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third son of a failure RAW novel - Chapter (82)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82화(82/278)
망작의 삼공자로 사는 법 82화
25장. 어둠의 정령
“밖이다.”
두 달여의 시간이 흐르고 붕괴해 가는 무덤에서 빠져나오자 루스가 무릎을 꿇고선 양팔을 벌렸다.
마치 죄수가 감옥에서 나온 뒤 햇빛을 받는 듯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좋냐?”
“이젠 물고기라면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이 숲 내음도 그리웠고 말이죠.”
“동감이야.”
그렇게 오랜만에 맡는 바깥공기에 모두가 취해 있던 순간이었다.
삐익-! 삐익-!
별안간 나타난 흉내지빠귀가 우리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입맛을 다신 루스가 몸을 일으켰다.
“마침 생선도 질렸는데, 잘됐다, 녀석.”
그러곤 돌멩이를 집는 모습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둬.”
“예? 나오자마자 바로 사냥부터 하자고 한 건 공자님이지 않습니까.”
“그건 맞지만 저건 사냥감이 아니야.”
“……새 구이는 못 드십니까?”
“멍청한 루스. 잘 들어 보라고.”
내 물음에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것을 깬 것은 플레타였다.
“처음 대수림에 들어왔을 때, 그 드루이드가 알려 주었던 신호군요.”
“그래.”
“지금 이건 따라오라는 뜻이었죠.”
“좀 이상한데. 굳이 저런 준비가 없어도 엘븐 포레스트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말이지. 우리가 길을 잃을까 봐 보낸 건 아닐 테고.”
“그럼에도 저렇게 마중을 나왔다는 건…….”
“아무래도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가 보자고.”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로르다인이 앞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엘븐 포레스트 반대쪽으로 안내하려는 심산인 것 같은데.”
실제로 흉내지빠귀가 향하는 곳은 엘븐 포레스트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예, 그렇군요.”
“가는 방향이 달라지겠군.”
“여기서 이별이겠네요.”
“이별? 새삼스럽게 무슨.”
씩 웃은 로르다인이 손을 내밀었고, 나 또한 그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
“만남은 썩 좋지 못했다만 그래도 끝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로르다인이 아니더라도 아슬라히나의 무덤을 찾아내긴 했겠지.
하지만 로르다인의 이야기를 들은 덕분에 해결책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던 건 사실이다.
게다가 그뿐만 아니라 엘프 최강의 전사에게 일대일 과외까지 받았으니 되레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
“듣자 하니 곧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예, 아마도.”
“그래. 우리도 나름 방비해야겠군. 앞으로 할 일이 아주 많겠어.”
“혹시라도 나중에 적으로 만나게 되면 한 수 접어주시죠.”
“괴물 같은 자식이 엄살은.”
“괴물이라니요.”
“한두 달 만에 몇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놓고 괴물이 아니다? 웃기고 있군.”
로르다인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일리아와 루스, 플레타가 동조해 왔다.
“외람되지만 공자님. 솔직히 제 눈에는 공자님이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일리아의 말에 동의합니다. 가끔 태어날 때부터 마나를 다룬다는 용족의 피가 섞인 게 아닌가 싶으니.”
“용족은 수백 년 전에 멸족했습니다. 차라리 삼공자의 몸뚱이에 다른 영혼이 빙의했다고 생각하는 게 신빙성 있겠죠.”
“오, 공녀님. 그럴듯한 추리십니다.”
가슴 한쪽이 뜨끔 찔려 오는 기분이다.
하긴, 이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단숨에 엑스퍼트의 경지를 뚫는 데 성공했으니까.
‘진짜 먼치킨이란 게 이런 기분일까.’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본격적으로 수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 실력은 이제 막 마나 유저 중급에 들어선 상태였다.
본래대로라면 유저 상급이 되고 이후 엑스퍼트가 되기 전, 일종의 벽을 느끼는 단계인 최상급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단숨에 벽을 허물어 버렸다.
‘엑스퍼트가 되다니. 나도 놀랐지.’
소드 엑스퍼트(Sword Expert).
