다 빨리 다가왔다.
그래도 어쩌겠나. 물은 엎질러졌는데.
“궁금한 게 많겠지.”
“…….”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차차 이야기하자고.”
아직 아슬라히나가 무릎 꿇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사념은 지금도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의 주군이시여…….]그녀는 나를 찾고 있었다.
그 사념에 담긴 감정은 복잡했다.
거친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채 갈구하는 애원이었다. 동시에 죽어서도 섬기겠다는 불꽃 같은 충절도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내게는 아슬라히나가 오랫동안 함께해 온 혈족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그녀 또한 마검의 피해자였다는 거겠지.’
요새 공방전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아슬라히나는 대제가 도착하기 직전에 숨을 거두었다고 들었다.
그런 그녀의 사념이 검에 깃들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렇다면 왜 진즉에 케르윈은 아슬라히나의 염원을 풀어 주지 못했지? 귀중한 친우라며?’
[대제가 없었으니까.]‘네가 곧 대제라며.’
[맞아. 내가 곧 대제야. 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영혼 조각이기도 해. 육신이 없으니까.]‘육신? 그렇다면 아무 인간이나 데려다 대리인으로 내세워도 될 일은…… 아니었겠지.’
단순히 망자의 염원을 풀어 주자고 대제의 대리인을 만든다는 건 무리였겠지. 엄연히 그 위상이 있으니 말이다.
아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슬라히나 앞에 섰다.
아슬라히나는 여전히 부동의 자세였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끝없는 연민이 밀려왔다. 그녀의 사념에 영향을 받은 탓인 건 안다. 하지만 당장 내 감정은 그녀를 편안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다면.’
아슬라히나에게 영원한 휴식을 선사하려면 모르긴 몰라도 이 마검에서 그녀를 해방시켜야겠지. 단순히 떼어 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떼어 놓는담.
이미 아슬라히나의 영혼은 이 검에 잠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가볍게 입맛을 다시며 아휀을 불러냈다.
‘너와 이 검은 다르지?’
‘네 자랑하라고 물은 거 아닌데.’
[어이없어! 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하지만 저 검에겐 그런 선택권 따윈 없어! 단지 잡은 자를 천천히 잠식할 뿐!]‘그렇다면 답 나왔네.’
검이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 게 아니라면 방법은 간단하다. 그 주인을 바꿔 버리면 되는 거겠지.
내가 잡을까?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아휀과 이 마검의 힘은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자칫하면 시너지는커녕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고개를 돌려 일행을 바라봤다.
로르다인은 안 된다. 엘프가 마검이라니. 퍽이나 어울리겠다. 같은 이유로 미랑이나 카나도 예외. 플레타는 마법사니 당연히 기각. 그렇게 되면 남은 건 루스와 일리아인데.
‘루스는 점찍어 놓은 게 있으니.’
루스에게 써먹을 건 이미 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일리아 그녀뿐이다.
고개를 돌려 작은 입술을 굳게 다문 일리아와 눈을 마주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검을 다루려면.’
그 자격은 첫째도 정신력이고 둘째도 정신력이다. 고결한 아슬라히나처럼 이 패도적인 힘을 곧게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정신력에 있어서 일리아는 통과다.
한때 캐피탈로 향하던 길에서 습격을 받았을 때 나와 했던 여정을 생각한다면 더 검증할 필요도 없지.
반대로 그 힘을 악하게 쓸 가능성은?
미끼가 되어 죽으라는 시험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그녀가 기억났다. 그녀의 고결한 신념은 쉽게 꺾일 것이 아니었다.
결정을 내리곤 몸을 일으켰다.
“플레타.”
“불렀습니까.”
“듣고 싶은 이야기는 많겠지만 일단 로르다인과 함께 이곳에서 나갈 방도를 찾아봐 줘. 모든 일은 나중에 전부 설명해 줄 테니.”
내 말에 무어라 말하려던 플레타가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아슬라히나를 바라봤다.
“아슬라히나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내가 마무리 짓고 나가도록 하지.”
“그 또한 나중에 설명해 줄 겁니까?”
“미안하게 됐어.”
“한두 번도 아니니 익숙합니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플레타의 옆으로 로르다인이 나섰다.
“혼자 남아서 뭘 하겠다고?”
“마무리 지을 게 있습니다.”
“마무리?”
“인간의 일입니다. 맡겨 두시죠.”
인간의 일.
선을 긋는 말에 로르다인이 끌끌 혀를 찼다.
“잘났군그래.”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와 약속한 건 잊지 않았겠지?”
아내의 사념을 구하라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킬 겁니다. 반드시.”
“두고 보마.”
그렇게 못내 수긍한 로르다인까지 공동 밖으로 향하던 찰나, 나는 일리아를 불러 세웠다.
“일리아.”
“예, 공자님.”
“넌 잠깐 남아.”
잠시 의문을 떠올린 그녀였으나 이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두가 바깥으로 향하고 나와 일리아만 남았다.