단순히 검을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그 오의(奧義)를 깨달은 달인이 얻는 칭호.
어느 곳을 가더라도 능히 실력을 인정받으며 수많은 귀족이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인재.
그런 경지에 도달한 나를 보는 로르다인의 눈빛은 정말 괴물을 보는 듯했다.
‘괴물이 따로 없군. 너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냐? 인간이 맞긴 한 거냐?’
수련을 도와주던 로르다인이 내 성취를 보곤 말을 더듬던 게 아직도 생생했다.
그렇다고 달리 설명할 길은 없었다.
그냥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실력이 일취월장하다 못해 폭발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실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정말 기이하단 말 말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 혼자만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루스도 기어이 엑스퍼트의 벽을 허물었으며 일리아 또한 마나 유저 중급으로 단숨에 도약했다.
물론 루스야 원래부터 상급의 실력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데다 재능도 출중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성과였다.
일리아 또한 아슬라히나의 경험과 힘을 계승했기에 일취월장할 수 있었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 둘과 비교해도 훨씬 더 특별한 케이스였다. 단숨에 몇 단계를 뛰어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 짚이는 건 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의 활약을 직접 겪어 봤고, 몇몇 기술은 체득까지 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육체.
무인으로서의 최적화된 골격은 물론이거니와 린다이어 가문의 재능까지.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거머쥔 상태에서 마나 터널이라는 가공할 기술까지 더해지자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한계는 있다.’
이런 완벽한 조건임에도 분명 한계는 있었다.
스스로 느꼈던 일이다. 엑스퍼트의 벽을 뚫은 직후부턴 이전보다 만족할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까.
늘긴 늘었으되, 티가 안 난다고나 할까.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자 경험치 요구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과 비슷하다면 적절하겠지.
하지만 그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엑스퍼트라는 경지는 세상 모든 기사의 꿈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마침내 이루어 냈고.
“받아라.”
로르다인의 말이 나를 상념에서 깨웠다.
그는 허리춤에서 단검 하나를 뽑더니 이내 내게 내밀었다.
“훗날 나를 찾고 싶다면, 아무 엘프나 붙잡고 보여 주면 될 거다.”
별다른 문양도 없는, 투박하기 짝이 없는 단검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손잡이 끝 폼멜에 박힌 인장이 도드라졌다.
“비싼 겁니까?”
“글쎄. 네가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말을 마친 로르다인이 먼저 가볍게 양손을 벌리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평안한 여행이 되길.”
그 모습에 일리아와 루스, 플레타 또한 예를 취해 답했다.
말을 마친 로르다인이 씩 웃으며 몸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져 갔고.
“평안하시길.”
그 뒷모습을 보며 나 또한 작게 인사했다.
* * *
흉내지빠귀를 따라 도착한 곳은 대수림의 초입이었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애초에 엘븐 레이크가 왕국과 대수림의 경계선 근처에 자리했었으니까.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처음에 이곳으로 향할 때 타고 온 말과 마차가 그대로 있었고, 마차 안에선 한가롭게 책을 읽는 라헨나의 모습이 보였다.
“라헨나.”
내 부름에 책을 살짝 내려 보인 라헨나가 나와 일행을 쭉 훑어보곤 옅은 웃음을 흘렸다.
“거지꼴이 되어서 나올 줄은 예상했다만.”
그렇게 우리를 훑어보던 라헨나의 시선이 나를 향한 순간, 그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구나.”
무슨 뜻인지 뻔하다. 내가 피워 내는 기도가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뜻하는 말이겠지.
책을 덮은 라헨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두 눈엔 어울리지 않게 의문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앞선 미랑과 카나 두 엘프에게 못 들으셨습니까?”
“수련한다고 듣긴 했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네 녀석은 좀 심한 편인 것 같구나.”
“제가 생각해도 그렇긴 합니다.”
“어디까지 오른 것이냐?”
라헨나의 물음에 로르다인이 건네준 단검을 잡아 보였다.
그러곤 마나하트를 개방했다.
고오오…….
마치 갇혀 있던 성난 황소처럼 마나가 들끓기 시작했다.
이후 내 자연스러운 이끌림에 따라 기운이 내몰리듯 단검으로 향했고.
“…….”
이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한 푸른 기운이 단검을 감쌌다.
단순히 불투명하게 덧댄 수준인 마나 유저의 오러가 아니었다. 이것과 비교하면 마나 유저의 것은 어설픈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마나의 발현이자 그 강함을 증명하는 완전한 검기(劍氣), 오러 블레이드다.
시전자가 완전한 기사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
물론 그 오러를 엿가락처럼 뽑아내 흩뿌려 대는 마스터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인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마스터는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숫자. 그러니 이 정도도 충분한 강자라 할 수 있지.
“괴물 같은 녀석.”
로르다인과 같은 반응을 보여 주는 라헨나의 말에 나는 마나를 거두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참에 이름을 괴물로 개명이라도 할까요?”
“힘뿐만 아니라 오만함도 같이 길렀군.”
“적당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해 주시죠. 뭐, 자세한 건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엘븐 포레스트가 아니라 여기로 부른 까닭이 뭡니까?”
“타거라. 가면서 이야기하자꾸나.”
안경을 벗어 품속에 집어넣은 라헨나가 손짓하자 말들이 스스로 움직여 일행들 앞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가져왔던 짐도 마차에 전부 실려 있음을 확인한 일행들이 말에 올랐다.
그 모습에 라헨나가 플레타를 향해 손짓했다.
“바슈른의 아이도 이곳에 타라. 해 줄 말이 있으니.”
라헨나의 말에 플레타가 미간을 좁혔으나 이내 군말 없이 마차로 향했다.
그렇게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안에 들어선 나와 플레타는 라헨나와 마주 앉았다.
이후 라헨나는 흐트러진 백색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돈한 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바슈른으로부터 전서가 왔다.”
“전사라고 함은.”
플레타의 물음에 라헨나가 품속을 뒤져 두루마리를 건넸다.
“읽어 봤습니까?”
“그런 취미는 없다. 다만 전령이 아주 다급해 보이긴 하더구나.”
라헨나의 말에 플레타가 두루마리에 찍힌 인장을 확인했다. 가문의 그것임을 확인한 그녀가 곧장 봉인을 뜯곤 전서를 확인했다.
이후로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놀랐다가, 당황했다가, 이내 딱딱하게 굳는다. 그 모습이 퍽 보는 맛이 있어 지켜보던 찰나, 끝내 플레타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이 기어코 일을 벌이는군요.”
“일을 벌여?”
“로드키우스 가문으로 붙기로 한 놈들 말입니다.”
“아, 일전에? 어떤 놈들이라 했었더라.”
“트릴 남작. 이커스 남작. 레이크 자작.”
기억이 났다.
나와 플레타를 습격했던 괴한들이 누명을 씌우려 했던 귀족들을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일을 벌였다고?”
“우리가 내건 요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군요.”
“요구?”
“로드키우스에 붙는 건 좋다. 하지만 그간 바슈른 가문의 기수로서 취했던 권리는 내려놓고 떠나라.”
“합리적이잖아? 그 세 귀족들은 뭐라 하는데?”
“지금껏 자신들의 의지완 상관없이 강압에 눌려 있었단 겁니다. 사실이긴 하죠. 그들 가문은 오래전 우리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흡수됐던 이들이니. 하지만 그 세월이 몇 대에 걸칩니다. 그 시간 동안 바슈른의 권세 아래 단물을 빨아 놓고 지금 와서 눈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으니.”
“팩트만 보자고. 지금까진 무력으로 지배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못 참겠으니 나가겠다는 건가? 독립을 위함이라는 아주 훌륭한 명분도 있으니.”
“겉보기엔 그런 셈입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로드키우스 가문이 있을 테고?”
“그렇지 않고서야 놈들이 그럴 배짱이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결론은 하나입니다. 가타부타를 따질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린 항상 그래 왔듯 선대가 해 왔던 방법을 쓸 겁니다.”
“그 방법은.”
내 물음에 비릿하게 웃은 플레타가 두루마리를 꽉 구겼다.
“전쟁입니다.”