손짓으로 일리아를 불러낸 나는 가볍게 석관을 가리켰다.
“여기 이 여자가 누군지 아나?”
“대충 들었습니다. 아슬라히나라고.”
“그래? 그럼 그녀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네.”
“당연합니다. 여기사로선 정점에 오른 고결한 기사이니 모를 리가 없지요.”
“존경하나?”
“존경합니다.”
“그래?”
“예, 정말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마.”
“어떤 걸…….”
“그녀와 버금가는 기사가 될 방법이 있다면, 받아들일 거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역사에 당당히 장식된 전쟁 영웅 아슬라히나. 그런 기사와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싶냐는 물음.
세상 그 어떤 기사가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일리아는 이내 현실을 깨닫곤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마나를 다루게 된 저입니다. 아슬라히나같이 출중한 재능에 비해 한참이나 뒤처진 출발인데 어떻게…….”
“수단과 방법은 생각하지 말고 대답해. 아슬라히나처럼 막강한 힘을 거머쥘 방법이 있다면, 그런 기회를 잡을 자신이 있나?”
일리아가 잠시 말을 아끼며 고민에 빠졌다. 내가 한 말의 진의는 둘째치고, 그런 기회가 주어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듯했다.
이내 생각을 마친 일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은 열망으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예.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이런 제게 그 자격이 있다면, 그렇다면 잡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다면 죽을 각오로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예상대로 일리아는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마냥 덥석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노력에 기반한 자격을 얻겠다는 말도 훌륭했다.
“그렇다면 말인데, 굳이 맨 처음 걸음마부터 차근차근 배울 필요는 없지 않나? 내가 보기엔 네 기본기는 더 배울 게 없을 정도로 훌륭하니까.”
“예?”
“기초 부분은 빠르게 끝내고 곧장 심화 과정으로 가잔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너도 일찍이 내 소문을 들었겠지? 린다이어 백작 가문의 개망나니 삼공자에 대해서.”
“제, 제가 어찌…….”
“있는 사실을 말할 뿐이야. 나는 분명 그 소문대로 그랬었다. 하지만 바뀌었지. 물론 내 인간성 자체가 어떻게 바뀌었는진 중요하지 않아. 네게 필요한 건 내가 강해진 방법이다.”
“그렇다는 말씀은…….”
씩 웃으며 허벅지에 달린 작은 포켓을 열었다.
그곳에서 꺼낸 건 마나석으로 장식된 귀걸이와 몽마의 정수가 담긴 앰플, 수면초, 마지막으로 마법 가루가 담긴 종이봉투였다.
‘될까 싶기도 한데 밑져야 본전이니.’
일종의 응용이었다.
지금까진 무훈록을 이용해 영웅의 일화를 직접 체험하고 체득해 실체화시켜 힘으로 삼아 왔었다.
그렇다면 이 마검에도 그 방법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름의 근거는 있다. 무훈록에는 해당하는 영웅의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렇게 본다면 마검도 마찬가지다. 사념이긴 해도 아슬라히나의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는 건 매한가지였으니.
딱!
손가락을 퉁긴 나는 일리아에게 손짓했다.
“석관 옆에 누워.”
“예?”
“두 번 말하게 할래?”
“아, 아닙니다.”
내 말에 일리아가 헐레벌떡 석관으로 다가가 그 옆에 엉거주춤 누웠다.
“편하게 누워. 긴장 풀고. 뭐, 어차피 싫어도 풀게 되겠지만.”
“대체 어떤 일이 있기에…….”
“네가 기억해야 할 건 단 하나다. 역사에 기록된 아슬라히나의 최대 업적.”
“이종족을 막아 낸 그 요새 공방전 말씀입니까?”
“그래. 그 업적을 떠올리고, 더불어 한없이 갈망해라.”
“갈망…….”
“눈을 감고 상상해. 네가 곧 아슬라히나가 된다는 마음으로.”
대체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긴가 싶었는지 일리아가 눈썹을 늘어트렸다.
하지만 뭐 어쩔 텐가. 내가 까라면 까야지.
결국 일리아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즉시 나는 마나석을 부수며 마법 가루를 석관 안에 아슬라히나가 꼭 쥐고 있는 검에 뿌렸다.
타닥타닥-!
신기하게도 마법 가루는 검에 달라붙음과 동시에 타들어 가듯 스며들었다.
뒤이어 몽마의 정기를 느릿하게 검 위에 흘러내렸다.
끼이이이-!
“눈 뜨지 마.”
소름 돋는 몽마의 울부짖음에 일리아가 움찔했으나 이내 내 한마디에 도로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으로.’
치익-!
불을 붙인 수면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연기가 일리아의 코를 파고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상상하고, 떠올리고, 갈망해라. 그리고 아슬라히나가 되어라.”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일리아의 몫이었다.
나 또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로르다인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나 또한 수면초를 타고 피어오르는 연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나는 석관에 몸을 기대었다.
천천히 눈이 감겼고, 이내 세상이 뒤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